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87
대미궁(1)
대미궁이라고는 불리지만 칼탄은 평범한 지저 미궁형 던전이 아니다.
그렇게 단순히 분류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곳이다.
높이만 수백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동 아래 위치한, 사라진 고왕국의 폐허.
다른 공동에선 이계의 버려진 도시가 반쯤 파묻혀 고요히 썩어간다.
무수한 탑이 빽빽이 들어선 이 형의 신전이 있는가 하면, 발광이끼로 가득해 지상처럼 환한 동굴 천장 아래 울창한 숲이 생성되기도 한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용암 호수, 얼음과 서리의 들판, 폭풍이 몰아치는 협곡.
현존하는 모든 형태의 던전이 죄다 존재하는, 그야말로 인류의 인지를 아득히 벗어나는 광활한 지저 세계인 것이다.
그 대미궁 칼탄의 한 이계 도시에서 낭랑한 소녀의 기합이 울리고 있었다.
“이 얍!”
은발의 소녀가 폐허가 된 도시의 건물 위로 뛰어오른다.
동시에 시가지 쪽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콰아앙
5층 높이의 건물을 단숨에 뛰어 오른 뒤, 에피르는 힐끔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기하네. 아무리 넓다 해도 일단은 지하일 텐데, 공기는 어디서 들어오는 거지?”
폭연 너머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네 마리의 마물이 모습을 드러 냈다.
곤충 같은 외골격을 지닌 인간형 마물, 벨브릭이었다.
카라라라!
괴성을 터트리며 놈들이 에피르에게 달려들었다.
전원 레벨 75가 넘는 강력한 마물로, 현재 레벨 72인 에피르에겐 꽤나 벅찬 상대다.
심지어 숫자도 넷이나 된다.
‘예전 같았다면 일단 물러선 뒤 각개격파를 노렸겠지만……
눈을 빛내며 에피르는 도리어 정면으로 맞섰다.
‘……지금은 치유 아이템이 있으니까!’
무모한 짓을 하더라도 리스크가 훨씬 적다.
아슬아슬하게 그녀가 놈의 공격을 피해 거리를 좁혔다.
상대의 반응이 예상외였는지 벨브릭이 빈틈을 보였다.
카락!
그 틈에 쌍검을 휘두르며 마검술 발동!
-마검식 : 뇌룡의 포효!
콰콰콰쾅!
뇌성과 함께 전격이 폭발해 마물의 전신을 까맣게 구워 버렸다.
크아아아!
무모한 짓을 한 보람이 있었다.
일격에 절명시킨 것이다.
문제는 그 탓에 에피르도 허점이 드러나 다른 벨브릭 한 마리가 머리를 쪼개려 달려들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배리어!”
에피르는 재빨리 쌍검을 머리 위로 교차시켰다.
반투명한 마법의 방벽이 생성되어 공격을 튕겨 냈다.
좌검 스테일과 우검 제로할트에 깃든 레벨 63 방어 마법, 프로텍트 배리어였다.
하루 사용 횟수가 12회로 제한되어 있는 기술이지만 그녀는 기회를 아끼지 않았다.
‘익숙해지려면 자주 써 봐야지.’
습관이 들어 있어야 위급한 상황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법.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다면서 마냥 아끼기만 하는 건 실전을 모르는 이들의 발상이다.
12회나 있으니 2?3회 정도만 남겨 두면 된다.
그래서, 아티스 역시 새로 얻은 지팡이를 마음껏 사용하는 중이었다.
“파이어 월! 번 플레임! 익스플로전! 라이트닝 스톰! 라그나 블래스트!”
스펠 세이빙 로드를 통해 다섯마법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끓어오르는 파괴의 해일이 마물들을 일제히 쓸어 갔다.
크아아아!
크에엑!
구릿빛 상체를 드러낸 근육질 거한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둘 다 정기 몰아줄 수준은 지났군.”
레벨이 오른 것도 오른 것이지만, 드디어 최고위 무기와 아이 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점이 크다.
이젠 에피르도 아티스도 충분히 전투에 한몫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럼 나도 슬슬 내 경험치를 챙겨야겠다.”
눈을 빛내며 류한빈은 눈앞의 괴물을 노려보았다.
반파된 시가지 건물 사이로 거대한 마물이 우뚝 서 있었다.
신장 5미터에 달하는, 인간형의상반신과 악어 같은 하반신을 지닌 놈이었다.
「종족 : 휴엘 드라코다일. lv.
83
특수 능력 : 마나에 기반된 능력을 바탕으로 풍계 마법과 대지 계열 마법을 사용하며, 유효 반경 30미터 내에 부식의 안개를 뿌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물이 커다란 아가리를 열고 굉음을 토했다.
콰아아아아!
대기가 진동하며 녹색의 안개가 거리를 가득 뒤덮어 갔다.
모든 것을 삭이는 부식의 안개였다.
우르릉!
안개가 닿는 곳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역시 레벨이 높다 보니 위력이 상당했다.
건물들 사이로 뛰어넘으며 류한 빈은 오른손에 오러를 집중했다.
그?리고 그대로 뻗어 냈다.
-오러 스트라이크!
예전처럼 오러탄 붙잡고 무식하게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장풍’처럼 멋있게(?) 쏜다!
콰아앙
붉은 섬광이 작렬해 밀려오는 안개를 사방으로 흩어 놓았다.
한빈이 내심 쾌재를 터트렸다.
‘좋아, 이제 이건 문제없이 쓸 수 있구만!’
그는 계속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건물 아래에는 부식의 안개가 고여 있으니 함부로 내려갈 수 없었다.
고위 영술사가 있었다면 안개자체를 중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딴 건 없지.
“진짜 밸런스 안 맞는다니까, 우리 팀.”
건너편 옥상에 착지하며 류한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진 악어 괴물을 향해 블레이드 오러를 휘둘렀다.
-오러 스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러의 칼날이 허공을 슥 벤 것이 전부였다.
마물이 순간 머뭇거렸다.
놈의 심정이 이해가 가 한빈이 조소를 흘렸다.
‘그래, 저놈이 뭐 하나 싶었겠지.’
원래대로라면 오러의 칼날이 슝하고 날아가야겠지만, 그냥 기술을 실패한 것이다.
“역시 이건 아직 어렵군, 쳇.”
그가 약한 건 결코 아니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신체를 지니고 있고, 오러양도 압도적이며 전투 경험 역시 풍부하다.
하지만 수련을 할수록 새삼 느끼는 점은…….
‘내가 꽤 둔한 편이긴 해.’
에피르는 금방 터득한 막스브리 드 투술도 몇십 번씩 반복해 겨우 익혔다.
듣자 하니 평범한 전사들도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뭐,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하나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지만.
-어차피 기술은 꾸준히 연습하면 아무리 둔재라도 결국에는 익히게 돼요. 하지만 신체 능력엔 명백히 한계가 있잖아요. 저보다야 한빈 님이 백배 낫죠!
검을 고쳐 쥐며 류한빈은 직접 몸을 날렸다.
거대 괴물과의 전투는 바위산시절 지겹게 해 왔다.
이런 놈이야말로 가장 자신 있는 상대라 할 수 있다.
쏟아지는 공세를 튕겨 내며 저돌적으로 파고들어 가슴팍을 크게 올려 벤다!
푸아아앗!
피 분수가 쏟아지며 마물이 휘청거 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_가로 베기!
마물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가이드라인 메시지가 떴다.
rlv. 83 휴엘 드라코다일 퇴치.
경험치 42,810,000을 획득했습니다.」
「현 경험치 :
132,814,900/54,581,975,800j
“역시 레벨 80 이후부턴 경험치를 먹을 만하군.”
주위를 살펴보니 슬슬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에피르와 아티스는 이미 자기 몫을 전부 해치웠고, 키비에도 마지막 마무리에 들어가는 중이다.
“타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연달아창을 찌른다.
그때마다 검은 오러가 섬광이 되어 마물들을 꿰뚫고 혈화를 피워 올린다.
그녀의 창술은 실로 무난했다.
어찌 보면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무난했다.
물론 화신으로서의 키비에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20대의 젊은 여인이 레벨 80대 오러 유저라는 시점에서 이미 평범이랑은 담을 쌓았다.
하지만 오러 유저란 점에서만 보면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다.
창술 실력도, 오러양도, 신체 능력도, 심지어 전투 경험도, 딱 레벨 80대의 오러 유저가 보일 법한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쩔 수 없어, 애초에 화신 만들 때 골고루 수치를 입력해서 그런 거니까.”
창을 거두며 키비에가 어깨를 으쓱였다.
“경험은 이제부터 쌓아 올려야지. 바오톨트 만나면 도움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일행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빈이 아티스에게 물었다.
“카트락까지 얼마나 남았어?”
“지도 펴 볼게.”
아티스가 품에서 백금 원반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원반에서 빛이 솟구쳐 복잡한 3차원 영상을 허공에 띄웠다.
칼탄은 지하에 생성된 복잡한 미궁이 다.
높이에 따라 한 지역에 여러 공동이 겹쳐 있는 경우도 흔하다.
2차원 지도로는 저 3차원적인지형을 전부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제작한 마법 지도로만 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더럽게 비싸고.
이거 하나가 어지간한 아티팩트열댓 개 값이더만?”
한빈의 투덜거림을 뒤로한 채 아티스가 거리를 재어 보았다.
“대략??????
그리고 시가지 저편을 가리켰다.
“이쪽 방향으로 15킬로미터 정도?”
“15 킬로미터……
에피르가 질린 듯 몸을 떨었다.
류한빈도 혀를 내둘렀다.
“진짜 칼탄이 크긴 크구만.”
키비에가 일행을 닦달했다.
“계속 움직이자. 오늘 중으로 카트락 입구까진 도착해야지.”
뇌제 가르한은 라트나의 주요 도시 전체에 이계인을 뿌려 키브리엘의 화신을 탐색하게 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금역 도시 세르칼탄도 포함되어 있었다.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한 시가지의 인적 드문 뒷골목.
알마라와 살투스는 세 명의 인간들을 만나고 있었다.
흑갈색 머리에 매부리코를 지닌 30대 초반의 사내, 그리고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였다.
30대의 사내가 알마라를 향해 물었다.
“그대들이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인가?”
“그렇다, 이계인.”
싸늘한 기류가 둘 사이에 맴돌았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것이다.
먼저 입을 연 건 두 드래곤이었다.
“알마라. 실버 드래곤이다.”
“그린 드래곤 살투스다. 어차피 뻔히 보일 테니 레벨까지 떠들 필요는 없겠지?”
드래곤들이 자신을 소개하자 상대들도 조금 누그러졌다.
“난 아서 윈스터, 레벨 99 검사라네.”
“제이슨 본윌, 레벨 98 영술사다.”
“레실 베이커, 레벨 99 마법사예요.”
살투스는 내심 혀를 찼다.
‘인간 주제에 다들 레벨이 엄청 나군.’
저 정도면 악타룬의 이계인 중에서도 최고위급이었다.
지상 최강의 던전이 위치한 도시인 만큼, 이계인들도 최강자들만 골라 보낸 것이다.
솔직히 이들과 동행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홀리엔의 명령을 거역할 순 없다.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이해했다.”
제이슨과 레실도 납득한 표정이었다.
“여신을 사냥하는 건 우리로서도 바라 마지않는 일, 돕지 않을 이유가 없지.”
“하지만 알다시피 우린 뇌제의 목소리 때문에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어요. 그런데 무슨 수로 대미궁으로 향하란 말인가요?”
코웃음을 치며 알마라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분께서 그런 것도 생각지 않았을 것 같아?”
뇌제의 명령에는 예외가 있다.
여신을 발견했을 땐 해당 도시를 벗어나 추적해도 된다.
“ 받아.”
작은 엠블럼 세 개가 이계인들에게 전해졌다.
엠블럼을 받아 든 이계인들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레실이 중얼거렸다.
“가짜 그레이트 어스 놈들이 들고 다니던 그거로군요.”
이 엠블럼 자체는 아무런 기능도 없다.
무슨 대단한 마도구도 아니다.
그냥 정교한 세공이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받음으로써 이제 세 이계인은 ‘여신을 찾았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식하게 되었다.
뇌제가 건 정신 제어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제이슨이 엠블럼을 매만지며 의아해 했다.
“그런데 왜 그 가짜 놈들은 굳이 그레이트 어스를 팔아먹는 거지? 이런 징표 들고 다니다 들키면 위험하기만 할 텐데.”
살투스가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래서 들고 다니게 하는 거다. 들켜도 그분들에게까지 의심이 가지 않도록 말이지.”
“ 치사하시구만.”
어쨌거나 이걸로 세 이계인 모두 세르칼탄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서가 물었다.
“놈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고 있나?”
알마라와 살투스는 거기까지도 파악해 놓았다.
“어둠의 화신 일행은 이 도시에서 검왕에 대해 수소문했더군.”
“덕분에 던전 카트락이 목적지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렇다면 카트락에서 가장 가까운 대미궁의 입구로 향했을터.”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온 게이트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