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67
던전 로어(4)
“키브리엘의 적막이 사방에 드리울지니……
세이라는 일행에게 은신 영술부터 걸었다.
원래는 블러드 서커 서식지에 들어선 후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습격을 받았으니 지체할 수 없었다.
“저희가 놈들의 영역을 잘못 판단한 걸까요?”
그녀의 의문에 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고, 놈들의 서식 지가 그사이 넓어졌을지도 모르지요.”
“던전 내에서 마물이 영역을 넓혔다고요? 그런 일은 일반적으로 잘 일어나지 않는데요.”
“블러드 서커 같은 고위 마물이 이 정도 수준의 던전에서 출몰하는 것부터가 일반적이진 않잖습니까?”
어쨌건 블러드 서커의 습격을 받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림자 영술로 모습을 가리고기척과 소리를 차단한 채 한빈일행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선두에 류한빈과 아티스가 서고 중심에 보호 대상인 라온델이, 후미에 세이라와 에피르가 위치해 계속 폐허의 그림자 사이로 이동한다.
주위를 살피며 한빈이 아티스에게 속삭였다.
“왜 그런 게 느껴진 걸까?”
갑자기 라트나의 4대력을 감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너무 느닷없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
아티스가 반문했다.
“혹시 레벨 올랐냐? 블러드 서 커 정도면 경험치 꽤 먹었을 것 같은데.”
“그래 봤자 한 놈당 100만 정도였어.”
3,000만 정도 경험치가 더 오르긴 했다.
하지만 남은 수치가 540억이 넘으니 여전히 영향은 미미하다.
“뭔가 다른 요인이 있다는 건데, 이건.”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긴해.”
아티스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지? 라트나의 4대력을 사용하는 이라면 기본적인 기감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라트나의 4대력인 오러, 마나, 프라나, 포스.
마나를 사용하는 자는 마법사라 불리고, 프라나를 사용하는 자는 영술사라 불리며, 포스를 사용하면 마검사가 된다.
하지만 오러를 사용하는 자는, 전사가 아니라 오러 유저라 불린다.
전사 계열은 오러를 터득하기 전엔 라트나의 4대력 사용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류한빈에게 4대력 감지 능력이 생겼다는 건…….
“너도 슬슬 오러에 눈을 뜬 게 아닐까?”
한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벌써?”
그간 막스브리드 투술을 꾸준히 수련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몇 달 정도였다.
그래서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티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 었다.
“애당초 네 실력으로 아직도 오러를 각성 못 한 게 더 이상해.”
자기 체중보다 훨씬 무거운 역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이 정작 물구나무서기를 못한다면, 그건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요령을 몰라서일 뿐이다.
“난 충분히 때가 되었다고 본다만?”
듣고 보니 또 그럴듯했다.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한 빈이 눈을 빛냈다.
‘그럼 나도 오러란 걸 쓸 수 있다는 건가?’
*
*
*
반 시간쯤 더 이동하자 안개 저편에 커다란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괴한 형태의 탑이었다.
높이는 대략 10여 층 정도?
중앙에 굵직한 본체가 있고 사방에 가시 같은 첨탑이 수평으로 돋아나, 마치 말라 죽은 거목처럼 보였다.
세이라가 말했다.
“저기가 블러드 서커의 본거지일 거예요. 놈들이 트린록과 리아벨을 저곳으로 잡아가더군요.”
그림자 영술로 모습을 숨기고 한빈 일행은 계속 탑에 접근했다.
탑에 가까워질수록 블러드 서커가 자주 눈에 뜨였다.
두 마리씩 짝을 지어 탑 주위를 활공하며 주위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일행을 발견하진 못했다.
세이라의 은신 영술은 그림자를 이용한 것이라 안개가 짙은 환경과 워낙 궁합이 좋았다.
안타까운 듯 세이라가 중얼거렸다.
“그때도 이렇게 했으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텐데……
에피르가 그녀를 달랬다.
“어쩔 수 없었잖아요? 당시엔 블러드 서커 같은 고위 마물이 있는 줄 몰랐으니까요.”
우울한 어조로 세이라가 중얼거렸다.
“왜 아무도 몰랐을까요?”
무턱대고 들이댔던 것도 아니다.
티아론 헌터 길드에서 충분히 정보를 얻은 후에 로어 던전 공략에 나섰다.
“로어 던전은 새로 줄몰한 신규던전이 아니에요. 거의 중심부까지 진입한 헌터 팀도 있었지요.”
그때 확인된 로어 던전의 수호자는 레벨 50 초반의 4족 보행형 마물, 비온 툴라투였다.
“블러드 서커 무리가 이토록 창궐하고 있었다면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아티스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의문은 나중에 풀고, 지금은 동료분을 구하는 것에만 집중합시다.”
탑 바로 아래까지 도달한 뒤 출입구를 찾았다.
입구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 허물어진 탑이라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짙은 어둠이 한빈 일행을 반겼다.
“블러드 서커의 생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티스는 위쪽을 손가락질했다.
“날개가 있는 마물은 보통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 법이죠. 올라가 봅시다.”
탑 상층부의 한 커다란 공간.
사방에 시뻘건 고치가 가득했다.
고치 속에 갇힌 것은 온갖 다양한 마물들.
개중엔 한빈 일행이 싸웠던 하피나 그레이트 오크 등도 보였다.
그 수백의 고치들 사이에서 다섯 마리의 블러드 서커가 피를 빨아 먹고 있었다.
“크캬캬……
흡족해하며 고치에 갇힌 마물의 살에 이빨을 박고 만찬을 즐긴다.
온갖 다양한 마물이 가득한 이곳은 블러드 서커에겐 풍성한 뷔페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이었다.
그레이트 오크의 피를 빨아 먹는 블러드 서커의 머리 위로 뭔가가 떨어졌다.
짧은 기합과 함께 검광이 번뜩였다.
“합!”
느닷없는 기습에 블러드 서커가기겁해 물러났다.
기습당한 놈뿐 아니라 다른 네놈도 긴장하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켈켈거리며 웃었다.
침입자는 고작 한 명, 은발의 작은 인간 소녀였다.
반면 자신들은 다섯이나 되고 덩치도 훨씬 컸다.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 제 발로 기어들어 왔으니 이런 행운이 있나?
기뻐하며 놈들은 소녀, 에피르에게 달려들었다.
“카아악!”
2미터 가까운 거구의 마물들이 작디작은 소녀를 몰아붙이며 기다란 손톱을 연신 휘둘렀다.
소녀, 에피르는 계속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저장고 구석까지 몰렸을 때였다.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배달 왔습니다아?!”
그림자 속에서 섬뜩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했다.”
동시에 어둠이 팔 두 개를 토했다.
두꺼운 근육이 갑옷처럼 뒤덮인 굵직한 팔뚝이었다.
단숨에 양손이 블러드 서커 두놈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크윽?”
“케 엑?”
붙잡힌 놈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었다.
이내 가공할 악력이 목을 덮쳤다.
우지직
대들보처럼 굵직한 마물의 목덜미가 무슨 빨랫줄처럼 가늘어진다.
블러드 서커의 칠공에서 피와 뇌수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
“크에엑!”
치약을 쥐어짜도 이것보단 내용물이 덜 나올 것 같았다.
사체가 된 두 마물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이 무식한 참상을 일군 양팔의 주인이 어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라의 그림자 영술에 몸을 숨기고 있던 류한빈이었다.
“세 마리 남았나?”
남은 놈들이 에피르 대신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엑?”
“카아!”
정면과 좌우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동시에 손톱을 휘두른다.
“크아악!”
그리고 그 모든 공세는 커다란 흑색 대검에 의해 막혀 버렸다.
어느새 검을 쥔 한빈이 눈을 빛내며 정면의 블러드 서커를 찔렀다.
푸어억!
피가 튀며 칼날이 그대로 몸통을 꿰뚫는다.
상대를 관통한 채 그대로 들어 다른 한 놈을 마저 후려친다.
검이라기보단 커다란 망치처럼 내려친 것이다.
망치의 추와 과녁이 동시에 박살 났다.
콰앙!
요란한 굉음이 터졌지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진 않았다.
세이라의 영술 덕분이었다.
“으, 으어…..”
?
홀로 남은 블러드 서커가 공포에 질려 날아올랐다.
바로 바닥을 박차며 쫓아가려다 한빈이 몸을 멈췄다.
‘함부로 몸 날리면 안 되지, 참?’
류한빈의 도약력은 워낙 가공해 돌바닥에 금이 갈 지경이다.
그걸 이런 건물 내에서 쓰면 당연히 진동도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세이라의 은신 영술은 소리는 차단해도 건물 자체의 진동까진 어쩔 수 없다.
‘조용히 해치우려니 귀찮네, 진짜.’
이것이 에피르를 먼저 보내서 놈들을 유인하게 한 이유였다.
그는 천지를 요동치며 사방을 파괴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지만, 은밀하게 이어지는 조용한 전투 쪽은 전혀 소질이 없는 것이다-뭐, 그렇다고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윈드 컨트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아티스가 도주하는 블러드 서커에게 풍계 마법을 날렸다.
2미터 가까운 크기의 마물이, 그보다 더 큰 날개로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당연히 건물 내에선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바로 균형을 잃고 블러드 서커가 추락했다.
류한빈은 느긋하게 놈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바닥 울릴까 봐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음은 물론이었다.
‘하여튼, 어느 세계건 층간 소음이 문제라니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일격을 날렸다.
그렇게 남은 한 놈의 목도 깔끔하게 주인과 이별했다.
“다 해치웠군.”
어둠 속의 세이라를 돌아보며 한빈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동료들을 찾도록.”
류한빈과 아티스, 에피르가 주위 경계를 하는 동안 세이라와 라온델은 초조해하며 붉은 고치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붙잡힌 던전의 마물들이었지만, 간혹 인간의 모습도 보였다.
던전 공략 중에 붙잡힌 티아론의 헌터들이었다.
다들 미라처럼 바짝 마른 시체가 되어 있었다.
“설마 그들도……
불길한 생각에 잠겨 세이라가 울상을 지을 때였다.
라온델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찾았다! 둘 다 아직 살아 있어!”
둘은 허겁지겁 고치를 찢고 드워프 전사 트린록과 실프 마법사리아벨을 끌어냈다.
둘을 살펴본 세이라가 당황하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둘 다 의외로 상태가 멀쩡했다.
정신을 잃었고 안색도 창백했지만, 나흘 가까이 피를 빨린 것치곤 지나치게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온델이 그녀를 닦달했다.
“지금 그게 문제야? 일단 치유술부터 걸어!”
잠시 후 두 사람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아, 아으으……. 세이라 양?”
“라온델 공자님? 어떻게……
혼란스러워하는 둘에게 세이라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트린록과 리아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맙소사, 발타라 전사라고?”
“검왕의 혈족을 만나다니, 정말 운이 좋았군.”
계속 치유 영술을 걸면서 세이라가 물었다.
“어떻게 둘 다 이렇게 멀쩡한 거예요?”
허탈한 목소리로 트린록이 대답했다.
“우리만 일부러 살려 둔 게다.
요정족의 피가 별미라나? 그래서 밥까지 먹여 가며 죽지 않도록 보살피더군.”
안 죽을 만큼만 피를 빨고, 헌터들이 지니고 있던 보존 식량을 먹이며 죽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문득 아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들이 사냥감을 보살폈단 말입니까? 게다가 별미라니?”
블러드 서커는 저런 개념을 지닐 정도로 지성이 높지 않다.
그러자 트린록이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그렇지!”
리아벨도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아직 치유술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이라가 흥분한 둘을 말리며 류한빈을 가리켰다.
“그러니 진정해요. 발타라 전사가 있으니 혹여 다른 블러드 서 커가 나타난다 해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어요.”
답답하다는 듯 두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블러드 서커가 문제가 아니야!”
“이곳에 퀸이 있어! 우릴 살려둔 건 그 괴물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