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75
다크니스 폴른(darknessfallen) (5) 한빈 일행은 한시름 놓았다.
키비에가 저 정도로 강력한 오러 유저라면 대미궁 칼탄에 들어가는 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문득 류한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오러 유저란 말이지?”
의아해하며 키비에가 물었다.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내 힘이 모자라 보여?”
“그게 아니라……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왕이면 영술사였으면 참 좋았겠다 싶어서.”
현재의 한빈 일행은 오러 유저에, 마법사에, 마검사로 이루어진 팀이다.
여기에 영술사가 들어오면 딱 균형이 맞을 것 같은데 또 전사계열이라니?
“거참, 힐러는 없는데 딜러만 자꾸 늘어나네.”
그의 지구식 표현을 키비에는 용케 알아들었다.
“그런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선택지가 오러뿐이었거든.”
어둠의 키브리엘을 암습한 이들은 지상 최강의 마법사와 영술사, 마검사였다.
마나, 프라나, 포스는 전부 그녀의 제어를 벗어나 있었다.
“제어 가능한 건 오러뿐이었지.
그래도 화신으로서의 능력 몇 개는 건져 뒀어. 그렇게 무능하진 않을 텐데, 나?”
“아니,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어쨌거나 그녀가 오러 유저인 이상 신분 확보도 간단해졌다.
그냥 티아론 헌터 길드 가서 헌터 등록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류한빈의 사례도 있듯, 키비에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당초 이 헌터 제도는 대놓고 신분 세탁하라고 만든 제도인 것이다.
그놈의 던전 때문에 워낙 떠돌이들도 많아졌고, 어제의 약자가 오늘의 강자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기존의 제도로는 도저히 관리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허술하게라도 자발적으로 신분 등록을 시키는 쪽이 차라리 낫다.
어느 정도 억제력도 생길 것이고, 추후에 사고를 치더라도 최소한의 단서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이제 헌터 길드로 가면 되나.”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차였다.
류한빈이 아차 하며 키비에를 돌아보았다.
“잠깐, 레벨은 어떻게 하고? 키비에, 너 지금 내 눈에 레벨 불명으로 뜨거든?”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며 그녀가 대답했다.
“그야 내 본질인 세상의 어둠을 감지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밤하늘에 레벨이 있나? 그림자에 레벨이 있어? 당연히 불명으로 뜨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99손을 저으며 한빈이 재차 물었다.
“혹시 측정석으로도 레벨 불명으로 뜨는 거 아냐?”
“당연히 그렇겠지?”
태연한 키비에의 대답에 류한빈은 잠시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자, 그녀가 헌터 길드로 슥 들어간다.
그리고 헌터가 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레벨이 불명으로 뜬다면?
-으악! 이계인이다!
-난 이계인이 아니다. 여신의 화신이라 레벨이 불명으로 뜰 뿐이지.
-으악! 미친 이계인이다!
“……일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나?”
키비에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누굴 바보로 알아? 그 정도는다 생각해 놨다고.”
?
*
*
다음 날.
티아론 헌터 길드 사무소에 한 무리의 일행이 들어섰다.
요즘 들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일명 ‘아티스 팀’이었다.
발타라 전사, 펠라드 빈이 팀의 최강자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헌터가 아니라 아티스의 조력자다.
그러니 팀명 자체는 아티스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한빈 일행을 본 1층 홀의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오, 발타라 전사다.”
“얼마 전 렌가드 던전도 클로징했다며?”
“슬슬 얼음불꽃 숲으로 진출할 거라던데.”
“벌써 4대금역까지? 대단하군.”
그렇게 평소처럼 떠들던 이들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처음 보는 여인 한 명이 팀에 속해 있었다.
‘ 어?’
저 여자는 누구지?’
눈에 확 들어오는 놀라운 미녀였다.
신장 175센티미터의 장신에 완벽에 가까운 8등신의 몸매, 다리는 늘씬하고 허리는 잘록하며 가슴은 풍만하다.
세 갈래로 땋아 등 뒤로 내린 풍성한 흑발 아래로 새하얀 피부와 탄탄한 근육이 조화롭게 연결된다.
실로 아름다우면서도 약동적인, 표범이나 치타 같은 맹수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육체의 소유자.
헌터들은 당황했다.
단순히 상대가 미녀여서만은 아니었다.
‘뭐야, 저 여자?’
‘어디 아녀자가 저러고 다녀?’
그녀는 지금 짧은 가죽 반바지와 가슴 가리개, 부츠와 벨트만을 걸치고 있는 것이다.
날씬한 허리며 복부, 잘빠진 허벅지까지 완전히 드러낸 채 등에 커다란 장창 하나를 메고 있었다.
쉽게 말해, 펠라드 빈과 옷차림이 똑같다!
‘설마?’
모두의 당황 속에서 한빈 일행이 접수대로 걸어갔다.
접수원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아티스 씨. 그런데 저분은?”
여인을 가리키며 아티스가 대꾸했다.
“새로운 팀원이다. 길드에 등록하기 위해 왔지.”
과연 티아론 헌터 길드의 접수원은 하이텐과는 수준이 달랐다.
대답을 듣자마자 재빨리 측정석부터 감싸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이거 맨손으로 부술수 있는 분입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아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미 정체를 짐작한 듯하다.
여인이 장창을 뽑아 들었다.
부우웅!
칠흑의 빛이 창날을 타고 흐르며 1층 홀을 밝혔다.
헌터 몇 명이 바로 알아채고 소리 쳤다.
“오러!”
“저런 젊은 여인이?”
흑발의 미녀를 바라보며 접수원이 멍하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역시……
“그렇다.”
아티스가 그의 추측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녀는 발타라 일족의 여전사다.”
키비에의 해결책은 매우 간단했다.
“대체 왜 고민을 하는데? 바로 옆에 해답이 있잖아.”
애당초 그녀도 발타라 일족을 팔아먹을 생각이었다.
심지어, 류한빈과는 달리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화신을 고를 때 알티아의 창조물 중 최상의 혈통을 선택했었거드 ”
빛의 알티아가 인류를 창조했으며, 그 인류 중 가장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이들이 바로 발타라 일족이다.
육체만 놓고 보면 지금의 키비에는 정말로 발타라 여전사인 것이다!
그녀의 이목구비를 살피며 한빈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외모가 동양인 같다 했더니……
“실은 내 창조물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남은 힘이 모자랐지.”
한빈 일행은 바로 키비에를 발타라 일족으로 위장시켰다.
류한빈의 야만인 복장을 제작한 경험이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 그런데 피부가 너무 하얀건 문제로군. 선탠은 해야겠는데?”
“괜찮아, 아티스. 원래 발타라 여자들은 피부 하얘. 남자들이나 까무잡잡하지.”
적당히 복장 갖춰 입고 등에 커다란 장창 한 자루를 메니 훌륭한 야만인 여전사가 탄생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키비에가 싱글싱글 웃었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발타라 일족 같지?”
아티스와 에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하군.”
“정말 예뻐요, 언니. 몸매가 좋아서 그런지 야만족 옷도 잘 어울리시네요.”
물론 류한빈은 눈 둘 곳을 못찾고 있었지만.
“아니, 그거, 너무 벗은 거 아닌가……
좋게 말해서 여전사지, 그냥 가릴 곳만 가린 헐벗은 몰골인 것이다.
사내인 자신도 이러고 다니는 게 부끄러운데 여성이라면 오죽할까?
“명색이 여신이잖아.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런데 키비에도, 아티스와 에피르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뭐가 문제인데?”
“발타라 여전사잖아.”
“대체 뭘 부끄러워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다음 날 헌터 길드를 찾았다.
과연 상황은 류한빈 때와 같았다.
별 의심 없이 접수원이 신분증을 내주었다.
“키비에 님은 아티스 씨의 호위역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티아론 헌터 길드 : 아티스 베니스터의 호위 기사, 키비에 비에른
“좋다!”
신분증을 받아 든 발타라 여전사가 창을 바닥에 내리치며 호쾌하게 외쳤다.
“나, 아티스 지킨다!”
보고 있던 헌터들도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과연 발타라 여전사답군!”
“실로 호탕한 성품이 아닌가?”
류한빈만 무뚝뚝한 얼굴로 내심 한탄을 내뱉고 있었다.
6.역시 미친 거 같아, 이 세계……
? * *
주인을 잃은 어둠의 성역.
검은 신전을 앞에 두고 뇌제 가르한은 한숨을 쉬었다.
“일이 꼬였군.”
역천에 성공했다.
키브리엘의 힘을 손에 넣었다.
지고의 신성, 그 위대한 권능이 그들의 손안에 있었다.
다른 여신들의 간섭 역시 배제되었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명(明), 암(暗).
라트나를 관장하는 여섯 섭리의 균형이 깨지며 여신들은 더 이상 물질계에 관여할 수 없게 되었다.
오직 ‘현상’으로서의 여신의 권능만이 세상을 조율할 뿐이었다.
키브리엘을 대신하는 새로운 어둠의 신격이 나타난 후에야 저들의 봉인도 다시 풀리리라.
그러나 그땐 이미 최강의 3인이 어둠의 신과 여신이다.
섭리의 기둥 중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건드릴 수도 없겠지.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마지막에 그녀를 놓치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덕분에 어둠의 지식과 지혜가 봉인되었다.
최강의 3인은 분명 여신의 신성을 강탈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강탈한 신성을 다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래서야 정해진 수명을 극복할 수도 없잖아!”
자신의 남은 삶을 계산하며 제 노비아가 이를 갈았다.
“젠장, 이제 5년 정도밖에 안남았는데……
암흑 저편에서 홀리엔이 비아냥댔다.
“거봐, 내가 찜찜하댔지? 하여튼 사람 말 무시하더라니.”
하여튼 지금은 자신들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침착한 어조로 제노비아가 중얼거렸다.
“우선은 도망친 키브리엘을 찾아야겠네. 문제는 그 방법인데……
라트나 대륙은 넓다.
속세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세 명의 왕, 최강의 3인이라 할 지라도 일개 인간 한 명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상대의 이름도, 행적도, 생김새도 모른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홀리엔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 적어도 여성이라는 것 정도는 알잖아. 그게 전부라서 문제지만.”
도주한 키브리엘의 화신은 최강의 3인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그저 여신이니, 화신체도 여성일 거라고 짐작할 뿐.
“젊은 여인이란 조건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람을 풀어 찾으려 해도, 뭘 찾는지는 알려 줘야 할 것 아냐?”
그때 가르한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화신을 특정 지을 방법이 있긴 하다.”
여신의 화신체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가이드라인으로 보면 독특한 메시지가 뜨는 것이다.
「종족 : 여신. 1V. 불명」
“이계인의 능력이라면 여신의 화신을 식별할 수 있지.”
홀리엔이 미심쩍어하며 반문했다.
“그레이트 어스를 풀어 탐색을 시킬 셈이야? 효과가 있을까? 고작 서른 명만으로 이 넓은 라트나 대륙을 다 뒤질 순 없어.”
가르한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한 건 ‘그’ 그레이트 어스가 아니야.”
그녀는 착각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이들은 현재 부하로 부리고 있는, 단지 그레이트어스의 잔당으로 위장했을 뿐인 충성스러운 이계인들이 아니다.
“진짜를 말하는 거다.”
33년 전 최강의 4인이 처리한, 세상에서 유리된 광기에 찬 수백의 괴물들.
“그 숫자라면 충분히 대륙 전체를 탐색할 수 있겠지.”
홀리엔이 기겁해 되물었다.
“진심이야? 피에 굶주린 그 미친놈들을 다시 풀어놓겠다고?”
“아니면? 달리 방법이 있나?”
“그, 그건 아니지만……
그녀는 질린 얼굴로 가르한과 제노비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서로 남은 시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까?
님프인 그녀와 달리 두 ‘인간’은 이미 뜻을 굳힌 것 같았다.
“그래,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지.”
“우리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르한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악타룬의 봉인을 풀겠다.”
ME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