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62
요정왕국 알렌디아(2) 티아론 헌터 길드 하우스.
1층 홀에 들어가자 헌터들의 시선이 류한빈에게 모였다.
“뭐야, 저 인간? 왜 갑옷도 안입고 있어?”
“설마 전설의 발타라 전사?”
“허, 말로만 듣던 검왕의 혈족인가.”
일반인과 달리 헌터들은 금방 한빈의 정체, 정확히는 위장 신분을 눈치챘다.
하지만 하이텐에서처럼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가짜는 아니겠지? 사기꾼들도 간혹 있다던데.”
“에이, 그런 건 동료들 레벨만 봐도 금방 들통나잖아.”
고레벨 던전 지역이라 헌터들의 수준도 높은 것이다.
대부분 경외의 시선을 보내지만, 개중엔 은근히 호승심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얼마나 강할까?”
“나이가 젊어. 갓 대륙에 나왔나 본데?”
주위의 시선들을 뒤로 흘린 채 한빈 일행은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원 여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티아론 헌터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형적인 절차가 이어졌다.
우선 아티스와 에피르가 레벨을 확인받고 헌터 신분을 갱신했다.
류한빈의 차례가 되자 여인이 정중히 물었다.
“혹시 발타라 전사이신가요?”
“그렇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호위역으로 등록하겠습니다.”
굳이 측정석 부수며 난리 칠 필요도 없었다.
이미 하이텐 헌터 길드에서 류한빈의 신분을 증명했으니까.
일사천리로 절차가 끝나고 새신분증이 발급되었다-티아론 헌터 길드 : 특급 헌터, lv. 52 마법사, 아티스 베니스터티아론 헌터 길드 : 최상급 헌터, lv. 50 마검사, 에피르 베니 스터티아론 헌터 길드 : 아티스 베니스터의 호위 기사, 펠라드 빈
“이제 세 분은 티아론 헌터 길드 하우스에 등록되었습니다.”
등록도 했으니 이제 헌터로서 일을 찾을 차례였다.
인근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아티스가 게시판을 살피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만……
상당히 아름다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꽤나 초췌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푸른 머리의 님프 여인이었다.
“잠시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님프 여인이 정중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 세이라 로엘 시아란. 레벨 50 영술사입니다. 아트란사스의 3공자, 라온델 엘리 아트란사스님을 섬기고 있지요.”
그녀의 말에 아티스가 놀라 물었다.
“아트란사스라니, 설마 그 아트란사스 가문입니까?”
“네, 그 아트란사스입니다.”
류한빈은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아트란사스 가문?’
어째 아티스뿐 아니라 에피르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유명한 집안인가?”
이번엔 세이라가 놀랐다.
“혹시 아트란사스 가문을 모르시나요?”
아무래도 라트나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인 듯했다.
순간 한빈의 안색이 굳었다.
‘ 실수했나?’
다행히 아티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 친구는 대륙으로 건너온 지얼마 안 됐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에 대해 어두운 편이지요.”
“하긴, 발타라 전사치곤 꽤 젊으신 분이다 싶었어요.”
아티스가 한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트란사스는 요정왕국의 네 왕가 중 엘프를 대표하는 가문이야 ?”
4대 요정족이 모여 사는 알렌디아는 왕위 역시 네 종족이 번갈아 가며 계승한다.
엘프, 드워프, 실프, 님프 왕가에서 대표를 내세우고 그중 가장 뛰어난 이가 차대 요정왕이 되는 것이다.
“그럼 라온델 공자란 자는 엘프왕자쯤 되는 건가?”
“엄밀히 말하면 왕자는 아니지.
요정왕의 아들인 건 아니니까.
하지만 고위 왕족이란 점에선 왕자라 해도 무방하긴 하겠군.”
아티스의 설명이 끝나자 세이라가 말을 이었다.
“아트란사스의 일원에겐 스스로의 역량을 증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자님께선 백성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이계의 침식에 맞서는 것으로 기량을 증명하고자 하셨지요.”
문득 에피르가 의아해했다.
“일국의 왕족이 직접 던전 공략을 시도했다는 건가요?”
아티스도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참…… 특이한 이야기로군요.”
던전 공략은 분명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하지만 힘들고 위험한 일인 것도 틀림없다.
그래서 왕족쯤 되면 보통은 기피한다.
어차피 충분한 부와 명예를 지니고 태어나니까.
분위기를 살핀 세이라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역시.’
가문의 속사정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떠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현재 라온델 공자님은 가문 내에서 그리 평가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제1공자님이나 제2공녀님에 비하면 지지 세력도 약하시고요.”
무리를 해서라도 평가를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한 제일 빠른 길이 바로 던전 클로징이었다.
던전 클로저의 명성을 얻는다면 현재의 평가도 바뀔 테니까.
“저를 포함한 세 명의 가신이 공자님을 모시고 적당한 던전을 찾았습니다.”
관문도시 티아론에서 서쪽으로 하루 정도 거리에 로어라는 던전이 있다.
고대 유적형 던전으로, 평균 레벨 40대 후반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충분히 저희 레벨로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었지요.”
라온델의 가신인 드워프 전사, 트린록은 레벨 54의 오러 유저였다.
실프 마법사 리아벨도 레벨 51에 달하는 실력자였다.
만일을 대비해 인간 헌터들을 십여 명 더 고용하기도 했으니, 원래대로라면 무난히 클로징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정보가 틀렸더군요.”
던전 중심부에서 수십 마리의 블러드 서커 무리와 조우한 것이다.
최소 레벨 55가 넘는 가공할 마물들이 숫자마저 몇 배나 많았으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고용한 인간 헌터들 대부분을 잃었고, 심복인 트린록과 리아벨마저 붙잡혔다.
“간신히 공자님과 저만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블러드 서커는 사로잡은 이들의 피를 사나흘에 걸쳐 빨아 먹으며 서서히 죽인다.
죽은 이들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아직 살아 있을 동료들을 구하지 않을 순 없다.
“곧바로 티아론 헌터 길드로 돌아와 조력자를 찾았지요.”
그러나 아무도 의뢰를 받지 않았다.
블러드 서커 무리라면 적어도 레벨 60 이상의 강자들만 모인 팀이어야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이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의 마물도 아니다.
이틀 내내 허탕을 쳤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울고 싶은 기분으로 길드 하우스에 주저앉아 막연히 여신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데 여러분이 나타난 겁니다. 실로 람니아나께서 보우하셨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었지요.”
세이라는 열심히 한빈 일행을 설득했다.
‘이들이 유일한 희망이야!’
물론 그녀도 눈앞의 발타라 전사가 블러드 서커 수십 마리를 전부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진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젊었다.
이제 갓 대륙으로 나왔다고 했으니 오러를 각성했을 리도 없었다.
애초에 발타라 전사가 무사 수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한 전투 경험을 통해 벽을 깨고 오러를 터득하기 위해서니까.
‘동료인 마법사와 마검사가 레벨 52, 50인 걸 보면 대충 레벨 60 정도 같은데……
블러드 서커 대여섯 마리 정도는 능히 감당하겠지만 그 이상이면 힘들 것이다.
수십 마리에게 동시에 포위당하면 목숨이 위험할 테고.
하지만 누가 뭐래도 검왕의 혈족이 었다.
절대 약할 리는 없다.
“그땐 정보 부족으로 무리하게 진입하다가 한꺼번에 포위된 것입니다. 차근차근 외곽부터 숫자를 줄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어요.”
결코 무모한 일이 아니라고 항변하며 세이라가 금화 주머니를 내밀었다.
“성공 보수로 1만 알렌을 준비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선금으로 3,000알렌을 먼저 지불하겠어요.”
한빈 일행의 안색이 변했다.
알렌디아의 화폐는 엑스라드 왕국보다 가치가 높다.
1만 알렌이면 거의 30만 엑스에 달하는 거금이다.
에피르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참 돈도 많네요. 누가 대가문아니랄까 봐……
단 한 번의 의뢰 보수치고는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다.
“1만 알렌이면 우리에게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만큼 이번 일을 중히 여기고 있다는 의미지요.”
의뢰서를 내밀며 그녀는 간절한 어조로 외쳤다.
“부디 도와주세요! 붙잡힌 이들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
잠시 의논을 하겠다고 한 뒤, 한빈 일행은 길드 하우스 구석에 따로 모였다.
대화가 새어 나가지 않게 간단한 차음(遞音) 마법을 걸고 아티스가 류한빈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 글쎄
언제나 그렇듯, 블러드 서커 무리를 처리하는 건 간단하다.
보는 눈이 문제지.
하지만 이제 류한빈도 힘 조절에 제법 요령이 붙었다.
“괜찮지 않을까? 평소처럼 적당히 피할 거 피하면서 해치우면 될 텐데.”
아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야. 한빈너라면 블러드 서커 정도는 별문제 아니겠지.”
그때 에피르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전 좀 찜찜한데요.”
딱히 별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상대가 엘프 왕자라는 게 좀……
그녀는 왕자라는 존재에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 것이다.
비룡기사단에서 쫓겨나 숲속으로 도망친 이유가 엑스라드 왕국의 왕자 때문이었으니까.
“그 라온델 공자란 엘프, 평가가 별로 좋지 않다면서요? 괜히 얽혔다가 귀찮게 되는 건 아닐까요?”
솔직히 한빈 일행이 아쉬울 건 없다.
의뢰 보수가 엄청나긴 하지만, 굳이 이 의뢰를 받지 않아도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돈도 아직 넉넉하다.
하지만 아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무시해도 될 정도로 가벼운 일은 아니다. 무려 아트란사스 가문의 일이니까.”
현재 류한빈의 최종 목표는 여섯 교단으로부터 여신의 축복자로 선택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꾸준히 명성을 올리고 교단의 일에 협력해 왔다.
“우리가 하이텐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긴 했지만 그래 봤자 변경에서의 명성일 뿐이야. 여기서는 아직 무명이나 다름없다고.”
반면 아트란사스 가문의 의뢰를 해결했다고 하면 요정왕국에서도 빠르게 이름을 알릴 수 있다.
교단에서도 보다 수준 높은 협력 의뢰를 해 올 것이고, 협력자의 위계 역시 보다 쉽게 올릴 수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냉철한 참모처럼 상황을 재던 아티스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잖아?”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어지간하면 하고 싶다.
“우리 상황이 귀찮아지는 쪽이,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낫겠지.”
자연스럽게 두 용족의 시선이 한빈에게 향했다.
“에, 솔직히 말하면 난 거기까진 생각 안 했는데……
그저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돈많이 준다기에 혹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 역시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래, 하자. 뭐, 별일 있겠어?”
의견이 모였다.
한빈 일행은 다시 세이라에게 돌아갔다.
아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초조해하던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바로 출발해도 될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시간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