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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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군요.”
– 아, 줄 좀 똑바로 서시오!
– 거기! 옆에는 나루터로 가는 줄이니 이쪽으로!
– 거거거거! 질서 안 지키면 그대로 퇴출이오! 모르는 거요?
– 허어. 타지인인가?
– 초짜가 표를 내는군.
뭐. 이제는 익숙하다. 그런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 이른 시간부터 석호루 앞을 자리한다.
석호루에 일하는 누구도 저 풍경에 놀라는 사람이 없으며 저마다 입에서는 ‘또’라는 말이 나올 뿐이다.
철환은 굳건하게 칼을 차고는 그래, 이게 석호루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오늘은 후아주와 과하후아주가 석호루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날.
석호루 앞에 사람이 몰려든 이유는 이 때문이다.
“다들 어떻게 알고 벌써들 온 건지···. 신기합니다.”
“갑열 형제님이 항주를 돌아다닌 지는 조금 되었으니까요. 다들 모인 소문 정도는 자자하게 들어봤을 겁니다.”
“그래도 후아주가 오늘 나오는 걸 어찌?”
“글···쎄요? 허허. 누군가 소문이라도 내준 건 아닐지요?”
“누가?”
“저야 모르지요.”
– 씨익.
철환에게야 시치미를 뚝 떼었지만, 이건 내가 벌인 일이다. 당연히 소문을 내준 이들이야 개방의 거지들.
개방의 거지들은 인플루언서 자격으로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후아주와 과하후아주를 잔뜩 맛본 후였다.
그들에게 술을 풀고는 그대로 그들을 항주 주변의 여러 도시로 내보냈다.
신나게 어떤 맛인지 퍼트려달라고.
그들은 점점 블로거지에서 파워블로거로 탈바꿈해가는 중이다.
‘내돈내산은 아니지만···’
내입내맛? 그 정도?
효과는 굉장했다.
석호루 앞에 모인 이들이 그를 증명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이런 출시일에 저 풍경이 없으면 섭섭할지도 모른다.
“자자. 대기패를 받으십시오! 여기 한 분씩!”
이런 풍경이 자리하면 예전에야 늘 당황하고 어수선했던 게 석호루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몇 번이나 반복되면 다른 법. 지금은 석호루의 점소이며 호위며.
다들 능숙하게 이들을 다루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줄을 선 이들 역시 자정작용이 되니.
생각보다 중원이란 곳이 질서가 없는 곳은 아니다.
‘나중에는 어쩌다가···.’
그 꼴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만 좋으면 나야 그만이다.
“무언갈 또 하신 모양이군요. 흐음. 의심되는 건 개방이긴 합니다만. 무림인으로서 개방을 그런 식으로 이용했다는 상상은 끔찍하군요. 허허. 설마요.”
“저야···. 무림인은 아니라. 하하.”
“···아니시지요?”
“모,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쳇. 이래서 눈치 빠른 무림인은 귀찮다니까.
개방을 이렇게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림인들에게 숨기는 이유는 이런 반응 때문이다.
절대 알바, 아니 마케팅을 숨기려는 건 아니다.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곧 입장할 시간이군요.”
“예. 하나 둘 들여보내겠습니다.”
철환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잠시 후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점소이들. 오늘은 평소의 석호루와는 다르다.
오늘 바쁜 건 주임 점소이들이 아닌, 평범한 점소이들.
자리를 채운 손님들이 저마다 오기조원주나 기포주 같은 혼합주가 아닌 후아주와 과하후아주를 택했기 때문.
술에도 개업빨이란 게 없지는 않다. 새로운 술이 나왔으면 당연히 맛을 보고 싶지 않겠나.
거기에 나오는 술이 소문도 무성했던 모인이 만들었다는 그 후아주!
이건, 달려오지 않고는 못 참는 거다. 석호루는 개장과 동시에 만석을 이루고 말았다.
“흐으! 이 단맛 좀 보게나! 이러니 모인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거지!”
“허허허! 자네, 그 무슨 멍청하 소리인가? 이 과하후아주나 맛보게나! 이게 훨씬 진하면서 단맛이 좋으니!”
“과하후아주가 더? 바꾸세! 바꿔!”
“이백이 노래한 포도주가 이 맛이렸다!”
“야명배(夜明盃)가 없는 게 아쉽네, 그려! 허허허!”
잔잔하던 석호루에서 빠져나오는 소리들이 서호에 파문(波紋)을 일으킬 정도로 커져만 갔다.
석호루 안은 주향을 뛰어넘는 머루 향으로 가득 찬 지금.
단맛에 더해 산미와 부드러움을 느끼고 싶은 이는 후아주를 택했다.
단맛에 강한 자극을 원하는 이라면 과하후아주를 택했고.
두 개의 술을 동시에 출시한 이유가 이것이다. 알려주고 싶어서.
사람이 백이 모이면 취향도 백 개가 넘어가지 않겠나. 이곳은. 그러니까, 석호루는. 여기에 오면.
그런 취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고. 난 그런 말을 고객이라 불리는 저 중원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술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런칭하면 개업빨을 두 번이나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술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상계(商計)를 자꾸만 포기하게 된다.
바텐더들이 부자가 되기 힘든 이유가 어쩌면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석호루의 영업이 순탄하고 또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을 때.
석호루의 후문으로 쭈뼛거리며 익숙하지 않은 신형이 나타났다.
오늘을 위해 내가 특별히 초대한 손님. 그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 어색해 구석만을 타고 돌고 있었다.
난 얼른 그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전했다.
“형제님.”
“어, 엇. 이 공자.”
“오셨군요.”
“예···. 꼭 오라고 하셨기에···. 헌데, 어색합니다. 다들 절 보면 어떤 반응일지.”
내가 부른 초대 손님은 다름 아닌 갑열.
석호루를 채운 후아주와 과하후아주를 세상에 내놓은 장인 되시는 분이다.
항주에 살며 조금은 익숙해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쭈뼛거리는 그였다.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도, 오늘은 형제님에게 신경을 쏟을 정신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보시지요. 다들 술에만 정신이 팔려있지 않습니까? 다들 자기들의 시간을 즐기기에 바쁜 와중이지요.”
“흠. 그렇군요.”
어떤 걱정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색목인보다 더 신기한 게 그들의 앞에 놓인 술.
물론, 이 사람이 그 술을 만든 모인(毛人)이란 걸 안다면야 다들 뒤집힐 테지만.
굳이 그걸 말하지 않는다면야, 그렇게 신경이 쏠릴 일도 없을 거다.
“어떻습니까? 석호루는 처음이시지요?”
“···멀리서부터 제가 빚은 술의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이게 전부 후아주와 과하후아주인 겁니까?”
“예. 전부. 전부 형제님이 빚은 술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이쪽으로 가보시죠.”
난 어정쩡하게 내부를 훑어보는 갑열을 데리고는 석호루 2층으로 향했다.
당연히 그가 석호루를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시선을 던지는 이들은 없었다.
던진다고 해도.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석호루는 그를 보호할 게 당연한 일이고.
“여긴?”
“석호루 내부가 제일 잘 보이는 곳입니다.”
갑열과 함께 올라선 곳은 2층 중앙에 뻥 뚫린 공간.
둥글게 난간을 둘러둔 그곳에서 갑열과 난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술을 마시며 들리는 저마다의 얼굴이 그대로 우리의 시선에 들어왔다.
잔을 들고는 향에 취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잔을 입에 담고는 들리는 턱, 삼킨 후의 잔향에 감기는 눈까지.
그런 모습을 갑열이 천천히 눈으로 담아갔다. 그의 시선이 한동안 아래에서 떠나질 않았다.
몰랐을 거다. 모인으로 살 때는.
적어도 그때는 술만 두고 급하게 자리를 뜨기 바빴을 테니까.
누군가 그 술을 칭찬해도 술로 벌 돈과 자식 생각이 전부였을 거고.
어떻게든 안나의 약값과 얼음값을 대야만 했던 실정이지 않았나.
이제야 마주한 자신의 손이 빚은 마법에 갑열은 벅차오름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이들은 그 만들어진 것들이 용도에 맞게 쓰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바텐더도 양조인도 참 좋은 직업이다. 눈앞에서 바로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이들이니까.
내가 이 머나먼, 아니. 멀다는 말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중원 땅에서도 바텐더로, 또 양조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갑열도 같은 걸까.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나하나 그 모습을 눈으로 담은 갑열의 눈이 깊어졌다.
자신이 만든 술을 마시며 저런 표정을 사람들이 지어왔던 걸까. 그는 이제야 이를 바라보고 있다.
굳건했던 한 아비가, 어깨로 울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감사···. 그저 살기 위해. 안나를 살리기 위해 술을 빚은 게 전부였는데···. 그저 우리 두 명 살자고 빚었던 술인데···. 이렇게···, 이렇게 살 수도 있었던 거군요. 저게 뭐라고. 저 술이 뭐라고···. 크흑.”
사익을 위해, 아무런 사명감 없이. 가족을 위해.
그렇게 빚은 술이 다른 이들의 입에서 큰 의미로 발한다. 갑열은 오래도록 술을 빚어왔음에도 그 감정을 이제야 느낀다.
난 말 없이 그의 등만을 쓸어내리고는 그를 구석의 작은 자리로 안내했다.
평소라면 술을 마시지 않던 그.
오늘은 석호루 한 편에 자리 잡은 그가 풍경을 안주 삼아 후아주를 기울여갔다.
술을 섞고 인생을 바꿔주는 게 바텐더의 역할에 맞는 걸까. 현대에서 바텐더로 오래 살았지만,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는. 그래, 여기 중원과 석호루에서는. 여기서는 그럴 수도 있는 거라.
괜스레 나도 어깨가 올라가는 밤이었다.
***
“자자. 안으로, 안으로. 조심해서 옮겨야 합니다! 굴리는 건 괜찮습니다. 충격만 조심!”
후아주가 석호루에서 출시되고 며칠 후.
풍화도에서 1차로 만든 오크통이 항주에 도착했다. 하나씩 나서며 이를 점검해보니, 생각보다 퀄리티가 괜찮다.
‘걱정했는데···.’
그게 기우였던 모양.
장인은 오히려 본진에 돌아가니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생각보다 괜찮은 오크통을 만들어 내게 보내왔다.
수송선을 가득 채운 오크통이 차례대로 새로 지은 증류소를 채우기 시작했다.
“통입(桶入)은 언제 할 예정이더냐?”
“바로 하면 될 겁니다. 딱히 물참나무가 힘을 빼줘야 할 정도는 아니라서요. 우선, 후아주 먼저. 후아주부터 이곳에 담으면 될 겁니다.”
“새로 나올 황색 백주가 아니라?”
“후아주는 성질상 나무통에 오래 보관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팔리는 속도도 그렇고. 대신, 후아주 향을 입힌 후 거기에 백주를 저장할 겁니다.”
“흠. 그러니, 통을 돌려쓴다?”
“정확하십니다. 과연, 황실 인증 장인!”
– 딱!
오크통을 재활용하는 원리를 설명하며 주공에게 혹을 하나 얻은 후 머리를 부여잡았다.
황실 장인 맞으면서. 유독 저 말을 싫어한다.
어쨌건, 오크통의 최고 활용도는 이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앞서 담았던 술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것. 덕분에 술에 다양한 향미를 입힐 수 있는 게 오크통 숙성이다.
“네놈. 일전에 보여준 그 진액(津液)을 넣은 술은 팔지 않는 게냐?”
“그때 대석당에서 마신 것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술. 그대로 판다면야, 숙성도 필요가 없는 게 아니더냐?”
“아뇨. 다릅니다. 그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예. 실제 숙성과는 다르지요.”
“그래? 헌데, 왜 자꾸 만드는고?”
“···아셨습니까?”
“쯧. 개코를 속이거라.”
“역시 황실 장인!”
– 딱!
주공의 말처럼 팍사레트로 만든 술 역시 조금씩이나마 뽑아내는 중이다.
이를 시판할 생각은 없다. 속이는 것도 한계는 있는 법. 깊은 맛을 비교하자면, 숙성과 팍사레트는 차이가 있을 거다.
‘차라리···’
팍사레트를 원래의 용도처럼 쓴다면 몰라도 말이다.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을 초기 숙성 기간으로 잡은 만큼.
난 이런저런 시도를 모두 해 볼 예정이다. 오크통에 팍사레트를 바르고 숙성하는 정도면. 그래, 그 정도면.
나름 양심적이지 않겠나. 여기는 영국도 아니니 불법도 아니고.
숙성이란 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속으로만 생각해 보는 중이다.
석 달이란 시간이 길게도 보이지만, 술에게는 찰나와 같은 시간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약자는 인간이란 존재일 뿐. 술은 느긋하게 또 자신만의 흐름으로 천천히 익어갈 뿐이다.
“큽큽! 게, 아무도 없는가!”
그렇게 술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차후를 그려갈 때. 밖에서는 내가 꼭 한번 뱉어보고 싶었던 대사가 들려왔다.
이걸 뺏기고 말다니, 아쉬움이 드는 순간. 목소리는 익숙했다.
우리의 매화돌이 진효풍. 그래도 양조장에는 잘 찾지 않는 이였는데, 여기까지 무슨 일일까.
난 서둘러 대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진 대협···?”
“왜 못 볼 걸 본 표정인가?”
“여기는 잘 안 오시지 않습니까?”
“그야, 요즘 자네 얼굴을 보기 힘드니 안 그런가? 아침에 쌩! 하고 나가서는 밤에 터벅터벅 들어오니. 내 말이나 붙일 수 있어야지.”
생각해 보니, 그의 말처럼 대화를 나눈 게 며칠은 흐른 것만 같다.
요즘 들어 너무 바쁘게 움직인 게 사실. 그를 인정한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앞으로 내려섰다.
양조장에는 외인을 들일 수 없다.
“혹, 중한 말씀이라도?”
“딱히 그런 건 아니네만. 어쩌면, 그럴 수도?”
“예? 그럼?”
진효풍은 밖으로 나온 날 보고는 이런저런 표정을 복합적으로 지으며 말을 끌어간다.
무언가 할 말이 있긴 한 모양. 말을 들어보니, 이 말을 꺼내기 위해 날 기다려준 눈치다.
“자네, 이제 바쁜 게 한풀 꺾였으면 한 사흘만 시간을 내지 않겠나?”
“사흘···이나요?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어딜 조금 같이 갔으면 하네.”
“어딜···?”
“이제 자네 손으로 얼음도 얼리지 않나.”
“그렇지요.”
그는 살짝살짝 말을 던져가며 결론으로 날 데려갈 모양이다. 연신 고개를 갸웃하니.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네.”
!!
곧장 본론을 가져온다.
그제야 머리를 스치는 그와 나눴던 작지만 컸던 하나의 약속.
– 제 손으로 얼음을 얼릴 수 있을 때. 꼭 찾아뵙고 술을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에게 무공을 배우며.
스승을 떠올린 후 진효풍과 나눴던 약속이 있었다.
진효풍은 오늘, 날 찾아와 그 약속을 지켜달란 말을 전해왔다.
“가겠습니다. 아니, 가야지요.”
그제야 약속이 무엇인지 떠오른 난,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답을 전했다.
늦은 이행에도, 진효풍은 짙게 미소 지어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