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82
세 르히스란(3)
아티스의 빠른 판단 덕분에 류한빈은 곧바로 목표를 정했다.
저 멀리 날아가는 갈색 머리의 마법사를 노려보며 강하게 대지를 박찬다.
“타앗!”
돌바닥이 으깨지며 충격파가 터졌다.
한빈의 거구가 포탄처럼 쏘아져 순식간에 맥스웰을 따라잡았다.
“빌어먹을!”
기겁한 맥스웰이 지팡이에 정신을 집중했다.
다양한 마법이 류한빈을 노리고 쏘아졌다.
“익스플로전! 일렉트로닉 쇼크!
파이어볼! 선더 블래스트!”
문제는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죄다 중급 레벨 수준의 마법뿐이었다는 점이다.
“헙!”
기합을 떨치며, 한빈은 그냥 모든 마법을 몸통으로 때워 버렸다.
오러를 각성하기 전에도 맷집만으로 버텨 냈던 그였다.
지금이라면 이 정도 마법으론 속도조차 늦출 수 없다!
콰콰콰쾅!
폭음을 뚫고 계속 질주하며 류한빈이 크게 팔을 휘둘렀다.
-오러 스크라이크!
붉은 오러탄이 유성처럼 내리꽂힌다.
도주하는 맥스웰의 정면에 웅장한 폭발이 일어난다.
박살 난 파편이 난무하며 시가지가 흔들린다.
“크윽!”
폭풍에 휩싸여 맥스웰은 뒤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사색이 되어 영창을 이었다.
“일어나라, 가장 짙은 호수의 권속이여! 서먼 오르가로스!”
아슬아슬하게 마법이 완성되었다.
갈라진 도로 사이로 수류가 솟구치며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일궜다.
물의 정령수, 오르가로스였다.
크아아아!
울부짖는 정령수를 본 맥스웰의 눈빛이 번뜩였다.
‘성공이다!’
이는 레벨 83의 초고위 소환술, 그조차도 한 번 사용하면 모든 마나가 고갈되어 최소 사흘은 골골대는 강력한 마법이다.
물론 이걸로도 저 괴물을 죽일순 없겠지만, 적어도 도망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으리라!
“가라, 오르가로스!”
명령을 내리며 맥스웰은 재차 도망갈 채비를 갖췄다.
그때 였다.
오르가로스를 노려보며 류한빈이 흑색 대검을 고쳐 쥐었다.
수평으로 검을 늘어뜨린 뒤 붉은 오러를 섬전처럼 발한다!
-가로 베기!
세계가 찢어지는 듯한 환상과 함께, 거대한 오르가로스가 허리부터 일도양단되었다.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파아아아앗!
잘린 단면으로부터 물이 끓어오르며 붉은 기류가 되어 사방으로 퍼진다.
자욱한 수증기와 함께 정령수의 거체가 희미해지며 안개가 되어 흩어진다.
맥스웰은 경악했다.
“단 한 방에?”
기껏 소환한 오르가로스가 뭐해 보지도 못하고 끝장났다.
저 발타라 전사는 그의 상상 이상으로 괴물이었던 것이다.
검을 고쳐 쥐며 한빈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야, 소환된 마물은 생사를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
다른 지구인들 눈에는, 그가 루슬란을 시종일관 가지고 놀다가 잔혹하게 박살 낸 걸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류한빈 딴에는 생포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설마 오러탄 네 개도 못 버티고 훅 갈 줄 알았나, 뭐.’
하여튼 이걸로 상대의 마지막한 수도 간단히 막았다.
한빈의 블레이드 오러가 맥스웰의 목젖을 겨눴다.
“자, 아직 남은 수가 있나?”
맥스웰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항복합니다.”
항복해 봐야 결국 이계심문관에게 끌려가 고문당한 뒤 비참하게 죽겠지만…….
‘그래도 당장 죽는 것보단 낫겠지.’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들 때였다.
“커 억!”
갑자기 그가 피를 토했다.
‘뭐지?’
흠칫 놀라며 한빈이 긴장했다.
맥스웰이 사지를 부들부들 떨더니 입뿐 아니라 눈, 코, 귀에서까지 피를 철철 흘리기 시작했다.
“이, 이 빌어먹을 뇌제 새끼……
핏발 선 눈으로 욕설을 터트리 며이를 간다.
동시에 눈동자 가득 공포가 떠오른다.
“어쩐지 순순히 풀어 주더라 잠시 후 맥스웰이 고개를 푹 꺾었다.
동시에 그의 시체가 허공에 녹아들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또 죽어 버렸다.
한빈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예전에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아티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레이트 어스를 발설하려던 코볼트가 이런 식으로 죽었다.
물론 사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무슨 금제 같은 게 걸려있었나?”
마법을 영창하며 아티스가 지팡이를 대지에 내리찍었다.
“솟구쳐 휘감을지어다! 인탱클오브 크랄로!”
대지를 질주하며 에피르도 쌍검을 교묘히 겹쳤다.
-마검식 : 폭풍룡의 포효!
푸른 넝쿨이 그레이스의 사지를 노리고 꿈틀대며 날아간다.
광풍이 불어 대기를 뒤흔든다.
도저히 비행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 었다.
“이, 씨!”
욕설과 함께 그레이스는 등 뒤를 향해 오른손을 겨눴다.
“알티아의 광휘가 나를 지키가이드라인에 의해 저절로 기술이 습득되는 이계인이더라도 영창은 해야 했다.
어디까지나 라트나의 법칙을 이용해 사용하는 기술인 것이다.
가이드라인이 대신 해 주는 것은 영창이지, 기술 발동이 아니다.
“……무적의 성벽이 될지니!”
영술이 발동해 아티스와 에피르의 공세를 막았다.
둘 다 레벨 60대 정도에 불과해 공격에 빈틈이 있었다.
그 틈에 그레이스가 다시 날아 오르려 할 때였다.
“ 소용없다.”
싸늘하게 뇌까리며 키비에가 장창을 연달아 찔러 갔다.
묵빛의 오러가 수십 자루의 창이 되어 폭우처럼 쏟아졌다.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할 수 없이 그레이스는 다시 영술 방패를 펼쳐 공세를 막았다.
콰콰쾅!
막기는 잘 막았는데, 덕분에 발이 묶였다.
아티스와 에피르가 좌우로 서고 키비에가 배후를 막아 버리며 그녀를 완전히 포위했다.
창을 겨누며 키비에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도망칠 길 따윈 없다! 순순히 항복하라!”
초조해하며 그레이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 어쩌지……
자고로 영술사는 방어와 보조, 치유 수법이 주력이다.
즉, 상대적으로 순간 파괴력은 동레벨의 전사나 마법사에 비해 극히 낮은 것이다.
저들 개개인은 그녀보다 레벨이 낮지만, 각개격파가 힘드니 영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항복해 봐야 고문당하다 죽을 뿐인데……
그렇게 고민하던 차였다.
그녀의 고민을 깔끔히 날려 주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서, 발타라 전사가 대검을 쥔 채 달려오고 있었다.
‘맥스웰도 당했나?’
순간 모든 전의가 사라졌다.
‘이걸로 끝이네.’
한숨을 쉬며 그레이스는 양손을 축 늘어트렸다.
그렇게 막 항복 의사를 밝히려던 차였다.
다가온 류한빈이 험악한 인상으로 그레이스를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항복 따위 받아 줄 것 같나, 이계 인?”
살기가 칼날처럼 매섭게 온몸을 찌른다.
놀란 그레이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항복도 안 받겠다는 거야?’
그런 모양이었다.
“그대의 악행은 죽음 외엔 속죄할 수 없다!”
지옥에서 갓 올라온 악귀 같은 형상으로, 구릿빛 근육을 번들거리며 험악한 외침을 이어 간다.
“마음껏 발버둥 쳐 봐라, 사악한 이계인이여! 하하하핫!”
‘제기랄! 역시 발타라 전사인가?’ 발타라 전사의 흉포성은 라트나 전역에 퍼져 있다.
충분히 저럴 수 있는 종자들인 것이다.
그레이스는 마지막 희망마저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죽건 살건 싸울 수밖에 없다!
“흥! 누가 순순히 죽어 줄 줄 알고!”
반면 아티스와 에피르, 키비에는 당황했다.
‘ 엥?’
‘한빈 님이 왜 저러시지?’
‘왜 안 어울리게……
그레이스가 엑토플라즘 창을 형성해 류한빈에게 날렸다.
물론 전혀 먹히지 않았다.
“흡! 타앗!”
블레이드 오러가 춤을 추며 모든 영술의 창날을 박살 낸다.
그리고 한빈이 멧돼지처럼 그레이스의 코앞에 도달해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뻗어 낸다.
두꺼운 손가락이 가녀린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캑! 케켁……
목이 잡혀 허공에 매달린 그레이스가 발버둥을 쳤다.
점점 그녀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 갔다.
목이 졸려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다.
‘이, 이대로 죽나……
결국 그녀의 머리가 푹 꺾였다.
하지만 육체가 사라지진 않았다.
확실히 기절했을 뿐이다.
그제야 류한빈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를 내려놓았다.
“어휴, 항복할까 봐 쫄았는데 다행이다.”
아티스가 다가가며 물었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이 녀석들, 금제 같은 게 걸려있어. 항복하려고 하면 발동하는 것 같더라고.”
한빈이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키비에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부러 기절시킨 거였나? 잘했군.”
기절한 그레이스를 조심스레 눕힌 뒤 한빈은 환하게 웃었다.
“겨우 지구인을 생포했네. 그동안 내내 실패했는데.”
그러던 중이었다.
저 멀리 시티 가드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웅성웅성.
그레이스가 기절하며 그녀가 걸어 놓은 결계 영술도 풀린 것이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이 정도 난리가 났으니 이미 도망칠 사람들은 다 도망쳤다.
그리고 도망친 이들은 허겁지겁 시티 가드부터 찾았을 테고.
에피르가 혀를 찼다.
“난리가 났네요. 당연하겠지만.”
한빈이 아티스를 돌아보았다.
“이 뒤처리는 어쩌지?”
“맡겨 둬. 내가 처리하지.”
아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빈 일행 중에서 가장 세상 물정에 밝은 이가 바로 그였다.
“드래곤인 내가 인간들 사정을 제일 잘 안다니, 뭔가 웃기는 이야기지만 말이지.”
아티스의 호언장담대로 시티 가드의 심문은 간단히 끝났다.
-우리는 헌터들이다. 평소처럼 던전 공략 후 여관에 묵고 있었는데 이계인 놈들의 습격을 받았다. 이건 그 전투의 결과일 뿐이다.
-놈들이 이계인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시체가 사라졌다. 이것이 놈들이 남긴 복장들이다.
-시체가 사라지는 걸 본 다른 증인이 있나? 혹시 평범한 헌터들을 죽이고 그대들이 시체를 숨겼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알티아 교단의 협력자들이다. 아트란사스 가문의 일도 도운 바 있다. 그런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현재 류한빈과 아티스는 알티아교단의 협력자, 그것도 백의 위계를 지닌 이들이다.
그동안 쌓아 온 행적이 있으니 신용도 높은 것이다.
“아, 아트란사스 사건의 그분들 이셨습니까?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위계를 밝히자 태도부터 바뀌었다.
더 이상 추궁 따위 하지도 않았다.
시티 가드 대장이 정중한 태도로 아티스와 대화를 이어 갔다.
“안 그래도 요새 세르히스란의 헌터들이 행방불명되는 일이 잦아 의심하던 차였습니다. 그 이계인들의 짓이었군요.”
아쉽지만 이계인 척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계인을 생포해야 인정이 되니까요.”
자신들도 안다며 아티스가 대꾸했다.
“생포할 만큼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지요. 우리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서진 여관에 대한 피해 배상입니다만……
원래 도시 내에서 전투를 벌여기물 피해가 나면 양측 모두에게 책임을 물린다.
이것이 라트나의 관습이다.
당사자가 억울하건 말건 알 바 아니다.
문제는 대놓고 보상하라고 요구하자니..?
‘저 발타라 전사가 너무 무섭잖아!’ 전전긍긍하는 대장을 향해 아티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배상하지요. 대신 놈들의 물건은 저희가 갖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요?”
“원래는 증거품으로 압수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시죠!”
반색을 하며 시티 가드들은 여관을 떠났다.
상황을 지켜보던 류한빈이 실소하며 말했다.
“공무원 하는 짓은 지구건 여기건 비슷하구만.”
어쨌거나 뒤처리도 깔끔하게 끝났다.
일행을 돌아보며 아티스가 골목안쪽으로 턱짓을 했다.
“그럼 우리도 새 숙소를 찾아보자고.”
생포한 여자 이계인, 그레이스를 숨겨 놓은 곳이었다.
“캐물을 것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