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71
최고의 스승 (6)
마신 옴팔로스가 지구인들을 죽여 강제로 가이드라인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를 깨달은 알티아는 특단의 조치를 행했다.
-마신의 손아귀에서 이계인들을 구출하라!
라트나인에게 이계인들을 구하라는 임무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심하다. 게다가 보이는 족족죽이라고 한 과거의 신탁과도 모순된다.
여기서 슬슬 필멸자의 감각에 익숙해진 키비에가 개입했다.
“다 좋은데, 살짝 표현 좀 바꾸자, 알티.”
그래서 현재 라트나 해방군에게 내려진 명령은 이것이었다.
-이계인들을 사로잡아라! 놈들의 죽음조차도 마신의 이득이 될 뿐이다. 반드시 생포해 구속시켜야 한다!
물론 해방군에게 이계인을 찾아 낼 직접적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레온하트는 어렵지 않게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적의 목표물도 파악할 수 있는 법.”
이후 라트나 해방군의 행보는 더욱 바빠졌다.
세상에 뿌려진 수만의 천사상, 칼테라의 기둥을 부수는 와중에 습격당한 이계인들도 색출해 구해 낸다.
특히나 바쁜 것은 에피르였다.
이 땅에 떨어진 모든 지구인들이 쾌락 보상에 중독된 것은 아니다.
파브리시오처럼, 자신의 신념과 굳은 의지로 끝끝내 살인을 피하며 살아남은 자들도 극소수지만 존재했다.
이들은 마신의 인을 받지 않았고, 그렇기에 옴팔로스도 천사들을 보내 일일이 수색해 찾고 있다.
기동력이 워낙 뛰어난 에피르정도는 되어야 이런 천사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구출된 이계인들은 에피르의 도움에 크게 감사했다. 그리고 기쁘게 그녀를 따라 아르모리카로 피신했다.
어차피 쾌락 살인을 기피하던 이들이니 해방군이 자신들을 받아 준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실은 험악한 경우가 대부 분이다.
마신의 인은 받았으되, 낙원의 함정에는 걸리지 않은 이계인들.
이 쾌락 살인마들조차도 구해내야 했으니까.
?
*
*
대륙 중부의 한 산악 지대.
수십의 이계인들을 감싸고, 수백의 라트나 해방군이, 수천에 달하는 마신의 천사들을 상대로 맹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군 진격!”
“무모하게 대열에서 빠지지 마라! 뭉쳐서 상대해야 한다!”
간신히 살아난 이계인들은 어리 둥절해했다.
“왜 우릴 구해 주는 거지?”
“그런데 저놈들 죽이면 쾌락 보상이…
“정신 차려! 저들이 없으면 우리도 죽는다고!”
“어차피 레벨 격차도 너무 크고 말이지.”
악타룬의 이계인들과 달리 대륙전역에서 숨어 살던 이들이었다.
고작해야 레벨 40 전후, 그렇기에 감히 해방군의 뒤를 칠 수는 없었다.
눈앞의 천사들을 베어 넘기며 팔머와 메르딜이 고소를 지었다.
“이것 참 골 때리는 상황이 되었군.”
“그러게 말일세. 우릴 죽이려는 놈들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대륙3강의 군세조차 압도적으로 학살했던 마신의 천사들, 그럼에도 밀어붙이는 쪽은 오히려 라트나 해방군이었다.
“그때보다 놈들 숫자도 적고!”
“마신의 사도도 없으니 할 만하지!”
아무래도 옴팔로스는 이 정도 임무에 사도들까지 투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반면 라트나 해방군 쪽은 최고위 정예들만 골라 모았으며, 든든한 아군도 있다.
전장 곳곳에서 빛이 솟구쳤다.
거대한 드래곤이 무려 다섯이나 모습을 드러냈다.
화신 편으로 돌아선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이었다.
콰콰콰콰콰!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이는 지상 최강의 영술사이자 최강의 4인의 일원, 영술권사 레온하트.
“모조리 격추시켜라!”
결국 승리는 라트나 해방군에게로 돌아갔다.
“끝났군요.”
“이제 이계인들을 확보할 차례군.”
널브러진 천사들의 시체 사이로 레온하트며 다른 성전사장들이 걸음을 옮겼다.
“어우, 저놈들 이쪽으로 오는데.”
“분명히 우리를 생포하러 왔댔지?”
“그렇다면 죽이진 않는다는 건데……
눈치를 보던 이계인들이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붙잡히면 사람을 못 죽이잖아!”
“쾌락 보상을 얻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레벨 40대가 날고뛰어 봐야 결과는 뻔하다. 금방 도로 붙잡혀 퍽퍽 두들겨 맞고 포박되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탈출하겠다고 몸부림을 친다.
“으아아아!”
안젤리카가 실소를 흘렸다.
“술 취한 사람 억지로 끌고 가는 기분이군요.”
메르딜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겠습니까? 죽일 수는 없는데.”
이걸로 그럭저럭 마신의 계획을 좀 더 지연시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일뿌하늘을 올려다보며 레온하트가 중얼거렸다.
“한빈, 그 친구는 잘하고 있나 모르겠군.”
류한빈은 계속 바오톨트에게 덤벼들었다.
미완성의 투혼을 전신에 건 채, 투지를 일깨우며 살의의 검을 휘두른다.
“타아아앗!”
공방을 주고받으며 바오톨트가 소리쳤다.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지 마라!”
그러더니 잠시 후 완전히 반대되는 소릴 해 댄다.
“검은 생각하고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가르한의 친절한 해설이 이어졌다.
“효율적인 검술 속에서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취해라. 그 비효율로 얻는 약간의 이득과 크나큰손해, 이를 감수하며 약간의 이득에 최대한 집중한다. 결과적으론 손해는 손해가 아니게 되며, 미세한 이득이 승리의 발판이 된다.”
바오톨트의 헛소리를 가르한은 꾸준히 이해하기 쉽게 바꿔 설명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생전에 익혔던 마검술 중 일부를 오러 스킬로 바꿔 한빈에게 전수해 주기도 했다.
“오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다. 잡기(雜技)라면 잡기이겠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선 꽤 쓸모가 있겠지.”
덕분에 류한빈은 착실히 투혼발타란의 완성도를 높여 갔다.
하지만 천검 디아스티마만큼은, 가르한조차도 스승이 될 수 없었다.
“아쉽게도 천검은 나 역시 이해 하지 못한 검술이다. 그러니 가르칠 수도 없지.”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존재는 필수였다.
“하지만 저 친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려 줄 수 있다.”
여전히 최고의 통역사인 것은 사실이니까.
죽고 또 죽어 가며 류한빈은 계속 불완전한 천검을 펼쳤다.
그리고 완벽한 천검 앞에 꺾이고 또 꺾였다.
그런 그를 향해, 바오톨트는 연신 외쳤다.
“진정한 전사는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
“진정한 전사는 싸움에서 비로 소 태어난다!”
“바라는 것을 끝없이 추구하며 꺾이지 않는 자가 진정한 전사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들어라!”
“원하는 것을 베는 자가 진정한 전사다!”
맥락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외침이었다.
정말이지 저 작자가 사람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걸 가르한이 사람 말(?)로 번 역한다.
“자신이 타인에 의해 강해졌음을 인정해라.”
“네 영혼, 네 육체, 네 지식, 네 지혜, 네가 쥔 검과 오러조차도 온전히 네 것인 것은 없는 법.”
“그 누구도 타인의 도움 없이 강해질 수 없다. 진정 혼자만의 능력으로 강해지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시해라!”
“네가 쌓아 온 것이 타인에 의해 주어진 것이냐? 네가 해 온 노력이 네 것이 아니냐?”
“원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얽혀서 돌아간다. 네가 뭘 해도 결국 네가 쥔 것은 네 스스로 얻은 것이다.”
한빈은 혼란스러워했다.
“……저기요, 슬슬 완전히 딴소리 같습니다만? 아예 비슷한 부분조차 없는데요.”
“저 친구 어휘력에 별 기대를 걸지 말게.”
“그걸 감안해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맥락도 있고 앞뒤도 맞지만, 내용은 완전히 모순이다.
“할 수 없지 않은가?”
가르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저 저 친구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옮겨 줄 뿐일세.”
천검의 이해도 자체는 류한빈이 오히려 그보다 훨씬 높다.
본인도 모르는 것이다.
“이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네의 몫이야.”
얼마나 죽었을까?
얼마나 되살아났을까?
어느 순간, 류한빈은 깨달았다.
‘어라?’
투혼을 발동했음에도 몸이 아프지 않았다.
모든 오러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태산과도 같은 기운이 극한으로 압축된 겨자씨만 한 오러.
폭발하는 모든 기세가 아주 쉽게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투혼의 제어에 성공했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원래부터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대체 이걸 이제껏 왜 실패한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한빈은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투혼 발타란!
평소 오러를 끌어 올리는 것처럼, 전신이 순수한 투혼으로 가득 찼다.
“어, 진짜 된다……
지켜보던 가르한이 박수를 쳤다.
“드디어 투혼을 완성시켰군.”
“이, 이게 완성시킨 게 맞나요?
갑자기 너무 쉽게 되는데?”
“원래 그런 법이다.”
뿌듯한 표정으로 가르한이 말을 이었다.
“익히기 전까진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가, 익힌 후엔 이걸 왜 못했나 싶을 정도로 쉽게 느껴지지. 그 경지에 도달해서야 비로 소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원 저편을 손가락질했다.
“가라. 이제 끝을 볼 때다.”
눈앞에 선 류한빈을 바라보며 바오톨트는 크게 기뻐했다.
“강해졌군.”
흥분을 감추지 않으며 검부터 꺼내 든다.
“고맙소, 여신들이여! 나와 필적하는 강자를 벨 기회를 주시다니!”
쓴웃음과 함께 한빈도 기간트를 뽑아 들었다.
“이런 경우라면 보통 ‘강해졌구나, 후인이여. 이 나를 꺾어 보아 라!’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왜?”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 바오톨트가 눈을 부라렸다.
그 표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후계자를 바라보는 감동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제 그대는 나에게 필적하는 강자가 되었다.”
그저 노골적인 살기를 풍기며 맹수처럼 먹이를 노려볼 뿐!
“강자는, 벤다!”
바오톨트가 몸을 날렸다. 류한 빈 역시 침착하게 마주 뛰어갔다.
“타아앗!”
완성된 투혼을 지닌 두 전사가, 완성된 하늘의 검을 서로에게 뻗었다.
?천검 디아스티마!
둘의 모습이 사라졌다.
두 자루의 기간트 역시 사라졌다.
은하수와 은하수가 서로 뒤섞이며 무수한 별빛이 서로에게 쏟아졌다.
성역 전체가 진동하며 하늘이 갈라지고 대지가 찢겨 나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잠시 후.
쿠우웅…….
부러진 기간트의 칼날이 허공을 날아 땅에 깊숙이 박혔다.
류한빈의 기간트였다.
“커어어억!”
피를 토하며 한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극심한 고통으로 뇌리가 타는 것 같았다.
“헉, 헉헉……
간신히 호흡을 고르며 그는 고개를 들어 바오톨트를 바라보았다.
대검을 굳게 움켜쥔 채 우뚝 서 있는 눈앞의 거인을.
‘아, 진짜 저 노인네 더럽게 세네.’ 문득 한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도 일단 완성은 했어……
바오톨트의 기간트가 칼끝부터 서서히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훌륭하군……
처음으로 중년 사내의 표정에서 투지가 사라지고 순수한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만족스러운 싸움이었다……
동시에 빛의 성역이 무너졌다.
바오톨트도, 가르한도, 빛의 정원도 모두 녹아내리며 혼탁한 색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당황한 류한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어어?’ 정신 차려 보니 그는 기이한 공간에 서 있었다.
빛도 어둠도 아닌, 색과 형태조차 희미해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무한의 우주.
어느새 모든 상처가 사라지고, 부러진 기간트 역시 완벽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후였다.
‘이건 또 뭐지?’
당황한 한빈의 귀에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택된 지구인.”
“준비된 여신의 그릇이여.”
눈부신 빛이 뇌리를 통해 폭우처럼 쏟아진다.
방대한 시간과 공간이 전신을 꿰뚫는다.
“지혜의 우물에 몸을 담그고, 나아갈 길을 찾으세요.”
“이를 이해한 자만이, 그에 맞서는 필멸의 존재가 될 수 있으니.”
무심코 류한빈이 탄성을 흘렸다.
“아??????
라트나와 지구, 여신과 마신, 초월자와 필멸자.
모든 것을 담은 환상이 눈앞 가득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