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66
최고의 스승 (1)
루비 타워 최상층에 걸린 칠흑의 구.
그것을 바라보며 옴팔로스는 감탄했다.
“훌륭하다. 과연 이 세계의 수호자였던 이답구나.”
정보의 우물, 인공의 지혜 속에 자리 잡은 공허의 제노비아는 실로 엄청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필멸자라면 결코 불가능할 세계의 유지, 그것을 잠시나마 실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아크메이지 제노비아라고 하는 쪽이 옳겠군.”
자신이 그녀에게 내린 것은 그저 불멸성의 편린일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덕분에 그의 부담도 사라졌다.
세상 역시 다시 안정세로 돌아갔다.
비록 그 대가로, 제노비아는 영혼의 고통 속에서 절규하고 있었지만.
‘으아아아아아!’
소리 없는 비명을 귓전으로 흘리며 마신은 혀를 찼다.
“역시 많이 아픈가?”
일부러 제노비아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좀 참아라.”
지나치게 밝은 빛은 눈을 태우고, 지나치게 큰 소리는 고막을 찢는 법.
세계의 정보가 그녀를 통해 흘러 간다.
세계의 감각이 그녀를 통해 느껴진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여신들 모두 느끼고 있는 감각이니까.”
그저 초월자의 영역을 필멸자가 감당하는 결과일 뿐인 것이다.
‘으아아아악!’
처절한 절규를 마신은 웃으며 넘겼다.
“견디다 보면 저 아이도 점점 익숙해지겠지?”
어쨌든 제노비아는 실로 흡족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분명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문제는 나로군.”
정보의 우물이 처리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기껏 옮겨 놓은 여신의 책무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간신히 무거운 짐을 선반에 올려놓았는데, 선반이 계속 삐걱거리는구나.”
이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보다 많은 가이드라인이라면 조건을 충족하겠지.”
현재 정보의 우물, 공허에 담긴 가이드라인의 숫자는 3,535기였다. 마신이 이 땅에 보낸 적합자들의 수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이기도 했다.
그가 허공에 질문을 던졌다.
“아직 가이드라인을 회수하지 않은 적합자들이 얼마나 되느냐‘?”
금빛의 소용돌이가 솟구치더니 이내 갑주를 걸친 미녀의 모습으로 화했다.
옴팔로스의 여섯 사도 중 하나이며 엑토스, 메기스토와 함께 지구의 적합자를 담당했던 바람의 네아셀리였다.
“나의 주께 아뢰옵니다.”
그녀가 무릎을 꿇고 정중히 말했다.
“당신의 인을 받은 적합자 중, 낙원으로 이끌리지 않은 이들은 1,285명입니다.”
빛의 화면이 떠올라 무수한 검은 점을 라트나 전역에 표시했다.
상황을 살피며 옴팔로스가 재차 물었다.
“각인되지 않은 적합자는?”
네아셀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위치는 현재 파악되지 않습니다.”
적합자들은 결코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특히나 여신들에게는.
그래서 옴팔로스는 가이드라인의 기초를 다질 때 은밀함을 최우선 사항으로 놓았다. 심지어, 자신마저도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만 알고 적은 모른다?
그런 방식은 반드시 깨진다.
마신이 알아볼 방법을 만들어 놓으면, 여신도 결국은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인을 받지 않은 적합자를 확인하려면 가이드라인의 탐색 유효사거리 이내로 들어서야 가능합니다.”
“하긴 그렇겠지.”
옴팔로스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너무 잘 만들어 놔도 문제로군. 하긴,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애초에 적합자들을 이 땅에 뿌리지도 못했겠지만.”
어설프게 뿌렸다면 여신들에게 모조리 발각되어 일거에 쓸려 나갔을 것이다.
“1,285명이라…… 역시 좀 모자 랄 것 같은데.”
마신이 재차 물었다.
“나의 인을 받지 않은 적합자의 수는?”
이건 굳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땅에 보낸 적합자의 총숫자에서, 시체가 사라지며 마신에게 돌아온 적합자의 숫자를 빼면 나오는 간단한 계산이니까.
여기에 이미 회수한 적합자의 수를 빼고, 또 인을 받았지만 낙원으로 이끌리지 않은 자들도 빼면…….
“현재 인을 받지 않은 라트나의 적합자는 총 1,145명입니다.”
“꽤 많구나.”
마신의 인은 받았으되 낙원의 함정에 걸리지 않은 적합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2,400명이 넘는 숫자.
옴팔로스의 감언이설을 불신한 이들이 저렇게나 많다는 소리였다.
“적합자들이라고 전부 바보는 아니었군. 거짓의 지혜를 지닌 이들은 필연적으로 의심의 지혜 또한 얻게 마련인가?”
하여튼 저 정도 숫자의 가이드라인이 모인다면 그럭저럭 정보의 우물을 원하는 만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일이 찾아서 일일이 회수해야겠군. 이거 참, 숨바꼭질은 취미가 아닌데.”
투덜대며 옴팔로스가 입을 열었다.
“나의 사도들, 나의 천사들아.”
권능의 전언이 차원궁 가득 퍼져 나갔다.
“내게 필요한 것을 거두어 오거라.”
요란한 날갯짓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또다시 황금의 강이 라트나 전 역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
*
*
알티아의 권능으로 가득한 빛의 성역.
그 아름다운 정원 한복판에 우뚝 선 거인을 바라보며 류한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자가……
내내 그 명성을 지겹게 들어 온자.
그의 검술을 쓰고, 그의 검을 다루고, 그의 투혼을 익혔음에도 한 번도 직접 보진 못했던 이.
검왕 바오톨트.
라트나 역사상 최강의 전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좀 쉬려는데, 여신께서 세상을 조금만 더 도우라고 하시더군.”
바오톨트가 등에서 대검을 뽑아들었다.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한빈의 것과 똑같은 기간트였다.
“좋은 싸움은 언제 해도 좋은 법 아니겠나?”
류한빈은 빙그레 웃었다.
과연 알티아는 최선의 준비를 해 두었다. 분명 최고의 스승이었다.
“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진지하게 그가 배울 자세를 취하려던 차였다.
“……가르침?”
바오톨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신께서 착각하신 건지, 자네가 착각한 건지 모르겠군.”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붉은 오러가 피어오르며…….
“여신께서 내게 부탁한 건 하나 뿐이다.”
흉악한 살기가 성역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구우우웅!
무지막지한 블레이드 오러가 대뜸 류한빈을 노렸다. 기겁해 한 빈도 검을 빼 들었다.
오러와 오러가 충돌해 굉음을 일궜다.
콰아아아앙!
“우아아아악! 이, 이게 무슨!”
한참이나 뒤로 밀리며 류한빈은 이를 악물었다.
어마어마한 살기였다. 절대 가르침을 내리기 위한 대련, 뭐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건 정말 죽이려고 내려친 거다!
검을 맞댄 채 바오톨트가 히죽웃었다.
“자네를 죽이고 또 죽이라더군.”
사나운 야수의 미소였다.
“내가 흡족해질 때까지.”
류한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놈의 여신들이 또 뭔 짓을 저지른 거야?’
검왕의 검이 불길이 되어 밀어 닥친다.
숫제 맹수의 울부짖음 같은 통쾌한 기합이 터진다.
“으하하하!”
무자비한 참격이 빛살처럼 쏟아졌다. 강렬하고, 패도적이며, 끊임이 없는 연격이었다.
한빈은 정신없이 기간트를 휘둘러 막았다.
감히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한번 기세에서 밀리니 방어하기만도 벅찼다.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큭! 으으윽!”
바오톨트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은 반응이구나!”
‘그, 그렇군.’ 그 표정을 보며 한빈은 깨달았다.
‘발타라 야만족이 단순 무식하다더니……
아무래도 말로 점잖게 가르침을 내리는 방식은 아닌 듯하다.
하긴, 지구에서 본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이런 경우를 본 기억이 있다.
‘싸움 속에서 배움을 얻으라는 건가?’
그렇다면 자신도 그에 부응해 줘야 한다.
한빈이 전신의 오러를 끌어 올렸다.
“타아아앗!”
바오톨트의 그것과 흡사한 붉은 오러가 불기둥이 되어 솟구쳤다.
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정원이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두 거구의 전사가 서로 몸을 날렸다.
수십 줄기의 블레이드 오러가 뒤얽혀 춤을 췄다. 파괴의 궤적이 연신 주위를 부수고 또 부쉈다.
황금의 꽃잎이 휘날리고, 대지가 파헤쳐져 허공으로 비산한 뒤 빛의 입자가 되어 부서져 갔다.
굉음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콰콰콰콰쾅!
류한빈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크윽! 이거 오래 못 버티겠는 데……
나름대로 충분히 강해졌다고 여겼다. 지금의 그라면 왕년의 검왕, 바오톨트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었다.
분명 바오톨트는 류한빈보다 월등히 강하지 않았다.
기간트와 기간트가 충돌한다.
그 속에 실린 힘은 엇비슷하다.
딱히 류한빈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러와 오러가 뒤얽혀 타오른다. 이 역시 실린 기운이 엇비슷하다. 역시 류한빈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튕겨 나가는 것은 항상 그였다.
“크어억!”
피를 뿌리며 한빈이 주춤거렸다.
바오톨트의 미소가 짙어졌다.
“좋구나! 역시 여신께서 안배하신 나의 대적자답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
바오톨트가 그를 위해 여신이 안배한 스승이었을 텐데?
그때 였다.
“확실히 끝내 주마!”
기간트를 휘두르며 몰아붙이던 바오톨트의 전신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한빈은 눈을 부릅떴다.
‘투혼 발타란? 저걸 아무 딜레이도 없이 검을 휘두르며 펼친단 말이야?’
투혼이 깃든 바오톨트의 거력은 지금의 그가 감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류한빈이 허겁지겁 손사래를 쳤다.
“자, 잠깐만요! 전 아직 투혼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바오톨트가 사납게 물었다.
“그래서?”
“저에게도 투혼을 펼칠 틈을 주셔 야.J 바오톨트의 투혼이 더더욱 거칠게 타올랐다.
“내가 왜?”
한빈은 당황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그는 류한빈이 전력을 다할 틈조차 주지 않을 셈이었다.
“아니, 그럼 이대로 싸우란 말입니까?”
억울한 듯 외치는 그를 향해 바오톨트가 우렁차게 포효했다.
“그것이 사투의 예의다!”
투혼이 깃든 일 검이 인식의 저편에서 날아들었다.
“전사라면, 전사의 대결에 걸맞은 도리를 다하라!”
‘무슨 소리야, 도대체?’ 이를 갈며 한빈은 최대한 뒤로 빠졌다.
적색의 빛이 그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기간트를 쥔 오른손이 그대로 잘려 나간다.
‘젠장! 이번엔 오른팔이냐!’
애써 고통을 억누르며 그는 바오톨트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잘린 팔 정도는 재생할 수 있다는 걸 아니 그때만큼의 정신적 충격은 없다만, 그래도 고통은 여전했다.
‘골고루도 잘리네, 제기랄!’
극도의 고통 속에서 한빈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일단 검을 거둬요! 이대론 뭘 제대로 배울 수도 없잖습니까?”
바오톨트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한빈이 재빨리 외침을 이었다.
“그러니까, 여신께서 가르치라고 한 대상이 나란 말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검왕의 투혼이 자신의 애검 기간트를 가득 뒤덮었다.
“자네는 강자다.”
한껏 흥분한 표정으로 그가 뇌까렸다.
“강자는, 벤다.”
사라진 류한빈을 떠올리며 에피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한빈 님이 정말 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아무 걱정 말라며 알티아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최고의 스승이 있으니까.”
사방이 파괴의 흔적으로 가득한 빛의 성역.
그 속에서 검왕 바오톨트는 호쾌한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머리통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류한빈의 것이었다.
‘이게 뭐야,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