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7
발타라 전사(2)
타클 던전 중층의 한 커다란 동굴.
마법의 광구가 드리우는 희미한 빛 아래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투박한 무기를 쥔 채 몰려온다.
“ 인간!”
“죽인다!”
성인 남성과 비슷한 신장에 회색 피부를 지닌 근육질의 몬스터, 그레이 오크였다.
“허업!”
전신 갑옷을 걸친 흉터투성이의사내, 브래드가 장창을 찔러 가며 기합을 떨쳤다.
창날이 번뜩일 때마다 비명이 메아리친다.
다른 쪽에선 배틀해머와 두꺼운 방패로 무장한 마틴이 욕설을 퍼부으며 오크들의 머리통을 으깨는 중이었다.
“너나 죽어라, 이 더러운 오크놈들아!”
후위의 두 영술사, 엘자와 포엘도 열심히 수인을 맺으며 저들을 보조하고 있었다.
“프렐류의 바람이여, 이곳에 임하소서!”
“알티아의 베일이여, 빛의 가호를 드리우소서!”
엘자가 치유술로 팀원 전체의 활력과 기력을 유지하고, 포엘이 빛의 방벽을 세워 사방에서 포위 당하는 걸 막아 가며 전황을 조율한다.
빛의 방벽 뒤에 서서 아티스도 연신 마법을 날렸다.
“익스플로전! 프리즈 볼! 체인 라이트닝!”
끝도 없이 밀려오는 그레이 오크를 상대로도 브래드 팀은 거침없이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중급 헌터였던 버크만 팀과 비교하면 월등히 뛰어난 실력이었다.
하지만, 현재 동굴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비하면 이들의 활약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타아앗!”
기합을 터트리며 거구의 검사가 거대한 검을 들고 오크 무리 가운데로 돌진한다.
포위망을 피해도 모자랄 판에 알아서 기어들어 가다니?
실로 멍청한 짓이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펠라드! 부순다!”
고함을 지르며 야만족 검사는 연신 흑색 대검을 휘둘렀다.
폭풍이 불고 피 보라가 일었다.
잘린 오크들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날아오르며 비명이 아우성쳤다.
“으아아악!”
도끼를 휘두르던 오크 하나가자루째 두 동강 난다.
뒤에서 기습하려던 놈은 그대로 손아귀에 얼굴이 잡혀 두개골이 으깨진다.
도망가려던 놈은 목이 잡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피 곤죽이 되고, 한꺼번에 덤빈 세 마리 오크는 한꺼번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 된다.
그야말로 광전사처럼 날뛰며, 거구의 검사는 수십 마리의 그레이 오크들을 압살하고 있었다.
브래드와 마틴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저게 정녕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발타라 전사가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오러 유저에 필적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광경 이 었다.
잠시 후 그레이 오크 무리는 깔끔하게 몰살당했다.
숨을 고르며 엘자가 물었다.
“좀 쉴까요?”
류한빈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계속 간다.”
말이 짧았지만, 불쾌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 발타라 전사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역시 과묵하시네요.”
브래드 팀은 계속 이동했다.
또 한 무리의 마물과 조우했고, 류한빈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펠라드! 부순다!”
콰콰콰쾅!
폭음이 연거푸 터져 나온다.
검이 지나가는 궤적마다 피와 육편이 쏟아져 붉은 내장 조각이 꽃잎처럼 흩날린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마틴은 혀를 내둘렀다.
과연 전설 그대로였다.
참으로 과묵하고 난폭하고 호전적인…….
“펠라드! 찌른다! 펠라드! 벤다!
펠라드! 때린다! 펠라드! 쑤신다!”
‘……과묵한 것 맞나?’ 마틴이 눈을 깜빡였다.
‘어째 굉장히 말이 많은 듯한 느낌도 좀 들고?’
아티스가 황급히 해명했다.
“그, 그게, 저 친구가 일족 사이에선 꽤 수다쟁이인 편이라서…… 하하.”
그리고 마물을 몰살시킨 류한빈곁으로 가 작게 속삭였다.
“야, 좀 조용히 싸워.”
“왜? 야만족처럼 굴라며?”
“야만족처럼 굴랬지, 언제 바보처럼 굴랬냐?”
“하이고, 어렵네……
발타라 전사로 위장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아직 모자란 점이 있었나 보다.
‘무식해 보이기 위해서 유식해져야 한다니, 이 무슨 모순이냐.’ 내심 혀를 차며 류한빈은 슬쩍 브래드 팀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다들 그가 보인 무위에 경악하고, 또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중이 었다.
몰래 그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반응이 나쁘지 않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신들을 만날 수 있겠지?’
발타라 전사로 위장함으로써 레벨 문제는 해결했다.
이제 다음 일에 대해 고민할 차례 였다.
“여신과 만나고 싶다고 했지, 한빈?”
“그래. 여섯 여신 중 아무라도 상관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류한빈의 최종 목적이다.
그걸 위해 이 세계에서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티스의 말에 따르면, 마법으론 불가능한 듯했다.
“내가 그리 레벨이 높은 마법사는 아니지만, 차원 이동 성공 같은 엄청난 이슈를 모를 정도는 아니야.”
마법의 총본산인 싱커즈조차도 차원을 조작하는 경지는 요원한 것이다.
“그쯤 되면 그야말로 신의 힘이겠지.”
역시 지구로 돌아가려면 이 세계의 초월자를 만나 도움을 얻는 방법뿐이었다.
류한빈이 대충 생각해 둔 바를 말했다.
“어떻게든 교단에 접근해, 어떻게든 성녀와 친해질 정도의 고위직까지 올라간 다음, 어떻게든 성녀를 설득해서 내 진심을 전한 뒤 여신과 만나는 식으로……
정말 ‘대충’이었다.
“푸핫!”
아티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든이란 수식어가 세 번이나 들어간 시점에서 그건 계획도 뭐도 아니거든?”
이미 지구인들은 한 번 여신 살해를 시도했다.
교단의 경계심도 극에 달했다.
“그런데 잘도 진심이 전해지겠다.”
“에, 열심히 신뢰를 쌓아 올리면 안 되려나?”
“그 신뢰 자체가 거짓에서 출발한 것인데?”
설령 운 좋게 성녀와 친분을 쌓게 된다 해도, 이계인임을 드러내면 최악의 적으로 돌변할 것이다.
신뢰했던 만큼 배신감도 커질 테 니 까.
“차라리 성녀 꼬셔서 사랑에 눈이 멀게 한 다음 여신과 만나게 해 달라고 조르는 쪽이 가능성이 높겠군.”
물론 정말 성녀를 유혹하라는 소린 아니고, 그만큼 현실성이 없다는 의미다.
류한빈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여신을 만날 방법 따윈없는 건가? 하긴, 워낙 어려운 길이니 그 악마 놈들도 최종 미션으로 걸었겠지.”
그렇게 실망하며 축 늘어져 있을 때였다.
“방법이 없다고는 안 했는데.
어려운 길인 건 사실이지만.”
“응?”
“여신을 만날 방법은 분명히 없지만……
아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신‘들’을 만날 방법은 있거드 ”
그레이트 어스의 죄악으로 인해 라트나의 여섯 여신은 이계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다.
또한 여신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마신 옴팔로스와 대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계인을 처리한 공로 자들에게 여신의 축복을 내렸지.”
30여 년 전 그레이트 어스를 해치운 최강의 4인.
검왕 바오톨트, 아크메이지 제 노비아, 뇌제 가르한, 생사초월자 홀리엔.
여섯 여신은 저들 앞에 직접 강림해 그 노고를 치하하고 불로 (不老)의 축복을 내렸다고 전해 진다.
“엄청난 사건이었지. 그 절대자들조차도 감격에 몸을 떨었다더군.”
불사(不死)가 아니니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는 그날까지 젊고 강인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신의 축복을 받은 최강의 4인은 이계인 사냥에 더더욱 열을 올렸다.
그들의 행보에 영향을 받아 라트나인 대부분이 이에 동참했으니, 마신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려는 여신들의 의도는 충분히 통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여섯 여신의 축복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던전과 이계인은 마신 옴팔로스의 사악한 산물.
저 둘을 멸하는 데 가장 많은 업적을 쌓은 이를 선택해 12년에 한 번씩 여신의 축복을 내리겠다는 신탁을 추가로 내린 것이다.
여섯 교단에서 저 신탁을 공표하자, 많은 이들이 여신의 축복을 노리고 이계인을 사냥하고 던전을 공략해 갔다.
개중에는 심지어 기사나 귀족, 왕족마저도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헌터 전성시대였다.
“그렇군. 그 여신의 축복을 받을 때 여섯 여신이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소리지?”
류한빈이야 어차피 늙지 않으니 불로의 축복 같은 건 필요 없지만, 여신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기회다.
“그래. 여섯 교단이 12년마다 협력자를 심사해 후보를 고르면 여신들께서 축복자를 택하신다고 하더군. 그러니 일단은 교단의 협력자 후보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지.”
마지막으로 여신의 축복이 내려진 것이 9년 전의 일이었다.
다시 여신의 축복이 내릴 때까지 3년 정도 남았다.
“한빈, 네가 여신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면 그때가 기회일 거야.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류한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아티스가 중얼거렸다.
“네 진짜 실력이면 ‘축복자’로 선택되는 게 불가능하지만도 않다고 보거든.”
“대충 이해는 했어.”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교단의 협력자가 되는 게 우선이군.”
? * *
아티스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류한빈은 계속 검을 휘둘렀다.
“타아앗!”
그 어떤 마물도 그의 일 검을 막아 내지 못했다.
이 타클 던전에서 출몰하는 마물의 평균 레벨은 고작해야 레벨 30 중후반인 것이다.
당연히 경험치도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헛고생하는 느낌도 들긴 했지만…….
‘힘 조절 연습하는 셈 치지.’
브래드며 마틴은 류한빈의 압도적인 무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지만, 실은 아직도 그는 전력을 다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티스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럼 나 이제 발타라 전사로 위장했으니 마음껏 힘을 써도 되는 거야, 아티스?”
“음, 그건 좀 애매한 문제군.”
발타라 전사는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오러 유저에 필적한다.
그렇다. 필적(四敵)이다.
지금의 류한빈처럼 아예 오러유저를 초월해 버리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발타라 전사라 쳐도 넌 너무 강하다, 한빈.”
평범한 오러 유저 정도까진 힘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적의 공격을 피할 필요도 있고. 아무리 발타라 전사라도 오러도 안 쓰고 마법을 몸으로 때 우는 그런 미친 짓은 못하거든.”
그래서 적당히, 출몰하는 마물의 수준에 맞춰 가며 싸웠다.
그럼에도 저런 도살장 뺨치는 광기의 학살이 이어지는 것이다.
“타아아앗!”
무자비한 피의 폭풍을 몰고 다니며, 한빈은 새삼 혀를 찼다.
‘그러니까 나, 실제로는 대체 몇 레벨인 거냐고?’
브래드 팀은 파죽지세로 던전을 공략했다.
평소의 배가 넘는 속도였다.
전부 선두에 선 발타라 전사, 펠라드 빈 덕분이었다.
오크를 만나면 오크를 죽이고, 오우거를 만나면 오우거를 죽인다.
하여튼 걸리는 건 죄다 잘 익은 호박처럼 쪼개 버린다.
엘자와 포엘이 기대에 찬 대화를 나눴다.
“이거 이대로 계속 가면……
“오늘 중으로 던전 클로징할 수 있겠는데?”
몇 시간 뒤.
결국 브래드 팀과 한빈 일행은 던전 최심부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