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56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5) 이 세계에 강림한 이래, 옴팔로 스는 내내 차원궁의 서쪽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광활한 텅 빈 광장 한복판에 옥좌를 하나 만들어 놓고, 거기 앉아 몇 날 며칠이고 빛의 화면만을 지켜본다.
그동안 제노비아 역시 내내 옆에 서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잠들지도 않은 채, 그저 기둥처럼 서 있기만 했다.
불멸의 영역에 들어선 덕분인지 딱히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없이 지루할 뿐이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어둠의 텔바란이 사망한 것이다.
“이건 직접 가 봐야겠구나.”
에메랄드 타워를 가리키며 옴팔로스가 빙그레 웃었다.
“너도 따라올 테냐, 제노비아?”
뭘 해도 기둥처럼 서 있는 것보단 나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르겠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사방이 녹색의 광채로 가득 차 있었다. 제노비아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에메랄드 타워의 내부인가.’
천장도 벽도, 탑을 지탱하는 기등들조차도 녹색의 에메랄드 재질이었다.
‘심지어 가짜도 아니야.’
일국의 여왕이었던 그녀가 진짜 보석과 레플리카를 구별 못 할 리 없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앞장선 옴팔로스가 눈을 찡긋거렸다.
“어때? 그럴싸해?”
제노비아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네, 뭐, 겉보기엔
W분명 화려하긴 정말 화려했다.
동시에 이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실감도 들었다.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석이다. 놀랍도록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쓸모는 전혀 없다.
인간의 거주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기능적인 부분이 전혀 존재치 않는 것이다.
옴팔로스 본인도 자각은 하고 있는 듯했다.
“실용성 따윈 개나 줘 버린 인테리어지?”
대체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키득거리며 옴팔로스는 계속 보석의 복도를 걸었다. 제노비아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복도 끝은 거대한 녹색 홀이었다.
홀 사방에 수많은 빛의 고치가 세워져 있고, 그중 하나가 거대한 인간 형태의 그림자를 담고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옴팔로스가 손바닥을 댔다.
“깨어나라.”
기포가 부글거리더니 이내 고치가 찢어졌다. 은갑의 사도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류한빈에게 죽임을 당했던 어둠의 텔바란이었다.
멀쩡한 모습으로 그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용서하소서, 나의 신이여! 이 몸이 부족하여 당신께 누를 끼쳤나이다!”
자신의 사도를 내려다보며 옴팔로스는 쓴웃음을 지 었다.
“됐다, 내 잘못도 있으니까.”
그는 류한빈이 적합자란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신성 억제 스킬,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깜빡했네.”
물론 류한빈과 싸운 게 텔바란이 처음은 아니다.
사실 대지의 엑토스가 당하긴 먼저 당했다.
‘하지만 그때는 놈이 딱히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쓰지 않았으니……
옴팔로스는 ‘엑토스를 통해 확인한’ 당시의 전투를 되새겨 보았다.
검왕이 투혼 삼검을 이용해 몰아붙이고, 힘에서 밀린 엑토스가 전투를 회피해 날아오르고, 그 뒤로 집 한 채가 통째로 내던져지는 광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미안하다. 너희에게도 위협 요소가 된다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구나.”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텔바란이 고개를 저었다.
“주께서 당신의 종에게 시련을 내려 더욱 단련시키심을 알고 있나이다.”
“아니, 진짜로 실수한 건데
“제가 어리석어 아직 당신의 깊은 뜻을 깨닫지는 못하나,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임을 믿나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자유의지로구나.
너희가 더욱 발전했음은 분명 기쁜 일이다만.”
잠시 혀를 찬 뒤 옴팔로스가 명령을 내렸다.
“일어나거라.”
벌떡 일어나 텔바란이 눈을 빛냈다.
“마저 명을 이행하오리까?”
스코타 스키아는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신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옴팔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의 손가락이 남쪽을 가리켰다.
“다음 예정지로 움직여라.”
“뜻대로 하겠나이다.
텔바란이 날개를 펼쳤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에메랄드 타워를 빠져나가 하늘로 올랐다.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다 제노비아가 물었다.
“저들의 저항을 완전히 끊어 버리지 않는 건가요?”
그녀가 곁에서 지켜본 옴팔로스의 행보는 일견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천사와 마물로 라트나 전 역을 정복하려 들면서, 라트나의 주요 세력을 일일이 공격하면서도 확실하게 숨통을 끊진 않는다.
어째서? 전력이 부족해서?
그럴 리는 없었다.
아르모리카나 스코타 스키아에서 밀린 것은 그 자리에 현존하는 라트나의 최강자들, 화신 일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해치울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여섯 여신의 개입은 배제되었다.
옴팔로스가 직접 나선다면, 저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순식간에 끝나 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마신의 사도 여섯을 전부 동원하기만 해도 되지 않는가? 아니면 제노비아 자신을 출전시 키거나.
“마치 일부러 살려 두시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녀를 돌아보며 옴팔로스가 빙그레 웃었다.
“네 말이 옳다.”
저들은 살아 있어야 했다.
“살아서, 희망이 되어 주어야지.”
“……라트나의 희망을 끊기 위해서 천사와 마물을 푼 것이 아니 었나요?”
“그 또한 옳다.”
라트나의 희망은 사라져야 한다.
이 세계의 피조물들에게 옴팔로 스 외에 마음 둘 곳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여신의 희망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난 그녀들의 눈치를 열심히 보아야 하는 처지니까 말이다.”
현시점에서 그는 완벽한 승리자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고, 라트나의 여신들에겐 막을 방법이 없다.
이대로라면 분명 이 세계를 먹어 치울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여신들에게도 최후의 수단이 없는 건 아니거든.”
라트나를 보살피고 관리하는 여섯 초월자들.
지금도 그녀들은 무너져 가는 이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며, 어떻게든 옴팔로스에 대한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상황을 돌이킬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 자가, 그 상황을 극복할 다른 방법조차 없다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군요.”
이제야 납득이 갔다.
이 세계, 라트나를 지키는 것은 실로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파괴해 버리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다.
절망한 여섯 여신이, 라트나를 통째로 넘길 바엔 자기 손으로 부숴 버린다면?
“수백 년을 공들여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허사로 날릴 수는 없지 않으냐?”
여신들이 이 세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가 먹어 치우기 전까지, 그때까지는 최대한 열심히 버텨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희망이 필요하지.”
하늘을 가리키며 옴팔로스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래야 저 위에 계신 여신님들께서 죽어라 분골쇄신해 줄 테니까.”
?
어둠의 교단 총본산, 스코타 스키아.
한빈 일행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키비에는 심호흡을 했다.
“일단 여기까진 성공했는데 섀도 리딩으로 간신히 사도들의 허점 일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 계획도 세웠다.
옴팔로스는 키브리엘의 어둠을 해석해 이 세계, 라트나를 거니는 존재가 되었다.
여신들이 세운 섭리의 빈틈을 노린 방식이다.
즉, 반대로 옴팔로스의 신성을 해석해 빈틈을 노리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다.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마신의 사도였지만, 그는 죽기 전 류한빈의 천상천하유아독존에 의해 주입된 옴팔로스의 신성 일부를 억제당했다.
내내 기회만 노리던 키비에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난 고작해야 화신.”
양손에 맴도는 희미한 금빛 입자를 노려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 힘만으로 옴팔로스의 신성을 제대로 해석할 순 없겠지.”
그래도 아주 잠시, 아주 조금 어둠의 신력을 움직일 정도는 된다.
2/3를 빼앗기긴 했지만 여전히 키비에는 어둠의 신력 1/3을 지닌 채였다. 그저 꺼내 쓰질 못할 뿐이 었다.
“이를 조금이라도 꺼내 쓸 수 있다면……
라트나 전역에 펼쳐져 있는 옴팔로스의 신성 억제 권능에 작은 구멍을 뚫을 수 있다.
이 금빛 입자야말로 어둠의 성역으로 향하는 문의 열쇠인 것이다.
레온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열쇠라기보다 문을 따는 락픽 (lockpick) 쪽에 가깝겠군요.”
에피르도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성역으로 돌아가면 언니도 여신의 힘을 되찾는 건가요?”
짐짓 기대하는 목소리로 키비에 가 양손을 합장했다.
“그렇게까지 잘 풀려 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적어도 여신의 전지 능력 일부는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얻을지도 모른다.
“자매들이랑 연락이 될지도 모정신을 집중하며 그녀는 양팔을 펼쳤다.
화신의 입에서, 여신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열려 다오, 나의 어둠이여.”
암흑이 입을 열었다. 그 어떠한 것보다도 어두운, 그럼에도 빛처럼 환한 모순적인 어둠이었다.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된 건가?”
“성공이야?”
단 한 명, 키비에만 빼고.
“이런??????
어두운 안색으로 그녀가 어둠에 손을 뻗었다. 칠흑의 표면이 손바닥과 맞닿으며 파문이 일었다.
찰랑…….
화신의 손은 그 이상 어둠 속으로 향하지 못했다.
류한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절반만 성공한 건가?”
키비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완전히 실패야.”
분명 성역으로 가는 길은 열렸다.
그러나 어둠의 성역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힘이 너무 모자라.”
문을 여는 행위는 방 안에 들어서기 위해 존재한다. 그저 열기만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제기랄!”
신경질적으로 그녀는 어둠을 밀었다.
칠흑의 표면이 연신 요동쳤다.
물론 여전히 뚫리진 않았다.
아티스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한 번 더 시도해 보면 어때?
마신의 사도라면 어차피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데.”
놈들은 라트나 전역을 활개 치며 온갖 살육을 행하고 있었다.
에피르를 타고 움직이면 다시 조우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 것 같지 않았다.
“상황 봐서 한빈보고 한 번 더 죽여 버리라고 하면 되잖아?”
키비에가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시도는 해보겠지만……
이건 실수한 게 아니라, 실패한 것이다. 몇 번을 시도한들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는 동안 어둠이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성역으로의 길이 도로 닫힌다.
그나마 잠시 끌어냈던 키브리엘의 신성이 다시 봉인되는 것이다.
그나마 생겼던 희망과 함께.
“이제 어쩌지……
키비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릴 때였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새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이내 백색의 드레스를 걸친 한 소녀가 어둠 속에서 굴러떨어졌다.
화려한 금발에 투명한 피부를 지닌, 에피르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10대 중반의 소녀였다.
소녀는 완전히 기절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슴께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뭐야, 이건?”
류한빈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무심코 발동한 가이드라인이 오래전 한번 봤던 문장을 다시 띄우고 있었다.
「종족 : 여신(女神). 1V. 불명(不 明)」
“……알티아?”
기절한 소녀를 내려다보며 키비에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