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61
요정왕국 알렌디아(1) 던전 도시 하이텐을 떠난 지도 어언 열흘.
마차에 걸터앉아 평화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류한빈이 중얼거렸다.
“희한하네. 도적 많다더니 한번도 못 봤어.”
라트나 대륙에서 여행이란 목숨을 건 행위라 들었다.
“온갖 몬스터가 출몰하고 곳곳에서 도적이 날뛰니 항시 긴장해야 한다며 버크만 씨가 열변을 토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에피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버크만 씨가 누군데요?”
“사람 좋던 허리 나간 양반.”
“??????네?”
어쨌거나, 지난 열흘 동안 한빈일행은 그 어떤 습격도 받은 적이 없었다.
“듣던 것보다 치안이 꽤 좋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에피르는 실소를 흘렸다.
“마차에 골렘 스티드가 떡하니 매여 있는데, 어지간한 도적은 당연히 얼씬도 안 하죠.”
골렘 스티드는 레벨 45 이상이어 야 가동할 수 있다.
즉, 이 마차에 레벨 45 이상이 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더구나 그 마차 뒤에 앉아 있는 사내는?
강철 같은 근육으로 알차게 전신을 뒤덮은 신장 190센티미터의 거한이 2미터에 달하는 대검을 떡하니 메고 있다.
“그런데 한빈 님 같으면 덤비겠어요?”
“하긴 그런가?”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덜컹덜컹 마차에 실려 가는 중이었다.
마부석의 아티스가 둘을 불렀다.
“한빈, 에피르!”
해가 중천에 떴다. 슬슬 점심때였다.
“밥 먹자!”
들판 한복판에 마차를 세우고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흔히들 상상하는, 모닥불을 피우고 솥을 거는 그런 캠핑 분위기는 아니었다.
“점심 정도는 어제 먹다 남은 걸로 간단히 때우자고.”
중얼거리며 아티스는 마차 안의 냉기 저장고를 열어 야채와 고기를 꺼냈다.
그리고 마도 오븐에 고기를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전부 집에서 쓰던 마도 가구들이었다.
라트나의 마도구는 마령석으로 작동하는, 지구로 비유하자면 건 전지 방식이라 이렇게 휴대가 되는 것이다.
빵을 자르며 아티스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는 일부러 마령석 역할의 건물을 지어서 수십 킬로미터씩 줄로 연결해야 이런 가구들을 쓸 수 있다던데, 맞아?”
“에, 발전소와 전선 이야기라면 맞아.”
“어휴, 그거 불편해서 어떻게 쓰냐?”
“……설마 이 세계에서 지구의 현대 문명이 불편할 거란 소릴 들을 줄은 몰랐는데.”
그릇을 받아 들며 한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세계에도 이런 비슷한 건 많이 있거든! 지구 무시하지 말라고.”
그동안 에피르가 간이 테이블을 차려 식사 준비를 마쳤다.
한 인간과 두 용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맞다, 아티스.”
고기를 썰며 류한빈이 물었다.
“4대금역이 정확히 어떤 곳이야?”
?
*
*
라트나 대륙은 지구와 달리 하나의 초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 남북 아메리카를 합친 것만큼이나 거대한 말발굽 형태의 대륙으로, 그 중심에 지중해 메티스 그리고 세 강대국이 위치한다.
북쪽의 천년왕국, 칼드리스.
서쪽의 요정왕국 알렌디아.
동쪽의 마도왕국 룬.
이 세 나라는 대륙3강이라 불리며 라트나의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라트나인들은 대륙3강을한데 묶어 관용적으로 ‘대륙 중앙’이라 칭했다.
하지만 헌터들에게 대륙 중앙이란 용어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대륙3강의 영토 곳곳에 위치한, 상식을 초월하는 최악의 마물들만 출몰하는 인세의 지옥.
저 위대한 최강의 4인조차도 전부 공략하지 못한 초고위 레벨던전 지역.
4대금역이 그것이었다.
“처음엔 꽤나 헷갈렸어. 대륙중앙이라고도 했다가, 대륙3강이라고도 했다가, 4대금역이라고도 했다가……?”
투덜대는 류한빈을 보며 아티스가 웃었다.
“원래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이란 게 그렇잖아? 딱딱 하나의 의미만 부여되진 않지.”
하여튼 4대금역의 명칭 정도는 그간 한빈도 익히 들어 보았다.
“대미궁 칼탄, 타워마운틴 루퍼스, 얼음불꽃 숲 히스란, 부유도 아발타였던가?”
“ 정확해.”
저 4대금역에서는 현재도 지속적으로 강력한 던전들이 출몰하고 있었다.
그 확장을 막고 이계의 침식으로부터 라트나를 지키는 것이 바로 대륙 중앙에 위치한 세 강대국의 역할이었다.
전통의 천년왕국, 칼드리스가 타워마운틴 루퍼스를 억제한다.
요정왕국 알렌디아가 얼음불꽃숲 히스란을 억제한다.
마도왕국 룬이 부유도 아발타를 억제한다.
“마지막으로, 최초의 던전이자 최악의 던전인 대미궁 칼탄은 검왕 바오톨트가 직접 억제하고 있지.”
이는 대륙3강에 있어 힘겨운 의무이면서, 동시에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최고의 권리이기도 했다.
4대금역에서 나오는 막대한 마령석과 마도구, 아티팩트.
그리고 부와 명성을 노리고 라트나 각지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인재들.
이로 인해 대륙3강은 타국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4대금역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최강의 4인이다.”
류한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최강의 4인이 대륙3강의 왕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아티스는 현 라트나 대륙의 정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칼드리스 왕국은 뇌제의 지배를 받고 있다.”
라트나 최강의 마검사, 뇌제 가르한.
그가 칼드리스 왕국의 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가르한이 왕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임을 인정한다.
“현 국왕인 테페스 홀 칼드리스가 그의 외손자거든. 전 국왕의 왕비가 가르한의 딸이었으니까.”
테페스 국왕은 아직 어린 10대 소년, 궁정 대부분이 뇌제의 심복이거나 입김이 닿는 이로 채워져 있으니 칼드리스 왕국의 실권은 전부 가르한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요정왕국 알렌디아는 생사초월자의 영향력하에 있고.”
현 알렌디아의 국왕은 님프 요정왕, 로플란 스트라우스 알렌디아.
4대 요정족의 인정을 받은 정명한 군주였다.
“그 요정왕의 왕비가 바로 라트나 최강의 영술사, 홀리엔이거드 ”
“최강의 4인 중 한 명을 아내로 삼은 거야? 요정왕, 재주 좋네.”
“실은 반대야.”
요정왕 로플란과 결혼할 때만 해도 홀리엔은 평범한 님프 여인이었다.
딱히 영술 같은 거 배운 적도 없었다.
“요정왕국의 왕비가 된 다음 취미 삼아 영술을 익히기 시작했는 데, 하다 보니 최강이 되었다던가‘?”
“……뭐야, 그게?”
기가 막혀 한빈은 입을 쩍 벌렸다.
“곱게 자란 일국의 왕비가 취미로 익힌 영술이, 평생을 바쳐 온 다른 영술사들을 모조리 제쳤다고?”
이해한다며 아티스가 고개를 주억 거렸다.
“나도 믿기 힘들지만 어쩌겠어?
그게 진실인걸.”
마도왕국 룬은 아크메이지 제노비아가 직접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룬 왕국은 마법사 길드 싱커즈의 수장이 국왕을 겸임한다.
혈통이 아니라 최강의 마법사가 자연스럽게 왕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렇게 최강의 4인 중 셋이 대륙3강을 직접,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문득 한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검왕은?”
피식 웃으며 아티스가 대답했다.
“검왕은 딱히 세력 같은 거 없어. 워낙 속세의 권력이나 부귀영화에 무관심한 성격이니까.”
대륙 최강의 검사이자 당대의 발타라 전사.
검왕 바오톨트.
그는 진정한 전사를 꿈꾸는 구도자였다.
오직 자신의 검 한 자루만을 믿고 강적을 찾아 끝없이 유랑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바라는 것은 그저 강자와의 사투뿐!
궁극의 경지에 오른 검왕의 갈증을 달래 줄 수 있는 건 넓디넓은 라트나 대륙에서도 4대금역정도다.
그래서 최근엔 아예 대미궁에 자리를 잡고 마물들을 학살하며 호탕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대미궁 칼탄이 억제되고 있지.”
“……다른 최강의 3인은 국가적으로 나서서 억제하는 금역을, 검왕 혼자 칼 한 자루로 해 버린단 소리네?”
한빈이 혀를 내둘렀다.
“진짜 괴물인가 보구만.”
이렇듯 대륙3강과 4대금역, 최강의 4인은 긴밀한 관계로 얽혀 있기에 따로 떼어 놓기 애매하다.
그렇기에 세인들은 이를 통합해 대륙 중앙이라 부른다.
헌터라면 누구나 꿈꾸는, 라트나의 모든 부와 명성이 모이는곳.
류한빈의 최종 목적을 위해서도, 아티스와 에피르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도 대륙 중앙으로의 진출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티스는 다음 목적지로 얼음불꽃 숲 히스란이 위치한 요정왕국 알렌디아를 선택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거기가 하이텐에서 제일 가깝거든.”
웃으며 아티스가 말을 맺었다.
“내일쯤이면 슬슬
부 국경에 진입할
다.”
알렌디아 서
수 있을 거
다음 날 오후.
마차는 계속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저 멀리 커다란 성벽과, 길 끝에 위치한 높은 성문이 보였다.
“저기가 히스란인가?”
류한빈의 질문에 마부석의 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요정왕국의 4대금역, 얼음불꽃숲 히스란은 알렌디아 중부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또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것이다.
“저긴 서부 관문도시 티아론이야.”
곧바로 얼음불꽃 숲으로 향하기엔 아직 아티스와 에피르의 레벨이 살짝 모자란다.
그리고 티아론 시 인근 던전은 대략 레벨 50대 초중반.
“여기서 히스란에 갈 정도까지 레벨을 올려야지.”
티아론 시는 여느 대도시처럼 일반인의 마차 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마차와 골렘 스티드를 외성부에 맡기고 한빈 일행은 시내로 들어갔다.
성문을 통과하자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티아론 시가지 자체는 하이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야 가득 이국적인 건물들이 세워져 있고, 그 사이로 중세풍의 복장을 갖춘 이들이 거리를 오간다.
이색적인 부분은 구성원이었다.
주민들 대다수가 인간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 사이로 특이한 외모를 지닌 이들이 종종 보였다.
뾰족한 귀를 지닌 늘씬한 키의미녀가 상점의 물건을 고른다.
작은 신장에 넓은 어깨, 풍성한 수염을 지닌 난쟁이가 그녀를 상대로 열심히 호객 행위 중이다.
상점 앞으로 회색빛 피부에 삐쩍 마르고 멀대같이 키가 큰 남녀가 거리를 지나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치 유리 섬유 같은 반투명한 푸른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인들이 웃으며 잡담을 나눈다.
말로만 듣던 라트나의 4대 요정족.
엘프와 드워프, 실프와 님프였다.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류한빈이 중얼거렸다.
“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은 처음 봐.”
아티스와 에피르가 황당해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잠깐?”
“뭘 처음 본다고요?”
아니, 좌우로 드래곤과 와이번을 세워 놓고 지금 이 인간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가?
머쓱해하며 한빈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흰 어쨌든 외모는 완전히 인간이잖아.”
반면 요정족들은 확연하게 인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눈에 띄는 특징뿐 아니라, 이목구비며 골격 등도 세세하게 뜯어보면 꽤나 다르다.
이 세계에 도착한 이래 내내 인간만 봐 온 류한빈에겐 마냥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런, 너무 신기하게 여기면 안 되려나?”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던 한빈은 아차 싶어 눈을 돌렸다.
‘이 세계 사람들에겐 당연한 광경일 텐데, 이렇게 티 나게 신기해하면 문제가 되겠지.’
그런데 에피르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타국사람들이 요정족을 직접 보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거든요. 당장 저도 처음 보는걸요.”
라트나의 요정족은 그 수가 워낙 적은 것이다.
실제로 요정왕국이라 칭하는 이 나라에서도 인구수 자체는 인간이 더 많다.
그런 만큼 요정족은 알렌디아 밖으로는 잘 나다니지 않았다.
갓 이 나라에 도착한 타국의 헌터들이 엘프나 드워프를 보며 신기하게 여기는 건 충분히 흔한 일이었다.
아티스도 말을 덧붙였다.
“반대로, 이 나라 사람들은 온갖 다양한 인간들을 지겹게 봐와서 외지인에게 별 관심을 안주지.”
대륙 곳곳에서 헌터 짓 하겠다며 찾아오는 나라다.
워낙 별의별 인간들이 다 모이는 만큼 어지간해서는 신기해할 일이 없다.
물론 류한빈의 외양은 절대 어지간하지 않으니, 여전히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어머, 저 사람 봐!”
“벌건 대낮에 왜 홀랑 벗고 돌아다닌대?”
“딴 나라에서 온 헌터겠지? 하여튼 헌터들은 야만스럽다니까.”
“어쨌거나 참 크고 굵네요.”
“주어를 함부로 빼지 마세요.
이상하게 들리잖아요.”
주위 반응을 살피며 류한빈이 피식거렸다.
“아무리 발타라 전사가 유명해도, 역시 헌터가 아니면 한눈에 알아채긴 어렵나 보군.”
아티스가 그를 재촉했다.
“일단 헌터 길드부터 가자고.
신분 갱신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