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80
다가오는 종말 (1) 알티아는 말했다.
“이제 라트나는 3/4 가까이 잠식되었다.”
옴팔로스처럼 정확한 수치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략 적으로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이 유일한 기회야.”
실패하면 여신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뿐이다.
이대로 옴팔로스에게 이 세계를 헌납하거나…….
“우리 손으로 붕괴시킬 수밖에.”
어느 쪽이 되었건 라트나 입장에선 종말이다.
각오를 다지며 해방군 총사령관 레온하트가 명령을 내렸다.
“전군, 진격.”
빛과 어둠의 화신, 그리고 최강의 4인이 이끄는 1만 5천의 군세가 아르모리카를 떠나 동쪽으로 기나긴 행군을 시작했다.
?
* *
광장 한복판에 앉아 옴팔로스는 중얼거렸다.
“오는구만.”
곁에 서 있던 바람의 네아셀리가 물었다.
“출진하오리까?”
“도중에 막자고?”
“예.”
아르모리카와 차원궁이 위치한 데류 분지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거의 요정왕국의 절반을 가로질러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천사군단을 이끌고 날아올라 저들을 도중에 저지할 수 있다.
설령 완전히 막아 내진 못한다 해도 상당한 전력을 깎을 수 있을 것이다.
옴팔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오게 두어라.”
하늘 가득 선명한 빛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빛이 반투명한 반구가 되어 차원궁 전역을 덮어갔다.
마신의 권능이 한껏 담긴 강력한 방어 결계였다.
“저들은 우리 코앞까지 와 주어야 한다.”
네아셀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신의 권능이 담긴 방어 결계라면 물론 저들을 모조리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굳이?
“제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불필요한 힘의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옴팔로스가 활짝 웃었다.
“드디어 너도 여기까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구나!”
그리고 손짓까지 해 가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설명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었다.
“내가 왜 그랬냐면 말이지 *
*
*
보름에 걸쳐 라트나 해방군은 알렌디아의 동서를 가로질렀다.
그 무엇도 이들을 가로막지 않았기에, 진군 속도는 매우 빨랐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의아해했다.
“왜 놈들이 공격해 오지 않는 거지?”
“설마 도중에 길이 막혔다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죄다 날아다니는 놈들인데 길이 왜 막혀?”
반면 수뇌부는 당황하지 않았다.
“과연 화신의 말씀대로군요.”
레온하트가 지도를 펼쳤다.
“정찰병들을 통해 놈들의 현 상황이 파악되었습니다.”
차원궁 반경 20킬로미터에 커다란 반원이 그려져 있다. 데류 분지를 통째로 뒤덮은 거대한 방어막이다.
그 주변, 데류 분지로 향하는 모든 진입로는 수많은 천사들이 포진한 상태.
공격할 생각 따윈 전혀 없다.
오로지 틀어박혀 방어에만 전력을 다할 속셈인 것이다.
람니아나의 성전사장, 안젤리카가 중얼거렸다.
“마치 배수의 진을 펼친 듯한 모습이네요.”
예센의 성전사장, 팔머가 대꾸했다.
“실제로 배수진은 아니겠지만 말이오.”
배수진은 어디까지나 아군의 도주로를 막아 끝까지 싸우게 함이 목적이다.
하지만 마신의 사도와 천사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도망칠 일이 없는 병사에게 배수진은 필요가 없다.
프렐류의 성전사장, 메르딜이 혀를 찼다.
“참으로 노골적이군요.”
저들이 얼핏, 궁지에 몰린 듯한 진영을 택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옴팔로스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자, 눈앞에 너희의 목표가 있다!
이곳만 함락시키면 너희가 이긴다!
그러니 끝까지 싸워라! 아무리 철옹성처럼 보여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느껴져도 끈질기게 달라붙어라!
제발 포기하고 자폭하지 마!
“……아우, 짜증 나.”
에피르가 투덜댔다.
문제는 속이 뻔히 보이는 저 수법이, 옴팔로스 입장에선 가장 확실한 전략이라는 점이다.
저 방어막은 하루아침에 부수기 힘들다.
장기간 소모시키며 서서히 공략해 가야 한다.
“마신의 사도와 무수한 천사의 공세를 감당하면서 말이죠.”
아니면 엄청난 위력으로 단숨에 뚫어 버려야 하는데, 지금 그게 가능한 수준의 강자는 류한빈밖에 없다.
방어막 뚫는 데 기력을 그 정도로 소모해 버리면, 아무리 류한 빈이라도 만전의 상태로 옴팔로 스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다.
방어막 안 뚫리면 시간 질질 끌수 있어서 좋고, 방어막 뚫리면 류한빈을 지치게 만들 수 있어서 좋고.
아티스가 고민하며 뇌까렸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군요.”
알티아가 빙그레 웃었다.
“다행히 이건 여신의 지혜가 미리 예측을 한 부분이다.”
그리고 류한빈과 키비에를 돌아보았다.
“자, 너희가 움직일 차례야.”
마침내 라트나 해방군은 데류분지 바로 기슭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편제를 바꿨다.
워낙 험준한 산악 지형이다 보니 모든 병력이 한꺼번에 이동할 수는 없다. 행군로가 너무 길어지면 그만큼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전력을 나눠 놓으면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성이 크다.
해방군과 달리 마신의 군세는 날아다닌다. 지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최대한 전력을 집결시킬 수 있고, 주위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있으며, 전장이 너무 길어지지 않는 구성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라트나 해방군은 넷으로 나뉘었다.
영술권사 레온하트가 이끄는 제 1군단 4,500.
뇌운의 에피르가 이끄는 제2군 단 3,500.
염마도사 아티스의 제3군단 4천.
흑룡 마나키라스의 제4군단 3천.
여기에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이 골고루 포진해 공중전을 맡는 구성이었다.
모두를 앞에 두고 레온하트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이제 와서 목숨 바쳐 싸우라는 소리 따윈 하지 않겠다!”
한껏 긴장한 이들을 향해 너스레 가득한 외침이 떨어진다.
“어차피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목숨 한번 안 바쳐 본 사람 따윈 없잖아?”
기사들과 병사들이 창칼을 들어올렸다.
“그건 그렇지!”
“싸우던 대로 싸우면 될 뿐!”
사기가 치솟는다.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산맥 가득 투지가 넘쳐 난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
해방군 4개 군단이, 차원궁의 동서남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메기스토, 페크렐룸, 네아셀리, 엑토스.”
불과 물, 바람과 대지의 사도를 앞에 두고 옴팔로스는 그들을 지음했다.
“모든 것을 허락한다.”
네 사도의 머리 위로 금빛의 고리가 잠시 나타났다가 깨졌다.
사도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오!”
“이것은……!”
드디어 신성의 제약이 풀렸다!
이들에게 깃든 위대한 마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주인이여!”
“기필코 승리를 바치겠나이다!”
기뻐하며 네 사도가 날아올랐다. 그들의 잔상이 차원의 사방을 향해 황금의 궤적을 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옴팔로스는 피식거렸다.
“그놈의 승리, 바쳐도 곤란하다니까 그러네.”
제일 바람직한 결과는 승리도 패배도 아닌 적절한 힘의 균형.
하지만 이런 복잡한 밀고 당기기를 자신의 사도들에게 요구할 순 없었다. 저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개념이었다.
“뭐, 이제 와선 이겨 버려도 상관없지만.”
그래서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여신들은 전력을 다해 승부를 걸어왔다. 덕분에 현존하는 모든 라트나의 강자들이 이곳 데류 분지로 모였다.
“즉, 이제 라트나는 텅텅 비었단 소리.”
중얼거리며 옴팔로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카틸론, 텔바란.”
어느새 빛과 어둠의 사도가 부복하고 있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마신은 싱글벙글 웃었다.
“이제 너희 차례로구나.”
*
*
*
라트나 해방군 제3군단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험지를 오른다.
그 위로 수많은 천사들이 송가를 부르며 달려든다.
머리 위에서 치고 오는 공격에 제3군단은 능숙하게 대응했다.
“방패진 형성!”
“요격 준비!”
전열이 빠르게 방패를 들어 1차 공세를 막았다. 덕분에 천사들의 대열이 잠시 흐트러졌다.
그 뒤로 화살과 마법이 하늘을 가득 수놓았다.
콰콰콰쾅!
2차원적인, 땅 위의 싸움에만 익숙했던 라트나인들이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날아드는 마신의 천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었다.
“언제까지 그 수법이 먹힐 것 같으냐!”
“이젠 하늘 쪽 공격도 익숙할 대로 익숙해!”
인간은 적응의 동물, 온갖 투사무기와 방책을 바탕으로 제3군단은 훌륭히 천사들의 공습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반면 네놈들은 나아진 게 없군”
코웃음을 치며 아티스는 염룡왕의 지팡이를 허공에 겨눴다.
“미티어 스웜!”
무수한 불의 유성우가 천사 무리를 강타했다.
콰콰콰쾅!
하늘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폭발이 일었다. 수백의 천사들이 한꺼번에 불타 추락해 갔다.
첫 번째 교전은 해방군의 우세였다.
“계속 전진!”
아티스의 마법에 힘입어 제3군 단은 산길을 타고 올랐다.
저 멀리 반투명한 금빛 방어막이 눈에 들어올 때였다.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다, 이 무도한 놈들!”
호통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거구의 신장이 빛에 휘감겨 천사들 사이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건?’
아티스는 긴장했다. 마신의 사도였다.
그동안 워낙 자주 만났다 보니 슬슬 낯이 익다.
“물의 페크렐룸!”
비행 마법을 펼치며 아티스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를 본 페크렐룸이 진중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최강의 4인, 염마도사 아티스.”
금검을 뽑아 들며 살기를 흘린다.
“예전엔 빚을 쳤었지, 불을 다루는 자여?”
금검에서 황금의 광휘가 아닌, 푸른 수기(水氣)가 피어올랐다.
“허나 화염만으로 모든 것을 태울 순 없으리!”
아티스의 폭염 마법에 대비해, 속성 공격으로 나서는 것이다.
과연 수기의 검이 화염 장막을 간단히 찢어발겼다.
쿠쿠쿠쿵!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아티스가 혀를 찼다.
“남들 다 아는 걸 이제야 파악해 놓고 무슨 잘난 척이야?”
그의 전신에서 온갖 아티팩트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레벨 140이 넘은 만큼 사용할 수 있는 마도구의 레벨도 어마어 마해진 것이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어마어마한 물건들이지만…….
‘대륙3강이 홀랑 망하는 바람에 국고 털기도 쉬웠지!’
칼드리스와 마도왕국 룬, 알렌디아가 그동안 챙겨 놓은 아티팩트의 숫자는 상당했다. 그리고 마신의 천사들은 오직 파괴만을 저지를 뿐 딱히 금은보화 같은 걸 약탈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희망을 안고 생존자들이 알뜰살뜰 챙겨 온 마도구들이 지금 진정한 주인을 만나 제 위력을 발휘한다!
“발동, 뇌천구! 다크 프레이어!
용의 파열! 디비전 룬!”
전격이 수기를 이끌고 어둠으로 감싸 부순다. 그렇게 약화된 수기의 검을 다시 한번 폭염 마법이 덮어 간다.
“앱솔루트 플레어!”
수기의 검이 화염에 꺾여 기세를 잃었다.
밀린 페크렐룸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건 옴팔로스 님의 권능이다!
네 것이 아닌 능력을 훔쳐 쓰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한창 싸울 때 할 소린 아닌데, 하도 어이가 없어 아티스가 받아쳤다.
“남의 세계 훔쳐 먹으려고 온 놈이 할 소리냐?”
“이 세계는 처음부터 옴팔로스님의 것이었다!”
“……와,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거냐.”
황당해하는 와중에도 아티스는 마법과 아티팩트를 병용하며 상대를 계속 압박해 갔다.
“전율하는 화염의 창이여!”
수십 줄기의 불기둥이 휘몰아쳤다.
점점 몰리던 마신의 사도가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강하구나, 라트나의 마법사여.”
그가 검을 거뒀다. 그리고 양팔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예전의 우리를 떠올렸다면 오산일 터!”
갑자기 페크렐룸의 기세가 월등히 강해졌다.
“옴팔로스시여, 당신의 권능을 허하소서!”
보이지 않는 기류가 폭풍이 되어 거대한 불기둥을 사방으로 흩어 놓고 본인의 영역까지 닥쳤다.
쿠우우웅!
신음하며 아티스가 허겁지겁 마나를 끌어 올렸다.
“으윽!”
간신히 방어는 했지만, 전신 기맥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내 마법이 이렇게 쉽게?’
마치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칼탄의 삼신수 중 하나였던 우투 크살릭과 마주했던 바로 그 때!
“보았느냐!”
무형의 기운을 전신에 두른 채 페크렐룸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것이 진정한 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