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49
인베이전(invasion) (2) 키비에는 손가락을 들었다.
칠흑의 기운이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강렬한 오러였다.
“이건 화신의 힘.”
이번엔 별의 전당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전당의 기억이 뇌리로 스며들어왔다.
이곳에서 일어난 무수한 회의는 물론이고, 과거 그녀와 한빈 일행이 어둠의 교단에 자신을 증명하던 그 일 또한.
섀도 리딩 역시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 또한 화신의 힘이지.”
하지만 이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전당의 구석에 드리운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느껴지던 세상의 어둠, 그것이 아무리 뜻을 품고 의지를 가져도 응답하지 않는다.
“……역시 신력이 억제되어 있어.”
류한빈이 인상을 썼다.
“도로 신성을 빼앗겼단 소리야?”
“전부 빼앗긴 건 아냐.”
제노비아가 훔쳐 간 어둠의 신력, 이는 옴팔로스에게 빼앗겼다.
홀리엔으로부터 되찾았으나 마신의 권능으로 봉인된 신성, 이 역시 옴팔로스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가르한에게서 되찾은 어둠은 여전히 그녀에게 속해 있었다.
“단지 억제되어 있을 뿐.”
어둠의 키브리엘은 다시 화신체 속에 갇혀 버렸다.
어둠이 깨어나지 못했으니 다섯여신들의 부담도 줄어들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세상이 다시 섭리 대로 흘러갔을 터인데……
레온하트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달라진 것이 없군요.”
키비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 나빠졌지.”
최강의 3인은 어둠의 화신을 찾는 것이 마지막 목표였다.
반면 옴팔로스는 키비에 따위에게 관심이 없다.
이미 목적한 것을 얻었으니까.
그때는 잠시 멈춰진 파국이었다면, 지금은 시작되어 버린 파멸.
에피르가 초조해하며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요?”
키비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저, 앞으로 어떻게 될지만은 알 수 있었다.
옴팔로스는 이 세계에서 여섯여신, 초월자들의 관여를 배제해 버렸다.
그렇다면 다음은…….
필멸자들의 차례겠지.”
?
*
*
간신히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필드락스요새를 탈출한 알렌디아의 군세.
그들은 지금 지옥의 한복판에서 있었다.
“뭐냐!”
“대체 왜 우리를?”
그것은 밤하늘 저편에서 날아왔다.
그것은 전설 속의 천사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외모, 우아한 빛의 날개, 광휘로 가득한 신체.
그럼에도 흉악하고 무자비하며 잔혹하다.
수만의 군세 위로, 수만의 천사가 내려앉는다. 날개 달린 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피의 살육을 행한다.
지칠 대로 지친 알렌디아군에게 또 싸울 여력은 없었다.
비명 속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갔다.
절규 속에서 수많은 기사들이 죽어 갔다.
“으아아!”
악에 받친 알렌디아의 기사가 오러 돌격을 감행했다.
천사의 복부에 푸른 블레이드오러가 깊숙이 꽂혔다.
“죽어! 이 괴물 놈아!”
천사는 웃었다.
웃으며 기사의 목을 몸에서 뽑았다.
“펠론타 경!”
수하의 죽음에 분노하며 라크렐경이 마검술을 펼쳤다. 찬란한 섬광이 검을 타고 흘러 천사에게 작렬했다.
콰아아앙!
천사가 산산이 박살 나 버렸다.
과연 레벨 100이 넘는 절대 강자다운 위력이었다.
그러나 라크렐은 웃을 수 없었다.
고작 한 놈이었다.
수천, 아니 수만에 달하는 무수한 천사 중 고작 한 놈.
‘대체 이것들은 정체가 뭐지?
뇌제와 아크메이지의 부하들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좀 이상하다.
단순히 라트나의 상식을 벗어나 서가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뒤틀려있는 느낌.
‘이건 마치……
던전에서 만난 이계의 마물들과 똑같다!
‘화신께서는 어찌 되셨는가? 검왕께서는?’
라크렐의 의문은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순간 황금빛 칼날이 그의 복부를 관통한 탓이었다.
“꾜, 끄어어억!”
신음을 토하며 라크렐은 눈을 부릅떴다.
금검의 주인, 그를 죽음으로 이끈 자는 황금의 날개를 펼친 은갑의 천사였다.
“안식 속에 잠들라, 라트나의 강자여.”
놈의 음성을 들으며 라크렐은 치를 떨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공격을 받았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대체 얼마나 압도적인 실력 차가 있어야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크 으으….”
라크렐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백은의 갑주를 걸친 천사가 황금의 검을 뽑았다.
알렌디아 최강의 마검사가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라크렐 경!”
경악한 사빈 아실이 블레이드오러를 휘두르며 맹렬히 돌진했다.
“알티아여, 당신의 가호를 내리 소서!”
기도를 올리며 내려치는 강렬한 일격.
갑주 천사, 빛의 카틸론이 진지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세계에 충만한 것은……
황금의 참격이 블레이드 오러와 충돌했다.
오러를 가르고, 검을 쪼개고, 갑옷을 부수고, 그 속까지 닿았다.
“우리의 주, 옴팔로스의 가호뿐이다.”
사빈 아실의 머리가 몸을 떠났다. 붉은 선혈이 허공에 듬성듬성 알맹이져 맺혔다.
“사빈 님마저?”
세이라는 주저앉았다.
사방에 죽음이 창궐한다. 후퇴할 곳조차 없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온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신 차려, 세이라!”
“라, 라온델 님?”
넋이 나간 터라 둘 다 예전 말투가 튀어나온 듯했다.
라온델이 세이라의 등을 떠밀었다.
“뭐 하는 거야? 도망쳐야지!”
“그, 그렇죠……. 병사들을 지휘해서 후퇴를……
“지휘 같은 소리 하네! 이미 끝장이야! 그냥 도망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때론 소인배의 치졸함이 현자의 이성보다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말에 떠밀려 세이라는 달렸다.
레즐리와 라온델도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도망치는 이들의 머리 위로 천사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소중한 라트나의 생명들이다.”
더없이 자상한 어조와…….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귀중한 자들.”
한없이 잔혹한 내용을 담은 목소리였다.
“감사의 마음으로 저들을 거두라.”
같은 시각.
알렌디아군을 물리치고 승리의 기쁨에 들떠 있던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에게도 피에 물든 날개가 펄럭였다.
제4군단장 드랙스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제5군단장 블라이트가 정수리부터 갈라졌다.
제11군단 체라수스의 머리가 산산이 박살 났다.
일군의 지휘관,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는 군단장들마저 허무히 죽어 간다. 그런데 일개 기사나 병사의 운명이 더 나을 리가 없다.
“으아아악!”
“으허헝!”
무수한 생명이 피를 쏟고 눈물을 뿌리며 사라졌다.
물론 인간들도 허무하게 죽어 주지는 않았다. 살려는 자의 의지로 어떻게든 창을 찌르고 칼을 휘둘렀다.
때론 천사들을 꿰뚫을 때도 있었다. 놈들의 사지를 가르고 목을 벨 수도 있었다.
놈들은 웃으며 죽었다.
소리 없는 미소 위로 금빛 핏물이 흘러 덮이면, 웃는 천사들이 천사의 시체를 짓이기며 계속 걸어온다.
자신의 안위 따윈 돌보지 않는다.
다른 천사가 죽어 가도, 창칼이 배를 찢고 내장이 흘러내려도, 깃털이 피에 물들어 사방으로 날려도 여전히 웃을 뿐.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띤 채 한 가지 행위, 살육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칼드리스 총사령관, 토니트루스는 신음을 흘렸다.
피가 산을 이루고, 살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피는 산처럼 솟을 수 있고, 너무나 많은 살은 강처럼 흐를 수 있다.
“아아??????
그런 그를 향해 수십의 천사가 몰려왔다.
잔혹한 창칼에 토니트루스가 산산이 찢기기 직전.
“타아아앗!”
한 무리의 일행이 천사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그를 구했다.
악타룬의 이계인들이었다.
중상을 입고 기절한 토니트루스를 내려다보며 40대의 중년 검사, 구스타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슬아슬하게 죽기 직전에 구했군.”
이계인들이 혀를 차며 떠들어 댔다.
“처박혀도 지옥, 기어 나와도 지옥이구만.”
“그런데 저 천사들, 어째 좀 익숙하지 않소?”
“그렇지? 이 동네 여신 잡으라던 그 연놈들이랑 비슷한 분위기야.”
“그럼 왜 우릴 공격하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원……
혼란에 빠진 라트나인들과 달리 이계인들은 비교적 냉정한 상태였다. 이런 지옥은 이미 악타룬에서 겪어 보았으니까.
구스타프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혼절한 토니트루스의 멱살을 쥔 채 그는 뇌까렸다.
“이대론 모두 죽어.”
어차피 라트나인에 대한 의리 따윈 없다. 저들이 죽건 말건 이들이 알 바 아니다.
그럼에도 이계인들이 당장 도망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에게 걸려 있는 금제였다.
일 마치면 본진으로 돌아와 대기하라는 것이 제노비아의 명령이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본진 자체가 사라질 판국인 것이다.
본진이 사라지면 금제가 발동하고, 그럼 이들의 목숨도 휭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일부러 토니트루스를 구했다.
“자고로 말이란, 해석하기 나름이지.”
본진이 무엇인가?
병사가 많고 규모가 크면 그곳이 본진인가?
보통은 총사령관이 위치한 곳을, 본진이라고 칭한다.
“즉, 이 아저씨만 잘 붙잡고 있으면 금제는 발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
악타룬의 이계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천사들의 공습을 피해 전력으로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무조건 살고 본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지!”
그렇게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은 궤멸했다.
살아남은 극소수만이 뿔뿔이 흩어져 정신없이 도망칠 뿐이었다.
“충분히 죽이고, 충분히 살렸도다.”
옴팔로스의 사도, 어둠의 텔바란은 흡족해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라, 그리고 세계에 알려라.”
마신의 천사들은 저들까지 쫓지는 않았다.
그저 눈앞의 대군을 분쇄하는 데만 주력한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역할이 있었다.
“진정한 주께서 이 땅에 임했으니, 찬미하며 맞을지어다.”
차원궁 옴팔로스에 놓인 마신의 옥좌.
그 앞에 빛의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마신의 사도들과 시야가 연결된 영상이었다.
“원래는 3차원 입체 영상으로 만들었거든? 그런데 막상 입체 영상이란 게 생각보다 영 보기가 불편해. 차라리 화면에 그냥 비치는 쪽이 더 낫더라.”
중얼거리다 말고 옴팔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라고 말해 봐야 못 알아듣겠지만.”
곁에 서 있던 공허의 제노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의외라는 듯 옴팔로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제노비아는 말을 이었다.
“저 역시 그런 이유로 원견용 수정의 표면 곡률을 줄였으니까요. 수정 내부의 입체 영상보다 평면에 비친 쪽이 알아보기 쉽습니다. 중요한 건 현실감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 전달 능력이지요.”
“재미있군. 나의 사도가 되고도 이 정도인가?”
진정 흥미롭다는 듯 옴팔로스가 제노비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우리 애들은 이렇게까지 말상대를 해 주지는 못하는데. 역시 어스 신족의 피조물답네.’
어쨌거나 이걸로 대륙3강의 총 군세, 라트나의 고위 레벨 강자들이 대규모로 모인 두 집단이 와해되었다.
그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어디, 다른 애들은 잘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