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94
Epilogue (2)
마도왕국 룬의 수도, 타스마랄.
기존의 왕궁, 알현의 탑 카노나 스의 왕좌는 옴팔로스의 공세로 붕괴되었다. 그래서 현재 룬의 왕실은 싱커즈의 백색 탑을 임시 왕궁으로 쓰고 있었다.
백색 탑 1층의 커다란 회의실.
상석의 아티스에게 한 노마법사가 작은 마도구 하나를 건넸다.
지속적인 화염을 일으키는 휴대용 마법 화로였다.
“싱커즈에서 마신석(魔神石)의 첫 연구 사례가 나왔습니다.”
건네받은 아티스가 바로 마도구를 발동했다. 화로에서 불길이 잠시 솟구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노마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그리 효율이 높진 않습니다.”
“갈 길이 멀군.”
“그렇습니다, 폐하.”
옴팔로스의 침공은 끝났다.
던전과 이계 마물 역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마냥 좋은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마도구나 아티팩트, 마령석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특히 마령석의 경우 워낙 라트나인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고갈될 경우 혼란이 클 터였다.
그래서 싱커즈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검왕 류한빈의 마지막 일격으로 옴팔로스의 신성은 라트나 전역에 흩뿌려졌다. 대부분 그대로 세계의 흐름으로 흡수되었지만, 그래도 남은 부분이 있었다.
지표면에 흡수되어 광물의 형태를 취한 마신의 권능, 마신석.
마령석을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 원이었다.
“어디까지나 이용 방법을 제대로 찾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중얼거리며 아티스가 화로를 다시 노마법사에게 건넸다.
“계속 연구하게.”
“예, 폐하.”
이후에도 국내의 여러 문제들을 검토하고 보고받으며 성실하게 회의를 진행해 간다.
회의를 파한 뒤 아티스는 내심 흐뭇해했다.
‘이제 나도 제법 왕 노릇을 하게 됐지?’
처음엔 꽤나 고생했지만, 슬슬 왕좌에 앉은 지 3개월이다 보니 꽤나 익숙해졌다.
‘하긴, 타국에 비해 국왕의 업무가 가볍긴 하지만.’
마도왕국 룬은 최강의 마법사를 왕으로 추대한다. 그렇다 보니 국가 특성상 국왕의 정치, 행정적 능력이 타국만큼 크게 필요치는 않은 것이다.
어지간해선 알아서 잘 돌아가는 것이 룬의 행정제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급해도 싱커즈가 제왕학도 모르는 아티스를 덥석 왕으로 추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쉬면서 밀린 마법서나 봐야겠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아티스가 막 휴식을 취하려 할 때였다.
문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룡왕 폐하.”
“무슨 일이지?”
“뇌룡공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티스의 표정이 피곤해졌다.
또?”
?
*
*
은발의 귀여운 소녀가 아티스를 보며 반갑게 소리친다.
“아티스 님!”
아티스는 그다지 반가운 기색이 아니 었다.
딱히 에피르와 사이가 나빠져서는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함께 마신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 소중한 전우였다.
단지…….
“요새 안 바쁘니, 에피르? 너 어제도 찾아왔잖아?”
아무리 친하다 해도 바로 어제 본 얼굴을 반가워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용건이 뻔하다면 더더욱!
“그래서 바쁜 일부터 처리하고 칼드리스에서 바로 날아온걸요?”
“여전히 빠르구나.”
생글생글 웃으며 에피르가 아티스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또’용건을 꺼냈다.
“아티스 님, 아직도 제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으실 셈?”
요즘 들어 그녀는 수시로 아티스에게 껄떡대고(?) 있었다.
와이번 상태에서 인간 의태 능력과 마검술 사용 능력을 터득한 에피르였다. 이제 그녀의 후손들은 혈통을 통해 드래곤과 비슷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즉, 후손부터 낳아야 한다는 소리죠. 그런데 같은 와이번들은 별로 제 취향이 아니라서.”
이해는 간다.
대부분의 와이번이 짐승과 지성이 크게 차이가 없으니 그녀의 눈에 찰 리 없겠지.
그리고 아티스도 마냥 에피르를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당장은 곤란할 뿐이다.
그는 꽤나 고리타분한 성격이었으니까.
“에 피르.”
은발의 소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룬의 국왕은 말했다.
“난 아직 미성년자다.”
“괜찮아요!”
소녀는 환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까 저도 미성년자더라고요!”
그렇다.
에피르, 아직 20살도 안 됐다…….
“……그럼 더 큰 문제 아니니, 그거?”
라트나 서부 변경의 엑스라드왕국.
온프로스 시티의 광장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광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단단히 묶인 한 무리의 남녀가 처형대로 끌려 나온다. 다들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다.
“부디 용서를!”
“여신이여, 자비를!”
여섯 여신을 버리고 옴팔로스를 섬긴 배교자들, 그중에서도 주모자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옴팔로스가 강림한 후, 라트나의 신민 대부분이 마신의 인을 받고 마견의 피와 살로 배를 채웠다. 그러지 않으면 마물에게 죽거나, 굶어 죽을 운명이었으니까.
그래서 여신의 교단도 저들 모두를 처벌하진 못했다. 그랬다간 라트나인 대부분을 죽여야 할 판이었다.
앞장서서 악행을 저지른 자들 위주로 처형해 본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키브리엘의 이계심문관이 소리쳤다.
“이단자들에게 여신의 심판을!”
마신의 위세하에서 여신의 신민을 핍박하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자들이 차례차례 처형대에 눕혀진다.
배교자들이 저주를 퍼부으며 이를 갈았다.
“젠장!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일 뿐이야!”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세상을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닌가!”
이계심문관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목을 쳐라!”
인간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바구니로 굴러들어 갔다. 섬뜩한 칼날의 음향만이 광장을 연신 메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젖었다.
처형된 이들만 여신을 배신한 것은 아니다.
나서지만 않았을 뿐, 자신들도 마찬가지.
“남은 자들이여, 그대들이 죄가 없어 용서받았다 생각지 마라!”
이계심문관이 광장을 돌아보며 목청을 높였다.
“회개치 않으면 여신의 진노가 있으리라!”
최종 결전이 끝나자 어둠의 교단으로 피신했던 각 교황과 고위성직자들은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여섯 교단은 마신에게 할퀴어진 라트나 대륙의 뒷수습에 힘썼다.
각지의 신전을 관리하는 한편, 흔들린 민심과 신앙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둠의 교단 본산, 스코타 스키아.
금발의 청년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열심히 업무를 본다.
최강의 4인, 지상 최강의 영술사이자 어둠의 성전사장.
영술권사 레온하트였다.
에피르나 아티스가 칭호도 바뀌고 지위도 크게 오른 것에 비해 레온하트는 별로 바뀐 점이 없었다.
애초에 어둠의 성전사장이면 대륙 내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지위였다. 뭐 더 올라갈 곳이 없는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직속 비서가 바뀌었다는 것 정도?
“레온하트 님, 여기 엑스라드왕국 쪽 보고서입니다.”
“고마워요, 레즐리 양. 이걸로 배교자들에 대한 처분은 대강 마무리가 되었군.”
류한빈에게 절대적 복종을 맹세했던 레즐리는 이제 레온하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레온하트도 슬슬 레벨 140대, 왕년의 홀리엔과 비교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영술로 충분히 그녀의 정신을 제압할 수준이 된 것이다.
한빈이 레즐리의 정신을 제압한 것은 4대력 변환의 벨트를 이용 한 일종의 편법이다. 아무래도 진짜 영술사가 제압하는 쪽이 그녀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훨씬 좋다.
덕분에 레즐리도 보다 인간미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서류에 적힌 죄인들의 숫자를 살피며 그녀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라트나의 법은 가혹하군요. 저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세파에 휘말린 것뿐이지 않나요?”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쳤다면 이는 참작의 여지가 있지요.”
레온하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빵의 주인을 때려죽였다면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레온하트라고 냉혈한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비를 베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용서와 관용으로 모두가 화합하길 바라는 것은 이상일 뿐이다.
신상필벌은 명확해야 한다.
“악의 대가가 확실하지 않으면, 선의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지요.”
어둠의 교단뿐 아니라 다른 교단에서도 대대적인 처형이 이어지고 있었다. 각 교단과 연계하며 레온하트는 열심히 집무를 진 행했다.
마침내 처형 건이 얼추 끝났다.
레즐리가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물론 레온하트의 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할 일은 많았다.
성전사 탈랏 경이 다른 안건을 들고 그를 찾았다.
“라트나 서부 지역의 이계 마물소탕 진행 사항입니다, 템플러지도와 군사 분포도를 살피며 사인을 하던 레온하트가 문득 한 지역을 짚었다.
라트나 대륙 북부, 엑스라드 왕국에 속한 사트 수림이었다.
“여기는 따로 병력을 보낼 필요가 없다네, 템플러 탈맛.”
“예?”
“이미 그 친구가 가 있거든.”
레온하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탈랏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 검왕께서!”
이끼 가득한 거목이 빽빽하게 늘어선 울창한 수림.
축축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류한 빈은 피식 웃었다.
“여기 진짜 오랜만이네.”
사트 수림.
그가 이 세계, 라트나에 떨어졌을 때 처음 밟았던 땅이다.
“이것도 추억이라고, 다시 보니 반가운데.”
중얼거리며 그는 상황을 살폈다.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사람들을 포위하고 막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저 광경은 별로 안 반갑지만.”
한빈의 등장을 감지한 마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흉흉한 붉은 안광이 숲 곳곳에서 번뜩인다.
크륵?
크 e e e I
1? ?
마물의 정체나 레벨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겐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다. 오직 기감으로 느낄 수밖에.
“대충 레벨 30에서 80 사이 정도인가?”
오차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다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류한빈에겐 레벨 30이나 80이나 거기서 거기거든.
다 똑같은 약자.
-라이트닝 오러!
무자비한 붉은 번개가 나무 사이로 몰아쳤다. 순식간에 마물의 절반이 불타 사라졌다.
“헉!”
“저, 저분은?”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에 터질 듯한 근육질의 거구, 등에 거대한 대검을 짊어진 야만족 차림의 전사!
“검왕 류한빈!”
“검왕이 오셨다!”
“이제 우린 살았어!”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사람들이 환호를 터트렸다.
한빈은 느긋하게 기간트를 뽑아들었다.
“그럼 몸 좀 풀어 볼까!”
검풍이 불어닥쳤다. 숲속 곳곳을 활개 치는, 혈풍을 동반하는 파괴의 바람이었다.
일격에 마물이 십여 마리씩 펑펑 날아갔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멈추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
그럼에도 류한빈은 왠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역시 그때의 감각은 잘 모르겠옴팔로스의 숨통을 끊었던 그의 최종 비기.
생사초월에서 이어지는 천검 디아스티 마.
실재와 부재를 넘나들며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검을 날리는 이 수법은 그야말로 궁극의 필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시도해도 재현할 수가 없었다.
“대체 내가 그때 어떻게 한 거지?”
천검도 투혼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만, 생사초월은 도무지 모르겠다.
“역시 그냥 운발이었나?”
등 뒤에서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의 신성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겠지.”
어둠의 화신, 키비에였다.
그녀가 딴생각 중인 류한빈을 환기 시켰다.
“자, 사람들 다 구했으면 일단이 숲부터 빠져나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