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
***
“하나씩 말해주면 됩니다. 시작해 보시죠.”
“예. 공자님.”
석호루가 문을 열기에는 아직 이른 정오 무렵. 일찍 나온 점소이 하나를 대동한 채 지하실로 향했다.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석호루의 지하실. 호숫가 바로 옆 땅이란 특색 덕에 수맥의 한기가 그대로 묻어와 딱 술을 보관하기 좋은 환경이다.
“제일 처음으로 석황주(石黃酒)로 아주(兒酒)가 20말입니다. 거기에 아주로 오도주(五桃酒) 3말, 연미주(聯米酒) 2말···”
처음 출근하던 날 주공이라 불리는 장인이 대석양조장에서 술을 가져왔다.
미처 내가 살필 겨를도 없이 모두 저장고로 옮겼던 술들. 그렇기에 이렇게 다시금 현황을 살펴본다.
어떤 술이 잘 나가는지, 또 어떤 술이 재고가 많이 남는지. 이걸 파악하는 게 장사의 첫걸음이다.
점소이는 하나씩 앞부분부터 술의 종류를 읊어갔다. 난 지난주 장부와 이를 대조하며 실황 조사를 하는 중이다.
처음으로 마주한 건 석가장의 대표적인 술인 석황주. 이는 지난 주연에서 석두원이 자랑스레 선보였던 그 술이다.
“아주면, 묵히지 않은 술을 말하는 거지요? 오도주와 연미주는 황주일 거고.”
“예. 그렇습니다. 다음부터는 묵힌 술들입니다. 석황주 5년 묵힌 녀석이 6말, 10년 묵힌 녀석은 1되 반입니다.”
“좋습니다. 다음은요?”
“다음은 해풍량주(海風粱酒)입니다. 모두 아주로, 5말입니다.”
1말이면 내가 있던 곳으로 치면 18L쯤 된다. 이곳에서 쓰는 술병이 2홉, 약 360ml 정도가 들어가는 병이니, 1말이면 50병이 나온다. 들어오는 술의 양이 절대 적지 않은 석호루다.
“흠. 그래요?”
지난주 판매 실적이 적힌 장부와 납품된 술을 보던 중 이상한 점이 자꾸 눈에 밟힌다.
우선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넘어가길 잠시.
“과실주로 옆도시 소주에서 들여온 홍주(紅酒)는 8되입니다. 모두 아주입니다.”
점점 거슬리는 게 늘어난다.
술의 품질이나 주종이 거슬리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거슬리는 건.
‘왜 잘 팔리는 술을···’
석황주를 제외한 다른 술들의 납품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장부를 본다면 홍주라 불리는 과실주 역시 석황주만큼이나 잘 팔리는 주종이다.
앞서 나왔던 해풍량주에 비한다면 판매량이 3배는 될 터. 헌데, 귀신같이 한 주가 지나니 납품이 줄어든다.
장부에는 지난주가 반쯤 흘렀을 때부터 홍주가 없어서 못 팔았다고 되어있을 정도니, 이건 상식에서 어긋나는 납품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지지난 주의 장부에도 비슷한 추세가 보이니, 이건 다분히 의도적인 문제로도 볼 수 있었다.
“흠. 홍주는 대석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은 아니군요. 혹, 따로 전하는 말은 없었습니까? 수급이 잘 안 된다거나, 혹은 상했다거나.”
“아뇨. 딱히 그런 말을 듣진 못했습니다. 소주 정도면 한겨울에 술이 상할 정도의 거리도 아니지요. 아니, 애초에 술을 가져온 양반이 주공이지 않았습니까? 늘 이런 식입니다. 주공은 그냥 자기가 알아서 장부를 보고는 술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보내는 편입니다. 대석양조장이 직접 만든 술이 아닐 때는 더한 경우지요.”
“예?”
말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막장도 무슨 이런 막장이 있나. 어이가 없어 벙찐 표정으로 점소이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딱히 장사에 문제는 없어서···”
그래, 딱히 문제는 없었겠지. 하지만 또 속으로 드는 건 역시나 여긴 낭만과 야만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
체계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이 빠르게 머리를 때리고 갔다.
“위층의 행수들은 별말이 없었습니까?”
“술이야 없으면 결국 다른 걸 팔면 되지 않습니까? 약홍주를 찾는 손님께 약홍주가 없다고 고하면 해풍량주나 황주를 시키니···.”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는 말. 안일하기 그지없는 태도다.
“······.”
별별 업장을 전부 겪었다고 여겼다. 정말이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현대에도 한둘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건 좀 뭐랄까. 너무하지 않나. 특히나 바텐더 출신인 내게는 더욱 용납이 안 되는 처사다.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석호루 정도 되는 주루를 찾는 이는 응당 원하는 술이 있는 사람이다.
바를 찾는 사람도 그렇고.
그런 사람에게 선택권을 뺏고 다른 술을 마시게 의도 한다라. 이건 바텐더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백주는 어떻습니까?”
“석가장의 백주인 석백주야 그다지 유명하지 않으니까요. 저렴한 맛에 먹는 거지요. 해봤자 3말이 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백주도 다른 곳에서 떼어 둔 게 있긴 합니다. 남직예의 구온춘주가 6말 정도 남았을 겁니다.”
“그건 또 정상이군요.”
“백주야, 딱히 대석양조장에서 주력은 아니니까요.”
다행히 그런 모습이 백주에서까지 보이진 않는다. 이건 석가장이 운영하는 양조장이 황주에 중점을 둔 곳이라 그럴 터. 그래도 황주를 납품함에 누군가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 되고 있고, 그 누군가가 석호루의 이익에는 큰 관심이 없는 건 분명한 문제였다.
‘주공···.’
입가를 슬쩍 매만지며 전날 마주했던 성난 너구리 같은 인상의 노인을 떠올렸다.
양조장에 손을 뻗은 후에야 마주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 조금 더 빨라질 것만 같다.
***
“철 대협.”
지하실에서 올라온 후 그간의 장부를 살펴본 후 곧바로 철환을 찾았다.
석호루에만 고용된 이들보다는 본가인 석가장 소속의 철환이 이번 일을 상담하기에는 제격으로 보였다.
“예. 이 공자.”
“주공에 대해 아십니까?”
“예? 주공 말씀입니까···?”
역시나. 이름만 꺼냈음에도 철환의 표정이 당혹을 금치 못한다. 주공이란 이의 성질머리가 석가장 내에서는 아주 유명한 모양이다.
“별다른 정보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아시는 게 있다면 뭐든 알려주십시오.”
“흠. 쉽지 않은 질문이군요. 주공이라.”
철환은 잠시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을 잔뜩 찡그린다.
그 역시 주공에게 당한 일이 있는 것처럼.
“뭐, 그래도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술에 미친 사람이라 보면 될 겁니다. 이게 뭐랄까요···. 술을 붙잡고 매일 마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술에 있어서 주공은 마치 무인 같다고 해야 할까요.”
“무인이요?”
“무인은 무공에 미친 듯 매달리지 않습니까? 일신에 품은 무공이 제일이란 자부심도 있고. 딱 그런 모습입니다. 대신,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게 주공입니다. 흠. 사람보다야 술을 좋아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요.”
“복잡한 사람이군요.”
복잡한 사람이다. 철환의 말을 듣고는 주공을 그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들려오는 말에 괴팍함은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지만, 무언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
단편적인 생각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사람 같았다.
“따로 뒷주머니를 챙기거나 착복···, 그런 걸 할 사람은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전대 장주님 때부터 석가장에 몸담은 분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라면, 아직 남았을 수는 없지요. 착복이라. 허허. 제가 보기에는 주공이 딱히 그럴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군요.”
“그렇습니까?”
“자존심도 굉장히 강합니다. 공 총관께서 오셨을 때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남들에게 잘 굽히지 않는 성향은 자신이 떳떳할 때 나오는 법이지요.”
“흐음. 그렇군요.”
예상했던 것과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주공이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게 철환의 말.
딱히 친분도 없어 보이고 사람 대 사람으로 꺼리는 게 보이기에 더욱 믿음이 가는 말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작지만 문제가 있긴 합니다. 또, 주공이 하는 일에 의문이 가는 점도 있어 여쭤봤습니다. 만날 방법은 있겠습니까?”
“흠. 양조장에 가면 있긴 하겠지만···. 따지러 가는 거라면, 간다 해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을 사람입니다.”
“직접 물으려면, 여기로 부르는 수밖에 없겠군요.”
“부른다고 오기야 하겠습니까? 글쎄요.”
“어떻게, 철 대협께서 연행이라도···?”
“허헙. 외곽에 번을 서러 가는 걸 깜빡했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부장은 따로 번을 서진 않을 텐데. 그저 피식 웃고는 도망치듯 사라지는 철환을 보내줬다.
애초에 바란 것도 아니고.
철환을 보낸 후 곧바로 집무실로 달려가 작은 서찰을 작성했다. 이를 한 어린 점소이 편에 들려 양조장으로 보내길 잠시.
“이공자님. 그···. 양조장에 다녀왔는데 말입니다.”
“뭐라 하던가요?”
“······.”
돌아온 어린 점소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쭈볏거리는 그의 손에는 들려 보냈던 서찰이 봉납을 뜯지도 않고 그대로다.
“안 받던가요?”
“예···.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대문도 넘지 못했습니다.”
“허.”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직접 오라면 직접 가야지요. 서찰을 두고 나가서 일 보세요.”
뭐, 쉽게 와줄 거란 예상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너무 예상처럼 벌어지는 상황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잠시 밖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별수 있나. 오라면 가야지. 아마, 그간 주공을 상대하던 이들은 대부분 이쯤에서 더럽다며 침 한 번 뱉고는 그대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난 다르다. 끝까지 간다. 적어도 그게 술과 관련된 거라면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집무실을 나와 한마디만을 남기고는 곧장 대석 양조장을 향했다.
하지만.
“양조장에는 원래 외인을 들이지 않는 법입니다. 죄송하지만, 물러가시라는 전언입니다.”
돌아오는 건 문전박대뿐이었다.
“···오라길래 왔더니, 이게 무슨 경우랍니까?”
“소인은 그저 허드렛일하며 심부름하는 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공께서 그리 전하라 하셨기에 말을 전할 뿐입니다.”
“······.”
양조장 대문 앞까지는 당당히 걸어왔다. 허나, 굳게 닫혀 있는 양조장의 문.
원래 양조장이 외인의 출입을 잘 허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다만, 이번만큼은 내가 외인은 아니지 않나.
거기에 양조장에 정식으로 고용된 것도 아닌 하인만이 나와 말을 전할 뿐이니, 그에게 더 따지는 것도 이상한 그림이 그려졌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석호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기서.
대부분을 넘어 조금 더 버텼던 이들도 이쯤에서는 주공을 상대하길 포기했을 것이다.
뭘 따지든 드잡이질을 하든 만나야 무언가 되지 않겠나. 헌데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이렇게 사람을 질리게 하니 다들 떨어져 나갔을 터.
난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장부와 들어온 물건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를 이런 결과를 낸 사람을 불러 물어야 하는 게 당연지사.
이에 대한 답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주공밖에 없다. 헌데, 만날 방도가 없으니. 소란이라도 일으켜 주공을 부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홍 부장!”
석호루로 돌아와 제일 먼저 찾은 건 홍악이다. 점소이 중 대장 노릇을 하며 내게 반기를 들기도 했던 홍악.
하지만, 그런 홍악은 단 하루 만에 내게 제압되었고 그 후에는.
“예! 이 공자님!”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는 중이다. 부장이란 아무런 권한도 없는 감투까지 씌워주니, 이제는 충성 맹세도 얼마 남지 않은 거로 보였다.
“지금 손이 한가한 분들이 좀 있습니까?”
“예! 아직 영업 전이라 한가한 이들이 많습니다. 열 명 정도는 충분할 겁니다!”
“잘 됐군요. 그분들을 모아서 지하실 입구로 모아주시겠습니까? 지금 바로요.”
“지금 바로 말씀입니까?”
“어렵겠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바로 모아 오겠습니다!”
“수레도 몇 대 불러주십시오.”
“옙!”
홍악은 마치 쌩! 하는 소리를 내려는 듯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발을 몇 번 박차자 아직 영업 전 어딘가에 짱박혔던 점소이들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인 이들의 숫자도 심지어 정확히 열 명이다.
아직 포목점에서 의복이 나오지 않아 각자의 옷을 입은 점소이들이 차례대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밖에는 수레 역시 정갈하게 주차되어 있다.
“지금부터 지하실로 내려가 양조장에서 받은 술을 전부 빼낼 겁니다. 오늘 쓸 정도의 양만 딱 두고, 모두 빼면 됩니다. 오늘 팔 술은 따로 표시를 해두었으니, 보면 알 겁니다.”
“저, 전부 말씀입니까?”
“전부.”
설마 진짜냐는 듯 물어오는 말에 단호하게 답하자 더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어제 있었던 일 덕분인지 말발이 제법 먹힌다.
“싫습니까?”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특히나 잘 먹히는 건 역시 홍악이다. 제일 경력도 나이도 많은 그가 선창하자, 다른 점소이들 역시 나설 수밖에 없다.
홍악은 그대로 점소이들을 호령해 아래로 내려 표시가 되지 않은 술 단지를 모두 밖으로 빼냈다.
“그대로 수레에 실으시면 됩니다.”
빼낸 술은 그대로 바닥이 아닌 수레로 향한다. 차곡히 쌓여가며 마치 배달 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다 실었습니다. 이 공자님.”
상층에서 일하는 행수와 시비들도 또 주방에서 일하는 숙수들도.
모두 고개를 내빼고는 이게 무슨 일인지 구경하기 바쁘다.
새로온 관리인이 갑자기 술을 빼더니 수레에 싣는 모습이 어지간해서는 보기 쉬운 모습은 아닐 테니까.
어느새 번을 서야 한다며 모습을 감췄던 철환까지 다가와 슬쩍 이를 구경하고 있다.
철환은 잠시 이걸 조용히 지켜보더니.
“서, 설마? 이공자!”
하며 내게 달려왔다. 무언가 예상이 가는 듯한 표정이다.
“철 부장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주공이 술에 미친 사람이라지요?”
“예! 그랬지요. 헌데, 그런 미친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면 물리고 말 겁니다!”
“괜찮습니다. 설명해 달란 서찰도 무시하고 오래서 갔더니 만나주지도 않더군요. 헌데, 난 당장에 그 사람 얼굴을 봐야겠습니다. 이걸 보고 깨물러라도 제게 달려와 주면 고마울 지경입니다.”
“······.”
너도 미친 거냐. 그런 표정이 철환의 얼굴에 걸린다. 이런 통찰력 깊은 사람이 있나.
역시 무인은 다르다.
공교롭게도 술에 미친놈이란 별명은 내가 있던 곳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말을 듣던 사람.
미친놈에게는 원래 미친놈이 답이다. 오늘 제대로 미친 짓을 해 그 미친 사람을 이 미친놈 앞으로 불러오리라.
난 그런 생각으로 수레에 앉은 점소이들에게 미친 소리를 외쳤다.
“이 수레 그대로! 대석양조장에 가져가 전하십시오! 모두 반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