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95
Epilogue (3)
사트 수림 외곽의 한 개척 마을.
마을 중앙에서 잔치가 열렸다.
주민들을 구출해 준 위대한 라트나의 영웅, 최강의 4인이자 고금 최강의 전사, 검왕 류한빈에게 감사를 표하는 잔치였다.
한 소년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한빈에게 다가왔다.
동경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떻게 하면 한빈 님처럼 강해질 수 있나요?”
“어, 그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류한빈이 어설픈대답을 해 주었다.
“밥 잘 먹고, 부모님 말씀 잘듣고, 운동 많이 해라.”
아이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검왕씩이나 되는 존재이니 뭔가 엄청난 걸 가르쳐 줄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딱히 해 줄 말도 없는 것이다.
뭐라고 할 건데?
잉여 인간으로 살다가 마신에게 납치돼라?
22년 동안 개만 잡아라?
검은 손으로 휘두르는 게 아니지만, 손으로 휘둘러라?
‘이래서 사람들이 빤한 대답만 하는 거구만.’
그러는 동안에도 고기는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마을 처녀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둘 음식을 바쳤다.
“한빈 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아, 고마워요.”
미소 지으며 류한빈이 정중히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처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겉보기와 달리 말투가 굉장히 정중해.”
“전혀 야만인 같지 않지?”
“실제로 발타라 야만족도 아니 시라잖아?”
당대의 검왕, 류한빈이 지구인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 었다.
이제 펠라드 빈이라는 가명을 쓸 필요도, 발타라 야만족으로 위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빈 너, 왜 옷차림은 여전히 그러고 다녀? 야만인 복장 싫다더니.”
지금도 털가죽 팬티에 밴드만 두른 류한빈을 보며 키비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류한빈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윽! 그러네? 너무 익숙해져서 미처 이상한 걸 못 느꼈어.”
예전엔 홀딱 벗은 그를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역시 이 세계 미친 것 같다며 혀를 차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새 동화된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갈아입을까? 아, 귀찮은데.”
“귀찮다는 소리가 나와? 이미 훌륭한 발타라 전사네.”
최종전 이후 키비에는 화신 상태로 류한빈과 함께 다니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옴팔로스는 물리쳤지만 그가 남긴 상흔은 라트나 전역을 깊게 할퀴었다.
세계의 균형은 크게 흔들렸고 흐름도 헝클어졌다. 여신의 책무를 옴팔로스에게 떠넘기면서 생긴 균열, 부유도 아발타를 떨어뜨리며 흐트러진 자연의 조화도 무시할 수 없었다.
“……듣자 하니 그거, 반쯤은 자업자득 아니냐?”
어째 여신들이 직접 라트나를 망가뜨린 경우도 꽤 되는 것 같다?
“시끄러. 몰라. 무시해. 전부 옴팔로스 탓이야.”
어쨌거나, 여섯 여신들은 라트나를 올바로 되돌리는 데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화신을 이 땅에 보내 상황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키브리엘뿐 아니라 알티아며 프렐류 등 모든 여신의 화신이 라트나를 거닐고 있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안정이 되었어.”
평화로운 마을 정경을 바라보며 어둠의 화신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모두 네 덕분이야, 한빈.”
? * *
잔치가 무르익어 갔다.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투박한 촌민들의 투박한 연회.
그 모습을 지켜보며 류한빈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문득 그가 중얼거렸다.
“혹시 말이야, 키비에.”
“옴팔로스가 성공했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옥이 되었겠지.”
키비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본인들은 천국이라고 느끼는 지옥이.”
신의 소유물이 발동했다면 제일 먼저, 마신의 사도들이 여신들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빛의 카틸론이 알티아를 차지하고, 어둠의 텔바란이 키브리엘을 차지했겠지.
사도와 여신의 인격이 융합되어 완벽한 옴팔로스의 수족으로 변했으리라.
또한 마신의 천사들도 라트나인들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사실 어스 신족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도화된 여신과, 천사화된 라트나인들이 이 세계를 거닐며 서로 싸우고 또 싸웠으리라.
그렇게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진화의 길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궁극의 하나, 일원으로 융합되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칼테라 신족이다.
창조와 조화, 유지가 아닌 파괴와 약탈, 침략을 업으로 하는 신족.
“마치 기생벌 같네.”
“그것이 칼테라의 본성이니까.”
류한빈은 잠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이런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해 주는 걸 보니……
사실 그가 진짜 묻고 싶은 것은 이쪽이 아니었다.
신의 진실은 필멸자에게 전해져선 안 되는 것.
하지만 키비에는 쉽게도 칼테라의 진실을 한빈에게 알려 주었다. 이미 그는 신의 이해를 접한 자였으니까.
“……역시 난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겠지?”
키비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너무 강해졌어.”
너무 강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가 보내 주고 싶어도 인과율이 허락을 하지 않아.”
21세기 지구는 류한빈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미래에 끔찍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럴 것 같긴 했지.”
한빈은 피식 웃었다.
“나도 이제 딱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
이 정도 힘과 지위와 명예를 전부 손에 넣었는데, 이거 다 버리고 지구로 돌아가서 뭘 얻겠다고?
“솔직히 이쯤 되면 그냥 라트나에서 지내는 게 백배 낫지.”
그저 걸리는 부분은 하나뿐.
가족, 그리고 부모님.
그분들은 류한빈의 생사조차도 모른다. 평생의 짐으로 가슴에 안고 사실 것이다.
“방법이 없다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역시 죄송하거든.”
한숨을 쉬다 말고 한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20년도 넘게 지났으니 이미 늦었으려나?”
“정확히 말하면 20년 정도가 아니지.”
라트나가 위치한 이 시공은 21세기 지구의 미래다.
유사 세계의 22년 따위 티끌만도 못할 정도로 아득한 미래.
키비에가 표정을 바꿨다.
“그 점이 걸리는 부분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어.”
“ 응‘?”
“시공을 열고 너 자신이 아니라 화신을 보내면 돼.”
“화신?”
“옴팔로스에게 납치되기 전의 기억과 육체를 지닌, 검왕이 아닌 지구인 류한빈의 화신.”
검왕 류한빈이 지구로 돌아갈순 없다.
하지만 화신 류한빈이라면 지구의 역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납치되었던 바로 그 시점에, 그가 납치되었던 시절의 화신체를 갖다 놓는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잠시의 현기증만을 느끼고 끝이겠지.”
한빈의 부모님도 자식의 생사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고.
“원래 역사대로 흘러가는 거지.”
“그 원래 역사라는 게……
쩝……
류한빈은 혀를 찼다.
그가 적합자가 된 이유가 바로 있으나 마나 한 잉여 인간이어서가 아닌가?
“아니, 내가 사라졌기 때문에 잉여 인간 취급을 받은 건가? 그 결과 미래에 영향을 못 줘서?”
혼란스러운 문제였다.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우리에게도 없어. 우리도 어스 신족치고는 아직 미숙하니까.”
아무래도 여신들도 모르는 것 같다.
한빈이 질문을 바꿨다.
“그래, 그 화신이란 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일단 반신이 먼저 되어야 해.”
잠시 머뭇거리다 키비에가 말을 이었다.
“우리의 신성 없이.”
“……갑자기 난이도가 너무 확올라가는 거 아니냐?”
“꼭 그런 건 아니야. 넌 이미 반쯤 필멸자에서 벗어났으니까.”
가이드라인을 잃게 되며 류한빈의 시간도 흘러가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나이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레벨 169.
슬슬 바오톨트조차 넘어서, 본인의 힘만으로 신성에 닿을 수준에 가까워졌다.
무의식중에 유한자의 한계를 어느 정도 초월하게 된 것이다.
나이를 안 먹을 순 없지만, 덜 먹을 순 있다.
죽음을 피할 순 없지만, 최대한 늦출 순 있다.
현재 류한빈의 수명은 인간이라 기보단 요정족이나 드래곤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이건 우리들도 예상 못 한 문제라서……
섭리에 어긋난 필멸자가 세상을 거닐면 그만큼 균형이 깨진다.
그렇다고 라트나를 구해 준 은인을 이제 와서 방해된다고 토사구팽 할 만큼 여신들이 사악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도 제발 빨리 반신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 지금도 지속적으로 균형 재조정 작업을 하고 있단 말이야.”
“그건 좀 미안하군. 그래서 얼마나 빨리 해야 하는데?”
“500년? 그 정도 안에는 해 줬으면 싶은데.”
“……여전히 여신의 ‘빨리’라는 건 인간의 감각과 많이 괴리되어 있구만.”
너털웃음을 흘리며 한빈은 어깨를 폈다.
500년이라, 솔직히 너무 아득해서 감도 잘 오지 않는 세월이다.
“그럼 내가 여신의 신성 없이도 반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키비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인간의 삶을 살아.”
“뭔 소리야? 난 지금도 인간인데.”
“하지만 사람답게 살진 않았지.
그저 싸우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쳤을 뿐이잖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사람의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래서 바오톨트는 그토록 레벨이 높았음에도 끝내 신성에 닿지 못한 거야. 마냥 죽이고 패고 부수는 것이 낙이었으니.”
저래서야 진정한 전사일진 몰라도, 어스 신족은 될 수 없다.
“확실히 그동안 살아남느라 바빠서 인생을 즐겨 보지 못했지.”
고개를 끄덕이며 한빈이 뇌까렸다.
“연애라도 해 볼까?”
농담 삼아 한 소리였는데 의외로 키비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역시 인간다운 삶이지.”
“그런데 누구랑?”
“지금의 너라면 좋다는 여자가 군단을 이루지 않을까?”
문득 그녀가 눈웃음을 쳤다.
“아니면 나는 어때?”
한빈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너랑 내가 그런 사이던가?”
물론 키비에가 미녀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발타라 여전사다운 탄탄하고 늘씬한 육체에 외모 역시 대단히 아름답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여자로 느낀 적이 있냐 하면은…….
“솔직히 너나 아티스나, 내가 보기엔 별 차이 없었는데? 그냥 좋은 동료였지.”
여태 그럴 여유 자체가 없었다.
키비에가 눈을 흘겼다.
“얘가 연애 한번 안 해 본 티내네? 원래 시작은 다 이런 거랬어.”
“말투 보니 너도 해 본 적 없구만, 뭘.”
“300년 전엔 해 봤어! ……이 화신에는 기억이 없어서 그렇지.”
발끈하는 키비에를 보며 한빈은 실실 웃었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의 삶이라……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뭐, 이 경우엔 누구나 알고 있는 보편적인 해답밖에 없다.
설령 검으로 하늘을 가르고 대지를 부수는 초인 중의 초인이 되었다 해도.
“그래, 살아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겠지.”
중얼거리던 한빈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옴팔로스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그냥 그대로 죽었나?”
“살아 있어. 신은 죽지 않으니까.”
라트나의 여신은 빙그레 웃었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
*
*
메마른 대지와 칠흑의 밤만 이 어지는 끝없는 황야.
그 황량한 벌판에 도마뱀 한 마리가 지나간다. 그리고 이내 짐승의 앞발에 짓눌린다.
껙!
짓눌린 도마뱀을 앞발의 주인이 그대로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연신 투덜거렸다.
“어우, 맛없어.”
총길이 1미터 남짓한, 두 개의 머리와 한 장의 날개, 작은 꼬리를 지닌 송아지만 한 괴물.
칼테라의 마신, 옴팔로스의 비참한 말로였다.
그동안 먹은 세계 다 토해 내고, 겨우 쌓은 신성 다 잃고, 완전히 미숙한 칼테라 신족으로 돌아간 것이다.
“옛날 생각나네.”
지금도 그는 분명 신이지만, 단지 신일 뿐이었다.
그저 죽지만 않을 뿐인, 주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
그런 옴팔로스가 다시 예전의 권능을 되찾으려면…….
“5만 년쯤 걸리려나?”
이래서야 다시 라트나를 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5만 년 뒤라면 라트나의 여신들은 성숙할 대로 성숙하여 강력한 어스 신족이 되어 있을 테니까.
기껏 힘 되찾아 다시 쳐들어가 봐야 한 방에 쫓겨나겠지.
“라트나는 포기해야겠군.”
하지만 옴팔로스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때쯤 되면 라트나에서 또 새로운 어스 신족이 태어나겠지?”
그리고 어스 신족의 본질에 따라, 새로운 별을 찾아 새로운 창생을 일구겠지.
그걸 노리면 된다.
“그래, 아직 기회는 있어.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고.”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열심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신이 도마뱀을 계속 씹던 중이었다.
두 개의 머리, 그중 하나가 갑자기 비명을 터트렸다.
“아아아아아악!”
옴팔로스가 자기 머리를 툭툭때렸다.
“얘, 아직도 적응 못했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라트나의 흔적, 공허의 제노비아였다.
지금도 그녀는 신의 감각 속에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릴 때보단 낫지?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심심하진 않으니까.”
확실히 옆에서 뭐가 자꾸 소란스러우니 덜 심심하긴 하다.
“한 1만 년쯤 지나면 얘도 말동무 정도는 되어 주겠지.”
희망을 안고 마신은 기운을 북돋았다.
“자, 그럼 초심으로 돌아가 볼까!”
1만 년의 절망 속에서 제노비아도 계속 절규를 토했다.
“아아아아아악!”
《이계 검왕 생존기》마칩니다 작가의 말안녕하세요, 《이계 검왕 생존기》작가 임경배입니다.
《이계 검왕 생존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 덕분에 무사히 완결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번 글을 완결할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토해 낸 후련한 감정과, 보다 잘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공존합니다.
쉽게 말해 시원섭섭하단 소리 죠.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는 것이 작가의 업이겠지요.
보다 재미있는 글, 보다 좋은 글을 선보이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이 후기를 보시는 모든 분들께 행운이 있기를 빌며, 이만 물러갑니다!
2019년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임경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