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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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루 습격이 있고 사흘째 되던 날.
경원으로 떠났던 석가장의 무사대가 항주로 돌아왔다.
본래라면 닷새가 걸렸을 귀환길이지만, 석가장의 무사대는 이를 사흘 만에 주파하고 말았다.
“장주님을 뵙습니다···.”
“장주님을 뵙습니다···.”
대문에서 석두원과 함께 돌아온 이들을 맞이하는 구동해 단주와 내 목소리가 밝을 수는 없었다.
“고생들···많으셨소···.”
돌아온 석두원의 얼굴에는 피곤함이란 말이 그대로 표정이 되어 걸려있다.
개선(凱旋)한 이의 얼굴이라곤 믿을 수 없는 그였다.
“구 단주, 이 공자. 고생 많으셨네.”
“총관.”
“몸 상한 곳은 없는 게 확실한가?”
“운이 좋았습니다. 부끄럽게도, 멀쩡합니다.”
“부끄럽기는! 이 사람, 말이라도 그런 말을 마시게나. 다친 이들은 각자가 본분에 충실했던 것일세. 그걸 어찌 칼을 휘두른 이가 아니라 자네를 탓한다는 말인가? 그만두게나. 장주께서도 더욱 마음이 심란하실 거네.”
“송구합니다.”
개선을 즐기지 못하는 건 항주로 돌아온 다른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석가장의 무사대를 비롯한 개방의 무인들까지 울상이다.
경원으로 달려가 남건삼흉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성공적으로 토벌했음에도 즐길 수 없는 모습.
석가장은 자신들의 빈자리를 지키던 이들이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개방은 자신들이 거짓 정보에 속았다는 사실에.
저마다 울상을 지어갈 수밖에 없는 지금이다.
“미안하오···, 이 공자. 이 못난 거지가 속고 말았소.”
홍구는 씁쓸하게 앞으로 다가와 내게 고개를 푹 숙여갔다. 남건삼흉이 경원으로 들었다는 소식을 제일 처음 전하게 그였다.
“식개, 아닙니다. 공 총관의 말씀처럼, 저들의 잘못입니다. 또한, 남건삼흉을 제대로 토벌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씀 거둬주십시오. 많은 양민을 살리셨음입니다.”
“부끄럽소.”
“젠장. 이거 분위기가 영 찝찝하기 그지없군.”
“진 대협···.”
“내 악적을 처단하고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 건 처음이네. 누구라고? 구양방? 내 이놈들을 그냥···!”
함께 경원으로 향해 남건삼흉을 직접 처단한 진효풍은 잔뜩 기분이 더러운 표정을 지어준다.
평소의 성격 같았다면 당장에 달려가 구양방을 뒤엎고도 남을 성정의 그.
석가장이 직접 당했기에 다른 이들의 감정의 더욱 깊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진효풍은 이미 그들을 향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서신을 통해 이 남건삼흉까지 모두 구양방의 계략이었음을 알았기에, 이들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악적이라면, 또 양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작정 달려들고 보는 정파 무인들의 약점을 구양방이 제대로 공략했다.
“다들.”
“예, 장주.”
“명을 내리시지요.”
잠시 멍하니, 석가장 안을 바라보던 석두원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모두를 불러오는 그의 묵직한 목소리. 그의 말이 발하자, 저마다 자랑하던 입심을 숨기고는 집중하는 이들이다.
“일각만 주겠나? 일각 후. 대석당에서 보지.”
당장에 집으로 돌아오면 쓰러져간 이들로 통곡할 것만 같던 석두원이, 너무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이 더욱 묵직하게만 느껴지는 석가장의 인원들.
석두원은 그렇게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후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다시금 모두를 마주할 수 있었던 건 대석당에서였다.
대석당은 당연한 말이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짓눌린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두의 얼굴에 자리한 건 무거운 표정. 이건 슬픔이나 다른 감정이 자리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표정이 이토록 무거운 건, 분노라는 감정 때문일 게 분명해 보였다.
‘제 역할을···’
다하고 몸을 상한 이들에게는 슬픔이 곧 동정이 될 것이다. 같은 방향에 선 무인이 해줄 수 있는 건 분노뿐.
석가장에 이를 모르는 이는 없어 보였다.
“우선, 구 단주.”
“예. 장주.”
“몸을 다친 이들과 목숨을···잃은 이들. 그들의 가족들은 석가장이 평생 책임질 것이오. 경원에서 다친 이들을 포함해서 남 부럽지 않게, 또 떠나는 이들이 후회 없도록 그대가 잘 처리해 주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떤 감정이 자신을 지배해도 석두원은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장주로서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그.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그가 없던 자리에서 느꼈던 큰 기둥의 존재감이 다시금 찾아오는 것만 같다.
‘생각보다···’
큰 그늘아래에서 큰 기둥에.
그렇게 기대어가며 살고 있었구나.
역시나 사람은 부재를 인식하기 전에는 이를 알지 못한다.
“다음은···.”
석두원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구동해에게서 내 쪽을 향해 옮겼다.
어쩔 수 없다. 석호루란 곳이 공격을 받았고 그곳의 책임자는 나니까.
난 그와 눈을 마주하고는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 공자. 우선, 몸이 상하지 않아 다행이네.”
“다른 분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철 대협께서 독에 당해 여전히 병상에 쓰러져 있으십니다.”
“장도···. 늘 그런 이였지. 독이 퍼진 상태로도 기력을 끌어올렸다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고.”
“그렇습니다.”
“구양방(九釀幇).”
석두원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가며 구양방이란 이름을 입에 올렸다.
어찌나 힘을 실어 발음한 덕인지. 들려오는 이름이 마치 이에 씹힌 것만 같은 느낌.
그의 눈매가 잠시나마 사납게 변해 인자함을 잃었다.
“이 공자를 노렸고, 우리를 경원으로 유인했다라. 남건삼흉은 우리 손을 빌려 처단했고. 완전히 놀아났군.”
“삼검혈(三劍血)이면, 제법 거물을 보낸 겁니다. 작정하고, 이후 전쟁까지 각오한 건 아닐지···.”
“남건삼흉을 이런 식으로 치울 줄이야.”
“형님. 이대로 있으실 겁니까? 구양방 놈들···. 도륙을 내어도 시원찮을 겁니다!”
“옳습니다. 개방 역시, 행동에 나설 것입니다. 이미 거지들을 풀어 구양방의 뒤를 쫓으라 명해두었습니다.”
나오는 말에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태니, 대석당이 제법 떠들썩하게 변한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던 중 나오는 건.
“허면, 전쟁을?”
한 발을 뒤로 빼는 듯한 말들.
어쩔 수 없다. 석가장은 무가의 성격과 함께, 상가의 성격도 강한 곳이니까.
여기 모인 중진들 중에는 무인의 삶을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이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구양방은 잠적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겁니다.”
“길고 지지부진한 싸움이 될 겁니다. 저들은 작정하고 숨을 게 아닙니까? 어쩌면 벌써 숨지나 않았을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의 입을 타는 말은 조금은 상리(商理)가 포함된 말들이다.
“그게 무슨···! 하! 이런 답답한 이들을 봤나! 한 번에 몰아쳐 일망타진이 답이지 않소!”
“진 대협···. 여긴 화산이 아니니···.”
“하! 내 할 말은 많소이다만···! 후우.”
“어허. 이 말코 놈이? 여긴 석가장이다. 석가장. 자중하거라.”
그런 말에 제일 열불을 내는 건 진효풍이다. 무파에서 도인으로 무인으로 자란 그에게 상인의 말은 전부 진부한 것.
그런 그를 타박하는 게 어디서든 막 나가는 개방의 거지일 정도였으니, 진효풍의 답답함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래도···’
석가장이라고 많이 참아주는 그였다.
“그만.”
– 척.
지지부진한 전쟁이 되기도 전에 지지부진한 토론이 먼저 이어질 판.
그런 와중에 이를 정리하는 건 역시나 석두원의 역할이다.
“두 의견 모두 틀린 말들은 아니오. 석가장이 공격을 받았으니, 이를 갚아줘야 하는 건 당연지사. 다만, 석가장이 저들과 다른 건 양민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오. 석가장이 전쟁에 들어가면 사업체가 멈출 수밖에 없소. 그렇다면 석가장에 고용된 이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을 것이외다.”
석두원은 중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두 의견 모두에 힘을 실어준다.
의견이 이대로 모이지 않는다면야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리겠지만.
우선은 가신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그다.
‘물론···’
표정이야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지만.
난 그런 석두원의 고민을 조금 덜어줄 생각이다.
“장주.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음. 이 공자. 물론이네. 자네가 이번 일의 당사자가 아닌가. 자네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함일세.”
석두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며 내 말에 힘을 실어줬다.
직접 공격받은 게 나였고, 타격을 입은 사업체가 내가 관리하는 곳이란 그의 말.
반대로 난 그의 생각에 힘을 실어줄 참이라 서로가 한 수씩을 주고받은 게 되겠다.
“구양방 토벌은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구양방이 흔적을 지우고 잠적했을 때는 지지부진한 싸움이 될 거란 말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자네···! 허!”
“하지만.”
처음 꺼낸 말은 신중론을 따르는 것처럼 들렸을 거다. 진효풍이 뒷목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때.
난 단호하게 접속사를 뱉어주며 그를 다시금 자리에 앉혔다. 답답해 죽겠다며 가슴을 두드리는 그였다.
“반대로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지지부진하지 않을 수 있다면. 또, 저들의 흔적을 찾는 데 시간을 오래 쓰지 않아도 된다면. 그때는 신중을 기하자는 분들은 어떤 생각이실지도 궁금합니다.”
“그런 일이 가능만 하다면야···. 어떻게든 빨리 일을 마무리하는 게 석가장에도 좋지 않겠소?”
“물론이오. 나도 그리 생각하는 바이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소? 제아무리 개방이 나서도···.”
“이 공자. 미안하오만···, 솔직히 개방을 믿고 하는 말이라면 난 장담하지 못하오. 적어도 석 달. 그 정도만 주시오. 내 그 안에 그들을 모두 찾아내리다. 귀환에 사흘이나 걸린 게 너무도 컸소. 내가 항주에만 있었어도···!”
적당히 답을 유도한 질문에 중진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이게 어려운 일임을 알아간다.
추적이란 한시를 다투는 일. 당장에 쫓아가지 못한 이는 하루 사이에 한 달 이상의 거리를 도망가고 만다.
출발점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역시.’
“개방의 도움을 받긴 할 겁니다. 다만, 이미 저들의 위치가 파악되어 있다면. 그때는 어떻습니까?”
!!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저들의 위치라면···잠적한 위치를 말하는 거요?”
“대략적인 위치만 알아도 개방을 풀면 사흘이면 찾을 수 있소. 그 대략적인 위치를 찾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백충에게 염치를 무릅쓰고 부탁을 전한 건 잘한 일이었다. 개방이란 전문가들도 사흘 후 출발한다면야 석 달이 걸린다지 않나.
나 역시 이를 예상하고 백충에게 이미 그들의 추적을 부탁한 참이었다.
백충은 암빙대를 보내 고작 반나절의 차이로 이들을 따라잡았고 여전히 암빙대가 그들을 감시 중이다.
백충과는 계속해서 연통을 주고받고 있다.
“이 공자. 방금 한 말, 근거가 있는 말인가?”
자신의 결단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걸까. 석두원은 총기가 가득한 눈을 하며 내게 진중한 말을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답했다.
“서신에서 전했던 빙궁의 무인들에게 추적을 부탁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전하기 힘듭니다. 다만, 그들을 믿을 수 있다는 것. 그들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것. 거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빙궁의 무인들이?”
“추적에 특화된 이들이라 합니다.”
정확히는 추적과 암살에 특화된 이들이다. 그래도 설명이야 이쯤이면 되지 않겠나.
빙궁이란 말에 잔뜩 궁금한 눈을 해오는 진효풍을 겨우 손으로 진정시키며 말을 마쳤다.
한은검이나 스승님과 관련된 말은 아직 여기에 풀 정도는 아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장주.”
이야기는 이제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 간다. 깍지를 끼고는 깊은 신음을 토해내는 석두원.
석두원은 잠시 초점을 허공에 두었다가 다시 내게 주고는 말을 물어왔다.
“이 공자.”
“예. 장주.”
“추격을 빙궁에 부탁한 건, 자네의 판단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자네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군.”
“···아니지 않습니다.”
날카롭게 간파당한 속내.
그의 말처럼, 실상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같지만 나 스스로도 한쪽으로 결론을 정해두고 이를 유도하고 있었다.
석두원은 이를 몰라보지 않았다.
“자네의 생각은 어떻나?”
“말씀드린 것처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명확히 말해보게. 자네의 뜻. 결론만을.”
그는 정확히 핵심만을 노리며 내게 결론을 지어보라, 말을 전해온다.
마치, 내가 뱉은 말로 이번 일의 결론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난 조심히,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내가 이런 준비를 마친 이유를 모두에게 들려줬다.
“많은 이들이 다쳤고, 누군가는 죽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전, 다시는 이런 일이 석가장에, 항주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본보기를 보여야겠지요. 이건, 은원을 떠나 앞으로 우리의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이미 내려둔 결론 덕에 냉철함이 더욱 짙게 찾아온 지금의 표정.
난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덤덤하게 마지막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저들의 존재를 완벽히 이 중원에서 지워버리는 것. 석가장이 해야 할 일은 그뿐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무인처럼.
나도 모르게 눈매를 고쳐버리고 말았다.
얽힌 무언가가 스르르 풀려버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