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40
두 번째 동료(1)
피를 흩뿌리며 알레한드로는 대지로 추락했다.
가슴이 쩍 벌어져 연신 선혈을 토한다.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심각한 상처다.
“크, 으으……
중년 사내의 눈동자가 점점 빛을 잃어 갔다.
“주, 죽기 싫…… 이런 곳에서……
잠시 후 그의 호흡이 멎었다.
동시에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두 자루 쌍검과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뿐.
그 모습을 지켜보며 류한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죽여 버렸네.’ 되도록이면 사로잡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다급했다.
‘힘 조절을 못했어.’
20년 넘게 전력을 다해 싸우기만 했으니, 오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혹여 놓칠까 봐 힘을 과하게 쓴 것이다.
저쪽이 무슨 좋은 의도로 한빈일행을 찾은 것이 아니니 딱히 죄책감 같은 건 없지만, 역시 정보를 캐내지 못한 건 아쉽다.
“뭐, 할 수 없지.”
이 세계의 지구인이 한둘도 아니니 분명 다음 기회가 있을 터.
앞으로 힘 조절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한빈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티스는 괜찮나?”
붉은 드래곤은 이를 득득 갈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으, 저 자식, 언질이나 좀 주고 던지든가.”
말은 그리해도 딱히 다친 곳은 없었다.
드래곤일 때의 아티스는 이 정도 충격엔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다.
류한빈 역시 그걸 아니까 부담없이 아티스를 던졌다.
“야, 한빈! 너 점점 무식해지는거 같아! 알아?”
“네 교육 덕분이지. 훌륭한 발타라 전사가 되라며?”
“……쳇.”
입을 삐죽이며 아티스가 드래곤 형태를 풀었다.
파아앗!
인간으로 되돌아온 뒤 배낭에서 새 로브를 찾는다.
또 드래곤으로 변신한 탓에 새로 갈아입은 로브도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오늘 대체 로브를 몇 개를 해먹은 거야?”
옷을 챙겨 입고, 아티스는 알레한드로가 남긴 잔해를 살펴보았다.
찢어진 옷가지 속에서 익숙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그레이트 어스였나.”
엠블럼을 살펴보며 아티스가 혀를 찼다.
“이쯤 되면 의심할 수가 없군.
그레이트 어스는 건재하다.”
이 징표도 하이텐 마법사 길드에 넘기기로 했다.
리치 때와는 달리 딱히 용혈 같은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으니 아무 문제 없었다.
“길드의 높은 분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조사를 하건 뭘 하건.”
알레한드로의 쌍검도 챙겼다.
“이거 어째 굉장한 마법검 같은데.”
검을 이리저리 살피며 아티스가 중얼거렸다.
한빈이 대꾸했다.
“좋아 보이긴 하더라. 사용 조건이 너무 높아서 문제지만.”
“사용 조건이 어떻게 되는데?”
“레벨 65.”
“그럼 한빈 넌 못 쓰나?”
쌍검을 받아 들고 류한빈은 잠시 휘둘러 보았다.
사실 쓰려면 못 쓸 것은 없다.
그냥 기능이 발동하지 않는다 뿐이지, 게임처럼 아예 장착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무기 자체로도 상당히 잘 만든 검이니 마법 효과가 없더라도 충분히 유용하겠지만…….
“예기도 사라지고 강도도 낮아진 것 같군. 고위 레벨이 쥐어야만 마법이 발동하나 본데?”
특수 능력은 그렇다 치고, 상시유지라던 샤프니스 블레이드나무기 강화도 류한빈의 손에선 발동되지 않았다.
이래서야 자신의 흑색 대검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마법이 발동되었을 때도 내 검보다 딱히 좋지는 않았어.”
이 쌍검과 몇 번이나 부딪쳤지만 류한빈의 대검은 멀쩡했다.
이 하나 나가지 않았다.
아티스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그 검 대체 정체가 뭐야?”
딱히 마도구나 아티팩트 같은 건 아니다.
그냥 무식하게 단단할 뿐 특수한 기능 따윈 없다.
그래서 측정 마법으로 측정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레벨 65 아티팩트보다 더 견고하다고?”
한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거대 마견 다리뼈 박박갈아서 만든 것뿐인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류한빈의 그 어마어마한 괴력으로도 칼 형태로 만드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아티팩트를 맨손으로 찢는 그 괴력으로도!
“돌 정도론 갈리지도 않아서, 마견 뼈끼리 비벼서 겨우 갈아냈지.”
아티스가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면 드래곤 본보다도 단단한 거 아냐?”
“드래곤의 뼈는 원래 그 정도로 단단해?”
“괜히 인간들이 드래곤 사냥하려고 그 난리 피우는 줄 알아?
아직 덜 여문 내 뼈만 해도 어지 간한 강철보단 단단할걸.”
하여튼 이 쌍검은 별 쓸모가 없다.
“팔아 버리자.”
“어디에? 이런 기물을 하이텐에서 팔았다간 난리가 날 거다.”
적어도 4대금역쯤은 되어야 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란 게 아티스의 설명이었다.
“젠장, 돈도 안 된단 소리네.”
투덜대며 류한빈은 일단 쌍검을 챙겼다.
“나중에라도 팔 기회가 있겠지.”
그 외에 다른 아티팩트들도 살펴보았다.
알레한드로의 갑옷과 바지는 한 빈이 우격다짐으로 뜯어낸 탓에 완전히 망가졌지만, 나머진 멀쩡했다.
물건을 살펴본 아티스가 감탄을 터트렸다.
“여신을 노렸을 정도의 이계인 들답게, 지닌 아티팩트들도 하나 같이 엄청난 물건들뿐이군.”
유니크 아이템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명 ‘힐 템’들도 무려 레벨 70의 고위 아티팩트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들 무슨 소용일까?
정작 류한빈은 하나도 사용할 수 없는데.
“무슨 게임이 이러냐? 템 모으는 재미도 하나 없고.”
그래도 이건 팔지 않기로 했다.
“지금이야 못 쓰지만 나중에 아티스 네가 레벨 70 넘기면 쓸모있을 것 아냐?”
그렇게 이것저것 챙기던 중이었다.
문득 류한빈이 눈을 빛냈다.
“어? 이건 당장 쓸 수 있겠다.”
알레한드로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작은 주머니 였다.
「공간 압축의 주머니(아티팩트)기능 : 내부의 공간을 압축해 총 열 배에 달하는 수납 용적을 확보합니 다.
사용 조건 1V. 40. 사용 횟수 하루 21/40회.」
“운이 좋군. 공간 주머니는 대륙 중앙에서나 구할 수 있는데.”
반색하며 아티스가 주머니를 챙겼다.
그리고 안의 물건을 털어 보았다.
혹여 뭐가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별건 없네.”
그냥 비상식량과 나이프 같은 잡다한 생활용품, 그리고 책 몇 권이 전부였다.
책자를 보며 한빈이 피식거렸다.
“의외로 독서가 취미였나? 그렇게 안 생겼던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TV도 컴퓨터도 없는 동네에서 그나마 시간 때울 건 책 정도겠지.
그렇게 책자를 뒤적거리던 중이었다.
아티스의 안색이 갑자기 굳었다.
“이거?…”
“왜?”
류한빈을 돌아보며 아티스가 책을 들었다.
“……막스브리드 투술서라고 적혀 있는데?”
?
*
*
현 라트나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검술 유파가 셋 있다.
남방의 바사라다류.
서방의 아스칼론 아츠.
북방의
막스브리드 투술.
대륙3대검술 중 하나인 그 막스브리드 투술이 적힌 책자가 지금 아티스의 손에 쥐여 있는 것이다!
한빈은 흥분했다.
“ 진짜?”
잽싸게 책자를 낚아챈 뒤 훑어보았다.
쿨린어로 쓰여 있어 내용을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온갖 무술동작이 그려진 그림과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아티스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3대유파에선 절대 자신들의 비기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계인이 이걸 가지고 있었지?”
“죽이고 빼앗았겠지, 아마도.”
어쨌거나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
한빈도 이제 검술에 문외한이 아닌지라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집에 가서 차분히 들여다봐야겠다.”
소중히 배낭에 챙겼다.
어쩌면 이 안에 오러로 향하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한빈이 익힐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 마..
“그래도 건진 게 아주 없진 않네. 템 모으는 재미도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수거하고 나서 두 사람은 숲 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티스의 전격을 맞고 떨어진 와이번을 살펴보러 가는 것이었다.
와이번은 아직도 기절한 상태였다.
눈깔이 홀랑 뒤집힌 것이 얼핏죽은 것처럼도 보였지만, 일단 가슴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확실히 숨이 붙어 있다.
놈을 바라보며 류한빈이 말했다.
“이 녀석은 어쩌지?”
흐릿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아읍읍……?”
에피르는 신음을 흘렸다.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신음도 제대로 흘리기 힘들었다.
간신히 눈을 뜨니 두 사내가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거한과 붉은 머리의 미청년이 대화를 나 눈다.
“이 녀석 때문에 엄청 고생했지?”
“그러게. 레벨은 낮아도 만만하게 볼 수준이 절대 아니었어.”
붉은 머리의 청년을 향한 에피르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드래곤……
좋겠다, 드래곤.
수백 년씩 오래 살고, 사람으로 변신도 하고, 온갖 마법과 특수한 능력도 있고…….
하찮은 와이번으로 태어나 저 드래곤이란 존재에 얼마나 많은 동경을 품었던가?
“어쩔까, 아티스?”
“비행 솜씨를 보니 절대 야생와이번은 아니야. 제대로 훈련받은 승용 와이번이다.”
“우리에게도 쓸모가 있을까?”
류한빈의 질문에 아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승용 와이번은 잘 훈련된 투견과 같아. 오직 주인에게만 충성한다. 보아하니 그레이트 어스가 키운 개체 같은데……
이 와이번만 놓고 보면 별 위협은 아니다.
하지만 강력한 전사나 마검사가 이 녀석을 타고 움직이면 굉장히 상대하기 까다로워진다.
“놓아주었다가 다른 놈이 또 타고 오면 정말 골치 아플걸.”
“그렇군. 죽이는 쪽이 낫겠네.”
순간 에피르는 눈을 크게 떴다.
‘죽인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왜 죽여? 내가 뭘 했다고?’
그저 이 한목숨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피한 죄밖에 없는데!
발딱 일어나 에피르가 맹렬히 소리를 질렀다.
어서 자신이 억울하게 말려든죄 없는 와이번임을 알려야 했다.
“읍읍읍읍!”
그런데 입이 재갈에 막혀 있어 말을 할 수가 없다…….
류한빈이 대검을 뽑아 들었다.
“이 녀석이 다시 날뛰는데?”
별일 아니란 듯 아티스가 대꾸했다.
“주인이 죽었잖아. 충성심 높은 와이번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지.”
에피르는 사색이 되었다.
큰일이다.
이 작자들은 대단히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
충성은 무슨 얼어 죽을 충성!
이 빌어먹을 마법 재갈 때문에 강제로 끌려다녔을 뿐이라고!
급한 김에 에피르가 열심히 앞발을 움직 였다.
나, 충성심 따위 절대 없어요!
목숨만 살려 주면 두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머리를 굽힐 수 있는, 지조 없는 와이번이란 말입니다아아!
라는 뉘앙스를 듬뿍 담아 손짓 발짓을 한다.
열심히 앞발 뒷발 움직이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읍읍읍읍읍!”
막 검을 찔러 넣으려던 한빈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 하는 거야, 이놈?’
기분 탓인가?
어쩐지 이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것 같았다.
“읍!”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와이번이 날갯짓을 한다.
그리고 알레한드로의 옷가지를 가리키더니, 억울함과 분노를 연거푸 띠며 자신의 재갈과 목줄을 가리킨다.
뭐랄까, 저놈이 강제로 자신을 제압해 이것들을 채웠다는 제스처?
“으으읍!”
그리고 바로 바닥에 풀썩 엎드리며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
저 흉악한 와이번이, 한 떨기 청초한 들꽃처럼 가련한 분위기를 풍긴다.
가혹한 학대로 인해 강제로 끌려다녔다는 의미인 듯하다.
“읍읍!”
이어서 류한빈을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낸다.
사악한 이계인을 물리친 그가 매우 존경스럽다는 것 같다…….
참으로 예술적이기까지 한 마임(?) 이었다.
그저 표정과 몸짓만으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실로 호소력이 짙어 마음을 움직인다!
심지어 가련하게 쓰러질 때는 사악한 알레한드로가 채찍질을 하는 환영마저 보일 지경이다!
이 무슨 천부적인 연기의 재능이란 말인가?
심지어 아티스도 감탄을 터트릴 정도였다.
고작 와이번 주제에 저토록 풍부한 감정 표현과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니 ?
“나도 드래곤일 땐 저렇게까지 표정을 잘 짓지는 못하는데 아티스와 류한빈이 수군거렸다.
“이거 어째……
“자신은 강제로 끌려다녔을 뿐이고 충성심 따위 전혀 없다는 소리 같지?”
“어이없지만 나도 그렇게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문득 류한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이 와이번이 낯설지 않았다.
“설마 너
혹시나 싶어 물었다?
“에 피르냐?”
격한 기쁨을 토하며 와이번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읍읍읍읍읍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