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48
한여름 밤의 악령(3)
괴성을 흘리며 검은 악령이 접근해 온다.
“캬아아아!”
공포에 질려 에밀과 아티스가 뒤로 물러섰다.
“그럴 리가……
“죽은 자의 영혼이라니……
류한빈이 앞으로 나서며 대검을 내밀었다.
“내가 해 보겠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에밀이 물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죽은 자의 영혼을 베는 짓일지도 모르는데요?”
한빈은 내심 황당해했다.
솔직히 말해서, 뭐가 괜찮겠냐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산 사람은 베도 되지만, 죽은 사람은 안 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라트나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건 틀림없겠지.
그래서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이대로 당할 순 없지 않은가?”
“그, 그렇지요……
에밀이 재빨리 흑색 대검에 영술을 걸었다.
곧바로 류한빈이 튀어 나갔다.
거창한 참격이 악령을 갈랐다.
“헙!”
역시나,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그냥 허공에 칼을 휘두른 기분이었다.
곧바로 검은 악령이 그림자 채 찍을 휘두르며 반격에 나섰다.
휘이이익
잽싸게 대검을 틀어 방어에 나섰지만…….
퍽!
채찍이 칼날을 그냥 통과하며 그의 몸통을 가격했다.
한 발 뒤로 물러서며 한빈이 인상을 썼다.
‘진짜 안 통하잖아?’
악령이 공세를 이었다.
사방에서 채찍질이 연거푸 날아왔다.
퍼퍼퍼퍽!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기만 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채찍이 칼날을 통과해 버리니 대책이 없다.
쏟아지는 채찍질 속에서 류한빈은 혀를 찼다.
‘맞아도 큰 문제는 없는데,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네?’
그다지 위력이 강하진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몸으로 때울 수 있었다.
그리 공격이 빠른 것도 아닌지라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다른 일행에겐 충분히 치명적이다.
본연의 육체라면 모를까, 의태중인 아티스나 에피르에겐 저 정도 위력이면 사경을 헤매는 수준인 것이다.
평범한 인간인 에밀 신관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 맞아도 내가 맞아야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버텼다.
혹여 자신이 물러났다가 저 악령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이었다.
‘다행히 상대는 한 놈뿐이다. 일단 버티면서 대책을 찾아야……
그러던 중이었다.
갑자기 악령이 공세를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의아해하며 한빈이 고개를 들때였다.
끼이이익!
저 멀리서 복도의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또 다른 검은 악령이 나타났다.
인간과 똑같은 실루엣으로, 인간과 똑같은 걸음걸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한빈의 안색이 굳었다.
“한 놈이 아니 었나?”
*
*
*
계속 방문이 열린다.
계속 검은 악령이 나타난다.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어느새 복도가 악령들로 가득 찼다.
다급한 어조로 에피르가 물었다.
“어떻게 해요, 에밀 신관님?”
에밀이 말을 더듬거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깐 이런 일 겪었었다면서요‘?”
“실은 저도 그냥 들은 이야기입니다! 재미있으라고 경험담처럼 이야기한 거지! 맙소사, 알티아시여……
여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에밀을 향해 류한빈이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놈들을 막겠다.”
“무슨 수로 말입니까?”
가라앉은 눈으로, 한빈은 몰려오는 검은 악령들을 노려보았다.
다들 패닉에 빠져 있는 반면, 그는 비교적 침착했다.
차분히 상황을 살펴본 뒤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한다!
“이렇게!”
류한빈은 연거푸 참격을 날렸다.
악령이 아니라 주위의 복도며 천장을 그 거대한 검으로 후려갈긴 것이다.
압도적인 괴력이 허물어져 가는 저택에 작렬했다.
콰콰쾅!
순식간에 벽과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건물 파편이 복도를 통째로 틀어막았다.
에밀은 당황했다.
과연 전설의 발타라 전사답게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뭘 하신 겁니까?”
“저놈들이 못 다가오게 길 자체를 막았다.”
“놈들은 유령입니다! 저런 건 그냥 통과한다고요!”
“유령은 그렇겠지.”
한빈은 순순히 동의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그런데 저놈들은 문 열고 다니지 않던가?”
“……아‘?”
“어차피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시도해서 손해 볼건 없겠지.”
멍한 얼굴로 에밀은 무너진 복도를 돌아보았다.
정말 검은 악령의 전진이 막혔다.
흔해 빠진 유령처럼 붕괴한 건물 더미 위로 스르륵 나타나질 않는다.
대신 소리가 들린다.
우르릉! 쿵! 쿵쿵!
무너진 파편을 치우는 소리였다.
저 파편을 치우고 마저 한빈 일행을 쫓으려는 모양이었다.
“대체 왜?”
라트나의 4대력은 그렇다 치자.
저 악령들은 류한빈의 흑색 대검도 그냥 투과해 버렸다.
실존하는 물질을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굳이 파편을?”
한빈이 히죽 웃었다.
“굳이 문 열고 나타나기에 혹시나 했는데, 먹힌 것 같군.”
그리고 복도 반대편으로 턱짓을 했다.
“물러서서 대책을 세우지. 지금 이대로는 답이 나오질 않아.”
에밀의 괴담 속에선 초급 헌터들이 복잡한 저택의 출구를 찾느라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악령과 조우했다.
하지만 한빈 일행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문이 없으면 벽을 뚫으면 되지!’검을 들어 류한빈은 대뜸 벽을 후려갈겼다.
사람 두어 명은 족히 지나갈 듯한 구멍이 뻥 뚫리며 다음 방이 나왔다.
방 반대편에 바깥이 비치는 창문이 보인다.
벽 하나 뚫은 것만으로 간단히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빨리 일행은 창문을 뛰어넘었다.
그렇게 정원에 발을 디딘 순간…….
‘ 어?’
주위를 둘러보며 한빈은 당황했다.
그는 어느새 저택 안에 서 있었다.
커다란 천장과 넓은 홀, 사방에 부서진 잔해가 가득하고 거미줄도 잔뜩 끼어 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정원이었는데?’
아니, 여전히 정원인 것은 맞다.
발밑은 여전히 풀이 돋아난 흙바닥이었으니까.
정원이 건물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커다란 홀 저편에 다시 정원이 보인다.
그러니까, 거대한 홀 안에 위치한 똑같은 정원이!
내내 냉정을 유지하던 류한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 뭐야?’
마주 걸어 놓은 거울 속에 비친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똑같은 광경이 끝도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젠장! 무섭잖아, 이거!’
잔뜩 굳은 얼굴로 한빈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아티스가 피식 웃었다.
“공간 왜곡인가?”
에피르와 에밀 신관도 안심한 얼굴이었다.
“평범한 던전화 현상이네요.”
“역시 죽은 자의 영혼은 아니었군요. 잠깐 놀랐습니다, 하하.”
세 사람의 반응에 류한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별일 아니라는 거야?’
공간이 왜곡되고 똑같은 장소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누가 봐도 오싹한 광경이 아닌가?
왜 이런 데서는 또 안심하는데?
정말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문화의 차이가 너무 뼈저리게 다가온다.
‘아으,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수도 없고.’
에밀 신관이 있으니 이계인이라는 티를 내는 것은 위험하다.
눈치 빠른 아티스가 설명을 해주었다.
“다행이군, 펠라드. 던전화 현상이라면 마신의 힘이 관여되어 있다는 의미잖아. 죽은 자가 아니라, 죽은 자를 흉내 내는 마물일 뿐이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아무래도 지구로 치면 ‘유령인 줄 알았는데 유령 흉내를 내는 악당이었다?.’ 같은 느낌인 듯했다.
“왜 일부러 파편을 치웠는지도 알겠어. 죽은 자인 척 위장하다 보니 쓸데없는 짓까지 하게 되었겠지/’중얼거리며 아티스가 에밀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관님?
하필
던전이 출현하는 순간, 우리가 그 안에 들어온 것 같죠?”
“그럴 수도 있고, 마신의 힘 일부가 유입되어 일종의 영향을 끼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공간 왜곡 현상을 마주치자마자 에밀은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죽은 자의 영혼과 조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교리에도 어긋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마신의 힘으로 던전화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건 그냥 익숙한 일상이다.
미지의 공포가 아니라 평범한 던전 공략 작업인 것이다.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며 류한 빈은 내심 혀를 찼다.
지난 몇 달간 이 세계의 상식이나 문화를 꽤 익혔다고 생각했는 데, 아직 멀었다는 실감이 든다.
‘이러니 말투나 행동만으로도 이계인을 색출할 수 있다는 거군.’
발타라 전사로 위장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어설프게 일반인인 척했다간 금방 들켰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아티스와 에밀은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정말로 던전 출몰이 진행 중이라면 해결책도 간단합니다, 신관님. 던전이 자리 잡기 전에 중심핵을 찾아 제거해야지요.”
에밀이 일행을 재촉했다.
“그럼 어서 움직입시다. 던전생성 도중이니 아직 내부가 넓지는 않을 겁니다. 중심핵을 찾아 제거하면 그 악령들도 사라지겠지요.”
?
*
*
일행은 다시 저택의 어둠 속으로 진입했다.
사방은 조용했다.
검은 망령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경계하며 나아가다 말고 에밀이 문득 사죄의 말을 건넸다.
“협력자 두 분께는 죄송하게 되었군요. 원래 이렇게 큰일이 아니었는데.”
원래는 그냥 유령이나 청소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아티스가 고개를 저으며 우아하게 대꾸했다.
“여신의 뜻을 따르는 일에 경중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밀 역시 웃으며 답했다.
“교단에서는 두 분의 노고를 결코 무시하지 않을 겁니다.”
요약하자면 이 소리였다.
예정보다 일을 많이 했다, 그러니 기여도 점수를 그만큼 많이쳐 달라.
물론이다, 푸짐하게 쳐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둘 다 침착해지긴 했네.’
둘의 태도를 살피며 류한빈은 살짝 아티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이, 아티스. 몰래 할 이야기가 있어.”
눈치껏 아티스가 에밀 신관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물었다.
“왜?”
“아까 그 악령을 가이드라인으로 살펴보았거든.”
“그런데?”
“아무런 정보도 안 떴어.”
정확히는 이런 식으로 떴다.
「종족 : 불명. lv. 불명」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원래 레벨이 안 보이는 몬스터도 있어?”
“나도 모르지. 원래 상대의 레벨은 몰라야 정상이잖아.”
평범한 라트나인이라면 적의 실력 따위 처음부터 알아볼 수 없다.
마물들의 레벨은 어디까지나 상대해 본 헌터들의 레벨에 맞춰 근사치로 정한 것일 뿐이다.
‘하긴, 아티스에게 물어볼 일은 아닌가.’
그렇게 움직이던 중이었다.
복도 저편에 또다시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귀곡성이 귀가 따갑도록 울렸다.
“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