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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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귀하다는 말도 입 아프시지요?”
석호루가 문을 열 준비에 한창인 여느 때와 같은 날.
3달 전과 같은 풍경에 철환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준다. 내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이 풍경이 놀랍다는 말도 입이 아플 거다.
“···또 개방을?”
“이번에는 그저 새 술이 나온다고만 알렸습니다. 같은 방식도 여러 번 쓰면 너무 꾼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꾼처럼 보이긴 하는데.
철환은 그런 말을 애써 삼키며 눈으로 뜻을 전했다. 새로운 수법의 전음인 모양이다.
“영업 시작합시다!”
그의 눈빛 역시 가볍게 피하고는 석호루의 문을 연다. 늘 그렇듯 들이닥쳐 자리를 채우는 중인들.
오늘은 나무통에 숙성한 브랜디가 석호루에 출시되는 날.
이렇게 모여든 이들은 그저 내 이름만 보고 온 이들로 새로운 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제는 그렇게만 말을 퍼트려도, 난 홀로 석호루를 가득 채울 정도의 인지도는 여기서 쌓은 모양이다.
문득 뿌듯함이 몰려오는 때. 현대에서는 바텐더의 유명세가 곧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바라는 곳은 때로는 한적함이 장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니까. 허나, 지금의 난 상인도 겸하는 중.
이렇게 손님이 몰릴 수만 있다면야 나쁜 점이라곤 찾을 수가 없을 거다.
‘물론.’
어떤 술이 나올지, 그 정체도 모르고 몰려든 손님 역시 때로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고.
솔직히 불안함이야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출시 가격이 그리 낮지 않으니까.
여러 면을 고민해 봤을 때 발효주와 주정 강화주였던 과하석황주, 후아주와는 가격을 같이할 수 없었다.
증류주는 증류주니까. 그래도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지금.
다행히 그런 노력이 빛을 보긴 했다. 완전히 저렴하지는 않아도 일반 백주 정도의 가격.
난 딱 그 가격에 맞춰 오크통 숙성 브랜디를 석호루에 출시할 수 있었다.
기후 덕분에 숙성 기간을 줄이고 풍화도와의 오크통 거래에서도 이득을 봤기에 가능했던 가격이다.
“새로 나온 술!”
“여기도! 이번에는 어떤 술인가!?”
“새로 나온 술로!”
자리를 채운 이들은 저마다 손을 들어대며 새로 나온 술을 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이게 어떤 술인지는 몰라도 석가장의 이 공자가. 또, 석호루가. 이렇게 선보이는 거라면 믿음이 생긴 모양.
그저 이런 이들에게 가격도 아무런 고지도 없이 술을 팔고 나중에야 계산서를 들이밀 수도 있다.
허나, 석호루는 그래서는 안 되는 곳이다. 야만과 낭만의 시대에서 낭만을 맡는 게 석호루.
그렇기에 난 점소이들을 시켜.
“손님. 우선, 대석양조장에서 출시한 술에 대해 설명을 먼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설명?”
새롭게 나온 술에 대한 설명부터 손님들께 들려주라는 특명을 내린 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술에 대한 교육은 이미 철저히 해둔 뒤였다.
점소이들은 저마다 작게 소분한 술을 들고는 손님의 식탁으로 다가가 이를 시음할 수 있게 도왔다.
“이 술은 황백주(黃白酒)라 불리는 술로 황색을 가졌지만, 실상은 백주입니다. 한 번 향을 맡아 보시지요.”
“응? 황색인데, 백주?”
백색이기에 백주라 불리고 황색이기에 황주라 불리는 게 상식이다.
이를 깨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손님들. 허나, 그들은 모두 향을 맡는 순간. 저 이름이 가진 의미를 알아채고 만다.
!!
“이, 이건!”
“향은 분명 백주구만! 백주!”
“무슨 이런 일이? 황주에 백주를 탄 것인가?”
자신들이 처음 보였던 것과 같은 반응에 점소이들은 미소를 만개했다.
인자하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그건 아니란 설명을 붙여주는 그들.
“나무통에 숙성하며 나무의 향과 맛을 입어 그렇습니다. 숙성한 술은 후아주를 증류한 백주로 풍미가 일품입니다. 여기 조금 덜어 왔으니, 한 번 드셔보시지요. 입맛에 맞으시다면, 편히 주문하시면 됩니다. 가격은 일반 백주와 같습니다.”
연달아 과하지 않은 홍보 한 번으로 첫날 황백주의 출시 행사는 끝이 난다.
이제는 손님들의 주문만이 남은 순간.
“흠. 내 취향은···. 아닌 거 같군.”
“아아. 난 좋네! 이거, 진득한 맛이 예사롭지 않군! 이걸로 함세!”
“쓰읍. 가격이 조금?”
“아니! 백주 가격에 이런 술을?”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늘 그렇듯 호불호.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어떤 술이라도 호불호는 있을 테니까. 다만, 앞선 술들처럼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 건.
아마, 가격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다.
‘역시.’
백주는 고급 주종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
이게 발목을 잡는 것만 같다.
처음 석호루에 손을 대며 이곳에 들리는 손님들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1층과 2층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머니가 생각보다 가벼운 이들.
그렇기에 백주는 석호루를 찾는 손님들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방법은···’
다 있는 법.
석호루는 이미 이를 타파할 방법이 있는 곳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그 방법이 정통성을 찾아가는 걸지도.
난 점소이들에게 눈짓하며, 가격 때문에 주문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한 번 더 다가갈 것을 전했다.
점소이들 몇 명이 빠르게 눈치를 살피고는 손님들 곁으로 다가섰다.
“손님. 혹, 황백주 한 병을 모두 드시는 게 부담이라면 이를 기포주로 즐겨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리고 손님에게 점소이들이 전하는 말은 황백주를 기포주로 즐겨보라는 말.
이건 햄을 김치에 싸서 먹으라는 황당한 권유가 아니다. 이미 석호루는 백주에 진저 비어를 넣은 기포주가 있는 곳.
그 기포주에 기주(基酒)만을 황백주로 바꿔 제공한다는 게 내가 택한 방법이었다.
‘오히려.’
이쪽이 하이볼의 원형에는 더욱 가까울 터.
현대에서도 하이볼은 대부분 브라운 스피릿에 타서 마시지 않나. 그게 이제야 중원 땅에 제대로 모습을 나타낸다.
“오. 그런 방법이? 내 그렇지 않아도 한 병을 모두 비우지 못할 거 걱정이었네! 절대 돈 때문이 아니라! 크흡!”
“물론입니다. 황백주는 독한 술이기에 신중하셔야지요. 기포주로 드시면 맛이 더욱 풍부할 겁니다. 가격이야 일반 기포주보다는 조금 더 비싼 편입니다.”
“그쯤이야! 허허. 허면, 그 기포주로 두 잔! 그렇게 부탁하네!”
일반 기포주야 술지게미를 증류한 소주에 진저 비어를 탄 것이기에 가격이 매우 저렴한 축에 속했다.
기주가 바뀌었다면 하이볼의 가격 역시 바뀌어야 할 터. 그럼에도 손님은 이를 흔쾌히 수락한다.
황백주를 홉 단위로 시켰을 때의 가격보다야 이는 훨씬 저렴할 것이다.
부자들이라면 부담 없이 이를 시켜 먹을 거고.
조금 부족해도 잔으로 이를 즐길 수 있을 터.
칵테일도 차차 늘려가며 점소이들을 교육할 예정이니, 황백주의 정착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마치 그를 예견하듯.
“크흐!”
“허으!”
“하아!”
하는 소리가 석호루를 가득 채웠다.
***
“죽여야겠구나.”
– 휘릭.
방안을 가득 채우는 서류들 사이로 학사의 복장을 한 중년의 사내가 별일이 아니란 듯 말을 뱉는다.
너무도 가벼운 그의 말에 앞에서 듣던 이는 살짝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마치 날벌레를 죽이는 것 같은 말이지만, 대상이 사람인 건 경험으로 아는 그였다.
“누구를 말씀인지요?”
“누구겠느냐?”
“···구양방(九釀幇)의 적이라 사료됩니다.”
“암. 가장 큰 적이지.”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은 구양방이란 방파에 소속된 이들. 항주를 포함한 절강의 뒷골목. 즉, 흑도를 주름잡는 게 이 구양방이란 이들이었다.
도박장부터 기루, 객잔, 주루하며 술이 개입하는 곳이라면 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
처음에야 양조장의 모임이 이룬 모임이라지만, 밀주를 통해 성장한 이들은 이제는 온전히 하나의 흑도 방파로 탈바꿈한 지금이다.
“···혹?”
“이름이 떠오르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공자.”
!!
“이 공자라면···?”
“알지 않더냐?”
“석가장의 그 이 공자를 말씀이십니까?”
“허허. 다른 이름 중 그만한 이름이 있는고? 밀주 때는 그러려니 했고, 황주와 후아주에서는 참았다. 허나, 백주를 낸 지금은, 참을 수가 없구나.”
다른 술들이야 밀주 가격이 얼마 하지 않으니. 또, 백주가 남았으니.
그렇게 참았던 게 구양방의 입장이다.
허나, 황주도 홍주도 석가장의 것을 모두가 마신다지만, 백주는 달랐지 않나.
덕분에 백주와 백주를 가장한 밀주로 많은 이문을 남기던 구양방은 이제와 백주를 내는 석가장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보였다.
요즘은 석호루가 객잔과 주루는 물론, 도박장과 기루의 손님마저 뺏어가는 실정이기에 학사는 오히려 일이 늦었음을 자책하는 것만 같다.
“···방주께서는?”
“허락하신 일이다.”
“그래도, 위험합니다.”
이미 윗선의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도 중간급 간부의 입에서 이를 만류하는 말이 나온다.
이야기를 들으며 붓을 놓지 않던 학사가 처음으로 붓을 내려둔다.
“어찌하여?”
“석가장이란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아시지 않습니까?”
“구양방의 이름은 작고?”
“······.”
구양방은 석가장에 비견해도 절대 꿀리는 이름은 아니다.
석가장이 항주제일가라면, 구양방은 항주를 제외한 절강성 제일의 방파.
정면으로 부딪친다면야, 승패는 누구도 감히 장담할 수 없을 거다.
다른 세력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도···.”
“화산괴협과 개방의 천수식개. 두 이름이 문제겠지.”
물론, 그런 승부의 균형을 가볍게 부수는 이름이 석가장의 주변에 있기는 했다.
화산의 장로이자 초절정의 고수 진효풍. 그리고 개방의 후계자이자 완연한 절정의 고수 홍구.
두 이름 중 하나만으로도 흑도에게는 버겁기에, 무사는 망설이는 걸지도 모른다.
“둘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묘안(妙案)이 있으신지요?”
“둘을 항주에서 치우면 그만이 아니더냐?”
“그게···?”
가능한 일이냐.
자연스레 나온 되물음에 학사는 다시금 붓을 들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말을 풀어가며 붓을 놀리는 그.
그의 붓이 오가는 서류에는 수많은 숫자가 가득해 이들이 다루는 금전이 적지 않음을 표하고 있다.
사내는 계산에 능해 보였다.
“가능한 일이니라.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 새끼는 탐나고, 호랑이는 겁이 나니. 산을 오르기 전 호랑이를 치우는 게 이치가 아니겠더냐?”
“진효풍을 항주에서 옮긴다는···?”
“홍구도 함께 옮기는 게 좋겠구나. 가능하다면, 개방의 다른 거지들도.”
“쉽지 않을 겁니다. 석가장만이라도···. 또한, 뒷일은?”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무사는 일을 저지르고 학사는 이런 모든 경우를 계산하고.
하지만, 이름이 작지 않기에. 오히려 무사가 경우를 계산하고 학사가 일을 저지르는 것만 같다.
“바뀌었구나, 위험하다에서 쉽지 않을 거란 말로.”
“······.”
“뒷일이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니라. 흔적은 지우면 되는 일. 그 역시 어렵지 않음이야.”
“구양방에는 타격이 없겠습니까?”
“있겠지. 다만, 지금을 유지했을 때보다는 적을 것이다. 꼬리는 자르고 어둠에 숨는다. 언제는 흑도가 그랬지 않았더냐? 또한, 성공한다면야 이 공자라는 이름은 지워질 터이니. 남는 장사로구나. 암. 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야.”
“······.”
학사는 이미 모든 경우를 계산한 것처럼 자신 있게 말을 뱉어갔다.
무사는 조금 불안한 모양. 다만, 명이기에 그는 적당히 입술을 깨문 후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학사의 말처럼 개방과 진효풍, 그리고 홍구가 항주를 떠난다면, 도모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석가장이야, 무가의 성격을 많이 잃은 곳이기도 하고.
“무사대를 준비하겠습니다.”
“흠. 정예로. 석가장을 빠르게 치고 목표만을 거둔 후 사라진다. 늘 하던 대로.”
“존···명.”
무사는 결심을 굳힌 듯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명령을 접수했다. 어디서 펼쳐진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목표는 석호루와 양조장의 관리인 이 공자, 이정환. 나머지 판은 내가 깔아둠이니, 넌 무인을 이끌고 이 공자의 목만을 노리거라.”
학사는 아무렇지 않은 일을 하나 처리했다는 듯 서신을 넘기고는 손으로 무사를 물렸다.
은빛도 얼음을 스친 바람도 없지만, 다른 의미로 차게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