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93
Epilogue (1)
옴팔로스와의 결전으로부터 반년 뒤.
세상은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던전과 이계 마물이었다.
더 이상 새로운 던전이 출몰하지 않았다.
기존의 던전 역시 라트나에 완전히 귀속되어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중심핵을 제거한다고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던전 클로징이라는 용어 역시 옛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던전이 더 이상 이공간이 아니게 되었으니, 이계 마물들의 리스폰 현상 역시 없어졌다.
라트나를 향했던 이계의 침략이 완전히 끊겼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평화가 찾아온 것만도 아니었다.
?
*
*
라트나 남단의 우거진 숲속.
한 무리의 헌터들이 창칼을 휘두르며 수십 마리의 이계 마물들과 전투를 벌인다.
“저쪽이다!”
“몰아붙여!”
옴팔로스의 사도와 천사는 분명히 사라졌다. 하지만 던전을 빠져나온 이계 마물들은 여전히 라트나에 남아 있는 것이다.
대륙 곳곳에서 이런 잔존 마물들의 습격으로 피해가 이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아!
괴성을 터트리며 이계 마물들이 계속 덤벼들었다.
하나 헌터들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한때 4대금역 도시에서 무위를 떨치던, 그리고 옴팔로스의 지배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힘앞에 이계 마물들은 빠르게 쓰러지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마물의 숨통마저 끊어졌다.
“휴우, 끝났군.”
대거를 꺼내 들며 헌터 한 명이 중얼거렸다.
“아직 안 끝났어. 마령석 캐야지.”
“짭짤하겠는데?”
리스폰 현상이 사라지며 더 이상 새로운 이계 마물도 출몰하지 않았다.
마령석의 새로운 공급이 끊긴 셈이다.
덕분에 마령석 가격은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었다.
열심히 마령석을 캐다 말고 헌터들이 문득 회한에 찬 표정을 지었다.
“아직까진 이런 놈들이 남아 있지만……
“나중에는 해치울 마물이 아예 없겠지.”
“그러게. 이젠 던전도 없잖아?”
“이 헌터란 직업도 우리가 마지막이 겠군.”
던전이 없으면 헌터도 없다.
개인의 무력만으로 부와 명예를 쥐던 시절은 끝을 고했다.
이들도 더 이상 단신으로 떠돌아다니지 못하게 되리라. 어딘가 정착해서, 누군가를 섬기며 살아가야겠지.
헌터들은 숲 저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저들처럼.’
나무 사이로 또 한 무리의 군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들과 달리 전원이 제식을 통일한 기사단이었다.
한 중년 사내가 걸어 나오며 물었다.
“그쪽은 전부 처리되었습니까?”
“그렇소, 파브리시오 단장. 그쪽은?”
“우리도 깔끔히 몰살시켰습니다.”
헌터들이 혀를 내둘렀다.
“역시 어스 나이츠의 무위는 대단하군요.”
마지막까지 살인을 피하며 자신의 영혼을 지킨 무혈의 이계인들.
이들은 결국 가이드라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여신들도 방법을 찾았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계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살인만 피한다면, 가이드라인을 지니고 있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전투 능력을 유지할 수 있고 평생 젊은 몸으로 살 수 있는데?
막상 제거하자고 해도 머뭇거릴 판이다.
그래서 레온하트는 이들에게 머무를 곳을 주고 힘을 쓸 곳을 마련해 주었다.
이제 그들은 ‘어스 나이츠’란 이름의 알렌디아 기사단이 되어, 왕국 곳곳의 마물들로부터 신민들을 지키는 임무를 행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신민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몇몇은 여전히 증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감히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는 이는 없었다.
“현 대륙 최강국인 알렌디아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보고서를 건네며 라온델은 말을 맺었다.
“별문제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어스 나이츠의 직속상관이기도 한 알렌디아의 왕녀, 세이라 엘리 시아란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모르잖아? 무슨 일이 생길지.”
“왜 걱정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들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 또 있을까요? 절대 라트나 인을 해치지 못하는데요.”
“라트나인이 그들을 해칠까 봐그러지.”
살인을 피해야 하는 이들이니, 누군가가 죽자고 덤벼들면 막기도 어렵다.
하지만 라온델은 이미 거기까지 신경을 써 놓은 후였다.
“그래서 어스 나이츠를 헌터들 이랑 동행시킨 겁니다.”
라트나인이라면 살인에 아무 리스크가 없다.
“레벨은 어스 나이츠가 더 높고, 살인이 가능한 헌터들도 있지요. 두 조건이 합쳐지면 충분한 억제력이 되어 줄 겁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거였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세이라는 자신의 부관인 이 잘생긴 금발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듯 뇌까렸다.
“사람이 정말로 변하는 경우도 있긴 있구나……
온갖 고생 다 하고 온갖 험한 꼴 다 본 라온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트란사스 가문 타령도 싹 사라졌고 잘난 척도 하지 않는다.
만사에 성실하게 임하며 요령을 피우는 일도 없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마저 서류를 정리하다 라온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이라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알렌디아는 요정왕 소르멜의 인도하에 착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타국들과 달리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며 왕년의 국력을 되찾아 간다.
이 놀라운 재건 속도에는 전 (前) 요정왕이자 현(現) 알렌디아의 재상, 로플란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
최종전이 끝나자마자 소르멜은 제일 먼저 로플란부터 찾았다.
“도와주시오!”
“하지만 저는 죄인의 몸……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라니까?”
사실 로플란 본인이 뭘 잘못해서 폐위된 건 아니다. 예전에도 국왕 노릇 잘만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보다 댁이 더 유능하잖아!”
“……알겠습니다, 폐하.”
결국 로플란은 알렌디아 왕실로 돌아왔다. 그 후론 내내 요정왕소르멜을 보필하며 국정을 돌보는 중이었다.
재상 부인이 된 홀리엔은 조용히 살아갔다.
한때의 영화가 꿈이었던 것처럼,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남편을 내조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욕심을 못 버린 친구들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니까요.”
천년왕국 칼드리스는 소년 국왕, 테페스 홀 칼드리스가 제위를 되찾아 왕국을 재건해 갔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세계를 구한 주축인 알렌디아와 달리 칼드리스는 전범 국가, 아무래도 위상이 많이 깎였다.
국력도 크게 약화되었다. 앞으로 대륙3강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것이다.
왕국의 군사력만으로는 곳곳에서 출몰하는 이계 마물의 잔당을 관리하기도 벅찰 정도였다.
그런 소년 국왕이 믿을 수 있는 이는 한 명뿐이었다.
“데스텔 지방에 또 이계 마물무리가 출몰했습니다.”
왕궁의 작은 거실에서 책자를 보며 놀고 있는 은빛 머리칼의 소녀를 향해, 테페스가 정중히 부탁을 건넸다.
“이들의 소탕을 부탁드립니다, 뇌룡공.”
소녀가 흠칫거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네? 아, 저요?”
그리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나 이제 뇌룡공이지?”
라트나 최강의 마검사이자 현최강의 4인.
뇌룡공(雷龍功) 에피르는 현재 칼드리스 왕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칼드리스에 본산이 있는 마검사 길드, 라이트닝포스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는 쪽이 옳겠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뇌제 가르한의 뒤를 이어 라이트닝 포스의 새로운 길드장이 되었다. 칭호 역시 뇌룡공으로 바뀌었다.
하급 마물 취급받는 와이번이 모든 마검사의 정점을 차지했음에도 불평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불만을 품기엔 에피르의 레벨이 너무도 드높았다.
「종족 : 인간. 마검사 lv. 143j이게 인간 형태일 때고.
「종족 : 와이번. 마검룡 lv.
151j
이게 와이번일 때의 레벨이다.
진신인 비룡 형태에서도 마검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 후, 슬슬 왕년의 가르한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초강자가 된 것이다.
“가만 있자, 데스텔 지방이면 남쪽인가? 30여 분 정도 걸리려나?”
지리를 살피는 에피르를 보며 소년 국왕은 혀를 내둘렀다.
왕도 메디스 라타에서 데스텔까지 빠른 말로 달리면 대략 나흘 정도가 걸릴 것이다.
‘그게 30분?’
목을 풀며 에피르가 창가로 걸어 갔다.
“아, 이왕 나가는 김에 타스마랄 좀 들렀다 올게요.”
타스마랄이라면 라트나 대륙 남쪽, 마도왕국 룬의 수도.
여기서 수천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다.
당연히 소년 국왕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뇌룡공이 자리를 오래 비우면 그만큼 칼드리스도 위험해지는 것이다.
“혹시 오래 걸립니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저녁 먹기 전까진 돌아올 거예요.”
“저녁입니까……
역시나 적응이 안 된다.
창가로 뛰어내리며 에피르가 손을 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폐하!”
이내 거대한 은빛 갈기의 와이 번이 왕궁의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며 위로 솟구쳤다.
여파가 없을 정도의 고도까지 올라간 뒤 마검술을 펼친다.
-고유 술식 : 뇌룡의 길!
콰아아앙!
고금 제일, 사상 최고속의 필멸자가 소닉 붐을 일으키며 메디스라타의 상공을 가로질렀다.
같은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마도왕국 룬은 칼드리스 왕국보단 상황이 나았다.
싱커즈의 마법사들이 현명한 정치적 판단을 내린 덕분이었다.
그래서 아티스는 당황했다.
“……제가 룬의 국왕이 되라고요?”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긴했다.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싱커즈의 길드장이자 룬의 국왕이 되는 것이 마도왕국의 전통.
그리고 현재 아티스는 틀림없이라트나 최강의 마법사였다.
“하지만 저, 솔직히 제대로 된 마법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레벨 자체야 140이 넘어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화염 계통에만 국한된다. 그 외엔 고작 레벨 70대에 불과하다.
“이런 제가 어찌 마법사들의 수장을 자처한단 말입니까?”
싱커즈의 원로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싱커즈의 수장이 되셔야 합니다!”
“싱커즈가 아니라면, 그 약점을 극복할 방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것이 마법사의 책무인 법이지요!”
룬의 전 여왕 아크메이지 제노비아.
그녀로 인해 마도왕국은 전범국이 되었다. 국력도 크게 깎였다.
평판은 한없이 떨어지고 민심도 멀어졌다.
그런데 아티스가 국왕이 된다면?
이제 그는 단순히 지상 최강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라트나의 모든 고룡들이 모인 ‘어퍼 드래코니움의 수장’이기도 했다.
제노비아에게 구속당했던 고룡들은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방종에 가깝게 날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은 죄가 있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키브리엘은 아티스에게 고룡의 관리를 맡겼다. 그를 위해 강력한 도구도 내주었다.
드래곤에 관련된 세 가지 유니크 아이템.
안티 드래곤 피어의 오브, 드라 코 임페리움 스태프, 폴리모프네크리스.
비록 마신의 권능에서 비롯된 물건이지만, 물건 자체엔 아무 문제가 없다. 충분히 강력한 억제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에피르가 더 이상 폴리 모프 네크리스를 쓰지 못하게 됐지만, 역시나 별문제는 없었다.
이미 그녀는 스스로 인간 의태능력까지 개발해 버린 후였다.
역시 천재가 괜히 천재는 아니었다.
싱커즈는 꾸준히 아티스를 설득했다.
지상 최강의 마법사이며, 어퍼드래코니움이라는 강력한 세력도 지니고 있고, 여신의 뜻에 따라 라트나를 구한 영웅.
그를 국왕으로 옹립하면 현재 마도왕국 룬이 잃은 무력과 세력, 평판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
이런 훌륭한 후보를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
상대가 인간이 아니란 점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싱커즈의 창시자이자 룬의 초대 국왕이었던 염룡왕도 드래곤이었으니까.
결국 아티스도 싱커즈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화룡왕 아티스 앰피티어 라그나 워커.
마도왕국 룬의 새로운 왕의 이름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