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51
뉴비 출현(1)
예의 ‘정체불명 악령 출몰 사건’이후로 며칠이 더 지났다.
한빈 일행의 생활도 평소로 돌아갔다.
류한빈은 꾸준히 아티스와 에피르를 던전에 던져 넣었다.
둘 다 열심히 정기를 흡수하며 레벨을 올렸다.
자격이 될 때마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크레타 밸리 인근에 위치한 아티스네 집 뒷마당.
에피르는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아.
평소와 달리 쌍검을 들고 있지는 않았다.
마검술 중엔 맨손으로 쓰는 기술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가 양손을 들어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마검식 : 화염의 화살!
화르륵!
빛의 활이 생겨나며 불꽃의 화살이 장전된다.
그대로 시위를 놓자 불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과녁에 명중한다.
파앙!
가벼운 폭발음과 함께 과녁이 부르르 흔들렸다.
결과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에피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포스 조절이 어렵네요. 연습 많이 해야겠다, 이거.”
보고 있던 류한빈이 혀를 내둘렀다.
“두 번 만에 성공해 버리고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마검식 스크롤이 보다 쉽게 기술을 익히게 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티스도 새 마법 스크롤을 터득할 때 몇 번씩 실패하곤 했다.
‘하여튼 대단한 재능이라니까.’
가이드라인이 그녀의 스테이터스를 한빈의 눈앞에 띄웠다.
「종족 : 인간. 마검사 lv. 36j 인간으로 의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과거 아티스의 레벨을 따라잡았다.
‘아티스가 마법사 레벨을 저기까지 올리려고 한 70년쯤 떠돌아다녔지, 아마?’ 그렇다고 벌써 따라잡혔다는 소리도 아니었다.
아티스 역시 그동안 상당히 강해졌으니까.
류한빈은 마당 저편에서 명상중인 붉은 머리의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종족 : 인간. 마법사 1, 46j 둘 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긴, 그동안 퍼먹인 정기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긴 했다.
류한빈은 몸을 일으켰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그동안 꾸준히 막스브리드 투술을 익혔다.
덕분에 중구난방이던 자기류 검술을 상당히 정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수법을 익힐 수 있었다는 점이 컸다.
내내 마견하고만 싸운 탓에 그는 인간과의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오러를 습득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감도 안 잡히지만, 이건 서둘러서 될 문제가 아니고.’
책 좀 봤다고 며칠 만에 오러를 습득할 수 있다면 세상에 고수아닌 사람이 없겠지.
“토대를 튼튼하게 쌓는 자만이 높은 탑을 세울 수 있는 법.”
투술서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한 빈은 계속 흑색 대검을 휘둘렀다.
가이드라인 오류 때문에 자신은 다른 지구인들처럼 레벨을 올려 스킬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라고?
‘그냥 직접 터득하면 되잖아.’
애초에 허공에서 기술이 뚝 떨어지는 게 이상하다.
라트나인도, 지구의 여러 무인들도 스스로 기량을 키워 강해진다.
그게 정상이다.
구슬땀을 흘리며 한빈은 양팔을 크게 내리쳤다.
올바른 이치를 담아, 거대한 흑색 칼날이 허공을 맹렬하게 찢었다.
“타앗!”
한참 동안 수행에 열중하다 보니 휴식 시간이 되었다.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앉아 차를 나눠 마시던 중이었다.
문득 한빈이 말했다.
“나도 활 정도는 배워 두는 게 좋을까?”
투척은 꽤나 자신 있지만 활을 다뤄 본 적은 없다.
“바위산 시절, 마견의 뼈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보긴 했는데 결과물이 영 별로더라고.”
마견의 뼈는 강궁을 만들기에 충분한 탄성과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마견의 힘줄 역시 시위를 만들기에 충분히 질겼다.
그러나 류한빈의 손재주가 재료를 따라가지 못했다.
“어설프게 만들 바엔 그냥 짱돌이나 던지는 게 더 낫더라.”
모든 지구인이 다른 세계에 뚝떨어져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문과 체질이었던 그는 아무래도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거나 하는 쪽이 영 약했다.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성능까지 비슷하게 낼 순 없는 것이다.
사실 지금 쓰는 마견 뼈 대검도 재료가 워낙 엄청나서 그렇지, 무게중심이나 그립감만 보면 형편 없다.
“ 활요?”
에피르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익혀 두시면 당연히 쓸모는 있겠죠. 그런데 한빈 님이 쓰실 만한 강궁을 구하는 게 쉬울까요?”
어지간한 활은 한빈의 괴력을 버티지 못한다.
“장력이 약한 일반 활을 쓸 바엔 그냥 돌 던지시는 게 훨씬 셀것 같은데요? 명중률도 엄청 좋던데.”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향해 날아들던 그 가공할 짱돌의 세례를 잊지 않고 있었다.
원래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기억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류한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꽤나 오래 갈고닦았으니까.”
그렇다 해도 비슷한 숙련도라면 활이 더 유용할 터.
“그래서 배워 두긴 해야 할 것 같더라고. 아, 아니다.”
갑자기 한빈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차라리 총을 만들어 볼까?”
물론 직접 총을 만들 재주 따윈없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제공한 뒤 라트나의 대장장이나 마법사의 힘을 빌린다면?
“화약이 문제네. 그래도 일단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 주면 그다음에는……
중얼거리는 한빈을 향해 에피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 총요?”
“아, 총이란 건 우리 세계의 무기인데……
막 설명을 하려는데 그녀가 초를 쳤다.
“총이 뭔지는 저도 알아요. 지구에서 쓰는 화약 병기잖아요.”
“엥‘?”
그렇다.
그동안 라트나에 떨어진 지구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총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을 떠올린 이가 류한빈밖에 없을 리 없잖아?
아티스와 에피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빈 너도 어쩔 수 없는 이계인이군.”
“왜 이계인들은 하나같이 총부터 만들고 싶어 할까요?”
류한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이야기를 들어 보니 총 만들겠다는 발상을 안 해 본 지구인이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 이 세계에도 총이 있어?”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왜 다들 화살 쏘고 다닌단 말인가?
“예전에는 있었지.”
아티스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30여 년 전, 그레이트 어스가 난리 치기 전에는 말이야.”
최초의 이계인이 등장한 후, 많은 지구인들이 라트나 대륙으로 떨어졌다.
그들이 제일 먼저 만들고자 한 것이 바로 총화기였다.
솔직히 현대인이 라트나의 냉병기들을 보면 총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아티스가 말했다.
“초반엔 꽤 그럴싸한 물건을 만든 자도 있다고 들었다.”
고작 18세인 에피르와 달리 아티스는 150살 먹은 드래곤.
40년 전에도 헌터로 세상을 떠돌던 처지였다.
당시의 일에 대해서도 제법 알고 있었다.
“화약도 조합했고, 머스킷 소총? 뭐 그런 이름의 무기까지는 개발한 것 같던데.”
그러나 라트나인들에게 받아들 여지진 않았다.
“큰 쓸모가 없었으니까.”
마법 같은 초월적인 힘이 실존한다면 총기의 활용도는 지구만큼 높지 않다.
특히나 머스킷 같은 초기 총기라면 더더욱.
“게다가 심각한 단점이 있었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장점 아냐? 몬스터의 습격에 고통받던 일반 백성들도 자기 몸을 지킬 수 있게 될 텐데‘?”
이해 못 한 한빈이 되물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레벨이 존재치 않는 지구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아티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자격 없는 이가 노력 없이 힘을 얻으면 세상의 질서가 깨진다.”
냉병기는 숙달되기 위해 오랜 수행이 필요하다.
반면 총은 방아쇠만 당기면 너무 쉽게 사람이 죽는다.
“어린아이조차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니, 그야말로 악마나 떠올릴 발상이 아닌가? 당연히 대륙 전체에서 금기 물품으로 지정되었지.”
말하자면 유니크 아이템과 비슷한 취급인 것이다.
한빈은 혀를 내둘렀다.
“나 원 참,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나?”
물론 아무리 높으신 분들이 금지한다 해도, 정말 실용적인 무기는 결국 널리 퍼질 수밖에 없다.
당장 몬스터에게 죽게 생긴 판에 불법이니 마니를 누가 따지겠는가?
실제로 석궁도 예전엔 불법이었지만(방아쇠 당기면 사람 죽긴 마찬가지니까) 워낙 라트나 대륙전역에 널리 퍼져서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계인이 대륙의 공적이 되며 지구의 문화나 물품도 대부 분 금기시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특히 화약 병기 같은 경우는 싱커즈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이계인들, 특히 라트나의 문명수준을 우습게 보는 이들은 지구의 총화기에 대한 정보를 그리 감추지 않았다.
지구의 제식 병기 개념을 접한 마법사의 본산, 싱커즈는 긴장하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당장은 화약 병기가 크게 위협적이지 않지만, 지구의 발전된 무기가 라트나에서도 재현된다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 판단된다.
그래서 대처법을 마련했다.
“화약 병기에는 심각한 약점이 있었거든.”
그 약점을 노리고 광역 미세 발화 결계 마법이 만들어졌다.
별로 대단한 마법도 아니었다.
그냥 마른 지푸라기에 연기나 좀 나고 마는, 정말 의미 없는 위력을 지닌 결계일 뿐이었다.
근데 화약은 그것만으로도 폭발해 버린다!
지나치게 간단한 마법이라 마법사 명함만 달고 있으면 아무나 쓸 수 있고 마도구로 제작하기도 어렵지 않은데, 그것만으로 반경수십, 수백 미터의 화약 병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 총화기는 라트나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별 쓸모도 없고 제작도 까다로운데 만들다 걸리면 대역 죄인이 되니까요.”
“그런데 누가 개발하려 하겠어‘?”
“혹시 모르니까 한빈 님도 절대 총 이야기 하지 마세요. 너무 당연한 상식이라 미처 말해 드리는 걸 잊었네요.”
아티스와 에피르가 신신당부를 했다.
류한빈은 신음을 흘렸다.
“ 으음…”
뭐랄까, 상상했던 것과 꽤 다르다.
그는 21세기의 지구인이 마구 쏟아졌으니 앞선 문명의 힘으로 라트나 대륙에 많은 변혁이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세계의 지식인들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지구의 문물을 접했다고 원숭이처럼 마냥 놀라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개념을 분석하고 유용성을 따져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실제로 싱커즈에서도 화약 병기 자체는 무시했지만 총화기의 기능적 인 구조는 수용했다고 한다.
폭압 마법을 사용해 질량탄을 쏘는 마도 캐논 같은 것이 그 부류였다.
“참고로 저 마도 캐논은 너한테 쓸모없는 거 알지, 한빈?”
류한빈은 한숨을 푹 쉬었다.
“보나 마나 레벨 제한 걸리겠지.”
어쨌건 결론이 났다.
“총은 포기해야겠네.”
쓸 만한 활을 구입해서 궁술이나 익혀 봐야겠다.
“이 근처에서 괜찮은 활을 구할 수 있을까?”
아티스가 몸을 일으켰다.
“잘됐군. 어차피 에피르 장비새로 맞출 때가 됐어. 겸사겸사네 활도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