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45
나만 빼고 레벨 업!(3) 라스톨 던전의 어두운 공동.
통로에서 기어 나온 커다란 와이번이 불을 뿜는다.
화라라락!
사방에 널브러진 마물 수백 마리가 일제히 죽어 간다.
이 짓을 한 세 번쯤 했더니 에피르도 아티스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네요, 이거? 영혼이 체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티스가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정기를 한계까지 흡수해서 그렇다. 오늘은 여기까지군.”
와이번을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류한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레벨이 하나도 안올랐어.”
수백 마리나 되는 마물들을 모조리 죽였음에도 에피르는 여전히 레벨 27이었다.
혹시나 해서 인간으로 의태시킨 다음 다시 재 보기도 했다.
「종족 : 인간. 검사 lv. 20j 역시나 변화가 없다.
“혹시 와이번은 정기 몰아주기가 안 되는 건가?”
한빈의 질문에 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아직 에피르에게 용족 특유의 코어가 생성되지 않은 탓이었다.
“난 흡수한 정기가 바로 코어에 쌓이지. 그걸 천천히 소화시켜 마나로 바꾸는 건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레벨에는 반영이 돼.”
반면 코어가 없는 에피르는 흡수한 정기가 신체 전체에 흩어진다.
정기가 육체에 적응하면서 며칠에 걸쳐서 천천히 레벨이 오르는 것이다.
“어쨌건 결과적으로 레벨은 오른다 이거지?”
“그렇다 해도 나처럼 극적으로 오르진 않을 거야. 신체 발달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채 적응시키지 못한 정기는 그냥 허공으로 날아갈 뿐.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용격, 용족의 혼탁한 정기를 라트나의 4대력 중 하나로 정제한 순수한 기운이 었다.
에피르를 돌아보며 아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정기를 잔뜩 흡수했으니 이걸 이용해서 용격을 깃들게 할 수 있을지 시도해 봐야지.”
아티스의 목조 가옥 1층 거실.
은발의 소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며 연신 중얼거린다.
“내면을 관조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체내의 기운을 감지해 가야 할 곳으로 이끈다……
아티스에게 전수받은 코어 생성구결이 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결이 아니라 그냥 일종의 요령이지만. 나라고 누구한테서 코어 생성을 배우거나 한 것은 아니거든.”
아티스 자신의 경험을 말로 풀어 전달한 것뿐이었다.
한빈이 물었다.
“원래 드래곤은 저절로 코어가 생성되는 거야? 일종의 본능 같은 건가?”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달라.”
드래곤의 브레스는 본능의 영역이다.
지성이 생기기 전, 짐승처럼 기어 다니던 새끼 시절부터 아티스는 자연스레 화염의 숨결을 뿜을 수 있었다.
“반면 코어 생성의 경우엔 드래곤의 혈통 속에 녹아든 지식과 지혜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준다. 인간 의태 능력을 익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야.”
저절로 코어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코어 생성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는 소리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이야기지.”
설명을 마치며 아티스는 다시 에피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그가 기대 어린 미소를 지었다.
“와이번 같은 하위 용족에게 용격이 깃드는 것, 유례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실 가능성은 꽤 높아. 여러모로 저 아이는 상황이 특별하거든.”
와이번이 코어를 생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리 방법을 알려 줘도 그걸 이해할 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에피르에겐 이런 문제가 없다.
류한빈이라는 일종의 기연도 있다.
정기를 영혼 터질 때까지 흡수해 놓았으니 그만큼 코어 생성시도를 할 자원도 넘쳐 난다.
몇십 번씩 실패를 반복하며 연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은 무리더라도 계속 시도 하다 보면 결국 성공하겠지.”
그럼 에피르는 라트나의 4대력 중 하나를 다룰 수 있게 되리라.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만큼 어떤 속성을 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왕이면 프라나였으면 좋겠군.”
에피르를 바라보며 류한빈이 중얼 거렸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있으니까 힐러 있으면 엄청 편할 것 아냐? 아니, 이건 너무 게임 감각인가?”
실제로 영술사는 여러모로 팀에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 치유술은 류한빈도 아티스도 사용할 수 없으니 빈자리를 훌륭히 메워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마 오러 코어로 각성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워낙 전사의 재능이 출중하니까. 말했잖아,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질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고.”
저 정도로 몸 쓰는 재능이 어마어마하다면 상대적으로 마나나 프라나같이 정신을 다루는 재능은 낮을 수밖에 없다.
양쪽 재능이 균형을 유지할 경우 포스 속성을 띤 마검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 정도로 몸 쓰는 재능이 굉장한데, 정신을 다루는 재능도 그에 맞먹는다고? 그럼 정말 하늘이 내린 천재겠지.”
말하다 말고 아티스는 피식 웃었다.
“쟤가 그 정도였으면 벌써 코어 생성 끝내고 용격의 빛을 발하고 있을걸.”
바로 그때였다.
파아아앗
갑자기 에피르가 전신에서 빛을 발했다.
잠시 후 빛이 도로 사라지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이거 뭐예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거실 저편을 가리키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뭔가 되게 편한 느낌의 뭔가가 생겼는데요?”
에피르의 손짓에 따라 거실 소파에 놓여 있던 방석 하나가 저 절로 허공에 떠올랐다가 도로 떨어진다.
한빈이 서로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거, 마검사가 쓰는 사이킥포스 아냐?”
이쯤 되니 슬슬 놀라기도 지친다.
아티스가 허무한 듯 천장을 올려 다보았다.
“……하늘이 뭐 하나 거하게 떨궜나 보군.”
포스를 각성했다고 바로 번듯한 마검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검사 특유의 술식, 마검식은 어디까지나 따로 익혀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아무리 에피르가 하늘이 내린 천재라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돈으로는 때울 수 있지!”
류한빈은 곧바로 마검사 길드로 달려가 초급 마검식 스크롤을 잔뜩 사들였다.
마검사도 아닌 그가 왜 이런 걸 구입하는지 당연히 마검사 길드에서는 의아해했지만…….
“사고 싶어서 사는 것이다!”
변명도 핑계도 필요 없다!
근육 불끈거리며 돈 슥 내밀고 물건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대체 발타라 전사란 놈들은 평소 행실이 어떻기에 이따위로 굴어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거야?’
물론 산 다음에 아티스에게 한 소리 듣긴 했다.
“야! 한빈, 이 멍청아! 발타라전사는 마도구를 기피한다고! 스크롤도 마도구인데 그걸 네가 직접 사면 안 되지!”
“헉? 어쩌지? 의심받으려나?”
다행히 아티스는 현명한(?) 대처법을 가르쳐 주었다.
“몰랐다고 해.”
“몰랐다니?”
“누가 물어보면, 마도구인 줄 모르고 그냥 종이 쪼가리인 줄 알았다고 우겨.”
그런 핑계가 통해?”
“발타라 전사는 통해.”
“그놈의 발타라는 무슨 근육 뇌만 모인 일족인가……
어쨌거나 5렙부터 20렙까지의 스크롤을 죄다 구입하니 금액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거의 2만 엑스가 넘었다.
“한국으로 치면 2억쯤 하려나, 이거.”
덕분에 그동안 모았던 저축이 반 토막 났지만, 한빈은 개의치 않았다.
워낙 던전을 자주 들락거렸다 보니 아직 저금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대박을 터트린 마검사 길드는 함박웃음을 지었고, 눈앞에 쌓인 수북한 스크롤을 보며 에피르는 질려 버렸다.
“돈 너무 많이 쓰신 것 아니에요, 한빈 님?”
“괜찮다니까. 어차피 돈 쓸데도 없어, 난.”
정상적으로 레벨이 측정되는 처지라면 그 역시 각종 마도구나 아티팩트를 구입하거나 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하늘을 가르고 바다를 쪼개는 괴력이 있어도 류한빈은 레벨 5, 냉장고 문도 못연다(엄밀히 말하면 열 수는 있는데, 여는 순간 냉장고가 박살난다).
마도구 따위 백날 사 봐야 쓸데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나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봐야지. 에피르 네가 레벨이 올라가야 나도 다양한 마도구를 간접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납득하며 그녀도 더더욱 의욕을 불태웠다.
“넵! 어서 세탁기를 돌릴 수 있게 열심히 할게요!”
“아니,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레벨 올리란 건 아니다만……
에피르는 매일같이 수행에 열중했다.
재능이 받쳐 주고 게으름도 피우지 않는 데다 의욕도 넘치니 진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며칠 안에 막스브리드 투술 초반부를 졸업하고, 구입한 마검술도 죄다 터득했다.
당연히 레벨도 꾸준히 올랐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올렸다’쪽이 옳을 것이다.
그녀가 레벨을 높인 게 아니라 류한빈이 레벨을 올려 준 쪽에 가까우니까.
“에피르, 정기 다 소화시켰니?”
“네!”
“그럼 던전 가자.”
정기가 소화되는 족족 던전에 던져 넣었다.
아티스에 비해 레벨이 많이 낮은지라 정기 소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렇게 보름쯤 더 지나니, 어느새 그녀의 스테이터스는 여기까지 변해 있었다.
「종족 : 와이번. lv. 33j
「종족 : 인간. 마검사 lv. 29j
“쑥쑥 크는구만.”
나날이 강해지는 에피르를 보며 류한빈은 흐뭇해했다.
아이템 모으는 재미도, 레벨 업하는 재미도 없다며 투덜댔는데 이건 이것대로 은근히 재미있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하는 맛이 있네, 이게 또.”
에피르가 일행에 합류한 지 한 달째.
결국 그녀는 마검사 레벨 30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와! 드디어 세탁기 돌릴 수 있게 됐다!”
“상급 헌터 레벨까지 도달한 소감이 고작 그거냐?”
어이없어하며 아티스가 한빈에게 말했다.
“슬슬 에피르도 헌터 등록시키자.”
여전히 귀여운 10대 소녀로밖에 안 보이는 에피르를 힐끔거리며 한빈이 걱정했다.
“저 나이에 벌써 레벨 30이면 의심하지 않을까?”
“그건 오히려 괜찮을걸.”
아티스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았다.
“의외로 저 나이에 저 정도 하는 천재는 세상에 많거든.”
천재, 신동, 수재의 존재는 상상외로 흔하다.
대륙 전체로 보면 매년 수백 명씩 저런 놀라운 재능이 쏟아진다.
그리고 대부분 자기 재능만 믿고 설치다가 일찍 죽어 간다.
천재는 흔하지만,
살아남는 천
재는 귀한 것이다.
한빈은 혀를 내둘렀다.
“저 나이에 저 정도 하는 경우가 많단 말이야?”
“대륙 전체로 보면 그렇지. 하이텐 같은 변경에서야 충분히 희귀하겠지만.”
에피르를 바라보며 아티스가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교만하지 말거라, 에피르. 넌 분명 월등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남들보다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이, 남들보다 멀리 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두 자루 쌍검을 허리에 차며 에피르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네, 아티스 님. 명심할게요.”
아무런 인맥도 없고 상식도 부족한 시골뜨기가 레벨만 높은 채 헌터 되겠다고 나타나면 이계인으로 의심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에피르는 아티스라는 후견인도 있었고 라트나 대륙의 상식도 풍부했다.
실제로 이계인인 것도 아니었으니 의심받을 이유가 없었다.
아티스의 먼 친척으로 위장하고, 그의 성을 따 가명도 만들었다.
하이텐 헌터 길드 : 상급 헌터, lv. 30 마검人}, 에피르 베니스터
“따지고 보면 먼 친척 맞긴 하잖아? 좀 많이 멀어서 그렇지.”
류한빈의 발언에 에피르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 보니 저도 헌터가 되었네요.”
예전 일을 떠올리며 한빈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에피르 너, 원래 헌터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지?”
“비룡기사님들은 헌터 되게 싫어했으니까요. 저도 엮여서 좋을 일 없었고.”
헌터는 사회의 암적 존재라며 열변을 토했었는데, 막상 자신이 그 일원이 되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대문 앞에 예상 못 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두 분.”
빛의 여신을 섬기는 알티아 교단, 하이텐 교구의 신관이자 이 도시 최강의 영술사이기도 한 에밀 신관이었다.
말수 적은 발타라 전사, 펠라드빈을 대신해 아티스가 알은척을 했다.
“오랜만입니다, 신관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에밀 신관이 멋쩍은 듯 웃으며 용건을 말했다.
“협력자분들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교단 기여도를 올릴 건수가 또 생긴 모양이었다.
내심 좋아하며 아티스가 물었다.
“물론 기쁘게 협력할 생각입니다. 어떤 일이죠?”
에밀이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악령 출몰 건입니다. 너무 귀찮은 일을 들고 와서 죄송스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