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90
검왕 바오톨트(1)
짙은 회색빛 어둠으로 뒤덮인지저 폐허.
무너진 건물 사이로 거대한 마물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
체장 6미터, 체고도 2미터가 넘는 커다란 사자 형태의 몸뚱이에 길고 날카로운 발톱, 피처럼 시뻘건 피부와 전갈의 꼬리를 지닌 마물이 었다.
인간의 노인처럼 주름진 얼굴에는 상어처럼 몇 중으로 늘어진 이빨이 돋아나 있었다.
「종족 : 맨티코어. lv. 100긴 앞 발톱으로 베어 버리는 형태의 공격과, 이중으로 늘어선 이빨로 물어뜯는 공격을 병행함.
특수 능력 : 오러 스킬 다수 사용. 꼬리 부분에 근육과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독침이 돋아 있어 화살처럼 날릴 수 있음.」
사냥감을 찾아 은밀히 걸음을 옮기던 맨티코어가 고개를 들어 건물 너머를 노려보았다.
‘……
어둠 저편으로 네 명의 인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거구의 야만인 남녀와 적발의 마법사, 은발의 소녀였다.
맨티코어는 기뻐했다.
오랜만의 인육이었다.
전갈의 꼬리를 세우고 조심히 건물 위로 이동해 놈들의 머리 위를 장악한다.
그리고 차분히 기다린다.
먹잇감과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쪽에 맨티코어가 은신해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태연하게 사지로 걸어 들어온다.
맨티코어는 몸을 날렸다.
크허어엉!
가공할 스피드로 완벽한 타이밍을 노려 꼬리의 독침을 날리고 단검 같은 앞 발톱을 빠르게 휘두른다!
순간 인간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놈들은 실체가 아니었다.
환영이었다.
“걸렸군.”
맨티코어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붉은 섬광이 날아들었다.
-찌르기!
시뻘건 마물의 몸통에 구멍이 뻥 뚫리더니 이내 핏물이 폭발하듯 터졌다.
레벨 100이나 되는 마물이 단일격에 즉사한 것이다.
흑색 대검을 거두며 류한빈이 중얼거렸다.
“사자 형태의 신수가 돌아다니는 곳이라 그런가? 이 동네는 마물들도 사자 닮은 게 많군.”
한편 아티스는 열심히 주위를 살피는 중이었다.
다행히 다른 마물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안심하며 입을 열었다.
“방심 마라, 한빈. 기습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끝나진 않았을 거다.”
“나도 알아. 그래서 전력을 다한 거잖아.”
대꾸하며 류한빈이 아티스의 손가락을 힐끔거렸다.
“레벨 70 넘기니까 좋군. 그런 아이템도 사용할 수 있고.”
「환영의 반지(마도구) 시전자 반경 50미터 이내에 임의로 위치를 지정해 환영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사용 제한 1V. 70. 사용 횟수 21/30회.」
엄청나게 비싸긴 하지만, 워낙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에 대미궁을 공략하는 헌터 팀이라면 대부 분 장비하고 있는 마도구였다.
이 마법의 반지를 이용해 한빈일행은 자신들의 환영을 미끼 삼아 근처 마물을 유인해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동속도는 느리지만 아직껏 별 위험 없이 이곳까지 진입 했다.
“이런 좋은 거 있었으면 카트락에서도 좀 쓰지 그랬어?”
한빈의 불만에 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선 무리였지. 발광 이끼 때문에 너무 밝았잖아. 환영의 반지는 영술이 아니라 마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같은 환영술이라도 마법과 영술은 방식이 다르다.
마법은 빛을 조작하고 영술은 정신을 조작한다.
그래서 환영 영술은 일단 걸리면 어지간해선 속기 마련이지만, 대신 상대의 레벨이 너무 높으면 아예 통용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그에 비해 마법의 환영은 레벨에 상관없이 일단 걸린다.
눈으로 보는 것이니까.
반면 환영의 움직임이나 음영처리 등에서 어색함이 남는다.
그래서 잘 살펴보면 쉽게 허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마법으로 환영 트릭을 쓸 땐 주위 환경이 필수지. 지금은 주위가 어두우니까 꽤나 잘먹힌 거고.”
아티스의 설명에 키비에도 말을 보탰다.
“말하자면, 예산 부족한 영화에 컴퓨터 그래픽 넣을 때 일부러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잡는 거랑 비슷해.”
“아, 그렇게 비유하니 바로 이해가 되네.”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신답게 그녀는 지구 문명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깊은 것 같았다.
물론 아티스와 에피르는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지만.
“컴퓨 어쩌구라니?”
“무슨 소리예요, 언니?”
“너희는 몰라도 되는 이야기야.”
대충 손사래를 치며 키비에는 걸음을 옮겼다.
박살 난 맨티코어의 사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누군가 노숙한 자취가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래된 흔적이라 섀도 리딩이 먹힐지 모르겠네.”
중얼거리며 키비에는 정신을 집중했다.
잠시 후, 그녀가 빙긋 웃었다.
“찾았다. 바오톨트와 게이브의 잔존 사념이야.”
검왕 바오톨트는 분명 단신으로 대미궁 칼탄의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동료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마도구 사용을 거부하는 발타라 전사다.
하지만 아무리 발타라 전사라도 상처를 입지 않을 순 없다.
부상을 당하면 치료를 해야 한다.
힐링 포션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마도구를 안 쓰니 공간 주머니도 안 쓰고, 당연히 힐링포션도 많이 들고 다닐 수 없다.
또한 휴식도 취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
그러나 이 위험한 대미궁에서 홀로 잠드는 것은 천하의 검왕이라도 너무 무모한 짓이다.
그래서 바오톨트에겐 수발을 들어 주는 시종이 한 명 있었다.
레벨 99 영술사, 게이브 마틴.
레벨 99씩이나 되는 고위 영술사가 고작 시종이라니 무슨 헛소리냐 싶겠지만, 검왕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도저히 함께 싸울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진짜 시종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전투 중엔 숨어 있다가 전투 끝나면 치료를 돕는 등의 보조 역할을 맡고 있는 모양이었다.
섀도 리딩을 통해 키비에는 바오톨트와 게이브가 대략 6개월쯤 전에 이곳을 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계속 남쪽으로 향했다는 것 또한.
키비에가 몸을 일으켰다.
“이쪽이다.”
*
*
*
칼탄 최하층으로 내려갈수록 한 빈 일행의 움직임도 더욱 조심스러 워 졌다.
사방에 레벨 100이 넘는 마물들이 득시글거린다.
한두 마리 정도는 몰라도, 다수를 상대하면 류한빈조차도 답이 안 나오는 최고위 마물들이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키비에는 몇 번이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크루스머르그를 만나면 무조건 숨어.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마. 도주조차 불가능할 테니까.”
황금의 사자, 크루스머르그.
대미궁 칼탄의 삼신수 중 하나로, 10여 년 전 이백 명이 넘는 최고위 헌터들을 몰살시키며 그 강력함을 만방에 떨친 마물 중의 마물.
자고로 대부분의 던전은 네다섯명 정도의 소수 정예로 공략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기에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은 이런 의문을 품곤 한다.
왜 군대를 동원해 체계적으로 던전을 소멸시키지 않는가? 마신의 위협으로부터 라트나를 지키기 위해선 그것이 최선이 아닌가?
이는 던전의 특징에 기인한다.
대부분의 던전에는 수많은 마물들이 서식하고 있고, 이들은 절대 자신의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헌터들은 각 지역의 마물들을 각개격파 하며 클린 에리 어를 넓혀 순차적으로 던전을 클로징 한다.
그러나 이 규칙이 깨지는 경우가 있었다.
던전 내에 지나치게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한자리에 뭉쳐 있으면 반경 수 킬로미터의 모든 마물들이 일제히 습격해 온다.
과하게 커진 인간의 존재감이 그들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해 서식지를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10여 년 전, 최고위 헌터 수백 명이 동시에 힘을 합친 적이 있었다.
대미궁의 삼신수 중 하나인 크루스머르그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칼탄을 벗어나 지상의 황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실로 끔찍한 대재앙이었다.
저 가공할 마물이 황야를 벗어나 인간의 영역까지 다다른다면 얼마나 막대한 피가 흐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칼탄에서는 불가능한 군대식 전투가 가능한 기회이기도 했다.
던전과 달리 바깥세상에서는 대규모로 모여도 별문제가 없으니까.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앞에 세르칼탄의 모든 강자들이 힘을 합쳤다.
이백 명이 넘는 헌터들이 군대를 짜 크루스머르그를 사냥하러 나섰다.
“그리고 몰살당했지. 고작 세명 살아남았다던가?”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칼질 한 번, 마법 한 번 제대로 날려 보지도 못하고 휩쓸려 죽어 갔다.
그들의 피에 만족한 크루스머르그는 대미궁으로 돌아갔다.
그 덕에 최악의 참사만은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검왕이야 상식을 초월한 강자이니 저런 괴물도 사냥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지만, 우리 수준으로는 무조건 죽는다고.”
말을 맺으며 아티스는 부르르떨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리는 듯했다.
‘역시 최대한 빨리 검왕을 찾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군.’
류한빈이 키비에에게 물었다.
“다른 단서는 못 찾았어?”
“아직은.
나직하게 그녀가 대꾸할 때였다.
갑자기 에피르가 몸을 숙이며 일행에게 손짓을 했다.
‘숨어요!’ 이유를 묻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한빈 일행은 재빨리 근처 건물 안쪽 으슥한 곳으로 뛰 었다.
그리고 눈빛만으로 에피르에게 물었다.
‘왜?’
에피르가 창틀 너머로 손가락질을 했다.
‘저거요!’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과연, 저 멀리 박살 난 시가지 한복판에 거대한 무엇인가가 보였다.
누런색의 동체, 착 가라앉은 황금빛 갈기, 두꺼운 앞발과 살짝 드러낸 무시무시한 송곳니.
그야말로 완벽한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사자와는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거의 30미터가 넘는 크기의 마물이 마치 잠든 것처럼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아티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신수 크루스머르그!’
한빈 일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감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키비에는 침을 삼켰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을 줄이야.’
이 거리에서 들키지 않았다니 실로 행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아직 잠들어 있는 듯하니……
이대로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녀가 물러나자며 등 뒤로 손짓을 했다.
그때 류한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조용히 하라며 에피르가 다급히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한빈은 도리어 고개를 빼 들었다.
창틀 너머를 유심히 노려보며 연신 눈가를 찡그린다.
답답해진 아티스가 귓속말을 건넸다.
“왜 그래, 한빈? 위험하다니까!”
류한빈이 대꾸했다.
“아무것도 안 떠. 레벨도 종족도.”
대부분의 이계인이 그렇듯, 그도 새로운 적을 만나면 가이드라인 측정부터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아까부터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
불명으로 표시된다거나 오류가 뜬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반응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저거, 죽은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