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94
혈투(血聞)(3)
공동 전체가 요동친다.
시가지의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먼지가 피어오르고 파편이 사방으로 구른다.
우르르릉!
잠시 후, 시가지 한편에 거대한 파괴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수십 미터에 달하는 방대한 영역이었다.
그곳에 세 이계인의 모습 따윈남아 있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허공을 나부끼는 산산이 찢어발겨진 옷가지와 바닥을 뒹구는 박살 난 장검, 지팡이의 파편들, 그리고 대지에 그려진 선혈의 추상화뿐.
류한빈이 지닌 최강의 기술에 오러의 힘마저 실어 날렸다.
그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즉사해 버린 것이다.
‘으아, 내가 한 짓이지만 진짜 무지막지하네.’
크로스 임팩트는 바위산 시절 이후 실전에서 써 본 적이 없다.
연습이야 당연히 꾸준히 했지만, 전력을 다한 건 이 세계에 떨어진 후 처음이다.
“으
순간 현기증이
비틀거렸다.
일어나 한빈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이었다.
“괘, 괜찮아?”
키비에가 허겁지겁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힐링 포션을 꺼내 들었다.
“어서 이거라도……
영술사도 없고, 류한빈의 레벨제한 때문에 치유 아이템도 못쓴다.
그저 열심히 힐링 포션이나 마시고 바를 수밖에.
물론 이런다고 당장 이 중상이 완치되진 않는다.
응급처치는 되어도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다행히 저 둘은 레벨이 별로 높지 않으니까……
호흡을 고르며 류한빈은 저만치 떨어진 두 남녀, 알마라와 살투스를 바라보았다.
“이, 이런……
“이계인들이 당했나……
둘 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겠지. 믿고 있던 고위 레벨이계인들이 일수에 쓸려 가 버렸으니.’ 레벨 82 마법사와 79 영술사라면 키비에와 아티스, 에피르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고개를 저으며 류한빈이 일행에게 말했다.
“저놈들을 부탁해. 난 좀 쉬어야겠다.”
아티스와 에피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맡겨 줘.”
“저 정도는 우리 힘으로도 감당할 수 있어요.”
하지만 키비에의 안색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다 이긴 기분 낼 때가 아니야.”
“ 음‘?”
한빈이 의아해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장창을 움켜쥔 채 키비에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살투스는 난처해하며 알마라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쩔 겁니까?”
알마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되도록 본체는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데……
어둠의 여신 키브리엘은 모든 용족의 창조주.
아무리 창조주에 대한 존중이 겨자씨만큼도 없다지만, 대놓고 이빨을 드러낼 정도로 부담 없는 행위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 이계인들 선에서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
“할 수 없지요.”
중얼거리는 알마라와 살투스의 전신이 빛으로 휘감긴다.
빛이 한없이 거대해져 건물을 초월하며 사방을 뒤덮는다.
요란한 굉음이 대기를 쩌렁쩌렁울렸다.
“크아아아아!”
“카아아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동체, 세상을 덮을 듯 크게 펼쳐진 날개, 강철 같은 비늘로 뒤덮인 강인한 피부.
“마, 맙소사!”
아티스는 경악했다.
드래곤이 었다.
그것도 500년 이상 살아와 고룡의 칭호를 받은, 아직 새끼일 뿐인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진정한 괴물!
쿠우웅!
은빛 비늘의 드래곤이 앞발을 내리찍으며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다.
뒤이어 그린 드래곤도 서서히 움직여 퇴로를 차단한다.
둘 다 한껏 고개를 들어야 겨우 머리가 보일 만큼 거대하다.
「종족 : 드래곤. 빙룡 lv. 119」
「종족 : 드래곤. 지룡 lv. 114j놈들이 입을 열었다.
“화신의 협력자가 이 정도의 강자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이미 전투 수행 능력을 잃었으니……
“너희에게 승산은 없다.”
반박할 수 없었다.
자그마치 레벨 110이 넘는 고룡이 두 마리.
이미 탈진 상태인 류한빈에겐 너무도 벅찬 상대다.
‘그렇다고 키비에나 아티스, 에피르는 더욱 상대가 되지 않겠지.’
절체절명이다.
파충류의 머리를 하고 있음에도 인간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알마라는 위압적인 음성을 흘렸다.
“어둠의 화신을 바쳐라, 인간들아. 그러면 나머지는 고통 없이 죽여 주마.”
한숨을 쉬며 한빈은 흑색 대검을 움켜쥐었다.
“거참,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군.”
지팡이를 겨누며 아티스가 키비에에게 중얼거렸다.
“이래서 아까 그런 소릴 한 거였나?”
장창 위로 검은 오러를 덧씌우며 그녀가 굳은 음성으로 대꾸했다.
“난 저들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에피르는……?
“휴우, 깜짝 놀랐는데 다행이네요.”
남들 다 한껏 긴장하는데 혼자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키비에가 당황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에피르?”
“드래곤이잖아요, 상대가?”
도리어 에피르가 눈을 깜빡였다.
대체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었다.
슬쩍 앞으로 서며, 은발의 소녀가 눈앞의 두 드래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
*
*
파아아앗!
에피르로부터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빛이 두 드래곤을 뒤덮으며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잠시 후.
“..어?”
그토록 거대하던 드래곤의 모습들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벌거벗은 인간 남녀가 서 있었다.
백금발의 여인과 흑갈색 머리의 청년.
고룡 알마라와 살투스의 인간 의태 형태였다.
잠깐 멍해 있던 두 드래곤이 그제야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다.
저 빛에 쬐인 순간 강제로 인간형태로 돌아가 버렸다!
레벨 역시 대폭 다운되었다.
도로 레벨 82 마법사와 79 영술사가 되었다.
에피르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 에헤헤.”
한빈과 아티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참?”
경갑옷 안쪽에 잘 숨기고 있었기에 이계인들도 미처 에피르의 목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빈과 아티스는 그녀의 목에 뭐가 걸려 있는지 잘 아는 것이다.
「폴리모프 네크리스(유니크 아이 템) 착용자에게 인간으로 의태하는 능력을 부여함. 목걸이 착용 시상시 유지.
착용자가 아닌 용족에게 사용할 경우, 강제로 상대를 인간으로 의태시킴. 유효 지속 시간 하루.
사용 조건 무(無). 사용 횟수무한(無限).」
“그거, 레벨 110이 넘는 고룡한테도 통하는 거였어?”
“그런 엄청난 물건을 고작 레벨 75가 들고 다녔었단 말이야?”
기뻐하면서도 아티스는 의아해 했다.
저 정도 기물을 알레한드로같이 허약한(?) 마검사가 들고 다녔었단 말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그자가 딱히 약한 건 아니었구나.’
류한빈이 워낙 규격 외라서 그렇지, 악타룬의 이계인이 풀려나기 전만 해도 알레한드로 정도면 활동하는 이계인들 중에선 최고위 레벨이었다.
하여튼 이걸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큭! 젠장!”
“본체로 돌아갈 수가……
알마라와 살투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아무리 용을 써 봐야 무용지물이다.
죽어도 드래곤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에피르를 노려보며 알마라가 한 탄을 흘렸다.
“화신의 권능에 이런 것도 있었에피르가 키브리엘의 화신인 줄 아는 그녀로서는, 저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눈을 빛내며 류한빈이 걸음을 옮겼다.
“잘됐네. 생포할 수 있겠어.”
붙잡아 놓고 최강의 3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당황하며 살투스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어떻게든 도망쳐야 해.’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도망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살투스가 정신없이 수인을 맺었다.
“나, 인지를 희롱하여 현혹하는 자가 되리라!”
갑자기 한빈 일행의 시야에 수십 명의 알마라와 살투스가 생겨났다.
환영 영술이었다.
살투스가 이들의 정신을 교란해 환각을 보게 만든 것이다.
키비에가 코웃음을 쳤다.
“통할 것 같으냐?”
우우웅!
검은 오러가 일어 올라 그녀를 감쌌다.
동시에 모든 환영이 사라졌다.
영술의 환영은 자신보다 하위레벨에게만 통한다.
아티스와 에피르라면 모를까, 키비에라면 쉽게 파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류한빈도 마찬가지.
“헛수작!”
간단히 환영을 지워 버리며 그는 몸을 날렸다.
키비에도 재빨리 뒤를 따랐다.
류한빈이 알마라를, 키비에가 살투스를 노리고 검과 창을 휘둘렀다.
“타아앗!”
생포가 목적이니 날을 세우진 않았지만, 무기에 깃든 강대한 오러만으로도 사지 하나는 간단히 부러진다.
알마라와 살투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으헉!”
“으아아!”
흑색 대검과 묵빛 장창이 정확히 벌거벗은 남녀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대로 남녀의 모습이 허공에 녹아 버렸다.
“어?”
이번에도 환영이었다.
영술과 달리, 자신보다 높은 레벨에게조차 통용되는 방식의 빛의 환영.
키비에가 아차 하며 소리쳤다.
“환영 마법이다!”
*
*
?
류한빈은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감을 펼쳐 봐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는 혀를 찼다.
“이런??????
완전히 놓쳐 버렸다.
단순히 마법 환영뿐이었다면 한 빈도 바로 가짜임을 알아차렸으리라.
하지만 저들은 환영 영술을 먼저 시도해 방심하게 만든 다음, 알마라의 환영 마법으로 이중 트릭을 걸었다.
심리적 트랩이 선행되다 보니 속아 넘어가 버렸다.
키비에가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노련한데? 제대로 도망칠 줄 아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판단을 내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적이지만 인정할 만하다.
류한빈이 그런 키비에를 보며 툴툴거 렸다.
“지금 잘했다고 박수 쳐 줄 상황이야? 놓쳤잖아!”
아티스가 다가와 물었다.
“놈들이 뭔가 홀렸는지 찾아볼까?”
전투를 벌이질 않았으니 딱히 놈들의 핏자국이 남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놈들은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홀랑 벗고 튀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즉, 입고 있던 로브 등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로브에 머리카락이나, 뭐 그런게 묻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류한빈의 가이드라인을 이용해 추적술을 걸 수 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정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처럼 막 놓친 상태라면 꽤나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때 키비에가 아티스를 만류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최강의 3인에 대한 정보는 지금도 충분히 입수할 수 있었다.
그냥 알마라나 살투스가 입고 있던 옷가지에 섀도 리딩을 걸기만 해도 된다.
굳이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추적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어차피 가르한 밑에 저 정도 고룡은 수두룩해. 저런 놈들 한둘 놓쳤다고 큰일 나진 않아.”
오히려 문제는 이쪽이다.
검왕의 무덤을 바라보며 어둠의 화신은 난처해했다.
“이제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