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58
천지개벽 (2)
대륙 중앙을 초토화시킨 마신의 여섯 사도들.
그들의 다음 목적지는 변경이었다. 수만에 달하는 천사들의 군단이 동서남북, 라트나 사방으로 향했다.
대륙3강조차도 버티지 못한 저들의 공세를 변경의 약소국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수도가 불타고 무너지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변경 왕국들이 차례로 멸망했다.
갈 곳을 잃은 피난민들이 사라진 나라 위를 정처 없이 배회했다. 그리고 마물들에게 잡아먹혔다.
던전에서 풀려난 이계 마물들은 라트나 전역으로 흩어진 후였다.
사도들이 이끄는 천사 군단과 달리 저들은 딱히 누군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오로지 타고난 본능과 원래부터 주어진 목적성에 따라 행동할 따름이다.
던전 안에서나 밖에서나, 놈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라트나의 지성체를 먹어 치워라.
다수의 인간이 모여 있으면 미친 듯이 몰려드는 던전 마물들의 습성은 던전 밖이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인구수가 많은 곳일수록 놈들의 목표가 되었다.
그 기준은 대략 네 자릿수.
1천이 넘는 숫자의 인간이 모여있으면 마물들도 모여들었다.
무수한 영지들이 마물들에게 짓밟혔다. 무수한 도시들이 피로 물들었다.
말하자면 라트나 전체가 하나의 던전이 된 셈이었다.
인류는 강제로 해산되었다. 수천 년에 걸친 문명 또한 사라졌다.
남은 것은 마물에 대한 공포에 떨며 소규모로 세상을 떠도는 유랑민들뿐.
그럼에도 라트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아직 살아남은 강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기량을 총동원해 마물들과 싸우고 또 싸웠다.
곳곳에서 무수한 저항이 이어졌다.
?
?
*
제노비아는 오늘도 옴팔로스 곁에서 기둥처럼 서 있었다.
잠시 에메랄드 타워를 들른 것을 제외하면 그의 모습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잠조차 자지 않은 채 옥좌에 앉아 수많은 빛의 화면을 뚫어져라 살필뿐이다.
무심코 그녀가 물었다.
“지루하지 않으신가요?”
옴팔로스가 대꾸했다.
“신은 지루함을 모른다. 내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축복이지.”
그리고 그녀를 돌아보며 빙그레웃었다.
“내가 그걸 느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끔찍했겠느냐?”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실제로 제노비아는 끔찍할 정도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다시 빛의 화면을 노려보았다.
수십이었던 화면은 이제 수백으로 늘어 있었다.
화면 대부분이 비추는 것은
“저항이 잦은 듯합니다만.”
라트나 곳곳에서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는 라트나인들의 모습이었다.
큰 저항은 사라졌으되, 소규모 저항은 무수히 일어난 것이다.
“이 또한 계획하신 대로입니까‘?”
“물론이다.”
흡족한 듯 마신의 화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는 바싹 구워 버리면 맛이 없는 법이지. 그리고 내 취향은 미디엄 레어거든?”
저항 속에 굴복이 있고, 굴복속에 절망이 있고,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
“골고루 잘 익었구나.”
차원궁 북쪽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타워에서 빛의 파장이 터졌다.
웅웅웅웅!
대기가 흔들리며 방사된 신의 권능이 라트나라는 거대한 세계에 퍼져 갔다.
세상에 흩어져 있던 수만의 천사들.
저들이 대지로 내려앉았다. 날개를 접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찬 미의 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주, 옴팔로스여.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엑토스 이놈, 또 지구 표절했네.”
옴팔로스의 실소와 함께 천사들이 석상처럼 굳어 갔다.
빛의 화면이 메시지를 토했다.
「칼테라의 기둥 48,950기, 설치 완료되었습니다.」
수만의 천사들이 수만의 천사상이 되어 라트나 전역에 우뚝 섰다. 높이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이 었다.
1행성 포식 프로세스, 페이즈 1을 종료하고 다음 단계를 시행합니다.J 모든 천사상들이 기묘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페이즈 2, 천망회회소이불실이 발동되었습니다.」
*
*
*
비명이 들린다.
“아아아악!”
세저리는 귀를 막았다.
귀를 막아도 비명은 그치지 않았다.
“으아아악!”
마물들의 공세 속에서 헌터들이 연신 죽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울먹였다.
“흑, 흑흑……?”
울먹이는 이는 세저리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수백의 피난민들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울며 생각했다.
‘왜 세상이 이렇게 된 걸까 온프로스 시의 헌터 길드 접수원으로 평온하게 살던 세저리였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세상이 뒤집혔다.
마신의 천사가 하늘을 뒤덮고, 엑스라드 왕국이 멸망하고, 온프로스 시가 불타고, 헌터들의 사냥감이던 던전의 마물들이 도시한복판을 활보한다.
정신없이 도망쳤다. 운 좋게 살아남아 피난민 대열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그리고 피난민들은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채 죽지 못한 것이었지.
등을 누일 집이 없었다. 입에 넣을 곡식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목을 축일 더러운 흙탕물뿐이었다.
지치고 굶주린 그들을 찾는 이는 노도처럼 몰려오는 또 다른 마물들밖에 없었다.
쫓고 쫓기며 여신께 기도했다.
제발 살려 달라고. 제발 구원을 내려 달라고.
소용없었다.
아무리 기도해도 여신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왜 여신이 응답하지 않는지 여쭤볼 신관은 이미 죽은 후였다.
구원 따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크아아아!
포효와 함께 마물의 송곳니가 마지막 헌터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피난민을 지켜 주던 이들이 전부 죽었다. 남은 것은 고작해야 레벨 10 미만의, 전투와는 인연이 먼 이들.
‘아아…… 끝이구나.’
세저리가 죽음을 받아들일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다.
뿌리내린 아름다운 천사상이 되어, 아름다운 음성을 모두에게 퍼뜨리기 시작한다.
버림받은 여신의 아이들아.
우리의 주께서 그대들을 거두시는도다.
진실로 이르노니, 기도하라.
머리를 조아리고 옴팔로스의 인(印)을 받으라.
그분은 자신의 신민을 귀히 여기시니.
주의 징표를 지닌 자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으리라.
세저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여신을 저버리는 죄악감 따위, 눈앞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 었다.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옴팔로스여,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기도를 올린 모두의 이마에 마신의 문양이 떠올랐다. 동시에 마물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아아??????
간신히 살아났지만 세저리는 두려웠다.
여신을 배신했으니, 그 대가는 오직 지옥 불에서 불타는 것밖에 없을 테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은 조금씩 사그라졌다.
오가며 조우한 어떤 마물들도 세저리 일행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물들이 이들을 두려워하며 피했다.
목숨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큰 안도였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다른 마을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 마을이었다.
이계 마물이 던전을 뛰쳐나온 이후론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다수의 인간이 모인 거주지’.
마신의 인을 받은 이들로 이루어진 마을 사람들은 반갑게 세저리 일행을 맞이했다.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촌장의 말이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여신이고 옴팔로스고 간에, 당장 내 목숨 살려 주는 신이 좋은 신 아녀?”
버려진 마을이라 빈집은 많았다. 세저리 일행 전원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된 집에서, 푹신한 침상에서 잘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잠보단 굶주림이 먼저였다. 조심스럽게, 혹시 먹을 것이 있다면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에게 식량을 넘길 정도로 여유 있는 이가 있을 리 없기에.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기이 할 정도로 혈색이 좋아 보였다.
그렇다면 약간의 식량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도하시게.”
촌장은 하늘을 가리켰다.
“진심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네.”
의아해하면서도 세저리 일행은 무릎을 꿇었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옴팔로스에게 양식을 구걸했다.
“옴팔로스시여……
마신은 여신과 달랐다.
기도는 즉각 응답받았다.
송아지만 한 크기의, 흉악하게 생긴 늑대 형상 마물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으헉!”
“마, 마물이다!”
세저리 일행은 두려워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밥이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마물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마물 무리는 반항한번 못 해 보고 맞아 죽어 갔다.
깨, 깨개갱!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세저리는 끔찍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견을 내리노니, 먹고 마시라.”
머릿속에서 음성이 울리고 있었다.
“이는 우리 주의 피와 살이니, 너희에게 지고한 행복을 내리리라.”
모두가 송아지만 한 개의 사체로 달려들었다.
칼로 살점을 찢어 생으로 씹는다. 살에 이빨을 박고 정신없이 피를 마신다.
세저리도 홀린 듯 저 야만의 잔칫상으로 다가갔다.
“아아??????
마견의 살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마견의 피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상하게도 비위가 상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압도적인 포만감과, 뇌를 태워 버리는 듯한 쾌락뿐.
“아아아!”
그녀는 지고의 행복에 몸부림쳤다.
“저게 왜 내 피와 살이야? 내가 개냐?”
옴팔로스는 투덜거렸다.
“저런 문구는 대체 어디서 주워 온 거지? 또 지구인가?”
제노비아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못 하게 하면 되지 않나요?”
처음엔 꽤나 조심스럽게 마신을 대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옴팔로 스는 그녀의 태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슬슬 본래의 말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과연, 마신은 이번에도 개의치 않았다.
“말했잖느냐? 말렸다가 또 무슨 헛소리 할지 무서워서 못 하겠다 -느”I W
“올바로 가르치면 되지 않습니까?”
“뭐라고 해야 하는데?”
“당신께서 내리시는 일용할 양식이라고 하면 되지요.”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옴팔로스가 놀란 눈으로 제노비아를 쳐다본다.
당황해 그녀가 어깨를 움츠렸다.
“왜 그러시는지?”
“내 사도들 대상으로 의문에 해답을 얻은 건 이번이 처음이야.
역시 어스 신족, 창생 쪽은 감히 칼테라가 따라갈 수 없군.”
고개를 저으며 옴팔로스가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제노비아는 그가 뭔가를 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곧바로 마신의 인에서 울리는 목소리의 내용이 바뀌었으니까.
-마견을 내리노니, 먹고 마시라.
-이는 우리 주께서 내리시는 일용할 양식이니, 그대들에게 지고한 행복이 있으리라.
의외로 남의 의견 잘 받아들이는 타입인지도 모르겠다.
“어때? 괜찮아?”
“무난하네요.”
제노비아는 대충 대꾸했다.
솔직히 문구 따위야 어찌 되었건 무슨 상관인가?
그보단 빛의 화면이 비추는 세계의 변화가 더 신경 쓰인다.
라트나 전역에서 신민들이 여신을 배신하고 마신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점점 커져만 갈뿐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화면 하단의 메시지로 향했다.
「페이즈 2, 천망회회소이불실.」
「진행률 : 12.8퍼센트.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