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32
교단의 협력자(1)
하이텐 시 북쪽에 위치한 정갈한 백색 신전.
빛의 여신을 섬기는 알티아 교단의 두 신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이텐 교구장 윈프리드와 에밀신관이었다.
윈프리드가 확실하냐며 물었다.
“진짜 발타라 전사인가?”
검왕 바오톨트 덕분에 발타라 일족에 대한 이야기도 대륙 전역에 퍼졌다.
그렇다 보니 덩치 크고 몸 좋은 이들이 간혹 검왕의 혈족인 척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틀림없습니다.”
에밀 신관은 단호하게 대꾸했다.
“오러도 쓰지 않고 측정석을 맨손으로 박살 낼 수 있는 인간이, 발타라 전사 말고 또 있겠습니까?”
저게 가능한 시점에서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별 의미가 없다.
어찌 되었건 발타라 전사에 필적하는 능력자란 소리니까.
“드문 일이군, 발타라 전사가 이런 변경까지 오다니. 보통은 대륙 중앙에서 활동할 텐데.”
“나이가 꽤 젊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갓 대륙에 나온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윈프리드는 다시 한 번 추천 서류를 바라보았다.
발타라 전사, 펠라드 빈.
그리고 그의 일행인 레벨 40마법사, 아티스 베니스터.
신중한 표정으로 윈프리드는 끄덕였다.
“이 둘에게 협력자 제의를 건네게, 에밀 신관.”
“알겠습니다, 교구장님. 그들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좋겠군요.”
여신의 축복, 불로의 힘을 바라고 많은 이들이 교단의 협력자 자리를 노린다.
하지만 일부러 초빙을 거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교단의 협력자에겐 꽤나 귀찮은 의무가 따른다.
반면 여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인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불로의 축복을 노리느니, 제안을 거절하고 속편하게 돈이나 벌겠다는 작자들도 많았다.
윈프리드는 사람 좋게 웃었다.
“동감일세. 좋은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법이니.”
*
*
*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뒷마당에서 근육질의 전사가 흑색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타앗! 헙! 타아앗!”
절도 있는 자세로 내려치고 올려 베기를 반복한다.
일부러 검을 천천히 휘두르며 동작 하나하나를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단순하지만 위력적인 기본 중의 기본.
바로 류한빈의 자기류 검술이었다.
아무리 엄청난 육체를 지녔다 해도 인간인 이상 단련하지 않으면 녹이 스는 법이다.
수시로 훈련을 해 주어야 한다.
“타앗!”
구슬땀을 흘리며 그는 계속 검을 휘둘렀다.
옆에서 금박의 두루마리를 훑어 보던 아티스가 의아해했다.
“이계인들은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절대 레벨이 하락하지 않는다던데, 한빈 넌 그렇지도 않은가 봐?”
이마를 닦으며 류한빈이 어깨를 으쓱 였다.
“솔직히 그건 좀 이해가 안 가.
게으름을 피우는데도 실력이 떨어지지 않을 수가 있나? 나이를 먹지 않으니 노화로 인한 실력 하락이야 없겠지만.”
“나도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어쩌겠어? 실제로 그런데.”
아티스는 다시 두루마리로 시선을 돌렸다.
한빈이 힐끔거리며 물었다.
“그게 이번에 구입한 새 주문스크롤이 지?”
“그래. 정기를 아무리 흡수해 봐야 없던 마법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아티스가 투덜거렸다.
“이계인 마법사는 레벨이 올라가면 저절로 마법의 지식도 생긴다던데. 참 사기라니까, 그치들 으 ”
최근 그는 하이텐 마법사 길드에서 레벨 37부터 40 사이의 주문 스크롤 일곱 개를 사들였다.
레벨 40 마법사가 되어 새로운 마법을 익힐 자격이 생긴 것이다.
류한빈이 혀를 내둘렀다.
“그 주문 스크롤이란 거, 되게 비싸더라?”
새 주문 일곱 개의 가격은 자그마치 1만 8,000엑스가 넘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1억 8천만 원쯤 하는 셈이다.
덕분에 아티스는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하지만 딱히 아까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 주문 스크롤을 제작하기 위해 들어간 노력과 비용을 생각하면 별로 비싼 것도 아냐.”
마법사가 마법을 익히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고위 마법사를 스승으로 두거나 마법서를 연구하며 지식과 지혜를 얻고, 오랜 수련끝에 마나의 운용과 흐름을 파악해 마법을 터득하는 전통적인 방식.
두 번째는 미리 제작된 주문 스크롤을 구입해 독학으로 터득하는 것.
마도학의 발달 덕분에 생겨난 새로운 방식이다.
주문 스크롤에는 해당 마법에 관련된 온갖 지식은 물론이고, 실제 마법 사용에 필요한 마나의 운용과 흐름까지 체감할 수 있는 주문이 걸려 있었다.
자격만 된다면 스크롤의 마법만큼은 확실하게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편해진 셈이다.
“그만큼 가격도 세지만 말이지.”
그래서 아티스도 이제까진 아주 어려운 주문 몇 개를 제외하곤 스스로 마법을 연구해 주문을 익히곤 했다.
류한빈을 처음 만난 것도 그 연구를 위한 재료 수집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한빈 네 덕에 수익을 엄청 올렸잖아. 그래서 돈 좀 썼다 ?”
류한빈이 주문 스크롤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이걸 찢으면 혹시 마법이 발동되나?”
기겁하며 아티스가 말렸다.
“미쳤냐! 그 비싼 걸 왜 찢어?
그리고 스크롤을 찢는데 왜 마법이 발동돼?”
뭐랄까, 핸드폰 박살 내면 전화 걸리느냐는 질문을 받은 현대인 같은 반응이었다.
“아, 개념이 좀 다르구나.”
게임이나 만화에서처럼 스크롤부욱 찢으면 마법이 나가는 식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마법을 편하게 익히게 만들어 주는 식의 마도구였다.
“사소한 데서 다르니까 더 헷갈리네.”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라 류한 빈이 눈을 빛냈다.
“혹시 전사용 오러 스크롤 같은 건 없어?”
오러 각성을 시켜 주는 스크롤같은 게 있다면 손쉽게 오러 유저가 될 수 있을 것 아닌가?
어차피 피지컬은 충분하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있겠냐, 그런 게?”
주문 스크롤은 마법사가 새로운 마법을 사용하게 해 주는 마도구다.
평범한 일반인을 마법사로 만들어 주진 않는 것이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오러 유저가 사방에 널렸겠지.”
말하다 말고 아티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스크롤이 있다 해도 한빈, 넌 어차피 사용 못 할걸.”
“그건 또 왜?”
“레벨 제한에 걸릴 테니까.”
아티스가 손에 쥔 스크롤을 흔들어 보였다.
“이거 레벨 제한이 40이야. 그래서 나도 이제야 구입해 사용하는 거고.”
류한빈의 어깨가 축 처졌다.
“역시 직접 오러를 습득하는 방법밖에 없나.”
그래도 미련이 남아 다시 물었다.
“그러면 혹시 오러 각성법이 적힌 검술서 같은 건 없어?”
책 보고 익히는 것이라면, 딱히 레벨 제한에 걸리지도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티스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있기야 있지만……
대륙3대검술로 추앙받는 바사라다류(流), 아스칼론 아츠, 막스브리드 투술.
그리고 각 지역의 명문가에도 저마다 비전의 오러 각성법이 존재한다.
“저런 건 돈 주고 못 구하지.”
숨기고 전수하니까 비전(秘傳) 아닌가?
아무 인맥도 없는 한빈이나 아티스가 저런 검술서를 얻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어라, 그런데 발타라 일족의 검술은 저기 안 끼네?”
“그 일족이 무슨 검술이 심오해서 강한 건 아니거든.”
워낙 초월적인 육체를 타고난 덕일 뿐이다.
문화적으로는 야만족에 불과하니, 딱히 기교 위주의 검술이 발달하진 않았다.
“물론 검왕 바오톨트는 그것만으로도 최강의 자리에 올랐지만.”
벨 때 베고 찌를 때 찌르면 그걸로 족하다.
부드러움에 강함이 꺾인다면, 그것은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증거일 뿐!
진정한 전사라면 화려한 기교보다 단순한 일격을 더욱 갈고닦아야 한다는 것이 발타라 전사의 신념이었다.
덕분에 한빈은 또 하나의 의문을 해소했다.
“어쩐지 내 검술을 보고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더라니……
아무리 발타라 전사로 위장했어도 발타라의 검술을 쓰는 건 아닌데, 다들 너무 쉽게 넘어간다 했다.
저런 이유라면 납득이 간다.
어쨌든, 잡담은 그쯤해 두고 류한빈은 도로 수행에 들어갔다.
아티스도 다시 스크롤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 주문 스크롤도 마도구인지라 횟수 제한이 있다.
12회 안에 스크롤의 마법을 완전히 터득해야 한다.
한참 동안 검과 마법에 매진하니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땀을 닦으며 한빈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협력자 제의는 대체 언제쯤 오는 거지? 발타라 전사로 행세한 지 벌써 이레나 지났는데.”
“안 그래도 슬슬 때가 됐어.”
이 세계는 현대 지구처럼 뉴스나 인터넷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바로 모든 소식이 도시 전체에 퍼질 순 없다.
그래도 이레나 지났으니, 알 사람은 충분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전설의 발타라 전사가 던전 도시 하이텐에 출현했다는 사실을.
수행을 마치고 두 사람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류한빈이 살짝 경계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로, 가슴께에 빛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새하얀 법복을 입고 있었다.
가이드라인으로 상대를 살피며 한빈이 중얼거렸다.
“꽤나 레벨이 높은데? 레벨 45영술사로군.”
아티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던전 도시 하이텐에 그 정도의 고위 영술사는 두 명뿐이다.
그중 젊은 사내라면…….
“알티아 교단의 에밀 신관님이군.”
결론부터 말하자면, 류한빈과 아티스는 문제없이 알티아 교단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대들처럼 전도유망한 이들이 세상을 위해 움직인다면 이는 라트나의 신민에게도 큰 홍복이며 알티아께서도 기뻐하실 걸세!”
두 사람에게 교단의 징표를 내밀며 하이텐 교구장, 윈프리드가 말을 이 었다.
“그럼 협력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네.”
던전 도시 하이텐에서 사흘 거리 정도 떨어진 곳에 게센이란 험준한 산이 있다.
그곳에 최근 자크롤단이라 자칭하는 도적 떼가 창궐해 인근 백성들을 괴롭히니, 이들을 토벌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윈프리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빈은 내심 혀를 찼다.
‘왜 헌터들 중에 교단 협력자 제의를 거부하는 이들이 많은지 알 것 같네. 이거 순 자원봉사잖아?’
던전 공략은 이미 많은 이들이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무력이 필요한 곳은 던전뿐만이 아니다.
라트나의 토종 몬스터들도 수시로 사람들을 해치곤 한다.
또한 인간 중에도 도적이며 범죄자가 사방에 득실거린다.
하지만 헌터들은 저런 일엔 관심이 없다.
돈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공권력을 투입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큼 이 세계의 치안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각 교단에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재능 기부라 할 수 있겠다.
자세한 설명을 마친 뒤 윈프리 드가 두 사람의 의향을 물었다.
“어떤가? 할 수 있겠는가?”
설마 힘이 모자랄 거라 생각해서 묻는 건 아니었다.
무려 발타라 전사인데!
마법사도 레벨 40이나 된다.
딱히 물질적 대가 없이, 오직 교단에 대한 기여도만을 바라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라는 요청인 것이다.
보통은 쉽게 승낙하기 힘들다.
하지만 아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그 ‘기여도’가 두 사람의 목적이다.
“물론입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