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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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무슨···?”
함께 풍화도로 온 이들이 표사도 짐꾼도 아닌 도사와 거지다. 그런 말이 전해지자, 무길은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이며 되물었다.
진효풍과 홍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그의 눈에 많은 생각이 담긴 모습이다.
내가 진효풍과 홍구의 정체를 밝힌 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숫자도 저들이 많고 다 떠나서 여긴 저들의 섬이지 않나.
이건 무력행사를 하겠다는 으름장이 아니었다. 그저, 이들에게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뿐.
‘정말 최후에는···’
우리가 술도 배도 포기하고 사람만을 구하려 든다면야 이 둘로는 못할 것도 없다.
난 그런 의사를 살짝 내비치려 이들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무길은 떨리는 눈으로 산목을 바라봤다.
거짓말을 했냐는 억울함이 묻어 있다.
“···그저 고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전 풍화도와 석가장. 전 둘 중 어느 한 곳의 편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 침묵은 거짓말이 아니다.
산목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대했을 뿐.
두 곳에 발을 걸친 자의 입장은 언제나 이렇게 난처하다.
“제, 제아무리 진 대협과 홍 대협이라도··· 풍화도에서 나가는 건 힘드실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뱃길은···”
“말씀드린 것처럼, 이는 사전에 협의한 부분이 아닙니까? 섬 안에서 일이야 협의한 게 없다지만 입도와 출도를 돕는다. 그게 석가장에서 식량과 금전을 받는 조건이셨을 텐데요? 그 계약마저 무르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적이 되는 수밖에.”
“······.”
무길은 당황을 애써 감춰가며 제해권을 장악한 걸 어필하려 들었다.
어림도 없지.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잡으려 걸었던 조건이 이제야 발목을 잡는다.
그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친절함이란 단어가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당장에 이 둘을 면전에서 적으로 돌릴 수가 있겠나. 이건 으름장이며 협박이 맞았다.
“···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인지요? 우리의 도움은 필요 없다, 이 말씀이십니까?”
“도움. 필요합니다.”
“헌데, 굳이 이렇게 나오시는 건···?”
“거래를 조금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상계(商計)지요.”
– 씨익.
가차 없이 채찍질을 내려쳤다면야 이제는 당근을 줘야 할 때. 난 당당하게 뱉은 말로 무길에게 아직 길이 열려있음을 알렸다.
무길은 또 복잡해지는 눈을 하더니.
“거래···?”
“예. 거래.”
거래란 말에서 무언가 희망을 놓지 않은 모습이다.
“원하시는 건 식량이 아닙니까? 둘러보니, 풍화도는 미곡이 많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 고민.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항주의 미곡을 매달 풍화군이 정하는 곳으로 배달해 드리지요. 제해권이 있으시니, 받는 건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그게, 이번 일을 돕는 조건이란 말씀입니까?”
“설마요. 그럴 거면,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지요.”
“다른 조건이 있다는···?”
“예. 다만, 그 역시 값은 치를 겁니다. 그저 거래를 새로 하나 트는 것. 그게 이쪽의 조건입니다.”
“무엇입니까? 아시겠지만··· 풍화도는 드릴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습니다.”
무길은 생각보다 괜찮은 도주가 될지도 모른다.
내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을 우선 내세워 새로운 거래를 트자는 걸 거절할 수도 있지 않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이쪽의 의도도 이제는 알 거고. 그럼에도 무얼 거래할 거냐며 물어오는 그의 모습이 제법 괜찮다.
물론, 상인으로서는 실격이지만.
“선박을 만드는 기술. 그 기술 중에서도 물참나무를 다룰 수 있는 기술. 그 기술을 원합니다.”
!
“조, 조선술을 말입니까? 어찌···? 설마, 풍화도의 배와 같은 배를 만들려고?”
“그렇다면, 무리겠습니까?”
“···무리입니다. 풍화군이 중원 앞바다를 장악할 수 있었던 건 해전에 능한 특성도 있지만 배 덕분도 큽니다. 이걸 유출할 수는 없습니다.”
뭐. 원천기술을 넘겨달라는 말에 쉽게 응할 사람은 없다. 그게 이쪽만이 가진 고유한 원천기술일 때는 더더욱.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궁핍이 사정이다. 이럴 때는 살짝 살아나갈 틈을 보여주면 된다.
“허면, 그 기술로 배를 만들진 않겠습니다. 대신, 다른 쪽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배가 아니라?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통을 만들 겁니다.”
!
“통?”
“술을 보관할 용기지요. 나무로 만든.”
“···그걸 배에 적용하지 않을 거라 보장은···”
“각서를 쓰겠습니다. 상가는 신용으로 먹고사는 곳. 각서에 석가장 대표로 인장도 찍을 것입니다.”
애초에 선박 건조 기술 따위 관심도 없었다. 석가장이 해군은 아니지 않나.
기술. 있다면야 좋겠지. 다만, 내게 더 필요한 건 오크통을 만들 기술일 뿐이다.
난 각서와 날인이란 말에 강조를 주며 그에게 살아갈 길을 터줬다. 무길의 눈이 또 복잡해졌다.
“···믿어도 되겠소?”
“석가장의 신용은 강남, 아니 중원에서도 제일일 겁니다.”
무길은 산목에게 슬쩍 말을 물으며 반 이상이 넘어왔음을 알린다. 난 조용히 입을 닫고는 그의 답을 기다렸다.
이럴 때는 여유가 중요하다.
“···좋습니다. 허면, 통 외에는 기술을 쓰지 않는 조건으로 제시하신 거래에 응하겠습니다. 특히, 선박은 절대 안 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계약서를 쓸까요?”
허기는 반찬이고 궁핍은 사정이다.
저들로서는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거래. 이쪽의 사정을 몰랐다면야 생각보다 더 값이 나가는 조건을 주고는 받아야 했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저 기술만큼은 죽어도 내어놓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고.
진효풍과 홍구를 데려온 것이 이렇게 효과를 본다.
‘실제로는···’
이들만으로도 사람을 구하려 한다면야 이쪽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겠지만.
그걸 굳이 저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을 거다. 부 도주라는 변수도 있지 않나.
결국, 우리는 원하는 도움도 얻고 정당한 값을 주고는 기술까지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한다면야, 오크통이 곧, 나올 수 있을 거다.
“그, 도주님의 세력이 내전에서 승리했을 시 석가장 배에 대한 보호 역시 보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두로라도 약속을 해주신다면, 본가에서 통행료를 최대한 받아내 보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말씀입니다. 전대 도주께서는 중원에 중요한 동반자가 있는 게 나을 거라 말씀하셨지요. 보장하겠습니다.”
이후로 더 얻어가는 건 연안 바다의 통행에서 안전성. 이번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지 않겠나.
내전에서 이들이 이긴다면. 이라는 조건이 있긴 했지만. 뭐, 이건 어쩔 수 없다.
본디 전쟁은 약세한 곳에 배팅해야 크게 돌아오는 법이다.
“다 된 거 같군요. 한 부씩 가지고 있으시죠.”
적당히 휘갈긴 계약서에 각자의 인장을 찍고는 한 부씩 나눠 가졌다.
이걸로 지지부진한 거래 이야기는 끝. 이제는 행동에 나셔야 할 때.
“한쪽 병영씩 맡는 겁니다. 우리가 풍화성. 도주님께서 항구. 시작은 풍화성이, 끝은 항구에서 나온 이들이 맺을 겁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되어버린 석가장과 풍화도.
둘은 지도를 펼치고 한참이나 격론을 나눈 후 밤이 되어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
“흥. 뭐라?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그리, 그리 말을 할 때는 언제고? 이분이 진효풍 대협이십니다? 아주, 유창하더군. 사질들도 그렇게는 내 소개를 안 할 걸세!”
“내 예전부터 알아봤지. 이 공자, 저치도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고.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두고는 그냥!”
밤이 깊어 움직임을 숨기기 딱 좋을 때.
무길의 병영을 벗어나 풍화성으로 향하던 중 두 사람이 입을 모은다.
무길의 풍화군이 항구를, 우리가 풍화성을. 회의에서 정해진 결론은 그러했다.
이럴 때는 또 죽이 잘 맞아떨어지는 도사와 거지. 둘은 애써 숨긴 정체를 내 입으로 까발린 게 불만족이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거래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우리이이? 석가장! 아니지, 그것도 자네에게만 좋은 일이겠지.”
“거, 말 한번 잘했네. 어째 착한 사람 사정을 이용해 먹는 기분이 들더라니. 우리 같은 정파의 무인에게는 영 이런 게···.”
“이 공자가 조금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암.”
“역시,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군!”
날 놀려 먹는 것에 아주 재미를 붙였다. 둘은 이상한 트집까지 잡으며 날 놀려댄다.
사정을 이용해 상계(商計)를 먼저 걸어온 건 저쪽인데.
일이 진행될 때는 아무 말 없이 잘 따라오더니, 뒤에서라도 날 놀려야 속이 풀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두 분께는 어쩔 수 없이 그 기술로 만든 통에서 나온 술을 드릴 수는 없겠군요. 남의 사정을 이용해 갈취한 기술로 만든 술이니.”
!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다.
“으응?”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술을 담을 통을 만들 거라고.”
“허. 이 사람. 어디서 우릴 또 속이려고! 통이 바뀐들 술맛이 달라질까!”
“달라집니다.”
!!
“으응?”
“아주. 아주 많이 달라집니다.”
“그, 그렇게 많이?”
“소, 속지 말게! 간악한 혀일세.”
“그래도 이 공자가 술로 거짓말은···”
“안 하지요.”
“흐음. 들은 적은 있습니다. 서역에서도 포대에 보관한 술과 자기에 담은 술이 차이가 있었다고. 이 공자의 말씀이 아주 틀린 말씀은 아닐 겁니다.”
전통적으로 중원의 술은 대부분 자기에 숙성되었다. 다른 통이란 게 없었기에 차이도 알 수 없었던 게 현실.
하지만, 술맛에서 가장 큰 차이를 줄 수 있는 건 숙성하는 용기의 재료다.
주해(酒海)란 곳에서 나오는 서봉주만 해도 일반적인 백주와는 다른 향이지 않나.
특히나 나무로 만든 오크통은 술에 새로운 맛을 입혀 완전히 다른 술로 만드는 데 그 어떤 용기보다 앞설 것이다.
갑열의 증언까지 더해지자, 신나서 놀려대던 둘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난 그게 재밌어, 말을 덧붙여 봤다.
“백주가 황주로 바뀐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
“백주가 황주로?”
“기본 맛은 여전히 백주의 맛. 하지만, 알싸함과 깊은 향은 더욱 짙어지지요. 거기에 때로는 달콤한 맛도 느낄 수 있고. 전에 담은 술의 맛 역시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예컨대, 후아주를 담은 통에 백주를 담으면 후아주의 향이 난다거나. 과하석황주의 꾸덕함이 묻어난다거나. 뭐, 그런?”
“···후아주의 향을 입은 백주? 과하석황주의 꾸덕함?”
“아. 그 말씀을 안 드렸군요. 백주는 후아주를 증류해서 담을 거니, 과실 향도 더욱 짙어지겠네요.”
“크, 큽! 아주 터지겠군···. 팡팡?”
“팡팡. 아쉽습니다. 저야 상인이라 남은 사정을 이용해 얻은 기술로 만든 술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지만. 두 대협(大俠)께는 그게 힘들지 않겠습니까?”
“······.”
두 사람의 표정이 재밌게 변해갔다.
둘은 슬쩍 입맛을 다시는 게 내가 입으로 풀어간 술의 맛이 혀에도 조금씩 전해지는 모양이다.
“암요. 힘들지요. 어쩔 수 없군요. 이번에는 두 분께 먼저 나올 술을 선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고생도 해주셨기에 제일 먼저 드리려 했거늘···. 착한 이를 이용해 먹은 술이라니. 안 될 소리입니다. 암요.”
“그, 그게 아니라···.”
“다시 생각해보니, 저들의 속내가 조금 어두웠던 거 같기도 하군. 아니 그런가? 저들이 착한 건 아니···”
“그렇지! 또한, 무가의 논리와 상가의 논리는 다른 거니···! 암. 이 공자가 딱히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소만.”
둘은 곧장 말을 바꾸며,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왔다. 손에 가진 건 이렇게 휘두르는 거다.
내가 가진 건 술이고.
“그러지 말고, 술이 나오면 내 딱 평을 내려보겠네. 응?”
“늘 하던 사람이 해봐야 하는 게 아니겠소? 이 도사와 거지라면 부족함이 없지. 아니 그렇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말이지, 너무하는군. 농이었네. 농!”
“암. 농이었소!”
둘은 완전히 날 놀리던 모습을 감추고는 이제 안달을 내고 있다. 작전에 돌입하기 전, 기강을 한 번 잡고 가길 잘했다.
내가 만든 술에 꿰인 둘은 여전히 내 술에서 헤어나가지 못한다.
“자자. 우선은 이번 일이 잘 끝나야 다 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든 인질을 구출해야 새로운 술도 빚을 분위기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실패한다면, 석가장이야 한동안 초상집일 테니.”
“그런 비극이야 있어서는 안 되지! 무림의 비사가 될 걸세!”
“정파의 무인으로서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지!”
“물론, 술도 구해가야 양조장이 풍족해져 술이 술술 나올 수 있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마치 아이를 다루듯 일러주는 말에 두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풀어만 둔다면 최선을 다해서 맡은 바를 다해줄 터. 난 그들을 다독이며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 곧 항구에서 연기가 피어나면, 저곳을 우리가 털어야 합니다. 무사히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술은 두 분께 제일 먼저 향할 겁니다. 아주 진득한, 백주 같은 황주가. 이해하셨습니까?”
손이 가리킨 곳에는 풍화성이 홀로 빛을 밝히고 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왔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진 대협이 찾아둔 길로 갑열 형제님과 제가 잠입해 인질을 빼 올 겁니다. 두 분이 무사들의 이목을 끌어주시면 됩니다. 아주, 거칠게.”
동기부여를 끝낸 두 사람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때마침 올라오는 선명한 연기.
난 다시금 풍화성을 가리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 그럼. 가서 날뛰시죠.”
두 신형이 그림자를 타고 쏜살같이 풍화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