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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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무인들이 경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묵직하고 잔잔하게 전해지는 한 무사의 보고에 학사가 눈빛을 가늘게 빛냈다.
보고를 들은 그의 얼굴에는 ‘계획대로’라는 표정이 스친다. 그는 마치 일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규모는?”
“개방, 석가장, 그리고 항주의 몇몇 무관이 합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두를 이끄는 이들은 천수식개 홍구와 화산검협 진효풍, 풍운권장 석두원입니다.”
“흐음. 역시구나.”
역시.
그런 단어를 택한 학사의 입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정파의 무인들이란, 참으로 다루기 쉬운 이들이 아닐 수 없다.
“쯧. 그깟 협의지심(俠義之心). 그걸 버리지 못하니.”
그깟 협의지심. 바닥에 침 한 번 뱉듯 퉤! 하면 그만일 텐데. 고작 그런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을 학사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에는 모든 대사를 정파의 무인이란 이들은 그 협심 하나로 망치질 않나.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협의며 협객이며 이름이며. 그런 것에 연연하며, 그렇게.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걸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이 공자라는 이름의 금이 나오는 한 젊은 청년을.
“그래도···, 남건삼흉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저들에게는 진효풍까지 있지 않습니까? 천수식개는 물론이고, 풍운권장도 한 때는 강남을 호령했던 대협입니다.”
“쯧쯧. 당연한 소리를. 남건삼흉이며, 그의 수하들이 감히 그 상대가 되겠더냐? 맞붙는 순간, 일방적인 토벌이 될 것이다.”
“예?”
무사의 짧은 물음에 학사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차게 답을 전해간다.
상대가 안 될 걸 안다는 그의 말. 마치 남건삼흉을 보내는 건 아무런 일이 되지 않는다는 그의 눈빛.
“애초에 그들을 처리해 달라고 남건삼흉을 부른 게 아니니라. 남건삼흉은 그들이 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터이니.”
“허면···?”
“누가 개방에 남건삼흉이 경원에 있음을 흘렸겠더냐? 경원 같은 크지 않은 도시에, 종적을 감춘 지도 몇 년이 지난 악적이 있음을 말이다.”
“혹?”
당신이냐.
그런 수하의 눈빛에 학사는 말없이 웃으며 답을 대신한다. 제법 비릿한 눈빛에 수하는 슬쩍 발을 물릴 뻔했다.
“몇 달 전, 개인적으로 남건삼흉을 주살해 달라는 의뢰가 있었느니라. 이참에 남의 손을 빌리면 편한 일이 아니더냐?”
“남건삼흉이 경원까지 간 건?”
“세상만사, 흉(凶)자가 붙은 놈들치고 금전에 움직이지 않을 놈들은 없지.”
학사는 유려하게 흐르던 붓에 잔뜩 들뜬 감정을 실어 이를 흔들고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수하의 머리를 스치는 지난날의 요약.
남건삼흉을 죽여달라는 의뢰로 돈을 받았고 역으로 그 돈으로 남건삼흉을 움직여 항주 무인들을 빼낸다.
덕분에 해결되는 건 두 개. 남건삼흉의 처리와 항주를 빈집으로 만드는 것.
이번 일에서 학사는 한 번에 두 개의 일을 간단히 처리해 버린 것이다.
악인(惡人)이란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이가 있을까. 상관임에도 무사는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앞길을 막는 이들만 치우면 그만이니. 덕분에 얻어가는 금전은 그저 부수적인 것들이지. 그래도, 지금 항주에서 얻을 것보다는 못함이야.”
학사는 그런 수하에게 똑똑히 기억하란 뜻으로 이번 일의 최종 목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남건삼흉을 잡아 넘겨도 받을 돈보다 훨씬 큰 가치.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에서 구양방 최대의 적.
항주, 석가장, 석호루의 이정환이란 이를 말이다.
“곧, 우리의 타격조가 항주로 접어들 것이다. 조만간 술 단지를 깨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겠구나.”
– 탁.
학사는 처음으로 붓을 내려놓으며 짙게 웃었다. 마치 무언가를 마무리한 이의 표정이 아리는 그.
“방주께 보고를 올려야겠구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체구가 왜소하기 그지없었다.
***
“흠. 여전하군요.”
적당하게 붐비는 것을 보니, 이제는 후아주도 과하후아주도, 심지어 백황주의 런칭빨도 끝이 보이는 것만 같다.
길게 늘어선 줄이 서호를 몇 바퀴는 두를 것만 같던 것도 단 며칠. 이제는 이렇게 사람이 빠지는 것도 익숙한 참이다.
철환은 그를 보며 여전하다는 말로 이를 평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첫 출시 때는 거품도 끼어있으니까요.”
“예. 저 역시 이 모습마저 익숙해지려는 참입니다.”
“···그나저나, 참 조용합니다. 새벽에 있었던 일이 마치 아무 일이 아니라는 듯.”
그런 철환에게 살며시 꺼내 본 말은 전날 있었던 출정식과 관련된 말.
철환 역시 한때는 본가 무사대에서 조장을 맡았던 무인이기에 전날의 일을 모르진 않았을 거다.
반면, 중인들의 반응은 마치 오늘도 다른 날과 변함이 없는 하루처럼만 보였다.
경원이라는 사흘 거리에서는 곧 혈사(血事)라 불릴 일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하루에도 말이다.
누군가 본다면 항주에는 아무런 파란도 없는 것만 같은 지금.
“원래 무림의 일이란 게 그렇습니다. 무림인이 아닌 이들에게 들리는 소식 중 좋은 소식은 많지 않지요. 중인들에게는 이게 좋은 징조일 겁니다.”
철환은 제법 멋진 말을 들려주며 내게 이런 평온함이 나은 것임을 알려준다.
내심, 주변인들이 항주를 거나하게 떠난 지난날을 알아주기 위한 마음이 읽힌 걸까.
그들은 그런 걸 바란 게 아님에도 말이다. 협객은 본디 중인들의 말과 관련 없이 움직이는 이들이다.
“철 대협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제가 듣기로는 총관께서 철 대협께도 연통을 넣었다고?”
“저 말씀입니까? 하하하. 예. 총관께서 절 아직 잊지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연통이 오긴 했습니다.”
“떠나셨을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까? 허허. 흠. 그래도 석호루를 지켜야지요.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갑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든든합니다. 지금 쯤, 반 정도 가셨으려나요?”
“흠. 경원이니, 사흘 정도 걸리겠군요. 아마 반 이상 갔을 겁니다.”
“다들 무사하셔야 할 텐데요.”
경원이면 항주에서 빠른 걸음으로 사흘이면 닿는다. 석가장을 비롯한 다른 무인들이 서두른 이유 역시 이것.
언제든 그들이 항주로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새벽에 출발했으니, 이제 꼬박 하루가 지난다. 이틀 뒷면 닿을 게 경원.
곧 소식도 들려오겠지. 난 그런 생각에 초조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얼굴을 아는 이들이 석가장 무사대와 개방 타격대에 얼마나 포함되었던가.
그들을 다시금 무사한 얼굴로 마주하고 싶을 뿐이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건삼흉이 악적이고 사안이 시급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선 이들의 이름이 더 작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요. 제가 가지 않은 건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예. 처음이라 그러실 겁니다. 걱정은 잠시 내버려두시지요.”
철환은 걱정이 가득한 내 등을 쓸어내리며 애써 위로의 말을 전한다.
진효풍과 홍구, 석두원이라면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을 조합인 건 사실.
다만, 왜인지 바텐더의 직감이란 게 싸늘하게 불어올 뿐이다. 안 좋은 소식, 안 좋은 예감. 그런 것.
생각보다 바텐더의 직감은 잘 맞아떨어지곤 했다.
하루의 운수나 사건 사고를 예견하는 거야 경험에서 오는 직감이니까.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무언가 하나 일이 터질 때만 느껴지는 감정.
말로는 전부 표현하기 힘든 예감이었다.
‘별일···없겠지.’
난 슬쩍 고개를 들고 경원이 있을 법한 방향을 바라봤다. 무탈하길. 항주는 그대로일 테니.
그저 그런 바람으로 석호루의 하루를 시작할 뿐이었다.
***
“확인했나?”
해가 지고 해보다 밝은 불빛이 초롱을 채우면, 비로소 항주의 밤이 시작된다.
어두워진 하늘이 오히려 주루의 빛을 더욱 밝게 비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은 밤.
야음이 아닌, 인파를 타고는 제법 많은 낯선 얼굴이 항주의 시내로 숨어들었다.
어쩌면, 숨어들었다는 말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그저 평범하게.
또, 항주답게. 그저 천천히 인영에 몸을 숨겨 항주로 걸어 왔을 뿐이니까.
다만, 그게 항주에 잠입하는 방법으로는 최선일 것이다.
“확인했습니다.”
“상황은?”
“석가장은 굳게 문을 잠그고 일상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그 말은?”
“평소에는 대문이 닫히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무언가 바뀌었음이 분명합니다.”
석가장 정도의 큰 가문이라면 굳이 대문을 닫고 지낼 필요가 없다.
번을 서는 무사가 밤낮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을 터이니 문을 굳이 닫아 무엇하겠나.
그게 성세를 나타내기에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다만, 그런 문이 닫혔다면 이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문을 닫아 감춰야 할 무언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흠. 다른 쪽은?”
“항주 거지의 씨가 말랐습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석호루에는 여전히 철혈장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이 출발하기 전 입을 맞췄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그런 생각에 타격조의 조장을 맡은 무인은 가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좋아 타격이지, 실상은 살수로 나선 참이 아닌가. 이럴 때 앞에 나서는 이들은 버리는 패에 속할 터.
이미 본거지를 떠난 순간, 방은 이곳에 나선 이들과의 고리를 끊으려 애를 쓰는 중일 거다.
그러니 연락이며 연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저 명을 따르고 성공하고, 그 보상을 쟁취하는 수밖에.
“일을 그대로 진행한다. 술 단지는?”
“석호루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목표는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가서 깨트리면 그만.
이를 지키는 무인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상관없다. 그보다 더 강한 무인은 이미 치웠지 않나.
이 정도도 감수하지 않고는 보상을 바랄 수가 없다.
“좋다. 석호루 같은 공간에서 암살은 불가(不可)하다. 직접 들어가 석호루를 함께 태운다. 조를 두 개로 나눠 하나는 석호루. 나머지는 석가장의 무사대의 시선을 끈다.”
“옙!”
성공만 한다면야.
그리고 잘 숨기만 한다면야.
멍청해 보이는 생각이지만, 대부분의 범죄는 이런 단상 덕분에 일어난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머리에 띄운 이들이 많을 뿐이다.
“철혈장도는 최소 둘. 많게는 셋이서 담당한다. 유사시에는 직접 출수(出手)할 터이니, 곧장 말하거라.”
“옙!”
“혹여나 방해하는 자들이 있다면 누구든 살(殺)해도 좋다. 이해했나?”
듣기로는 술 단지 역시 무공을 제법 익혔다는 정보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이야 없었지만, 진효풍에게 배웠다는 전언.
그렇다고 쳐도 그가 무공을 시작한 건 고작 1년이 전부 되지 않았다.
허. 1년이라. 1년 사이에 무공을 배웠다고 한들 얼마나 배웠겠나.
노련한 살수의 암수를 벗어날 수는 없음이다. 돌발의 사태를 대비하더라도.
이는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닌 거로 보였다.
“거사를 끝낸 후, 각자 흩어져 복건으로 남하한다.”
“존명!”
석호루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모인 이들이 동시에 석호루를 내려다봤다.
입구에는 목표인 술 단지가 보였다. 앞으로 밝게 웃으며 나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
그런 술 단지를 피해 삿갓을 눌러쓴 건장한 손님이 둘 스치듯 안으로 향했다.
달빛에 비치며 살짝 보이는 그들의 옅은 은발.
“저들.”
“저 삿갓 쓴?”
“그래, 저 둘. 저 둘의 상에 잔이 나오는 때를 기점으로 움직인다. 신호는 저들이 잔을 들 때. 거사는 그때가 시작이다.”
“다들 위치로!”
조장은 그 손님을 기준으로 모든 일의 기준점을 잡아간다. 무언가를 감추려는 모습이 노골적이기에 눈에 보이는 그들.
기준으로 삼기에는 딱인 모습이다.
그렇게 각자 맡은 역할을 위해 구양방의 살수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는 신호를 대기했다.
몇 번의 말을 물은 은발의 사내들이 잔을 받고 이를 살피길 잠시.
그들의 입으로 잔이 향하던 때.
“술 단지를 깬다.”
– 서릉! 서릉! 서릉!
석호루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는 달빛을 머금은 몇 개의 날붙이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검은 인영들이 석호루로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