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60
천지개벽 (4)
닷새 전, 한빈 일행이 아직 아르모리카에 머무르고 있을 무렵.
알티아는 모두를 모아 놓고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내린 여섯개의 성물이 존재한다.”
한빈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아는 사실이었다. 저들 중 하나를 류한빈이 이미 취했으니까.
“남은 여신의 다섯 성물을 모두 모아. 그것이 첫 번째 계획이야.”
키비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가능해? 당장 다른 성물은 위치도 모르는데.”
어이없다는 얼굴로 알티아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대체 내가 왜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소녀가 지도를 내밀었다. 다섯개의 표식이 찍힌 라트나 전도였다.
“딴 애들 허락도 다 받아 왔어.
그냥 찾기만 하면 돼.”
레온하트며 아티스, 에피르 같은 라트나 출신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 ‘딴 애들’이 바로 지고의 여신들이란 걸 감안하면, 참 적응하기 힘든 표현이다.
지구인인 류한빈이야 적응하고말고 할 것도 없지만.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키비에를 돌아보았다.
“여신의 성물은 한 시대에 오직 하나뿐이라고 하지 않았어?”
성물 전부 모아 보자는 의견 자체는 예전의 그도 낸 적이 있는 것이다.
“이미 어둠 먹은 후라서 딴 건 쓸모없다며? 왜 또 말이 달라?”
당시 키비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다른 성물들을 활성화하는 게 가능해, 알티아? 세상의 균형을 깨는 일이잖아.”
“키브리엘.”
알티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의 균형은 이미 깨졌어.”
여신은 세상의 균형을 깰 수 없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이미 균형이 깨진 후라면, 다른 성물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잖아?”
그제야 이해한 키비에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그럼 후딱 시험을 통과하고 성물을 찾아야……
“시험 통과할 시간 따위 없어.”
알티아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딴 짓 하다 세상 말아먹지.”
소녀가 키비에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희미한 빛이 손끝을 통해 키비에에게 스며들었다.
빛의 여신이 지닌 지혜, 그 일부였다.
“이거 우리가 설치해 놓은 시련이랑 시험 제어법이니까, 스위치 전부 내리고 후딱 챙겨 와.”
간단한 동작만으로 여섯 성물을 지키는 장소의 모든 제어법이 키비에에게 전달되었다.
아티스가 희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성물을 모두 찾은 뒤 한 빈에게 몰아주는 겁니까?”
지금보다 여섯 배로 강해진 류한빈이 완성된 천검 디아스티마로 옴팔로스를 슥삭!
“그렇게 되면 얼마나 편하겠느냐마는……
알티아와 키비에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이미 그는 어둠의 성물을 지니고 있다. 빛의 성물을 취하는 정도가 한계일 것이야.”
“내가 전에 말했잖아? 여신의 축복자는 성물의 효율이 팍 떨어진다고.”
이제 류한빈은 슬슬 과거의 검왕 바오톨트와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강자가 되었다.
“빛의 성물을 취해도, 아마 오러양이 20% 정도 증가하는 게 한계 겠지.”
거기에 세 번째 성물까지 취하면 증폭도는 더 떨어진다.
“대략 5% 정도?”
네 번째라면 1% 미만, 다섯 번 째나 여섯 번째까지 가면 정말 느낌도 안 을 것이다.
알티아가 레온하트와 아티스, 에피르를 바라보았다.
“남은 성물을 취하는 것은 너희다.”
명목상 일단 최강의 4인이 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류한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 급한 대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적어도 마신의 사도들과 일대 일이 가능한 수준까진 되어 줘야 해. 그래야 계획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긴장한 얼굴로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빈에게만 몰아주는 것이 아니었군요.”
알티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빙그레 웃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냐. 나중에 그에게 몰아주긴 해야 하니까.”
“??????네?”
빛의 화면에 펼쳐진 라트나 전 역의 지도.
그곳에 수만에 달하는 붉은 점이 명멸하고 있었다. 세상에 박아 넣은 마신의 기둥이었다.
빛이 하나둘 꺼져 간다.
공허의 제노비아가 입을 열었다.
“칼테라의 기둥들이 파괴되고 있군요.”
옴팔로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토끼를 사냥하려는 호랑이가 있다고 해 보자.
토끼가 도망칠 때 당황하겠는가, 아니면 도망치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을 때 당황하겠는가?
“열심히 저항해 주고 있다는 증거지.”
오히려 안도할 일이었다.
“이 정도면 여신들도 막나가진 않겠지?”
그래서 일부러 마신의 여섯 사도들은 천사상 방어에 투입하지도 않았다.
저항 의지가 완전히 꺾여 버리면 그 또한 곤란한 일이다.
“실은 단가가 별로 안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도들은 라트나에서 자연적으로 권능을 회복할 수 없다.
일단 힘을 쓰면 차원궁으로 돌아와 재충전해야 한다.
“얘들이 연비가 그리 좋진 않거든? 그냥 활동만 시켜도 밥값이 팍팍 들어서 말이지.”
제노비아를 돌아보며 옴팔로스는 실실 웃었다.
그녀는 당황했다.
뭔가 기대하는 눈빛인데, 뭘 기대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 안 웃긴가?”
“……농담을 하신 거였습니까?”
“됐다. 일이나 마저 해야지.”
살짝 삐친 표정으로 옴팔로스가 화면을 노려보았다.
사라진 붉은 점, 그것이 다시 빛났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라트나 전역에서 붉은 점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다.
굳이 사도들을 보내 천사상을 방어하는 것은 권능의 낭비다.
그냥 그 힘으로 기둥 하나 더 박는 게 남는 장사인 것이다.
옴팔로스의 시선이 화면 하단으로 이동했다.
r 페이즈 2, 천망회회소이불실.」
「진행률 : 17.3%.j
초반에 비해 진행 속도가 좀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상치보다는 오히려 빠르다.
마신은 흡족해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구나.”
물론 저들이 마냥 신나게 천사상 부수기에만 매진하게 둘 수는 없다.
“이쯤에서 적당히 손을 써 줘야겠군.”
전 세계에 퍼진 마신의 신도들, 옴팔로스의 인을 지닌 이들에게 신탁이 내려졌다.
깨어나라, 나의 백성들아.
일어나 새 세상이 열렸음을 기뻐 하라.
기뻐하며 나가 싸우라.
이는 유일한 신, 옴팔로스의 뜻이니.
나를 위해 싸우는 이는 영생을 얻으리라!
제노비아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또 엑토스의 작품인가요?”
“아니, 이건 내가 직접 쓴 문구인데.”
“……문학적 소양은 그다지 없으시군요.”
무례하기까지 한 그녀의 발언에도 옴팔로스는 좋다고 웃을 뿐이었다.
“내 사도들이 누구를 닮았겠니?”
레벨 65의 전사, 셀키드는 원래 4대금역 중 하나인 타워마운틴루퍼스를 공략 중이던 헌터 출신이었다.
세르루퍼스가 불탄 후에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소문을 접한 뒤 희망을 품고 아르모리카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다른 생존자들이 집결해 반격의 기치를 다지고 있었다.
이 땅에 강림한 여신의 인도하에, 국가와 종족을 초월해 오직 마신의 침공에 맞서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뭉친 이들.
라트나 해방군 소속이 되어 셀키드는 다시 한번 복수를 다짐했다.
레벨이 꽤 높은 터라 부대 하나를 맡을 수 있었다. 부대장이 되어 300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 대륙 남쪽 변경으로 향했다.
이 일대의 천사상을 부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과거 테디알 왕국의 영지였던한 들판.
셀키드 부대는 숙영지를 만들고 그럴싸한 만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평소의 맛없는 건조 식량이 아니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이 해방군을 환영하며 감자와 절인 돼지고기 그리고 술을 바친 것이다.
“으아! 이게 얼마 만의 술이야!”
“그리고 돼지고기!”
“크, 혀가 녹는 것 같구만.”
기뻐하는 병사들을 대변해, 식량을 들고 온 촌민들에게 셀키드가 감사를 표했다.
“그대들의 호의,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오.”
“저희가 송구할 뿐입니다. 세상을 위해 싸우시는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고작 이 정도라
“천만의 말씀이오. 당신들도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지 않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촌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무운을 빌며 숙영지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셀키드는 감동한 얼굴을 보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로다. 저들도 결코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을 터인데.”
반면 부관은 영 찜찜하다는 반응이 었다.
“그런 것치고는 좀 이상하군요.”
“무엇이 말인가?”
“굶주렸다는 이들치곤 혈색이 너무 좋은 것이……
“설마? 독 같은 것이 없음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한참 멀어진 촌장의 이마에 마신의 인이 잠시 반짝였다가 다시 사라졌다.
기도의 증거였다.
‘옴팔로스시여, 이곳에 당신의 적이 있습니다!’
이내 사방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창 포식 중이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무기를 쥐어들었다.
“스, 습격이다!”
“마물들이 공격해 온다!”
?
*
*
같은 시각, 과거 엑스라드 왕국이었던 대륙 서쪽 변경.
산등성이의 수림 속에서 라트나 해방군은 천사상을 방어하는 무수한 마물들을 상대로 필사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일곱 개나 되는 천사상을 파괴한 이들이었지만 이번 전투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상대는 그저 이계 마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죽여 버려!”
“우리가 숫자가 더 많다!”
마물의 무리 사이에서 두꺼운 갑옷을 입은 이가 날카로운 창검을 휘두른다.
한때 대륙3강의 기사였고 4대금역의 헌터였던 이들, 바로 라트나인들이 었다.
이마에 옴팔로스의 인을 지닌 그들을 향해 해방군 병사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이 배신자들!”
“어찌 마신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단 말이냐!”
마신의 주구가 된 라트나인들이 얼굴을 붉혔다.
이들 역시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을 안다.
또한 사람이기에, 부끄러움을 감추려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
“이 세계의 진정한 신은 옴팔로 스뿐이다!”
“이제야 미혹에서 벗어났으니, 우리야말로 진실을 따르는 것이 아니냐!”
도리어 해방군을 비난하며 더더욱 살기를 담아 검을 내리쳤다.
수치심이 큰 만큼 적의도 컸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강제로 옴팔로스의 인을 받아들인 이들이, 이제 와서 자처해 목숨을 걸고 있다니?
하지만 이들은 애써 그 모순을 무시했다.
한번 무엇인가를 믿어 버리면, 그 믿음이 본심마저 흐려 버리는 것이다.
“옴팔로스를 섬기는 자, 영생을 얻을지 니!”
“그를 위해 죽는 이에겐 천국이 임하리라!”
“이 미친놈들!”
팽팽한 전투가 이어졌다.
그 균형이 깨진 것은 또 한 무리의 전력이 좌측에서 돌입한 후였다.
“으하하하!”
굉소를 터트리며 100에 달하는 무리가 무자비하게 라트나 해방군을 베어 갔다.
마찬가지로 마신의 인을 받은 자들, 하지만 레벨이 다들 너무 높다!
“맙소사, 저들은?”
라트나 해방군 중 하나가 그들을 알아보았다. 원래 칼드리스왕국군 소속이었던 기사였다.
“악타룬의 이계인들!”
기겁해, 기사가 배신한 라트나 인들에게 소리쳤다.
“알고 있는 것이냐? 저놈들은 이계인이다!”
“그래, 그리고 예전엔 우리가 같은 편이었지.”
그를 바라보며 이계인들의 수장, 구스타프는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너희가 저들을 비난하는 건 좀 웃긴다고 생각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