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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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계단 아래에 있는 지하실. 그런 지하실에 촛불을 밝힌 지 어언 한식경 쯤.
서늘한 바람이 가득한 지하실 내에서 홀로 무언가를 하던 난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지, 진정하십시오! 주공!”
“비키라지 않느냐! 내 당장!”
“어어어! 잡거라! 잡으래도!”
“직접 잡으십시오!”
“어디 갔느냐! 이놈이 어딜 갔냐는 말이다!”
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음먹고 행패 부리는 이를 잡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리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내 말이 있었기에 적당히 말리던 이들은 결국 그를 아래로 보내준 모양이다.
– 다다다다다다다!
하는 거친 발소리와 함께 연달아.
– 콰앙!
하는 육중한 지하실 문이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겨울임에도 따스한 주루 안의 공기가 일시에 찬 곳을 향해 빨려 들어왔다.
“네 이노오오오오오옴!”
다음으로 들려오는 건 역시나 노성이다. 노성을 내뿜는 건 땅에 붙은 듯 작은 키를 가진 노인.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한 그를 보니 여전히 화난 너구리가 떠오른다.
“문 닫으시지요. 술이 있는 곳입니다. 찬 공기가 밖으로 샙니다.”
“네놈이 감히!”
지하실로 들어선 주공은 기대한 그대로의 노기를 잔뜩 내뿜었다.
자신이 엄선해 배달한 술을 그대로 반품한 게 그에게는 이리도 화가 날 일인 모양이다.
“서찰도, 방문도 거절하시더니, 반품하니 이렇게 뵐 수 있군요. 신기합니다. 참.”
“감히 사람을 보자고 그런 짓을 저지르더냐! 날씨가 조금만 따뜻했어도 술이 몽땅 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걸 아느냐!”
“모를 수가 없지요. 아직 겨울이니 그랬던 것입니다.”
“뭐라?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말은!”
제손으로 빚은 술이니 애정을 담는 건 당연히 이해가 간다. 다만, 그리도 술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
아니, 어쩌면 술에 대한 애정 때문일지도. 복잡 미묘한 생각에 더욱 차분함을 가지고는 그를 바라봤다.
“뭐! 뭐가 말이더냐! 도대체 뭣 때문에 이리 시비를 걸어!”
“시비가 아닙니다. 이상한 게 있으니 당사자를 만나 따지려는 게 아닙니까.”
“이상? 애송이 놈이 뭘 안다고···!”
“압니다. 적어도, 술은.”
“허.”
주공은 술을 안다는 말에 혀를 차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비웃음이 역력한 그의 모습이 만용처럼 보였다.
“이리 오셨으니 이제부터 따져보면 되겠군요.”
“귀찮다. 애송아. 본론만 말하거라. 어쭙잖게 기 싸움을 하려거든 가서 점소이 놈들과 부대끼기나 하거라.”
그의 태도는 명확했다. 나 같은 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 그런 태도가 아마 저리 분노하는 데에도 일조했을 것이다.
기선을 넘겨주기 전에, 그의 말대로 본론을 바로 가져왔다.
“석호루에 배달한 술. 주공이 임의로 수량을 조작하신 게 아닙니까?”
“뭐, 뭐라? 조작?”
“아닙니까?”
“이놈아! 석호루에서 별다른 말이 없기에 내 마음대로 술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게 어찌 잘못이란 말이냐!”
“그게 정상적이지 않으니 하는 말이 아닙니까? 주공께서 장부도 볼 줄 모른다는 게 그럼 더 말이 되는 겁니까?”
“······!”
“석호루는 분명 지난주의 판매량을 공시한 장부를 대석양조장에 보냈습니다. 허면, 그를 보고 판매량과 대조해 술을 납품하는 게 정상이겠지요. 헌데, 막상 제가 확인하니 이건 장부와는 정반대로 납품되어 있더군요. 이걸 트집 잡는 게 그저 시비로 보이십니까?”
주공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목조목 따져대는 내 말에 그저 거친 눈빛만을 보낼 뿐이다.
별다른 반박이 터진 건 아니지만,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 말을 참고 있는 게 명백히 보이는 모습이다.
“···해서, 석호루가 술을 못 팔았더냐? 지난주도! 그 지난주도! 아니, 한 달 전에도! 석호루에서 술이 모자랐던 적이 있냐는 말이다!”
“없습니다.”
“헌데, 이게 어찌 문제란 말이냐!? 네놈이 그냥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닌 이상···!”
“주루에 오신 손님이. 원하는 술을 못 마시는 상황이 자꾸 벌어지니 제가 이리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까!”
잠시 말을 듣던 난 말도 안 되는 그의 반박에 똑같이 노성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듣기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랄! 주루에 원하는 술이 없으면 다른 술을 마시면 되는 거지 그게 무슨 문제라고!”
“주루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술이 모자랄 수는 있습니다! 헌데, 이건 아니지요! 애초에 모자라지 않아도 될 술이 모자란 게 전적으로 양조장에서 술을 공급해주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왜 잘 팔리는 술을 줄이고 그렇지 않은 술만 늘렸냐, 이 말입니다!”
이성을 잃은 건 아니다. 이쯤에서는 질러줘야 했기에 지른 말. 정곡을 찔러오는 내 말에 주공은 슬쩍 입을 다문다.
무언가를 알아냈을 거란 예상은 했겠지만, 이렇게 정면에서 반박을 받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다.
애초에 장부만 쉽게 훑는다면 알 수 있는 문제였다. 다만, 다른 이라면 넘어갈 수도 있었던 것 역시 사실.
그의 말처럼, 손님이 원하는 술이 없다면, 다른 술을 팔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런 걸 인정할 순 없었다. 적어도 바텐더였던 난 말이다.
손님은 귀한 시간과 어렵게 번 돈을 들고 업장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업장을 찾을 때면 분명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을 터.
헌데, 그런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도 모자란 판국에 기대를 저버리는 짓을 한다? 이건 바텐더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천재지변의 영향을 받아. 그래서.
손님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허나, 그게 누군가의 사심을 위한 것이라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또한, 이는 기본적인 신념을 넘어 사업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한 업장에 들러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와 차선책을 얻었을 때 손님이 느끼는 경험의 가치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원하는 걸 얻은 경험을 한 손님이, 해당 업장을 다시 찾을 확률이 높다는 건 당연한 상식일 거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상업적인 관점에서도 주공의 행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는 일이다.
답 없이 깊어지는 눈으로 주먹을 꽉 쥐는 주공. 그의 입이 열릴 생각을 않자, 먼저 운을 뗀 건 나였다.
“술이 불쌍했습니까?”
딱히 재수 없게 보이려던 건 아니었다. 다만, 말을 뱉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썹을 교차한 건 실수.
이건, 비꼬려는 의도가 아닌 너무 뻔한 일이었기에 나온 표정이다.
제손으로 빚은 술이 귀하게 대접받길 원한다. 야만과 낭만의 시대인 지금도.
또 내가 있던 곳에서도 술을 빚는 이라면 한 번쯤은 겪는 감정이었다.
주공은 내 말을 듣고는 속이 들여다 보인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네놈. 서역에서 술을 빚었다더니, 헛말은 아니로구나.”
부임한 첫날부터 어찌 알고 찾아왔던 그였다. 석가장의 공식적인 자리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지만 소식은 모두 듣고 있어 보이는 그.
그는 내가 부임했다는 것도 첫날부터 알았고, 또 내 지난 약력까지 이미 아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제손으로 빚은 술, 어디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겠습니까.”
들려온 답은 명확했다. 내 말을 인정하는 듯한 그의 태도. 잘 팔리는 술이 있다면 반대로 팔리지 않는 술이 있다.
주공은 자신의 손으로 빚은 술이 어떤 술은 사랑받고 어떤 술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해서 직접 공급량을 조작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의 입으로 소비되는 게 술에게는 최종 목표일 터.
언젠가는 팔릴 술이 아닌, 잘 팔리지 않는 술을 부러 더 넣어 납품해, 억지로라도 손님에게 이를 먹이려는 게 그의 의도로 보였다.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거라, 애송이.”
“애송이라지만, 술에 대해서는 제법 아는 편입니다.”
“중원은 다르다.”
“뭐가 그리 다릅니까?”
“그걸 모른단 말이더냐? 석호루에 벌써 두 날이나 출근하고도 그를 모른다니, 네놈도 글렀구나.”
“말이 공허하십니다. 비꼬는 말은 제게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습니다.”
“보고도! 보고도 모르니, 글렀다는 말이 아니더냐! 취하기만을 위해 술을 퍼붓는 것이 주루를 찾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에게 어떤 술을 주던 그게 왜! 그게 뭐가 그리 잘못이란 말이냐! 내가 빚은 술이다! 내가 직접! 이 손으로! 그 가치도 모르는 놈들에게 어떤 술을 주던···!”
“설령 실상이 그렇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게 술을 다루는 이들입니다.”
최대한 단호하게. 그리고 눈에는 힘을 주고. 그렇게 주공의 말을 단박에 끊어 냈다.
이건,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했다.
“···네놈이 이제는 날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네깟 놈이 술에 대해 뭘 안다고! 서역에서 굴렀다고 아주 자만이 넘치는구나.”
“허면, 확인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주공이 술을 더 잘 아는지. 아님, 제가 더 잘 아는지 말입니다.”
!
사람은 가끔 감정이 최고점을 찍으면 그와는 반대되는 감정으로 표현되곤 한다.
지금 주공의 상태가 딱 그럴 터. 주공은 노기를 넘어서 어이가 나간 모습으로 웃음과 비슷한 모습을 얼굴에 지어갔다.
“허허허. 이 미친놈이 제대로 미쳤구나! 치우거라. 애송이 놈과 손을 섞어 내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내 오늘은 네놈에게 경고하러 온 것이니.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했다가는 경을 칠 것이니 그리 알 거라.”
그는 달관에 가까운 실소를 터트리고는 가볍게 돌아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난 그를 이대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겁이 나십니까?”
!!
어느 곳이든 통하는 도발이 이번에도 주공에게 적절히 먹힌 것 같다. 그럴 줄 알고 쓴 것이긴 하지만.
자존심 강한 이들은 특히나 이런 도발에 약하다. 쫄리면 죽으라는 말. 그 말에 주공이 걸음을 멈추고 휙!하고 뒤를 돌았다.
“네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내기 한 번 어떠십니까?”
“내기라? 내가? 네놈과? 무얼 위해?”
“내기에서 이기신다면, 다시는 주공이 어떤 식으로 술을 공급해도 트집을 잡지 않을 겁니다. 약속드리지요. 대신, 주공이 지신다면,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셔야 합니다.”
“허허허. 미친놈! 제 것을 걸고 내기에 드는 놈도 있다더냐? 내가 싫다고 거절한다면? 거절한다면, 네놈이 도리가 있더냐?”
주공은 사뭇 진지하게, 또 여유롭게 말을 받아치며 내기를 피하려 했다. 이건, 승부의 앞날을 몰라서 피하는 것이 아닌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태도였다.
“있습니다. 이대로 자리를 떠나신다면 오늘부로 석호루와 대석양조장의 거래는 모두 끊길 것입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웃기는 소리! 석두원이가 그걸 두고 보고 있을까!”
“석장주의 꿈이. 석호루일 거 같습니까, 대석양조장일 거 같습니까? 또, 혹시 모르지요. 새로운 인물에게 힘을 실어 줄 수도.”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자신 있는 한 방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주공의 머리에 다른 생각을 심어보려 한 말.
지나가는 말로 석호루가 석두원이 꿈꾸던 사업 중 하나였단 말을 들었었기에 지를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붙은 말은 말 그대로 공갈이자 허세라 볼 수 있다.
한 가문에 오래도록 종사한 이의 가치를 모르지 않기에 마지막 말은 다시 생각해도 무리수였을 지도 모른다.
“······.”
스스로 내린 평가와는 달리 앞에서 이야기를 들은 이는 다른 반응을 보여준다. 허세가 주공에게는 크게 먹힌 모양.
워낙에 모난돌로 살며 이곳저곳에서 원성이 자자한 그가 아닌가. ‘어쩌면, 지금의 장주는.’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에 가득할 수 있다.
그걸 채우는 게 저 말을 던진 이유였고.
“허니, 내기 해보자는 겁니다. 누가 더 술에 대해 잘 아는지. 결국, 주공의 말씀은 제가 술을 모르는 애송이니 말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게 아닙니까? 전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잡념이 끼었다면 고민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서둘러 말을 붙이며 그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몰아쳤다.
그러자.
“···내기라면 어떤 내기를 말하는 것이냐?”
드디어 바라던 말이 나온다.
“술로 시작한 싸움이니 술로 결착을 봐야지요. 마침, 여긴 술 저장고가 아닙니까?”
“허. 여기 쌓인 술은 모두 내가 빚은 술들이다. 알고는 하는 말이더냐?”
“괜찮습니다.”
“괜찮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오냐. 해보자. 무얼 하든, 내 술로 네놈에게 질 일은 절대 없으니.”
섣부른 오만은 언제나 큰 실패를 불러온다.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내가 여기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도 모르진 않았을 터.
그는 흥분과 오만이 눈을 가려 적진을 향해 자신이 걸어왔다는 것도 잊은 채 내 조건을 받아들인다.
무얼 하든 이란 말에 옅게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웃음을 겨우 삼키고는 주공에게 내기의 내용을 설명했다.
“제가 제안할 내기는 간단합니다. 제가 술을 섞어 볼 테니, 맞춰 보시는 겁니다. 어떤 술이 들어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