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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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별이군요.”
“이번 일, 감사했습니다.”
뒤따르던 적선의 노여움도 앞을 막던 짙은 안개도 사라져버린 잔잔한 바다.
그 위에서 돛을 접은 범선과 노를 거둔 왜선이 서로를 마주 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제는 완전히 평화로움만이 자리한 중원 영역의 바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무길의 풍화군과 작별을 고했다.
여기서부터는 안전할 거라. 무길은 확신하는 눈치다.
“약속한 물자는 항주에 닿는 즉시 수배해 보내겠습니다. 산목을 통해 연락을 드리지요.”
“기다리겠습니다. 물자를 받는 배에 장인을 실어 보낼 겁니다. 원하시는 바를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내전도 꼭 승리하시고요.”
“감사하게도 이번 일이 저들에게 제법 큰 타격을 줬을 겁니다. 돌아간 후 즉시 전황을 살펴야지요.”
모든 일이 끝났으니 주고받아야 하는 건 앞으로 있을 거래에 대한 마지막 확답들.
무길과는 조건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마지막 도장을 찍듯 손을 맞잡았다.
탈출을 위해 내던진 범선이 마지막에는 적들에게 제법 큰 타격을 줬음이 분명해 보였다.
언뜻 듣기로는 적의 간부 중 몇은 죽었을 거라니. 제법 거한 선물을 남기고 가는 모양이다.
‘풍화성도 제법 뒤집어놨지.’
뭐, 값을 생각보다 세게 치른 느낌이지만 상관은 없다. 오크통만 내 손에 떨어진다면, 만사가 형통이니까.
무길과 작별한 후 우리의 배는 그대로 쉬지 않고 항주를 향해 내달렸다.
산목과 함께 배를 모는 선원들. 무길이 나눠준 식량과 남은 과하석황주로 며칠을 보내니.
어느덧 익숙한 항구의 모습이 우리를 반겨준다. 항주항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하, 항주항이다!”
“항주! 항주에 도착했다!”
“아아···!”
“집이다!”
구출된 석가장의 사람들은 그제야 귀환이 실감이 나는지 저마다 다리가 풀려 범선 위에 주저앉는 모습.
왜인지 그 모습이 안쓰럽거나 처절하게 보이지 않았다. 보기 좋은 풍경이라.
난 그 풍경을 그렇게 눈으로 담아갔다.
산목은 묵묵히 배를 몰아 그대로 항주항에 선박을 정박했다. 멀리서부터 보였던 ‘대석’이란 깃발 덕분일까.
이미 항구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석가장의 범선이 풍화구에 나포된 건 파다한 사실.
그런 배가 며칠 만에 다시금 항주항에 돌아오니, 모두의 관심을 받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 다닥! 다닥! 닥! 닥! 닥!
멀리서 들려오는 말 밥굽 울리는 경쾌한 소리. 모래바람과 함께 들려온 소리는 이내 가까이서 멈추고 누군가 말에서 표표한 신법으로 뛰어내려 배 가까이 다가왔다.
풍채가 좋고 인자한 인상이 가득한.
석가장의 장주, 석두원이다.
“장주님!”
“석 장주님!”
“여깁니다! 여기!”
아직 선문(船門)이 열리기도 전에 저마다 손을 흔들며 그런 석두원을 맞이한다.
석두원은 잠시 이들을 눈으로 살피더니.
– 타탓! 탓!
참지 못하고 곧장 배로 뛰어들고 만다. 제법 높은 배에 두 번의 도약으로 바로 닿는 그였다.
난 앞으로 나서며 석두원을 맞이했다.
“장주님을 뵙습니다.”
“이, 이 공자?”
기뻐할 거란 생각과 달리, 석두원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구한 인원을 한 번에 세어가지 못하는 그였다.
“배가 두 척밖에···?”
그는 잠시 날 바라보더니, 곧장 불안한 눈빛의 이유를 알려준다. 나포되었던 범선은 세 척.
돌아온 범선은 두 척. 배가 아까운 걸까. 당연히 그런 의미가 아님을 난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유는 배 한 척에 탔을 사람을 잃었냐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난 짙게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배는 한 척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만.”
“다만?”
“나포되었던 석가장 인원 전원. 무사 귀환했음을 신고합니다.”
!!!
“저, 전원 말인가? 확실한 건가?”
“예. 장주. 전원!”
전원이 무사하냐. 되묻는 말에 최립이 앞으로 나서며 뒤에 선 모두를 인솔했다.
열을 맞춰 자세를 잡는 석가장의 인원들. 최립은 그들을 스윽 보고는.
“석가장 소속 선원 및 표사, 무사단이 장주님을 다시 뵙습니다!”
– 척! 척! 척!
“장주님을 다시 뵙습니다!”
“장주님을 다시 뵙습니다!”
“영광입니다!”
“장주님! 아직 못 갑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두원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며 귀환을 알려갔다. 일시에 포권하며 무릎을 꿇는 모습.
그저 사고였다며 모른 척할 수도 있는 일에 사람까지 보내며 자신들을 구한 장주.
그를 향한 깊은 존경의 표시였다.
웅장한 이들의 목소리가 울리자, 석두원은 그제야.
– 털썩.
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안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힘이 일시에 쭉 빠지는 모습이 한동안 긴장을 놓지 않은 이의 모습이다.
“되었다···. 되었어! 다들 장하다! 장해!”
일가의 가주가 낡은 범선에 주저앉은 모습이 퍽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의 표정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장주!”
“다, 다들 무사하더냐? 장주께서는?”
“이 공자, 무사하오?”
연달아 열린 선문을 통해 석가장의 다른 가신들도 범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주저앉은 석두원의 모습을 보고는 결과를 눈으로 알아갔다.
겨우 몸을 일으킨 석두원이 내게 다가왔다.
“고생했네. 고생했어. 이 공자. 정말 고마우이. 고마워!”
“진 대협과 홍 대협, 갑열 형제께서 고생하셨습니다. 산목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암. 암. 그대의 인선이 아니었나? 효풍. 고맙네! 홍 대협,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갑열과 산목도!”
“허허. 이제야 밥값을 한 기분입니다. 형님.”
“뭐. 고생 좀 했습니다. 석가장에서 술이나 조금 풀어주면야 그만입니다. 허허.”
“저도 이제는 석가장 사람이니, 응당 나서야지요.”
전해지는 건 고맙다는 따뜻한 말.
그저 사고였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 일을 하다가 당한 재난이라고.
그렇게 넘길 수 있었던 일이었다. 적어도 일가의 가주란 그럴 수 있는 이들이니까.
여기는 그런 게 당연한. 온정이란 게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린 낭만과 야만의 시대고.
그럼에도 석두원은 그러지 않았다.
그게, 내가. 또 이들이 석가장에 몸을 담은 이유일 거다.
“가세! 다들 가세! 오늘은 내 크게 연회를 열어야겠으니! 다들 모이라 전하시오!”
어느새 기운을 차린 석두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항구를 울려왔다.
– 와아아아아아!
석가장과 이를 지켜보던 항주항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울려 퍼졌다.
어느 때보다 거창한 귀환식이었다.
***
석가장 인원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는 꼬박 이틀이 넘게 계속되었다.
누구는 돌아온 걸 자축하는 의미로, 누구는 동료의 귀환을 축하하며. 난 쏟아지는 감사를 받으며 술에 취해갔다.
그렇게 석가장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것도 이제는 며칠 전.
지금 항주에는 풍화도에서 돌아온 석가장 이야기가 떠들썩했다.
아마, 큰 연회가 열린 덕에 이런 이야기가 더욱 넓게 퍼졌을 거라. 난 그렇게 판단했다.
“개뿔. 거지 놈이 무용담을 늘어놓고 다닌 탓이겠지. 뭐? 200의 왜인 무사를 홀로 상대해? 말도 안 되는 허풍을!”
진효풍은 조금 다른 생각인 거 같지만.
그의 말처럼, 개방 덕에 이야기가 더 퍼진 것도 없지는 않았다. 말로 먹고사는 이들이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진효풍은 그게 못마땅해 보였다.
“···진정하시지요. 전 다녀올 곳이 있어···.”
“흠. 어딜 가는 건가?”
“산목을 만나러 갑니다.”
“산목? 아! 오늘인가?”
산목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진효풍은 어떤 일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왔다.
그의 예상처럼, 풍화도와 접선하는 날이 오늘.
귀환한 가졌던 보고 자리에서 풍화도와 맺은 거래에 대해 석두원에게 알렸다.
큰 도움을 받았다는 말에 석두원은 당연히 이를 승인했고, 풍화도에도 이를 알린 게 며칠 전이었다.
오늘은 풍화도에서 보낸 사람이 항주에 닿는 날. 그리고 풍화도를 향해 첫 배가 나서는 날이다.
“그나저나, 풍화도만 대박이 터졌군. 아니 그런가?”
“그러게 말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풍화도에서 전해온 소식은 거래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탈출한 후의 소식도 전해온 풍화도.
범선에 불을 붙여 적선에 화공을 펼친 그 날의 후기는 생각보다 거창했다.
“부 도주가 중태에 빠졌다지? 덕분에 무길이 승기를 잡은 추세고.”
“예. 진 대협께서 배 운항에 소질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하필이면 부 도주가 탄 배에 정확히 들이박다니요.”
“허허. 내 뭐든 잘하는 편이지. 암. 노린 걸세.”
“설마요.”
“그렇지?”
하필이면 진효풍이 들이박았던 배가 부 도주가 탔던 모선이었다는 말.
덕분에 예술적인 폭발이 덮친 건 초절정의 무위에 이른 부 도주였다고 한다.
경지가 경지인 덕에 곧장 죽지는 않았지만 사경을 헤맬 정도라고 하니.
풍화도의 내전이 어쩌면 곧 끝날지도 모른다.
‘뱃길이 제대로 열리겠네.’
적들이 약세일 때 지원을 약속했던 우리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석가장은 풍화도에 정식으로 보호를 약속받은 곳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게. 난 정신 좀 차려야겠네. 술이 영 안 내려가니.”
“내기로 몰아내시지요.”
“그럴 거면 술을 왜 마시나? 여튼 가보게.”
도사답지 않은 답을 듣고는 그대로 석가장을 나와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서 날 기다리는 건 산목과 선단의 단주 손목건. 손목건은 멀리서 날 보더니, 곧장 달려와 날 반겨준다.
“이 공자! 아니, 걸어서 온 건가? 어찌? 내게 말하지 않고! 내 마차라도 보냈을 건데!”
“어, 얼마나 걸린다고 마차를···.”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인가! 아니지! 내 자네를 업어야겠네! 가세! 이 손모가 업어줌세!”
“과, 과하십니다···. 전 괜찮습니다.”
그는 잔뜩 들뜬 모습으로 내게 과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 단순히 범선을 구해와서. 선원을 구해와서 이러는 게 아니다.
손목건이 내게 이렇게 나오는 건 풍화도와 맺은 거래 때문.
석가장 배를 보호하겠다는 조항이 세간에 알려진 덕분이다.
당연히 이런 소문이 알려진 건 홍구 덕분이다. 그가 풀어두는 그의 무용담 속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들어가 있었다.
보통 배가 한 번 나포되면 거래가 뚝 끊기기 마련이다. 반대로 소문 덕분에 오히려 석가장 선단에는 거래가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겠나. 왜구에 나포되어도 직접 가서 구해오는 곳이 석가장이니.
비단 그런 소문이 아니라도, 사람들로서는 일을 맡기고 싶어질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고 걱정하느라 근심이 가득했던 손목건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져 있다.
온전히 책임을 감당하려던 그로서는 지금을 즐길 권리가 있을 거다.
“참, 그 범선 값은···?”
“아아. 무슨! 범선 열 척이라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네! 허허! 왜, 어디 또 쳐들어갈 일이 있다면 말만 하게! 내 잘 터지는 놈으로 준비함세!”
“···설마요.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암암. 내 다 이해하네. 자네야 뭔들! 아. 내일쯤이면 백가상단으로 향할 선단도 다시금 출발할 걸세!”
“그래요? 다행입니다. 잘 꾸려져서.”
“자네가 구해온 선원들이 그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원체 보채와서 말이지! 허허. 다들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네.”
본디 백가상단으로 향하려 했던 술도 모두 채워 넣고는 다시금 출항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술을 두 척 분량이나 구해왔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던 석가장 중진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연달아 술로 불을 질러 풍화도의 배를 태웠다는 말에 그들은 손뼉을 쳤고, 주공만이 가슴 아픈 표정을 지었다.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주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 표마차 30대···. 30대···.
라며, 중얼거린 후 술을 쓰게 삼키던 주공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산목은?”
“저기 오고 있을 거네. 풍화도의 배가 항주까지 오는 건 무리가 있으니, 연안에서 만나 배를 옮겨타고 올 걸세. 장인을 데리고 말이네.”
산목은 벌써 바다로 나가 풍화도의 장인을 데려오는 중이라고 한다.
– 솨아아아.
손목건과 함께 산목이 나간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적당한 크기의 수송선이 바다를 가르며 모습을 나타냈다.
풍화도로 타고 갔던 바로 그 수송선. 수송선 위에는 익숙한 모습으로 배를 모는 산목이 자리하고 있다.
산목의 옆에 어색한 중원인의 복장을 한 왜인이 자리하고 있어, 그가 장인임을 표하고 있다.
재료도, 장인도, 방법도, 거기에 새로 단장한 증류소까지 준비된 지금. 앞으로 더 바빠질 거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생산에 들어갈 건 오크통.
그 오크통에는 새롭게 뽑아낸 후아주부터 과하석황주, 브랜디까지. 많은 술이 담길 거다.
난 다가오는 배를 보며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솨아아아. 퉁.
산목과 오크통, 아니. 장인을 실은 배가 드디어 항주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