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50
인베이전(invasion) (3) 4대금역 중 하나인 부유도 아발타.
이곳 서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한 해상도시가 존재한다.
대륙의 다른 도시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곳이었다.
이 도시는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아발타는 지중해 메티스의 상공에 위치한 하늘의 대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드나들 수 없다. 날아올라야 접근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비행에 능통한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행술 자체는 마검사가 제일 잘하는 영역이지만, 저들의 능력은 개인에 치중되어 있었다. 다수의 타인을 비행시키려면 역시 마법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아발타를 공략하려는 헌터들은 우선 배를 띄우고, 마법사를 초빙해 부유도 밑에서 날아올라 금역에 들어서는 방식을 취했다. 그동안 저들이 타고 온 배는 아발타 밑의 해상에 정박한 채 내내 대기했다.
세월이 흐르며 부유도를 드나드는 헌터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저들이 타고 온, 아발타 근처에 정박한 배의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자 선장들은 생각했다.
‘이왕이면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것보단 모여서 떠 있는 쪽이 안전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모여서 떠 있을 때 만일을 대비해 사슬을 서로 묶어두는 쪽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묶어 놓았을 때 아예 배끼리 완전히 붙여 놓아 왕래를 쉽게 하는 것이 더 편의성이 높지 않나?’
모인 배들이 하나둘 뭉치기 시작했다.
일단 뭉치고 나니 정말 편했다.
부유도의 영향으로 아발타 인근은 폭풍도 불지 않고 파도도 잔잔했다. 딱히 배가 전복될 만큼 위험한 날씨가 아니었다.
물론 고대 지구에서 저렇게 선단 몽땅 묶어 놓았다가 화공당해 홀랑 날린 누군가가 있긴 하다만, 이들은 그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구와 달리 라트나에선 마법이나 영술로 어지간한 불은 쉽게 끌 수 있는 것이다.
아발타를 공략하려는 이들에게 일종의 근거지가 생긴 셈이었다.
모이는 선박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아예 작정하고 정박만 하는 대형선들도 생겼다. 대부분 수명이 다 되어 항해가 불가능한, 하지만 떠 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노후화된 선박들이었다.
대형선끼리 뭉쳐 놓으니 공간적인 여유도 제법 늘었다.
배와 배 사이에 놓은 발판이 또다른 광장이 되었다.
광장 위에 집이 올라가고, 탑이 올라섰다.
그러기를 100여 년…….
정박한 몇 척의 배에서 시작한 일엽편주는 어느새 수천 척이 연결된 대규모 해상 도시로 변해 있었다.
도시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다 보니 도시가 된 곳.
마법사 길드 싱커즈가 직접 관리하며 마도왕국 룬의 부를 지탱하는 금역 도시, 세르아발타였다.
?
?
*
세르아발타의 총독 관저.
한 시종이 넋이 나간 채 방문을 열어젖혔다.
“총독님! 총독님!”
“또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싱커즈의 고위 마법사이자 이 도시의 총관리자이기도 한 50대의 중년 여인, 보렐타스는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내 너에게 신신당부하지 않았더냐?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 않는 한 냉정을 지키라 하늘은 원래 무너질 수 없는 물건이고 이곳은 바다 한복판, 땅이 꺼질 일도 없다.
그러니 작작 하고 침착하라는 의미로 한 소리였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시종이 창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뭔 개소리니?”
어이없어하며 그녀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길 때였다.
개소리가 아니었다.
대기가 울부짖는다. 구름이 찢어진다.
고도 1천 미터에 위치한 부유하는 섬.
금역, 아발타가 떨어지고 있었다.
보렐타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숨조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저 어마어마한 땅덩어리가 바다로 떨어지면 대체 어떻게 되는가?
바위가 수면을 파고들었다. 바다가 대지를 받아들였다.
쿠우우웅!
물의 장벽이 치솟아 올랐다. 구름까지 닿은 것처럼 보이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벽이었다.
대해일이 세르아발타를 덮쳤다.
아무리 거대한 해상 도시라도 저 앞에서는 나뭇잎 한 장에 불과했다.
도시가 통째로 뒤집어지고, 부서지고, 박살 났다.
수만에 달하는 사람이 바다로 가라앉았다.
끔찍한 대재앙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은 실로 끈질기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이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금역 도시인 만큼, 이곳에는 고위 레벨 헌터와 마법사가 많았다.
“사람부터 구해!”
“인명 구조가 최우선이다!”
그럴 틈도 없었다.
반쯤 가라앉은, 더 이상 부유하지 않게 된 거대한 섬, 아발타.
그곳에서 무수한 마물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바다를 헤엄치며 붉은 안광과 함께 살기의 포효를 터트린다.
크아아아아!
드높은 하늘에서 한 거구의 천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옴팔로스의 사도, 물의 페크렐룸.
바다를 메운 마물들을 바라보며 그는 감동해 날개를 떨었다.
“아아, 우리 주의 은총이 온 누리에 가득하구나!”
서쪽의 4대금역, 얼음불꽃 숲.
히스란의 불이 꺼졌다.
히스란의 얼음이 녹았다.
탄화된 고목이 숲을 이루고, 시꺼먼 잿물이 시내가 되어 흐른다.
얼음과 불의 마물들이 대지를 뒤덮으며 움직였다.
하늘을
나는 무수한 천사들의 인도에 따라 세상 밖으로 향한다.
수만 명이 거하던 활기 가득한 금역 도시, 세르히스란은 불타고 얼어붙은 시체들의 지옥이 되었다.
“찬미하라.”
지옥을 거닐며 마신의 사도, 불의 메기스토는 기쁜 듯 웃었다.
“세상의 새로운 주인이 임하셨도다.”
북의 4대금역, 타워마운틴 루퍼스산맥을 이룰 정도로 무수히 존재하던 수천의 타워들은 일제히 붕괴되었다. 끔찍할 정도로 많은 탑의 파편들이 ‘정말로’ 산맥을 이루었다.
이대로 세월이 흐르고 저 위에 숲이 자라나면, 후손들은 정말 이곳을 평범한 산맥으로만 여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너희에게 후손은 존재할 수 없겠구나.”
바람의 네아셀리는 양손을 모았다.
“감사드립니다, 나의 주여.”
그리고 빠져나온 마물들이 휩쓸고 간 금역 도시 세르루퍼스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렸다.
“늦기 전에 저들을 구원할 수 있게 되었나이다.”
동의 4대금역, 최초이자 최강의 던전.
대미궁 칼탄이 위치한 드넓은 대지 곳곳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크아아아!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이계 마물들을 앞두고 세르칼탄의 헌터들은 용맹하게 싸웠다.
라트나에서 가장 강력한 던전을 공략하려 모인 만큼, 이들은 틀림없이 라트나 최강의 헌터였다.
초반엔 어느 정도 도시를 방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거대한 천사의 무리가 나타난 후로는 저들의 아름다운 저항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거두라.”
대지의 엑토스는 차가운 웃음과 함께 명했다.
“거두고 수확하라.”
천사들의 공세 앞에 세르칼탄의 헌터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갔다.
“크어 억!”
“아아아악!”
최강의 헌터들만 모여 있다곤 하지만, 그래 봤자 이들은 고작 헌터 였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국가나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기사나 성전사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헌터들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뭐, 유명세로만 치면 이는 사실이다.
대륙3강 최정예 기사단의 일원은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강력한 던전을 클로징한 헌터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퍼지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고위 레벨 헌터들이 바라는 궁극의 목표가 바로 이름을 알려 대륙3강의 기사로 초빙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검왕 바오톨트의 존재가 문제였달까?
홀로 오롯이 군림하며 일생을 검에만 바친 굴강의 무인이 있기에, 세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국가와 권력을 무시하는 건 다른 헌터들도 비슷할 거라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세르칼탄의 헌터들이 목에 힘주고 다닌다 해도 대륙3강의 정규 기사단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는 것.
그 정규 기사단조차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마신의 천사들을 상대로 학살당했다.
그런데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고 또 죽었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이번에도 천사들은 도망치는 이들까지는 쫓지 않았다. 그저 우아하게 날갯짓하며 아름다운 송가를 부를 뿐이었다.
찬양하고 찬미하라.
조아리고 기도하라.
이 세계의 진정한 주.
옴팔로스의 권세가 이 땅에 드리웠도다!
빛의 화면을 바라보며, 한때 라트나 최강의 마법사였으나 이젠 공허의 사도가 되어 버린 여인이 물었다.
“……꼭 저래야 하는 건가요?”
옴팔로스가 뒤를 돌아보며 반문했다.
“무엇이 말이냐?”
“사도와 천사의 찬양 말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찬양하는 것이야 뭐가 이상하겠냐마는…….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보거라.”
“완전히 핀트가 어긋났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보고 있기 부끄러울 지경이네요.”
말하다 말고 제노비아는 아차싶었다.
이제 그녀는 마신에게 영혼까지 사로잡힌 상태였다. 여기서 감히 주인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옴팔로스의 반응은 의외였다.
“드디어 저걸 부끄럽다고 느끼는 이가 나타났구나! 아, 왠지 기쁘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휴, 애들이 지구에서 엉뚱한 걸 배워 버렸어. 쯧.”
잘나가는 종교 경전 몇 개 훑어 보더니 뭔가 이상해졌단다.
어째 옴팔로스 자신도 저들의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했다.
제노비아가 다시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저러지 말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 했다.”
억울한 듯 옴팔로스가 화면을 가리켰다.
“저게 그 결과물이지.”
실제로 처음엔 못 하게 했다.
그러자 저들은 마신을 찬미할 다른 방법을 찾았다.
더 부끄러운 방법이었다.
그래서 또 못 하게 했다.
그랬더니 더더욱 부끄러운 방법으로 마신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찬양의 요요 현상이었다.
“그래서 포기했지. 아예 날 섬기지 말라고 하면 멈춰지겠지만, 그럴 순 없잖아?”
“올바로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면 되는 문제 아닌가요?”
“내가 그걸 몰라.”
황당해 제노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모른다?
과연 저 개념이 신에게 어울리는 것인가?
“신은 전지전능한 자가 아니었습니까?”
옴팔로스가 정말 신기한 듯 제 노비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흐음, 사도가 되고도 그 정도 의문을 가질 만큼의 자유의지가 남아 있는 것이냐?”
그리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직접 만드는 것보다 잘만든 남의 걸 훔쳐 오는 게 낫구나. 하긴 그것이 칼테라 신족의 본질이긴 하지만.”
제노비아를 응시하며 마신은 빙그레 웃었다.
“너희는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인 줄 알겠지?”
사실은 모든 걸 알지도 못하고, 모든 걸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필멸자가 워낙 무지하고 무능해서 말이다. 일종의 상대평가랄까.”
신의 권능에는 한계가 명확하며, 때론 필멸자의 그것만도 못할 경우도 있다.
“사실 마법만 보면 제노비아, 네가 나보다 아는 건 더 많을 걸.”
“그, 그런……
제노비아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신이란 건 의외로 영원불멸하지도, 전지전능하지도 않아.”
옴팔로스가 허리를 폈다.
“그저 필요한 만큼 오래 살고, 원하는 걸 얻을 능력이 있고, 알아야 할 걸 알 수 있을 뿐.”
그녀는 의아해했다.
원하면, 이룰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역시 전지 전능이 다.
“당신께선 당신의 사도들이 어리석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면 왜?”
원하는 걸 얻을 능력이 있고 그 방법을 알고 있다면, 왜 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제노비아의 의문에 옴팔로스는 태연히 빛의 화면을 가리켰다.
“지금 하고 있지 않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