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92
칼테라의 마신 (3)
뇌광의 폭풍 사이로 옴팔로스가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마신의 주위로 수많은 어둠이 열렸다.
라트나의 바깥, 이계와 연결된 어둠이 형형색색의 불길을 토했다.
콰아아아아!
재빨리 낙하하며 에피르가 불길을 피했다.
교차하듯 지나치며 날아오른 아티스가 입을 열었다. 뿔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염룡왕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공허의 파편이 대지를 친다, 미티어 스웜!”
원래 드래곤 형태에서는 지팡이 없이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촉매를 통하면 더욱 정교하게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수백 개의 화염구가 수백 미터의 괴수를 강타했다.
콰콰콰쾅!
그 탓에 옴팔로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류한빈이 번개 위를 미끄러지며 아티스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놀란 듯 물었다.
“아티스 너, 언제부터 날 수 있게 된 거야?”
전신이 철갑으로 뒤덮인 드래곤이 시선을 돌렸다.
“내가 나는 거 아냐.”
잘 보니 아티스의 뱃가죽 부분에 열네 개의 마도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부유 마법, 레비테이션이 걸린 마도구였다.
허공에 떠 있는 건 마법으로 때 우고, 날개는 그저 추진력과 방향 전환만 담당하는 것이다.
“갑니다!”
웅장한 포효를 터트리며 아티스가 작은 날개를 파닥거렸다.
거대한 드래곤이 병아리처럼 뽈뽈거리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렇게 느린 동작으로 비행하는데 옴팔로스가 그냥 두고 볼 리는 없다.
“장난치는 거냐?”
비웃음과 함께 마신의 머리 하나가 섬광을 토할 때였다.
“긴급 회피!”
아티스의 등에 올라탄 성전사장 안젤리카가 마도구 하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드래곤 옆구리에서 불길이 뿜어지며 급가속한다!
쿠우우우웅!
아티스의 거체가 거북이처럼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며 섬광을 피했다.
팔머와 메르딜이 드래곤의 철갑일부를 조작하며 소리쳤다.
“발동, 플레임 스트라이크!”
“발동, 프리징 템페스트!”
이제 성전사장들 역시 레벨 100이 넘는 강자다. 아티스의 몸에 붙인 아티팩트를 조작할 정도의 레벨은 된다.
물론 아티스처럼 능숙하게 사용하진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과녁이 무려 수백 미터니까!
그냥 막 쏘면 된다!
콰콰콰쾅!
프라나를 끌어 올리며 플라테르도 소리쳤다.
“실드를 펼치겠소! 전속 전진!”
영술 방어벽을 두른 채 철갑의 드래곤이 옴팔로스에게 돌진한다. 온갖 마법과 영술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진다.
공격과 방어, 이동과 회피 등을 혼자 판단하기엔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역할을 서로 분리한 것이다.
아티스는 오로지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화력을 한 점에 집중할 뿐!
“전탄 사격 개시!”
류한빈이 혀를 내둘렀다.
‘……무슨 공중 전함처럼 되어버렸네, 저 녀석?’
레온하트와 마나키라스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흑룡이 입을 열고 거대한 숨결을 토한다. 칠흑의 브레스가 허공을 관통해 황금의 괴수에게 작렬한다.
그 틈에 레온하트가 생사초월자에게서 전수받은 최강의 일격을 날린다.
-고유 영술, 작열하는 낙일의 창!
찬란한 빛의 창이 날아들고 블레이드 오러가 춤을 춘다.
그 모든 것이 죄다 명중한다.
워낙 크니 빗나가는 것이 차라리 더 어렵다.
그러다가 마신의 반격이 돌아오면 레온하트가 빠르게 지시를 내린다.
“좌상(左上)!”
지시에 따라 흑룡이 몸을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섬광이 마나키라스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마신의 공격은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
“우하(右下)!”
또 아슬아슬하게 섬광이라스를 스쳐 지나갔다.
마나키
한빈 일행이나 성전사장들과 달리 마나키라스는 우투 크살릭과의 전투 경험이 없다. 압도적으로 크고 거대한 상대와 싸워 본 경험이 없단 소리다.
하지만 레온하트의 지시만 충실히 따르면 그녀 역시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
“좌상상 우하하!”
“……그냥 사각으로 돌란 소리를 뭘 그렇게 어렵게 하시오?”
맞을 듯 맞을 듯 공격을 피해 가며 레온하트와 마나키라스는 계속 옴팔로스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이것들이……
마신의 여덟 머리에서 점점 감정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귀찮지?’
짜증이라는 감정이었다.
류한빈은 다시 한번 뇌전의 길을 펼쳤다–라이트닝 오러!
동료들의 공격이 음팔로스에게 무슨 큰 타격을 준 것은 아니다.
겉으로만 화려하지, 사실 실제 피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정신이 분산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도움이었다.
콰르르릉!
붉은 번개가 연신 뻗어 가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때마다 한빈도 연신 베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검왕류? 뇌제류?
더 이상 그런 구별은 필요 없었다.
무작정 찌르고 베고 내려치고 후려갈긴다!
“으아아아아!”
황금의 괴수 위로 붉은 섬광이 연신 작렬했다.
옴팔로스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제 시간이 없는 건 마신 쪽이었다.
“이, 이놈들이!”
거대한 황금빛 파문이 재차 터졌다. 붉은 뇌전의 길이 해일에 밀려 모조리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이번엔 한빈도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지 않았다.
“에피르!”
“셍!”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재빨리 날아와 그를 태웠다.
멀어지는 그녀를 노려보며 옴팔로스가 눈을 부라렸다.
“신의 손아귀를 벗어날 자는 없다!”
주위 공세 따위 무시하며 칼테라의 마신이 거체를 움직였다.
대기가 찢어지며 폭풍이 일었다.
수많은 빛의 사슬이 한빈과 에피르를 노리고 쏘아졌다.
‘이런! 잡히겠다!’
류한빈의 안색이 굳었다. 에피르보다 사슬이 조금 더 빨랐다.
그때 였다.
-고유 술식 : 뇌신강림!
갑자기 에피르의 포스가 폭증하며 속도가 몇 배나 높아졌다!
쌔애애애액!
어마어마한 가속을 선보이며 와이번이 단숨에 옴팔로스의 머리 위 상공을 장악했다.
한빈이 놀라 물었다.
“네가 이걸 어떻게 써?”
라트나로 돌아온 뒤 그녀에게 자신이 배운 뇌신강림의 요령을 설명해 주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끝내 이해를 못 했었는데?
“엑토스랑 싸우다 깨달았어요!
역시 본체로 돌아오니까 감이 좀 더 좋아지더라고요!”
그렇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와이번이다.
인간이 아니다.
실은 와이번일 때가, 재능을 훨씬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와……
감탄하며 류한빈은 기간트를 움켜 쥐었다.
이제야 기동력을 제대로 갖췄다. 이젠 마신 상대로도 승산이 생겼다!
우르릉!
뇌전을 발하며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옴팔로스 주위를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했다.
폭풍을 뚫고, 회오리를 타고 올라, 불길과 번개 사이를 파고들며 한빈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기간트가 키브리엘의 신성을 한껏 떨쳤다.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 찌르기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삼중십자격, 크로스 임팩트!
폭음과 함께 마신의 머리 하나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거대한 괴수가 비명을 터트렸다.
“크어어어억!”
황금의 성혈을 뿌려 대며 옴팔로스는 이를 갈았다.
“저 와이번은 끝까지 말썽이군.”
점점 존재가 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당장이라도 라트나에서 추방되기 직전이다.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나?’
손상된 신성을 최대한 끌어내며 황금의 괴수가 신의 언령을 토해냈다.
-진정한 신 앞에서 무릎 꿇을 지어다!
황금빛의 해일이 세상을 뒤덮는다.
하늘도 대지도 모두 빛으로 가득 찬다.
필멸자를 억누르는 위대한 초월자의 신성이 한때 데류 분지였던, 이제는 부서질 대로 부서져 광야가 되어 버린 일대를 모조리 짓눌러 갔다.
고오오오오오!
굉음과 함께 모든 필멸자가 비명을 터트렸다.
“컥!”
“으윽!”
레온하트와 마나키라스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티스와 플라테르, 세 성전사장 역시 힘을 잃었다.
뇌신강림을 펼친 에피르조차도 필멸자의 한계를 벗어날 순 없었다.
“꺄아아악!”
하지만 이대로 나가떨어질 수만은 없었다.
신성을 통째로 폭발시킨 옴팔로 스 역시 잠시 흐름이 끊겼다. 마신의 숨통을 끊으려면 지금뿐이다!
“한빈 님!”
추락하는 에피르가 마지막 힘을 다해 류한빈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원반처럼 빙빙 돌며 회전력을 실어 던졌다.
“고맙다, 에피르!”
쏜살같이 날아가며 류한빈은 정신을 집중했다.
‘베고자 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의 전신이 서서히 흐려진다.
모든 오러, 모든 신성이 기간트의 칼끝으로 모여든다.
‘세상과 함께 베어 버린다!’
순간 옴팔로스가 쾌재를 터트렸다.
“낚였구나!”
타이밍을 잡았다. 이제 놈은 피하지 못한다.
마신의 일곱 머리가 일제히 입을 벌렸다.
일곱 줄기의 섬광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신의 철퇴로 화한다!
콰아아아아!
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거대한 섬광이 류한빈을 통째로 뒤덮으며 라트나의 하늘을 찢고 성층권을 넘어 별 저편까지 솟구쳤다.
마신의 모든 것이 집결된, 설령 여신이라 할지라도 감당치 못하고 소멸될 일격이었다.
“드디어 잡았다, 으하하하!”
옴팔로스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어?”
무자비한 소멸의 광류(光流) 사이로 흐릿한 환영이 나타났다.
기간트를 머리 위로 치켜든 류한빈의 환영이었다.
베고자 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세계와 함께 베어 버리는 것이 천검 디아스티마의 묘리.
“그렇다면 내 세계와 함께 아신조차 소멸시킬 권능이 모조리 그를 통과해 그냥 지나쳐 버린다.
“나 자신을 벨 수도 있겠지!”
옴팔로스는 경악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모르겠다, 어째서 저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저놈은 분명 저곳에 존재하는 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신히 날개를 펼쳐 활공하던 에피르 역시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저건……
실재와 부재를 넘나드는 홀리엔의 최종 비기.
“생사초월이잖아?”
*
*
*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가 옴팔로스를 향해 떨어진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검이 마신의 심장으로 파고든다.
“이, 이놈이!”
빛의 사슬이 춤을 춘다. 옴팔로 스가 먹어 치운 수많은 지성종들, 그 수많은 손아귀들이 연신 허공을 움켜쥔다.
닥쳐오는 미증유의 재앙을 막기 위해 신은 날뛰고 또 날뛰었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환영이 황금의 괴수를 파고들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체를 저항 없이 통과하며 중심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마침내 재앙이 옴팔로스의 심장까지 도달했다.
“검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낮은 읊조림과 함께 한빈이 세상을 내리그었다.
“하지만 검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이지.”
환영이 사라지고 우주가 펼쳐진다.
무수한 별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옴팔로스의 중심에서 은하가 폭발했다.
-천검 디아스티마.
진정한 전사의 검이, 신의 본질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
*
*
수백 미터에 달하는 황금의 괴수가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빛의 입자가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져 간다.
거대한 빛 속에서 옴팔로스는 울부짖었다.
“아아아악!”
본질을 잃은 신체(神體)가 허물어진다.
“힘이! 내 신성이!”
신을 신으로 존재케 하는 것.
수만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온갖 세계를 먹어 치우며 키워 온 권능.
우주 곳곳을 누비며 쌓아 온 위대한 칼테라의 신성(神聖)이 연기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내 힘!”
마신은 발버둥 쳤다.
의지의 손길을 사방으로 뻗어, 어떻게든 흩어진 권능을 움켜쥐려 했다.
“내 신성!”
소용없었다.
모든 것이 허망하게 빠져나갈 뿐이 었다.
무한한 탈력 속에서 옴팔로스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돌아갔어야 했다……
계획이 무너졌을 때, 행성 포식 프로세스가 취소되었을 때, 라트나의 여섯 여신이 제자리를 되찾았을때…….
그때 포기했어야 했다.
탐욕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눈앞의 지구인에 연연해 본질을 드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신의 자리만큼은 보전했을 것을!’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신이건, 인간이건.
“으아아아악!”
마침내 칼테라의 신성이 완전히 주인을 떠나 라트나 전역으로 흩어 졌다.
남은 것은 태아의 형태를 한, 작디작은 신의 잔해뿐.
알티아의 하늘이 열렸다.
키브리엘의 어둠이 칠흑의 공허를 토했다.
예센의 불이 그를 태우고, 람니 아나의 물이 그를 녹이고, 소론디의 대지가 그를 추방해, 프렐류의 바람에 태워 날린다.
조각날 대로 조각난 신의 잔재가 세계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애애애애!”
고통스러운 마신의 절규가 천둥이 되어 라트나의 하늘 가득 메아리 쳤다.
요동치는 하늘 위의 하늘.
마지막 한 줄기 황금 빛이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알티아의 하늘이 닫히고, 여섯여신의 힘이 도로 사라져 간다.
옴팔로스가 라트나 저편으로 영원히 추방된 것이다.
굉음이 사라지고 적막이 사위를 감쌌다.
남은 것은 완전히 박살 나 더 이상 산맥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된 드넓은 황야뿐.
그 한가운데,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거구의 검사가 보인다.
“……진짜 끝난 거 맞나?”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류한빈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마지막 순간, 자신이 어떻게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뭐? 내 세계로 나를 베?
검은 손으로 베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손으로 벤다?
지금 와서 되새겨 보니 헛소리도 저런 헛소리가 없었다.
“잠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본데……
하지만 그 덕분에 마신을 물리 칠 수 있었지.
벌렁 자빠진 채 그는 힘겹게 웃었다.
“하, 하하, 하하하……
결국 이 세계를 구했다.
소중한 친구들도 구했다.
자신의 복수 역시 달성했다.
모든 복잡한 감정을 한마디에 담아, 라트나의 구세주는 멍하니 뇌까렸다.
“아,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