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42
두 번째 동료(3)
통성명이 끝나자 에피르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또다시 풀썩주저 앉았다.
그럴 줄 알았다며 아티스가 말했다.
“육체가 바뀌었으니 익숙해지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거다.”
그 역시 처음 인간으로 변신했을 땐 상당히 고생을 했다.
“특히 이족 보행을 터득하는 게 까다롭지. 나도 두 발로 자연스럽게 걷는 데 사흘 정도 걸렸었다.”
그렇다고 산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며칠씩 걸음마 연습이나 하고 있을 순 없다.
아티스는 류한빈을 돌아보았다.
“일단은 네가 업고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문제는 없지만.”
한빈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헐렁한 로브를 걸친 눈앞의 미소녀를 내려다보며 한 번 더 혀를 찼다.
“여자애였다니……
에피르가 억울해하며 되물었다.
“제가 그렇게 수컷 같았어요?
나름대론 꽤 예쁘게 생긴 편인 줄 알았는데……
아티스도 눈을 흘겼다.
“무례하군, 한빈. 척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상당히 아름다운 암컷 와이번이었다.”
아무래도 드래곤의 관점에선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문제였나 보다.
하지만 인간인 류한빈이 알 게 뭐냐?
“내 눈엔 무섭게 생긴 날개 달린 공룡일 뿐이었거든? 목소리도 으르렁대는 것이 엄청 살벌했구만.”
“우웅, 비룡기사단에서는 울음소리 예쁘다고 칭찬 많이 들었는 데……?”
실망한 에피르를 아티스가 부드럽게 달래 주었다.
“이 녀석의 견식이 짧은 탓이다. 네 울음소리는 충분히 미성이었으니 실망할 필요 없다.”
“역시 그렇죠? 아티스 님도 광장히 미룡(美龍)이셨어요.”
“그런가? 고맙군.”
라트나의 용족 둘이서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처덕처덕 해 주는 꼴을 보며 류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얼씨구, 잘들 논다.”
하여튼 슬슬 움직일 때였다.
그는 에피르에게 등을 돌렸다.
“얼른 업히기나 해.”
“네!”
한빈의 목을 껴안은 채 그녀는 연신 배실배실 웃었다.
“헤헤헤, 인간이다. 인간이 됐다.”
“인간이 된 게 그리 좋아?”
“그럼요! 이제 책도 볼 수 있고 예쁜 옷도 입을 수 있잖아요!”
재잘재잘 떠드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류한빈은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6귀엽긴 하네.’
등에 은발 소녀를 업은 거한과 붉은 머리의 미청년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며 아티스가 물었다.
“한빈과는 처음에 어떻게 만난 거야, 에피르?”
이계인, 그것도 라트나에 온 지얼마 안 되는 류한빈이 인간도 아니고 와이번과 안면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가 한빈 님을 잡아먹으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한빈 님이 제 싸다구를 찰지게 갈기셨어요.”
에피르의 대꾸에 류한빈의 표정이 묘해졌다.
“트,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모습으로 말하니 그거 참……
지금의 에피르는 누가 봐도 가냘프고 어여쁜 소녀였다.
저런 미소녀의 따귀를 신장 190의 우락부락한 근육질 거구가 후려갈겼다?
‘인간 망종이잖아!’ 다행히 아티스는 오해하지 않았다.
그저 감탄할 뿐이 었다.
“한빈과 싸웠었단 말인가? 그러고도 용케 살아남았군.”
레벨 72 리치를 맨손으로 으깨죽이고, 레벨 75 마검사를 시종일관 밀어붙이다 결국 참살한 류한빈이 었다.
“네 레벨로는 저 녀석이 살짝만 때려도 충분히 사경을 헤맬 텐데?”
“실제로 죽을 뻔했어요.”
얼굴 퉁퉁 부어서 힐링 포션 꽤나 부었다며 에피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이후 이것저것 알려 드리고, 챙겨 드리고 하면서 목숨 부지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류한빈이 굉장히 어수룩했다며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한빈도 순순히 인정했다.
“도움이 많이 됐지. 그땐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저도 인간이 되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한빈 님 도로 털가죽 반바지만 입고 돌아다니 시네요? 그때 옷 많이 챙겨 가시지 않았어요? 피부도 어째 까매지셨고.”
“아, 말하자면 긴 이야기야.”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계속 길을 걸었다.
그렇게 한창 산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문득 류한빈은 의아해했다.
‘ 음?’
등에 업힌 에피르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골반을 신체 중심으로 삼고…… 허리를 펴서 등과 머리가 일직선이 되고……
한빈과 아티스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피며 연신 중얼거린다.
“이동할 땐 발이 떨어질 때마다 신체를 연동시키면서 무게중심을 반대쪽으로……
“뭐 하냐, 에피르 너?”
류한빈의 질문에 그녀가 눈을 반짝이더니 말했다.
“저 잠깐만 내려 주세요.”
“왜?”
“두 분 걷는 걸 보니 어째 흉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원하는 대로 에피르를 등에서 내려 주었다.
작은 소녀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더니 휘청대기 시작했다.
“이걸, 이렇게, 이렇게……
아티스가 실소하며 그녀를 말렸다.
“무리라니까? 드래곤인 나도 이 족보행에 적응하는 데 사흘이 넘게 걸렸다. 와이번이라면 더 힘들겠……
“아, 된다.”
갑자기 에피르가 걷기 시작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점점 신체 흔들림이 줄어들더니,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원래부터 인간이었던 것처럼 실로 능숙하게 걷는다!
“이런 거구나.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 이제 걸을 수 있어요.”
아티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뭐야! 어떻게 벌써?”
한빈도 아티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사흘 걸렸다지 않았어, 이족 보행?”
“그랬지. 엄청 고생했었다.”
그런데 에피르는, 한 10분 걸렸나?
“그냥 아티스, 네가 워낙 둔한 거 아냐?”
“물론 내가 둔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티스의 용격은 마나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드래곤치고 운동신 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일 때도 마법사로 행세하는 것이다.
“그래도 저게 평범한 건 절대 아니야.”
황당해하는 아티스를 보며 에피르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제가 원래 몸 움직이는 건 능숙한 편이거든요.”
하긴, 그 엄청난 비행술을 보면 그녀가 평범한 와이번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고 보니 손재주도 굉장히 좋았지?’
류한빈이 에피르와의 첫 만남을 상기하며 말했다.
“와이번일 때도 앞발로 힐링 포션 뚜껑 쉽게 따곤 하더라.”
“힐링 포션? 그러니까 요만한거?”
“응.”
아티스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있나?”
드래곤이나 와이번의 앞발은, 말 그대로 ‘발’이다.
‘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정교하게 움직 였다고?
게다가 와이번의 경우엔 앞다리가 박쥐처럼 피막의 날개라서 더 더욱 움직이기 어렵다.
“그게 말이 돼? 발가락으로 바늘귀에 실 꿴다는 소리나 다름없잖아?”
“쟤는 하던데?”
그러는 동안 에피르는 자연스럽게 걷는 걸로 모자라 뛰기까지하고 있었다.
“두 다리로 뛰는 건 또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슬슬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잘움직인다.
움직임에 전혀 어색함이 없고, 심지어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고작 몇 분 만에 인간의 육체에 완전히 적응한 걸로 모자라, 와이번일 때의 감각을 인간 모드로 치환하는 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아티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맙소사, 몸 쓰는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났군.”
호기심이 생겨 한빈이 슬쩍 에피르를 탐색해 보았다.
「종족 : 인간. lv. lj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
“아직은 그렇지. 인간의 몸에 익숙해지는 도중이니까.”
에피르는 와이번일 때 충분히 신체를 단련했고 전투 경험도 많이 쌓았다.
그 육체적 본질은 인간 형태에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된다.
현시점에서도 이미 어지간한 전사 이상의 피지컬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저 그걸 다루는 법을 아직 모르기에 레벨이 낮게 측정될 뿐이지.
“인간의 무술을 익히면 레벨 20정도까진 금방 올릴 수 있을 거야. 대략 한두 달만 지나도……
……라고 아티스가 중얼거릴 때였다.
슬슬 걷기, 뛰기를 마친 에피르가 허공에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던가?”
비룡기사단 소속일 때 어깨너머로 봤던 기사들의 맨손 체술을 흉내 내는 중이었다.
처음엔 어설프더니, 고작 몇 분만에 점점 펀치가 날카로워진다.
“얍! 얍! 얍!”
한빈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 쟤 레벨 2 됐다.”
그리고 다음엔 발 차기 연습.
“레벨 3.”
그다음엔 주먹질과 발 차기의 연속 동작 연습.
“레벨 4……
그렇게 한 10여 분쯤 지났나?
어느새 그녀의 스테이터스는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종족 : 인간. 전사 1V. 7j 어이없어하며 한빈이 아티스에게 물었다.
“원래 용족이 인간 변신할 땐 초반에 저렇게 레벨이 빨리 올라?”
“빨리 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저 정도는 아니야.”
아티스가 혀를 내둘렀다.
“와이번이란 종족에 돌연변이가 태어났군.”
그제야 아차 싶은지 에피르가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딴짓을 했네요. 일단 산부터 내려가요.
저 이제 걸을 수 있어요.”
그리고 둘의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세요?”
서로를 바라보며 류한빈과 아티스는 쓴웃음을 지 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니, 일단 집에 가자.”
“그래,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u
?”
의아해하면서 에피르도 종종걸음으로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엑스라드 왕국 북부, 사트 수림인근의 헤럴드 지방.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한 버려진 요새 지하에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빛의 사슬에 묶여 있었다.
고블린, 오크, 코볼트, 오거 등 던전 출신의 마물들이었다.
갈색 머리의 여인, 레즐리가 손짓을 하자 마물들이 비명을 터트렸다.
“으아악!”
“크악!”
마물들이 말라비틀어지며 검은 연기를 토했다.
연기가 응집되어 그녀의 손아귀로 모였다.
중년의 금발 사내, 리처드를 돌아보며 레즐리는 빙그레 웃었다.
“잘 모이고 있네요. 이 속도라면 충분히 일정을 맞출 수 있겠어요.”
리처드가 혀를 찼다.
“이곳은 그렇지.”
문제는 알레한드로가 맡았던 규자크 마을의 실험이다.
“그 친구는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거지?”
신하준의 임무는 던전의 마물을 대거 유도해 한자리로 모으는, 귀찮고 손이 많이 갈 뿐인 잡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죽었어도 실험에 별지장이 없었다.
아무나 대체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책임자인 알레한드로는 이야기가 다르다.
“대체 어디까지 추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면 일정에 문제가 생기 는데……
그렇게 리처드가 근심하고 있을 때였다.
한 흑인 사내가 요새 지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염색한 것이 분명한 짧은 금발머리칼에 초콜릿 피부를 지닌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였다.
레즐리가 그를 보고 살짝 놀랐다.
“드안드레? 어쩐 일로 이곳에..”
그녀의 말을 끊으며 드안드레가 대뜸 외쳤다.
“알레한드로가 죽었습니다!”
뭐?”
리처드의 안색이 굳었다.
신하준은 그저 레벨만 높았을 뿐 멍청하고 전투 센스도 없었다.
애당초 그렇기에 리치가 된 자였다.
원래 리치란 강력한 마법사가수명이 다해 늙어 죽는 것을 두려워해 스스로를 언데드로 바꾼 괴물이다.
그런데 늙지 않는 이계인이 굳이 리치가 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워낙 싸움을 못하다 보니,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억지로 리치가 된 것이다.
그만큼 레벨에 비해 실제 전투 능력은 낮았다.
조직 내에서 무시당하는 입장이라 아티팩트 같은 것도 딱히 받지 못했다.
반면 알레한드로는 진정한 강자였다.
전투 경험도 풍부하고 감각도 뛰어났으며, 대륙3대검술이라는 막스브리드 투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게다가 온갖 강력한 아티팩트로 무장했고, 유니크 아이템인 폴리 모프 네크리스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죽은 장소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던전도시 하이텐으로 향했다는 것까진 알고 있습니다만.”
리처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폴리모프 네크리스를 사용하고도 패했다면, 인간 형태로도 알레한드로보다 강력한 고룡이었다는 의미인가? 아니, 상대가 드래곤이 아니라 다른 존재였을 수도 있나?’
어느 쪽이건 간에 알레한드로가 당했다면 리처드 자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이었다.
“곤란하군. 다른 건 몰라도 폴리모프 네크리스는 귀한 물건인데……
잠시 고민하던 리처드가 결정을 내렸다.
“규자크 마을은 포기하고 이쪽으로 합류하게, 드안드레.”
“ 네?”
“알레한드로가 당했다면 우리끼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서 실험 마치고 이곳을 뜨는 게 안전하다. 신하준과 알레한드로의 건은 윗선에서 알아서 하겠지.”
리처드의 결정에 드안드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이 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