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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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아래로! 조심히 내리거라!”
주향(酒香)과 나무 향이 가득한 주고(酒庫)에서 인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통을 겨우 아래로 내려온다.
밧줄로 세게 묶어 지렛대를 이용해 내림에도 그들의 볼에는 땀이 마르지 않아 보였다.
어느덧 서늘해진 날씨도 소용없는 지금. 육중한 크기의 통 안을 가득 채운 술이 땅으로 향했다.
– 투웅!
“이놈아! 통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아주 경을 칠 것이야!”
제법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자, 뒷짐을 지고 목소리만 키우던 주공의 목소리가 고점을 찍는다.
저 정도는 괜찮을 텐데. 그 역시 처음 열어보는 오크통 숙성 브랜디가 생각보다 많이 기대되는 눈치다.
“계속해서 내리거라!”
같은 풍경이 몇 번이나 더 이어지며 제일 위로 쌓아둔 오크통이 모두 아래로 내려왔다.
3개월이란 짧은 숙성 기간 동안 나무와 섞여 호흡하며 맛을 그대로 빨아들였을 브랜디들.
사실 일반적인 스코틀랜드나 프랑스의 증류소라면 제일 위쪽에 있는 오크통에서 바로 술을 출하하진 않는다.
제일 높은 곳은 그만큼 지붕과 가까운 법. 열기를 제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술에 있어서 열기는 가장 큰 적 중 하나다. 그렇기에 매번 오크통을 순환시켜 줘야 하는 게 디스틸러의 역할.
하지만, 우리 증류소는 그런 거 없다.
딱 3달이 숙성의 전부이지 않나. 어떻게든 술을 빠르게 출하하기 위해 열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함을 모르지 않았다.
위쪽에 놓인 술이 더 잘 익었을 거라. 그런 판단에 난 위쪽에 든 술만을 빼내려는 중이다.
“흠. 이 정도면 1차 출하로 모자라지는 않겠구나. 네가 열겠더냐?”
“주공이 열어보셔도 됩니다.”
사실 안에 든 내용물이야 난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술이야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것이니 매번 확인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다만, 주공은 아직 이 술을 제대로 맛본 적이 없어 궁금증이 더욱 도진 상태일 거다.
그는 언제 준비한 지도 모를 주걱을 가져와 오크통 옆에 작게 난 구멍을 열고 술을 퍼 올릴 준비를 마친다.
– 뽕!
하며 막힌 마개를 뚫으니, 진득한 향이 천천히 불어와 주고를 채우는 것만 같았다.
‘아직···.’
완벽하게 숙성된 향은 아니다. 적어도 현대의 기억과 경험이 있는 내 코에는 그렇게 여겨지는 향.
그래도 여기 중원인들에게는 다른 걸까. 옆에서 일을 돕던 다른 이들은 저마다 고개를 들고는 향을 즐겨갔다.
나무향이 은은하게 주향과 섞여 제법 증류소다운 향이 가득 퍼져만 갔다.
“흐음.”
주공은 잔뜩 만족한 표정을 지어가며 주변에 주걱을 건네기 시작했다.
저마다 맛을 보는 증류소의 장인과 고용인들. 갑열 역시 어느새 다가와 주걱에 입을 대고는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아.”
“후우.”
“흐음.”
하며 비슷한 결의 소리를 들려주는 이들.
‘역시.’
생각보다 술이 잘 익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적당한 숙성이 이루어진 듯 보였다.
보통은 마실만한 술이라면 6개월은 숙성해야 함이 오크통 숙성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유럽의 기후를 기준으로 봤을 때의 일.
여긴 중원이다. 항주고.
유럽의 기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그래도···.’
적당한 선례를 하나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대에서 온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이미 내가 지내던 곳에서는 지금과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기온에서. 오크통에 술을 숙성시킨 선례가 있었다.
안에 들어간 술은 조금 다른 위스키.
이름도 유명한 대만의 ‘카발란’ 위스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대만의 술 전매제도가 풀리고 2000년 대가 되어서야 시작된 게 카발란의 사업.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카발란은 빠르게 성장했고 좋은 평을 함께 들으며 아시아 위스키의 평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때 카발란이 내세운 것이 기온을 이용한 빠른 숙성. 남들에게는 단점으로 보이는 그 높은 기온을, 카발란은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난 카발란의 사례에서 항주의 기후를 봤고, 덕분에 3개월이란 짧은 시간에도 시판에 나설 수 있는 브랜디가 나오게 되었다.
본디 곡향(穀香)이 중심이기에 나무 향이 짙게 묻어 나오는 위스키와 달리 과실 베이스의 브랜디란 점도 한몫을 했을 거다.
브랜디는 술 고유의 향 역시 나쁘지 않은 술이다.
‘또···.’
이건 암암리에 전해지는 말이지만, 카발란 위스키는 팍사레트를 썼을 거란 의심을 강하게 받는 브랜드다.
나 역시 이를 참조해 이 술에 더한 게 팍사레트.
당연히 팍사레트 원액을 술에 탄 건 아니다. 이는 오히려 개성에 조화를 없앨 수 있기에 추천하지 않는 법.
내가 택한 방법은 나름의 정통을 지키는 방법으로, 오크통 안에 팍사레트를 발라 맛을 더한 방법이다.
덕분에 3개월 숙성이란 짧은 숙성 기간에도 나름 셰리, 아니. 과하후아주의 향이 술에 묻어있다.
완연히 진득한 건 아니지만, 중원식 진득함. 그래. 난 그렇게 이 진득함을 표하기로 했다.
“어떻습니까? 팔아도 되겠습니까?”
“암. 좋구나. 좋아! 나무 향이 훨씬 자연스럽고, 꾸덕함 역시 적당히 묻어있구나. 이걸 팔지 않는 게 오히려 장인으로서 죄악이니. 당장에 출하해도 문제가 없어 보이느니라.”
“허면, 출하하라 명하겠습니다.”
원액을 탔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맛에 주공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것도 완전한 내추럴 셰리는 아니지만, 뭐.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술을 만드는 이들은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주공은 술을 출하해도 좋다는 말을 전하고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주고 안을 누비고 다닌다.
갑열까지 대동한 주공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른 오크통이 있는 곳들.
후아주와 과하후아주가 보관된 주고에서 주공은 여전히 주걱을 놓지 못한다.
후아주마저 오크통의 풍미를 머금어 더욱 풍성해진 요즘이다.
“크흐! 이 맛에 양조장에서 일하는 것이니라!”
“적당히···드십시오. 팔 것도 모자랍니다, 요즘은.”
주공은 한참이나 관리를 빙자한 시식으로 주고를 돌아다닌 후에야 빨개진 얼굴로 돌아왔다.
어느새 내려둔 오크통에 담긴 술들이 차례차례 병으로 들어가고 있는 증류소의 풍경이다.
주공은 병입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하나씩 술병을 살폈다. 고약한 영감님, 조금이나마 흘릴까 그걸 감시하네.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즈음.
“응?”
주공의 고개가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는 아닐 거다.
“이게 왜···? 네놈, 확실히 병에 담고 있는 것이렷다?”
역시나.
주공은 오크통에서 나와 곧장 단지로 향한 술을 보고는 이런 반응을 보여준다.
난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모르지 않아.
‘후.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그에게 다가섰다.
주공(酒公)이란 이름이 서럽지 않게, 오크통 하나에서 몇 단지의 술이 나오는지, 귀신같이 알아보는 그였다.
“저어, 주공?”
“기다려 보거라. 분명, 오늘 출하량에서 나와야 하는 술이···?”
주공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흔히들 말하는 ‘엔젤스 셰어’. 즉, 증발량 때문.
술은 일정 도수가 넘어가면 상온에서도 호흡하며 자연스레 증발하기 마련이다.
서양에서는 홀로 없어지는 이런 부분을 가리켜 ‘엔젤스 셰어’. 즉, 천사의 몫이라 불렀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술이 사라지니, 이걸 천사의 소행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행이라 보겠나.
낭만이야 있다만, 술을 빚는 입장에서는 데빌스 셰어가 더 어울리는 말 같지만.
어쨌든, 통용되는 단어는 천사의 몫. 엔젤스 셰어.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낼 순 없다.
천사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오면, 저 해맑게 옆에 선 색목인이 발작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조상의 몫, 정도?’
혹여라도 말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난 속으로만 이를 떠올렸다.
“자연스러운 겁니다. 술이 날아가는 양이 있지 않습니까?”
“내 평생 술을 빚었지만, 이만큼 술이 날아간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중원의 술인 백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주공이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고작 3달 만에 그 양이 눈에 보일 정도였기 때문.
흔히들 옹기라 부르는 단지에 술을 숙성하면 증발량이 크게 늘진 않는다.
적어도 옹기는 술을 흡수하진 않을 테니까.
반대로 오크통, 즉 나무는 술이란 액체를 직접 빨아들여 머금기까지 하는 재료다.
거기에 그 나무가 물참나무라면 증발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모, 못해도 넉 단지는 모자라구나? 그것도 한 통당?”
대만의 위스키인 카발란이 연 10%의 증발량을 산출했음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설 등이 미비한 지금은 16% 정도가 내 예상.
즉, 400리터 한 통 당, 3달이며 16리터의 엔젤스 셰어가 생긴다는 말이다.
주공의 얼굴이 사색인 이유는 이러했다.
“나무통 때문입니다.”
“나무통···? 이 통, 말이더냐?”
“예. 주공. 물참나무지 않습니까? 통이 물을 먹기에 증발하는 양이 늘어나는 겁니다.”
“증발하는 양이 늘어나···?”
“매년 1할 6푼 정도. 석 달이니, 4푼이 사라진 게 맞습니다.”
!!!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주공은 이제야 전해지는 증발량을 듣더니, 취기가 싹 사라지는 표정을 지어준다.
이렇게 듣는다면야 적어 보이는 양일수 있지만, 이 술을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절대 적은 양이 아니다.
술에 애정이 큰 주공이라면, 이는 생살을 베어가는 것만 같을 거다.
“4, 4푼? 1년이면 1할 6푼···?”
주공은 한참이나 내가 정확히 뱉어간 숫자를 입으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위로 든다.
무언가 아찔해지는 기분이 드는 모양.
“1할 6푼···!”
한 번 더 1할하고도 6푼을 더 외친 그는.
“꺽!”
– 쿵!
이내, 뒤로 몸을 눕히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역시나.
증발량은 데빌스 셰어란 이름이 딱 어울릴 것만 같다.
***
“으음.”
“한 장로.”
달빛이 아주 조금 밀려 들어오는 어두운 방 안.
촛대에 밝지 않은 불에 의지해 서신을 읽던 노인에게 한 젊은 무인이 다가섰다.
노인은 그제야 누군가 들어선 걸 알아채며 서신을 놓고는 눈가를 살짝 어루만지는 모양새다.
피곤함이 가득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다.
“쉼 역시 하나의 정진입니다. 어찌 이리 무리하시는지요?”
“수장의 자리를 비운 게 벌써 수년일세.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현재는 장로께서 수장입니다. 건강을 돌보셔야 합니다.”
“허허허. 백충. 자네는 언제나 정론으로 내 말문을 막아 버리는군. 허나, 임시는 임시의 용도가 있는 법. 내 이제는 자리를 떠나고 싶음이야.”
“해도···.”
차라리 자신이 그 자리를 꿰차기라도 하지.
백충이라 불린 사내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중 그만 고개를 내젓고 만다.
자신이 한 장로라 불리는 노인을 존경하는 이유. 아마, 저 변치 않는 충심도 한몫하고 있을 거다.
“···들어온 소식은 조금 있습니까?”
“알겠지만, 답보 상태라네. 자네도 알지 않나? 몇 년째 수소문하고 있네만···. 행적이 뚝 끊긴 상태라네.”
“다른 분들은?”
“그분이 유일한 적통이네. 현재로는.”
수장의 자리가 비워지고 몇 년. 정보를 수소문하며 모으기로는 그 이상.
지금 찾고 있는 대상은 중원이란 넓디넓은 땅에서 정체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황하에서 잃어버린 모래를 찾기가 어디 쉽겠나. 모든 역량을 쏟음에도 언제나 무리는 있다.
“그래도···. 비슷한 흔적이 몇 개는 있네만.”
!
“어떤?”
“한공(寒功). 한공의 흔적이 중원에서 다시금 꿈틀거리는 눈치네. 아직, 우리가 찾는 분과 같은지 알 수는 없네만···. 어쨌든. 중원 무림에 한공이니 빙공이니 하는 무공이 다시 나온 건 참으로 오랜만이지 않나?”
“···혹, 궁에서 쫓겨난 이들은?”
“흠. 알 수는 없네. 아직은.”
긍정적인 기대를 품는 노인과 달리 젊은 무인은 생각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여러 흔적을 그도 많이 보았기 때문일 터.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낭설이었다.
그래도 젊은 무인은 차마 노인의 기대를 꺾어내지 못한다.
“···기대하고 계시군요.”
“흠. 몇 년 만에 얻은 소식이 아닌가? 혹시나에 혹하는 게 나이에 어울리지 않음을 모르지 않네. 허나, 그래도 기대는 되는 일. 사람을 보내볼 생각이네.”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제가 직접 확인하는 게 제일 빠르지 않겠습니까?”
“흐음.”
기대는 되지만, 기대는 확신과 다르다. 그걸 모르지 않는 노인은 혹여나 닭 잡는 곳에 소 잡는 칼을 쓰는 것만 같아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나 기대는 불안함을 이기는 법. 노인은 만약에 진짜라면. 정말이라면.
하는 말을 몇 번이고 속으로 되감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선 백충이라면, 일을 허투루 할 사람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자네라면···. 암. 흔적 정도야 쉽사리 알아보겠지. 믿을 수도 있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제 직속으로 부하 몇을 데려가겠습니다.”
“허면, 내 자네에게 부탁 좀 해봄세.”
“명만 내려주십시오.”
“섬서와 사천의 경계로 가게. 그곳에서 녹림의 우두머리 몇이 한공에 당한 흔적이 있다고 하니.”
노인은 이내 결심을 굳히고는 백충에게 상세한 임무를 전달한다.
곧장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어오는 백충.
“존명!”
그의 말이 울리자, 달빛이 조금 밝게 방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런 달빛을 받은 두 무인의 머릿결이 은빛으로 빛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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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젤스 셰어.
– 천사의 몫이라고도 부르는, 전설의 그 증발량입니다.
– 브라운 스피릿, 오크통 숙성의 숙명입죠..!
– 고도수의 술이라면, 비단 오크통이 아니어도 증발되기 마련입니다. 다만, 오크통은 그 양이 조금 더 많습니다.
– 사진은 카발란 증류소의 엔젤스 셰어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 카발란의 경우 첫 1년 10% 이상의 증발률을 보여줍니다. 다만, 설비 등의 차이가 있어 석가장은 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역시나 데빌스 셰어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