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43
나만 빼고 레벨 업!(1) 류한빈과 아티스는 에피르를 데리고 던전 도시 하이텐으로 돌아왔다.
눈앞의 2층집을 바라보며 에피르가 눈을 빛냈다.
“여기가 두 분의 집인가요?”
“그렇다. 다락방을 내줄 테니 거길 쓰도록.”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청소 도구를 사용해 다락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청소하는 모습은 비룡기사단 시절 많이 봤거든요.”
며칠 전까지 와이번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다운 몸놀림이 었다.
하이텐으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계속 인간의 신체에 적응해 온 것이다.
시간 나는 대로 맨손 체술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슬슬 에피르의 스테이터스를 가이드라 인으로 보면 이렇다.
「종족 : 인간. 전사 lv. 10j 물론 이 정도 레벨로도 마도 가구들을 작동시 킬 순 없다.
최하 사용 조건이 레벨 20이니까.
그래도 에피르는 놀지 않았다.
다락방 치우기가 끝나자 1층도 열심히 쓸고 닦고, 아티스의 심부름도 도맡아 한다.
“성실하군.”
이 기특한 와이번 소녀를 칭찬하며 아티스는 류한빈에게 눈을 흘겼다.
“이거 봐! 레벨 핑계 안 대도 도우려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었다고!”
그런데 저 근육 덩치 놈은 오늘도 소파에 누워 이딴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펠라드! 빈둥거린다!”
“에라, 이……
문득 한빈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냥 나도 생활비 보탤게.”
여전히 목숨값 타령하면서 아티스는 그의 의식주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류한빈은 아티스와 달리 큰돈 들어갈 일이 전혀 없다.
무기인 마견 뼈 대검은 매일 손질하는 걸로 끝이고, 전투 장비는 애초에 있지도 않다.
발타라 전사로 위장하느라 항상 홀랑 벗고 다니니까.
게다가 주문 스크롤 같은 걸 살필요도 없다.
덕분에 돈이 남아돈다.
“솔직히 목숨값 따질 시기는 지나지 않았어? 나도 도움 엄청 받고 있는데.”
아티스 기준에선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 었다.
“큭, 분하지만 아직 이자도 못털었다.”
류한빈 덕분에 레벨도 쉽게 올렸고 돈도 엄청나게 벌었다.
신세 진 것이 갚은 것보다 여전히 너무 크다.
한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 좋으라고 하는 거잖아. 네 레벨이 올라가야 같이 대륙 중앙에 진출할 수 있으니까.”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 난 아직 목숨의 빚을 갚지 못했어!”
“이상한 데서 고집이네. 나야 돈 아껴서 좋지만.”
혀를 차며 류한빈은 도로 소파에 벌렁 누웠다.
아티스가 눈을 흘겼다.
“그렇다고 처놀란 소린 아니었 다만?”
그때 에피르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했다.
“아티스 님, 빨래 다 넣었습니다. 세탁기 좀 돌려 주세요.”
“그래.”
뒤뜰로 향한 아티스가 원형 물통에 손을 얹었다.
“ 발동.”
마법으로 작동하는 마도 세탁기였다.
통 안에 빨랫감을 넣으면 물의 정령이 소환되어 깔끔히 때를 빼준다.
그리고 정화 마법과 탈수 마법을 작동시키면, 이후 할 일은 깨끗해진 옷가지를 꺼내 너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소음도 거의 없고, 진동도 적고, 구조도 간단하고, 심지어 물의 정령이 소환 해제될 때 저절로 물과 때가 분리되니 오수가 생기지도 않는다.
엄청나게 친환경적이다.
문제라면 이 훌륭한 마도 세탁기의 사용 조건이 무려 레벨 30이라는 점.
덕분에 라트나의 민초들은 여전히 빨래판과 몽둥이를 이용한 원시적인 빨래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마도 세탁기를 바라보며 에피르가 살짝 물었다.
“역시 레벨부터 빨리 올려놓아야겠죠?”
스스로 마도 가구를 작동시킬 수 있어야 아티스를 귀찮게 하지 않고 알아서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아티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레벨이 어디 그렇게 쉽게 오르는 물건이더냐? 조급해할 필요 없다.”
지금이야 갓 인간으로 의태한 용족답게 에피르의 레벨이 빠르게 오르지만, 슬슬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처음부터 두세 달 정도는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피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 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레벨 20 정도까지는 별로 안어려울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건가?’
다음 날 에피르가 류한빈을 졸랐다.
“검 좀 빌려주세요.”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자신의 혹 색 대검을 힐끔 본 뒤 한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휘두르지도 못할 텐데?”
“그거 말고요.”
애당초 에피르도 저 무식한 물건을 휘두르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바란 것은 알레한드로가 쓰던 쌍검이었다.
“레벨 제한 때문에 특수 능력은 못 쓰겠지만, 그냥 휘두르는 건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이니 빌려주는 거야 문제가 없다만…….
“어디 쓰려고?”
“검술 좀 연습하게요. 체술만으론 슬슬 레벨이 안 오르더라고요.”
황당해하며 한빈이 물었다.
“너, 검술 배운 적도 있냐?”
와이번이 대체 인간의 검술을 배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에피르가 방긋 웃었다.
“배운 적은 없지만 보고 들은 건 많아요.”
알에서 깨어나 15년을 비룡기사단 소속으로 보냈다.
내내 비룡기사들의 전투 훈련을 봐 왔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녀는 단순한 훈련 동작뿐 아니라 온갖 무술 이론도 제법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다들 제 앞에선 비의를 감추지 않았으니까요.”
라트나 대륙 역시 냉병기 시절의 지구처럼 대부분의 무술이 비인부전 (非人不傳) 이다.
결코 아무에게나 전수하지 않으며, 선택된 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전수한다.
하지만 아무리 은밀하다 해도, 자기가 타고 다니는 말까지 경계할 리는 없지 않은가?
“덕분에 비룡기사단이 쓰던 무술은 대충 외우고 있어요.”
“그걸 대체 왜 외웠는데?”
“일부러 외운 건 아니고, 그냥 하도 듣다 보니 저절로 외워진 거죠, 뭐.”
신입 기사 들어올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니까 말이지.
하여튼 에피르가 알아서 뭔가 해 보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한빈이 쌍검을 건네려 할 때였다.
아티스가 반대했다.
“그 쌍검은 지나치게 레벨이 높은 아티팩트야. 혹여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 진다.”
“괜찮지 않을까? 측정석으로 감정해 보기 전엔 모를 텐데.”
“이계인들은 한눈에 보고 알 수 있어. 한빈, 너도 그렇잖아? 그리고 저 쌍검의 원래 주인은 이계인이지.”
“그렇군. 혹시 그레이트 어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이거지?”
“동료의 죽음을 조사하는 다른 이계인이 있다면, 단서를 들고 다니는 것은 영리한 선택이 아니겠지.”
“가만, 어차피 에피르는 폴리모프 네크리스 걸고 있잖아. 그 시점에서 별 의미 없지 않아?”
“목걸이는 옷 안쪽에 감출 수 있잖아.”
가이드라인이 있다 해서 상대를 보자마자 저절로 모든 마도구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의식을 해야 탐색이 된다.
그래서 류한빈도 뒤늦게야 알레한드로의 아티팩트들을 파악한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의식하기도 힘들지. 하지만 무기는 너무 눈에 잘 띄어.”
“하긴 그렇군.”
아티스도 에피르의 검술 수련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연습용 무기를 사 주는 쪽이 나을 거다.”
“그럼 잠깐 무기 상점이나 다녀와야겠군.”
류한빈이 몸을 일으키자 에피르가 미안해했다.
“저 때문에 굳이 돈을 쓰실 것까진…… 공짜로 옷도 사 주셨는 한빈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까짓 무기 몇 푼이나 한다고? 괜찮아, 어차피 돈 쓸데도 없어, 난.”
이왕 돈 쓰는 김에 류한빈은 온갖 무기를 잔뜩 사들였다.
단검, 장검, 쌍검, 양수검이며 레이피어 등도 골고루 챙기고, 라운드 실드나 카이트 실드 같은 각종 방패도 구입했다.
추가로 온갖 장창류와 메이스, 프레일 같은 각종 둔기류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돌아왔다.
황당해하며 아티스가 물었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무기를 바닥에 죽 깔며 한빈이 의기양양하게 대꾸했다.
“이것저것 휘둘러 보고 손에 맞는 무기 선택하라고.”
그러더니 세워 둔 흑색 대검을 바라보며 묘하게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의 무기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
“……예전에 뭔 일 있었냐?”
어쨌거나, 에피르는 무기를 하나하나 휘둘러 보았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역시 전 쌍검술이 제일 맞을 것 같아요.”
그녀가 쌍검을 빌려 달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알레한드로의 무기를 류한빈이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 었다.
“전 체구가 작고 손놀림이 빠르니까 방어 위주의 쌍검술이 어울려요. 공격적인 소드 앤드 실드스타일을 쓰기엔 인간 형태일 때 제 체중이 너무 적죠.”
한빈이 눈을 깜박였다.
“보통은 쌍검이 공격적이고 방패가 방어적인 것 아닌가?”
황당해하며 에피르가 되물었다.
“어떤 돌팔이가 그런 소릴 해요?”
“아니, 그냥……
딱히 누구한테 들은 것이 아니라, 쌍검은 검이 두 개니까 두배로 공격적이고 방패는 방어하기 쉬우니까 방어적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이었다.
에피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류한빈을 바라보았다.
“한빈 님은 그렇게 강하시면서 의외로 이상한 소릴 하시네요?”
“그래?”
“생각해 보세요. 적이 쌍검을 들었을 때랑 검과 방패를 들었을 때, 한빈 님이라면 어느 쪽이 더 부담 없이 몰아칠 수 있겠어요?”
“둘 다 부담 없는데?”
어차피 한 방에 쪼개 버릴 거니까.
“아이, 참! 서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죠.”
진지하게 류한빈은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살짝 당황했다.
“어? 정말 방패를 든 쪽이 몰아 치기 더 쉬울 것 같다?”
검 하나만 신경 쓰면서, 방패위를 그냥 마구 두들겨 버리면 되니까 말이지.
반면 쌍검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좌우의 카운터를 항시 경계 해야 한다.
“그래서 방패를 들었을 땐 적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여야 유리해지 죠.”
적의 공격을 방패로 막을 수 있으니 얼마든지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쌍검술을 쓸 땐, 좌검과 우검의 공방 역할을 수시로 바꾸면서 카운터 위주의 방어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유리하고요.”
‘방어에 유리하다’와 ‘방어 위주의 전법이 유리하다’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이다.
“그렇군.”
류한빈은 감탄했다.
내내 마견들만 상대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남은 무기들은 어쩌죠? 환불이 되려나?”
쌍검을 제외한 다른 무기들을 보며 그녀가 돈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버려 둬.”
한빈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연습용 무기류 정도는 비치해 둘 생각이었어. 다양한 무기를 접해 봐야 상대의 기술을 파악하는 안목도 길러질 테니까.”
“그건 그렇죠.”
납득하며 에피르는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진지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였나?”
검술이라기보단 허우적거림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아무리 보고 들은 게 많다 해도 직접 체화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잠시 지켜보던 류한빈과 아티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연습하고 있어.”
“우린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두 사람도 할 일이 있었다.
슬슬 아티스가 그간 흡수한 정기를 거의 소화시켰다.
정기 몰아주기를 재개할 시기였다.
“이번에도 라스톨 던전으로 갈까, 한빈?”
“거기가 만만하지. 마물들 명줄도 질기고.”
환하게 웃으며 은발의 소녀가 손을 흔들었다.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