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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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무슨···?”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은발 사내의 등장에 당황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쌍검을 찬 사내는 자신의 발을 강하게 걷어찬 은발의 사내를 노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한 습격 중에도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 게 분명해 보였다.
“다시. 다시 말해보라 했다.”
“뭘?”
“저분의 한공이 잡기술이라?”
“하. 네놈은 누구더냐? 석가장에서 온 것이냐? 쯧. 본대를 차단하라 인원을 그리 보냈거늘.”
“오거라. 내 보여주마. 그 잡기술보다 못한 한공이 어찌 네놈을 찢어놓는지.”
둘의 대화가 좀처럼 쉽게 통하질 않는다. 서로가 할 말만 뱉어가는 두 사람.
대화 예절이야 차치하고라도, 두 사람이 무언가 뜻이 안 맞는 건 명확한 지금이다.
“누구···십니까?”
“쉿. 운기 중에는 입을 열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정식으로 예를 갖추는 건 잠시 후로 미루겠습니다. 그저, 적이 아니란 건 확실합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격통 속에서 내 혈도를 잡아주는 앳된 이에게 말을 물어갔다.
우릴 돕는 사람인 건 확실해도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나. 그는 그저 여유롭게 웃어 보이고는 차차 인사를 나누잖다.
예를 갖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앳된 무인은 내 등에 손을 올리고는 천천히 기운을 불어넣어 혈도에서 독을 몰아내 갔다.
그의 손을 타고 전해지는 기운이 무척이나 익숙한 기운이다.
‘서늘하지만 포근한···’
마치 스승의 검인 한은검을 처음 잡았을 때와 같은 기분.
편안한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르는 걸 느끼며 입을 다물고는 눈을 뜬 채, 건장한 사내의 행동을 주시했다.
사내의 손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검이 들려 맞붙을 준비를 끝마쳤다.
두 무인은 또 소통이 부재한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서로를 향해 살기를 뿜는 중이다.
“오냐. 어차피 술 단지 깨는 걸 막을 참이라면. 내 모두 치워주마.”
“오거라.”
– 탓! 탓!
– 쩌어어엉!
강한 기운을 머금은 둘의 신형이 중간에서 겹쳐졌다. 곧장 일검을 교환하는 둘.
당연하다는 듯 은발의 사내는 한기가 가득 서린 검을 휘두르며 쌍검의 사내를 당황케 했다.
서둘러 검을 흘려내는 쌍검의 사내 손에 퍼런 서리가 가득 묻어 버린다.
– 휙! 투툭!
“네놈도 잡기술을 익혔더냐?”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오냐. 내 그 잡기술을 어찌 처리하는지 네놈에게도 보여주마.”
쌍검의 사내는 스치듯 당한 한공에도 여유를 내비친다. 한공이라면 이미 내게서 한 번 경험한 덕분일 터.
격검을 피하고 빈틈을 노린다. 그의 전략은 이번에도 같아 보였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장께서는 쉽게 당할 분이 아니라서요.”
이를 지켜보며 어렵사리 앳된 사내에게 말을 건네니, 그는 여유롭게 웃고는 걱정하지 말란 말을 전해온다.
앞선 사내가 그리도 듬직한 걸까. 쌍검을 찬 이가 예사롭지 않은 무위였기에 내 걱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 휘이이이잉! 쩌저저정!
그런 걱정이 무색한 광경이 곧장 눈 앞에 펼쳐지고 만다. 생각보다 느릿하게. 또, 정직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그렇게 뻗어오던 은발 사내의 검을 뒤로 피해낸 쌍검의 사내의 몸에 붉은 핏물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
쌍검의 사내는 옅게 물든 가슴팍의 상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검은 분명히 피했거늘 어찌 상처가 묻어 나온다는 말인가. 거기에 검기라면 자신이 느끼지 못했을 리도 없을 터.
이건 검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가슴을 베고 간 자국이라. 난 은발 사내의 무공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얼음···?’
정확히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한기라고 하기에는 실체가 있었고 빙기라기에는 보이지 않으니.
그저 사내가 검으로 베고 간 자리가 얼어가며 검의 기운을 받아 얇게 앞으로 나아간 것.
허공을 떠도는 무언가를 빠르게 얼려 앞으로 날린 거라. 난 딱 그렇게만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은발의 사내는 그대로 검을 갈무리하더니, 천천히 그리고 강대하게 쌍검을 든 이의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 잡기술을···!”
“한공은.”
– 솨아아아아!
– 휘이익!
– 스륵!
한 걸음. 딱 한 걸음을 걸으며 내 뻗은 한 번의 검로에 한 줄기의 핏줄기가 추가되었다.
멀리서 날리는 검기 아닌 검기에 쌍검의 사내는 손을 쓰지 못한다.
“잡기술이 아니다.”
– 솨아아아아아!- 휘이이익! 서륵!
“저분의 한공은.”
“크윽!”
– 솨아아아아!
– 휘이이익! 서륵!
“네깟놈의 입에.”
– 솨아아아아!
– 휘이이익! 서륵!
“그따위로 오르내릴 무공이 아니란 말이다.”
– 휙! 휙! 서륵! 서륵!
“크윽! 그, 그만!”
– 툭!
그렇게 은발의 사내는 딱 몇 걸음을 더 걸으며 쌍검의 사내를 갈기갈기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깊지는 않아도 딱 고통을 느낄 정도의 깊이. 그 정도 깊이에 박히는 검상에 쌍검의 사내는 더는 서 있질 못한다.
팔과 배, 가슴, 그리고 다리까지 모두 검상을 입은 그가 부르르 떨며 바닥에 무릎을 박고 만다.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선 은발의 사내였다.
“여전히 현천의 기운을 담은 한공이 잡기술로 보이는가?”
“그···, 그만···! 제, 제발···!”
“네놈은 눈이 있어도 본질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 눈. 내가 거둬야겠다.”
– 처억!
!!
– 솨아아아아!
– 쩌저저저정!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은발의 사내는 손에 한기를 가득 모아 쌍검의 사내의 이마를 가격했다.
눈알을 뽑는 게 아닌 그대로 눈을 얼게 만드는 잔인한 그의 손속.
쌍검의 사내는 눈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더니, 이내 마주한 어두운 세상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침한장처럼 내부로 한기를 침투시켜 정확히 시력을 관장하는 시신경을 얼린 후 부순 것.
한기를 다루는 실력이 나보다는 몇 수는 앞서는 사내의 모습이다.
‘그나저나···, 현천? 현천한빙심공?’
그가 보여준 모습과 함께, 스치듯 지나간 이름이 유독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다.
“조, 조장님?”
“설마···, 조장께서?”
“말도 안 되는···?”
우두머리를 잃은 살수들이 일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저 잃은 게 아닌 압도적인 무위에 눌린 상황.
그들은 저마다 손을 멈추고는 그대로 주변의 눈치만을 살핀다.
어쩌면, 이번 습격은 이게 끝일지도 모른다. 살수들은 저마다 투항하거나 어느새 꽁지를 내빼는 모습이다.
“이제, 움직이셔도 될 겁니다.”
때마침 내 운기도 끝난 참.
난 앳된 사내의 움직여도 좋다는 말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푹 숙이며 전하는 포권에 그 역시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습격 와중 마주한 친절이 낯설었다.
난 쌍검의 사내를 발로 툭! 걷어찬 후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은발의 사내 역시 일어서서 마주할 수 있었다.
‘이유는···’
뭘까.
어쩌면 그저 자신이 다루는 한공이 무시당했기 때문일지도. 아마, 그리 단순한 이유는 아닐 테지만.
상상력이 빈곤하니, 추측할 수 있는 게 적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았습니다.”
뭐, 이유야 어찌 되었어도 전해야 할 건 전해야 한다. 결과가 딱 눈에 보이지 않나.
저 사람 덕분에 난 살았고, 지금 살수들을 제압하는 다른 무사들 역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한쪽에서 앳된 사내가 상태를 봐주는 철환 역시 그러할 터. 어쩌면, 나룻터 뒤에서 배를 나눠타는 손님들까지.
처음부터 도와주지.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다. 다만, 어찌 도움을 받은 이가 도움을 준 이를 평가할 수 있을까.
난 그저 고개를 숙임으로 모든 걸 대신했다.
“제게 그런 말씀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니,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런 말을 전하려 할 때.
– 척!
– 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내의 신형이 사라진다.
어느새 다가와 함께 몸을 아래로 낮추는 앳된 사내까지. 둘은 그대로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는 예를 표하는 자세를 보였다.
난 깜짝 놀라 뒤로 발을 물리고 말았다.
“왜, 왜 이러십니까···?”
그런 내 앞에서 사내는 포권까지 올리며.
“암빙대 조장 백충. 오랜 세월을 지나 현천(玄天)의 후계를 이제야 뵙습니다. 의심으로 개입이 늦어 귀하신 몸을 상하게 한 점. 평생 짊어질 소인의 불충입니다.”
듣기에 퍽 부담스러운 말을 전해준다. 난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저 뜬눈만을 깜빡거릴 뿐이다.
말 속에서 묻어나는 냉철함이, 이자 역시 한공을 기본으로 한 심공을 익힌 걸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암빙대 대원, 동악. 현천의 주인이자, 한은검을 지니신 분을 뵙습니다. 평생의 영광입니다.”
앳된 사내 역시 같은 자세로 지긋한 미소와 함께 부담스러운 말을 전해왔다.
이들이 말하는 현천의 주인이, 아무래도 나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죄송하지만,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니신지요?”
“공자께서는, 현천의 주인이 맞으십니다. 마지막에 보여주신 그 푸른 기운···. 한은검을 깨운 건 공자께서 지니신 현천의 기운이 분명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몸이 상할 때까지 기다린 불충, 부디 꾸짖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전부 이해가 힘듭니다.”
“그러신가요? 소인이 차차···”
“저어, 이 공자님.”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제법 친하게 지내던 한 무사대의 인원이 내게 다가왔다.
상처를 제법 입었음에도 목숨은 부지한 그. 그는 조금 힘든 표정을 지으면서도 본분에 충실한 말을 들려줬다.
백충과의 대화가 잠시 끊기고 만다.
“부상자들 수습과···도망친 놈들의 추격은 어찌할지요? 대장님이 계시지 않아, 판단이 어렵습니다. 부디, 명을 내려주시면 따르겠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린 덕에 망각할 수 있었던 것. 난 책임자였다.
여기, 석호루를 관리하는 책임자. 철환이 자리를 비웠다면 무사대 역시 내가 이끌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난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며, 석호루를 덮친 참상을 그대로 마주하고 만다.
주변에는 익숙했던 얼굴들이 시신으로 변해 뻗은 모습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 웃으며 날 반겼던 그 무사들이었음이 분명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부상자는 대부분이고, 사망자도 있습니다···. 생존자도 삼 할 정도는 중태일 겁니다.”
“본가에 서둘러 연락해주세요. 의원을 모으고. 수습이 먼저입니다. 추적은···. 손이 모자라겠군요. 쌍검을 찬 사내는 꼭 포박해 석가장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배후를 알아야 할 터이니.”
“존···명.”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무사대에 상황을 정리할 말을 전했다. 승리했지만, 상처만이 남은 영광일지도.
칼을 들고 싸운다는 게 그렇다. 이긴 사람에게도 상처가 남는 것. 싸움이란 게 일방적인 시작이 가능한 것이기에.
이런 상처가 더욱 쓰라릴지도 모른다.
“추격조가 혹 필요하십니까?”
백충은 그렇게 감상에 빠져 허망한 표정을 지은 내게 다가와 말을 물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인 걸 잠시 깜빡하고 말았다.
추격조를 편성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잡힌 이들과 달리 도망친 이들은 명령을 어긴 이들.
그들을 잡아 묻는 게 일을 처리하긴 훨씬 편할 것이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이란 말도 있지 않나. 한 번 석호루와 나, 그리고 석가장을 노린 이라면.
다음이 없을 거란 생각은 안일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저 현실적인 한계가 지금은 있다는 게 문제지만.
“···예. 허나, 본가도 지금은 여력이 부족할 겁니다. 잡은 이들을 조사할 수밖에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백···대협께서?”
“편히, 백 조장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어찌 그런 부탁을 은인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염치를 잠시 잊고 부탁을 전하고도 싶은 마음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알던 얼굴이 제법 쓰러져 있으니까.
그들이 왜 쓰러진 건지. 누가 그렇게 만든 건지.
또,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건지. 난 그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격은 필수였다.
“부탁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은검을 쥐고 명만 내려주십시오. 암빙대는 따를 뿐입니다.”
“암빙대···.”
저들이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날 따르는 건지 아직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검을 쥐고 있기만 하다면야 내 명령을 따르겠다는 그의 말.
난 눈을 질끔 감고는 잠시 염치를 잊어보기로 한다. 어차피 백충이란 이와는 나눠야 할 대화가 남았으니까.
“부탁으로 하겠습니다. 부디, 한 번 더 석가장을 도와주십시오.”
“뜻이 그러시다면야. 명, 아니. 부탁을 받겠습니다. 동악.”
“존명.”
“지금부터 흑의를 입었던 살수들을 쫓는다.”
“명. 받들겠습니다.”
“석가장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백충과 동악은 내게 듬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살수들이 도망친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무흔보와 비슷하게 미끄러지는 그들의 모습. 난 그들이 사라진 후 석호루 뒤로 돌아가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손님과 고용인 중에는 피해가 없어 보였다.
“하아.”
– 툭.
갑작스레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
이 모든 걸 짧은 시간에 겪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이유도 아직 전부 알지는 못하고.
– 짝짝짝!
그러기에 더욱 정신을 차려야만 하는 지금.
이때까지 얼마나 큰 기둥들에 기대어가며 살았던 건지를 여실히 느끼고 만다.
진효풍과 석두원, 홍구, 공 총관 등. 이 모든 걸 다뤘던 이들의 얼굴이 스치는 순간.
그럼에도 움직여야만 한다. 난 그런 생각 하나로 겨우 몸을 일으켜 석가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