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33
***
– 뻐엉!
– 뻐어엉!
마치 전장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소리가 석호루를 채웠다.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아래로 숨기는 손님들.
석호루가 구양방이란 곳에 습격을 당한 게 몇 달 전의 일이라던데, 이게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걸까.
그런 걱정도 잠시. 이내 손님들은 저 소리가 술을 나르는 점소이들의 손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된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신기한 호리병의 입구에 너나 할 것 없이 시선을 빼앗긴 참이다.
“주문하신 벽력주 나왔습니다.”
새롭게 나온 술의 이름은 벽력주(霹靂酒).
술을 따는 순간 뻐엉! 하며 나는 소리가 마치 벼락이 치는 소리와 같다며 붙은 이름이다.
석가장의 중진 중 누군가 지나가듯 뱉었던 말. 나 역시 그 이름이 싫지 않아 그대로 붙여봤다.
“호오. 이게 새로 나왔다는 그 벽력주로군! 암, 과연. 벽력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리네! 허허. 잔도 특이하군!”
“맛은 어떻고? 기포주와는 또 다른 뽀글거림이라네. 허허. 훨씬 고급스러운 기분이랄까?”
“잔 덕분도 크지. 잔이 여간 고급스럽지 않나!”
당연한 말이지만, 새 술은 새 잔에 부어야 제맛이다.
특히나 스파클링 와인 같은 술이라면 기포가 오르는 게 보여야 더 맛이 사는 법이고.
난 이를 위해 특별한 잔을 외부로 공수해 와 석호루에 쫙 깔아뒀다.
이건 다른 술을 위한 잔은 아니다. 후아주와 과하후아주, 그리고 벽력주까지.
딱 이 세 술을 위한 잔.
이 술들을 위해 준비한 잔은 다름 아닌 야광배(夜光盃)라 불리는 잔으로 마치 와인 글라스와 닮아 있는 잔이다.
‘이게···.’
중원 땅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는 나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듣기로는 당나라 시절부터 야광배라는 잔은 유명했다고 한다. 실크 로드와 교역하며 홍주가 조금씩 들어온 덕에 와인 잔을 닮은 잔이 중원에도 있었던 것.
완전히 비슷하거나 같은 모양의 잔은 아니다. 재료 역시 유리가 아니고.
실상은 야광의 성질을 가진 암석을 깎아 만든 잔. 이게 상식으로만 생각해도 유리보다 비쌀 것도 같은데.
아직 낭만과 야만의 시대인 이때는 다른 무엇보다 노동력이 저렴하던 시절이었다.
야광배라 불리는 잔이 유리잔보다 싸다는 걸 안 이후 모조리 쓸어와 석호루에 깔아둔 참이다.
– 솨아아아아.
완전히 투명하진 않아도 적당히 기포가 보이는 잔이 벽력주를 마시기에는 딱으로 보였다.
– 살각! 살각! 살가가각!
벽력주를 마시는 이들 사이로는 열심히 셰이커를 흔들어가는 주임 점소이들이 보여왔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술 역시 벽력주가 베이스. 백주와 레몬즙에 벽력주를 더해 만들어가는 술은 프렌치 75로, 중원식 이름은 불랑기포주로 정했다.
벽력보다 조금 더 강한 술맛에 원래의 이름까지 살리며 기포란 말까지 들어가니, 이름이 제법 어울리지 않나.
평소에도 좋아하던 술이기에 사심이 조금 들어간 양조였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대성공이다.
거기에.
“흠. 과연. 이게 예포(禮砲)를 은유하는 거라, 그 말인 게지?”
“그렇습니다. 서역에서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면 이 술로 크게 소리를 내며 다 같이 축하하곤 합니다.”
더해지는 건 약간의 마케팅.
이미 술이 나오기 전부터 개방을 통해 이 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살살 중원에 풀기 시작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뿜어지듯 나오는 술. 현대에서 샴페인처럼 무언가를 축하하기에는 딱이지 않나.
일전에야 맛과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개방을 통해 풀었다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이미 대석양조장에서 만들고 석호루에서 파는 술이라는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은 보장이니까.
그저, 거기에 더해지는 약간의 재미와 마케팅. 늘 그렇지만, 개방의 홍보 효과는 직빵이었다.
“내 그 말을 듣고 바로 찾아왔네! 안 그래도 둘째 놈의 출사가 오늘 딱 정해진 참이라네. 곧 녀석도 오거든, 그 술로 꼭 부탁함세!”
석호루라는 특별한 곳에서 가지는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
그 시간을 더욱 기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이런 술에 얽힌 작은 이야기다.
– 펑! 퍼엉!
누구는 그런 상징에 혹해서, 또 누구는 그저 호기심에, 또 다른 이는 맛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한동안 석호루에는 벽력주 터트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왔는가. 들어오시게.”
– 드르르륵.
벽력주가 발매되고 바쁜 나날을 보내길 한동안.
이제는 그런 바쁜 나날을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을 즈음.
갑작스레 양조장으로 날 부르러 온 하인의 말에 곧장 대석당을 향해 달려왔다.
일하는 중에는 날 잘 찾지 않았던 게 석두원. 그런 석두원이 날 부를 때면, 작은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장주님을 뵙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마주하는 건 석두원과 공 총관, 그리고 구동해 단주와 낯선 사내 한 명이다.
‘누구?’
보이는 사내는 제법 호리호리한 인상에 가느다란 선을 가진 모습이었다.
마치 누군가 본다면야 평범한 상인이나 학사 정도로 볼 정도의 인상을 가진 그.
허나, 난 그를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인.’
이라고.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도는 석호루의 호위 부장인 철환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도였다.
“이쪽 분께서는···?”
“아. 귀한 손님이시네.”
“처음 뵙겠습니다. 주루와 양조장을 관리하는 이정환이라고 합니다.”
“소문의 그 이 공자를 이리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소철이라 합니다.”
인상이 나쁘지 않은 소철이란 사내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내게 포권을 건네왔다.
맞절하며 살피길 잠시. 그의 눈에 딱히 악의 같은 건 보이지 않는 참이다.
“소 선생께서는 맹에서 나오셨네. 절강성 지부장을 맡으신 분이라네.”
“맹이라면, 무림맹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렇네.”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실 즈음, 공 총관이 오늘 자리를 만든 이유를 살며시 흘려준다.
나온 이름이 제법 거창해, 그를 다시금 보게 만들었다.
“이 공자께서도 무림맹을 아시는지요?”
“오가며 들은 적은 있습니다. 정도 문파들이 모여 만든 연합체로 알고 있습니다.”
소철은 공 총관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는 내게 친근하게 말을 붙여왔다.
중원에 살며 무림맹이란 곳 정도는 들어보는 게 당연지사. 특히나 화산이나 개방, 당문과 남궁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저 이름을 이제는 내가 모를 수가 없다. 다들 무림맹에서는 한 역할을 하는 문파들이니까.
“정확하십니다. 개봉에 본부를 두고 정도 문파의 단합을 도모하며 중원 무림의 안정을 지키는 곳이 무림맹이란 곳입니다. 혹, 정도 대회란 것도 들어보셨습니까?”
“송구하지만,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림맹의 우방들이 모여 무림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게 정도 대회입니다. 함께 교류하며 돈독함도 다지고, 결의도 하는 것이지요. 정도 문파 사이에서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입니다.”
“올해는 석가장 역시 그곳에 초대를 받았다네.”
소철은 자신이 속한 곳에 자부심을 가진 이처럼 당당히 무림맹과 정도 대회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다.
그러던 중 나온 석두원의 말.
“구양방과 항쟁도 있고 남건삼흉 토벌 건도 있지 않나. 올해는 무가 쪽에 많은 연이 얽혔음이야.”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인지 몰라도, 석가장이 올해는 무림맹의 주목을 받게 된 모양이다.
그 결과가 정도 대회 참석으로 이어진다.
“그때 받은 도움도 적지 않고 도움을 준 곳들이 모두 무림맹에 속한 곳들이네. 이참에 나도 얼굴을 한 번 비춰야 그들의 면이 살 거 같다네.”
“옳으신 판단입니다. 또한, 그 자리에서 명분도 내세우고 널리 승전을 알린다면, 다시는 석가장을 도모하는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흠.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장주.”
정도 대회에 참석한다는 석두원의 판단은 크게 틀린 판단으로 보이진 않았다.
정도 문파와 연을 맺어둬 나쁠 건 없지 않나. 다만, 의문이 드는 건 이런 이야기를 굳이 왜 날 불러 들려주는가 하는 의문.
내가 표정으로 그런 의문을 표해가자.
“자네에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는 표정이군.”
석두원은 이를 곧장 알아챈다.
그냥 다녀와도 무방한 일일 거다. 나야 여기서 술이나 팔고 있으면 그만이고.
그럼에도 불러서 이야기를 전했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
석두원은 눈으로 소철을 바라봤다. 답은 거기서 나올 거란 의미로 보였다.
“실은 이 공자를 꼭 좀 불러달라고 제가 어렵사리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를요? 맹에서 나오신 분이 무슨 일로···?”
“이걸, 받아주시겠습니까?”
소철은 잠시 머뭇하더니, 이내 한 번 넉살 좋게 웃고는 품에서 꺼낸 서신을 내게 건넸다.
서신을 받아드니 보이는 건 초대장이란 말. 다만, 다음에 적힌 말이 제법 의미심장했다.
– 북해빙궁 귀하.
라 적힌 낯설고도 익숙한 말.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그걸 다시 읽은 후 소철을 바라봤다.
무슨 의미냐는 그런 뜻으로.
“제게 어찌 이걸···?”
“단도직입적으로, 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공자의 참석도 바라고 다리도 조금 놓아주셨으면 한다는 게 맹주님의 바람입니다.”
“다리요?”
“이 공자께서 빙화풍림(氷火風林) 중 두 곳과 연이 깊으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혹, 실례가 안 된다면 풍화도와 빙궁에도 연을 댈 수 있을까··· 하는 못난 바람입니다. 가능만 하다면야···, 이번 정도 대회는 말 그대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림맹은 그들을 적대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그러자 나오는 소철의 답.
그제야 모든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빙궁이나 풍화도는 중원 무림과 똑 떼어놓고도 하나의 무림이라 불릴 정도의 큰 규모를 갖춘 곳들이다.
평화를 지향하는 무림맹이라면 응당 이런 곳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또한, 당금 무림에서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거라면 내가 제일일 터.
‘빙궁의···’
태상 궁주이며 풍화도와는 장기적인 거래를 튼 관계이지 않나.
이들이 이렇게 다가온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연을 대고 싶습니다만,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더군요. 혹···, 실례가 안 된다면 꼭 한 번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흐음. 풍화도와 빙궁에 정도 대회 참석을 요청해 달란 말씀이시군요. 결과는 상관없이?”
“그렇습니다. 참석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요. 초대장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무림맹의 의사는 전달될 것입니다.”
“흐음.”
소철의 제법 거창한 부탁을 듣고는 난 슬쩍 고개를 돌려 석두원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답을 구하기 위해. 장주가 하란다면야 나야 군말 없이 따를 가신이지 않나.
허나, 석두원은.
– 자네의 뜻대로 하시게나.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자네를 지지하겠네.
란 말만을 전음으로 전해오며 인자한 웃음을 보여준다.
딱히 무림맹과 척을 질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부탁을 다 들어줄 필요도 없는 게 석가장.
석두원의 말 덕분에 난 내 입장만으로 고민에 빠질 수 있게 되었다.
‘딱히 무리는 없지만···.’
괜스레 말을 전하는 것도 조금은 부담이지 않나.
고작 일각을 재임했던 태상 궁주랍시고 빙궁에 뭐라 하기도 조금 그렇고, 풍화도야 거래처고.
반면, 그냥 말 정도야 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만 같은 상황.
두 가지 상황 속에서 내 눈빛이 살짝 깊어지려 할 때.
소철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석두원과 내 사이에서 눈치를 보더니, 무언가 준비한 말을 더 꺼내려 한다.
절강성에서 지부장을 지낸 만큼, 이쪽의 성격을 제법 잘 아는 듯한 그의 모습이다.
“무, 물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석가장이야 무가면서 상가에 가까운 곳이니, 응당 그게 맞지 않겠습니까?”
“보답이라면?”
“정도 대회가 열리면 수많은 술자리가 오갑니다. 연회에 만찬에, 주연까지. 소모되는 술만 해도 적지가 않지요. 해서, 정도 대회가 열리는 동안 쓰일 모든 술을 대석양조장에서 발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계약을 맺는다면···, 허허. 한 배를 탄 사이니, 부담이 조금 덜하시지 않겠습니까?”
“정도 대회 동안 쓰이는 모든 술을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두. 맹주께서도 허락하신 부분입니다.”
호오.
이건 제법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아무래도 절강 쪽에 지내며 우리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 모양.
무림의 평화니, 강호의 안정이니 하는 말을 꺼내며 설득하려 했다면야 고민할 가치도 없었을 거다.
나야 무림과 무관한 사람이니.
반대로 이건 조금 구미가 강하게 당기는 이야기. 장사에 관한 이야기이지 않나.
난 어디까지나 상인이고. 차라리 이렇게 대가를 정확히 알려주는 게 셈을 하기에는 편안하다.
‘흐음.’
정도 대회라면야 주요 문파를 비롯해 오대세가와 각종 무림인이 모여들 자리다.
그런 자리에서 쓰이는 술이라면 응당 중인들의 입을 타기 마련.
현대만 해도 그렇지 않나. 국가 정상들이 만찬에서 어떤 술을 마셨다더라.
그런 말이 한마디만 돌아도 오픈런이 펼쳐지는 게 현실.
이건 개방 이상 가는 마케팅의 기회가 될 것이다. 어쩌면 진효풍의 오기조원급 마케팅도 가능한 상황.
거기에 정도 대회 중 쓰이는 술의 값만 생각해도 적은 값은 아닐 거다.
무림인들이 마셔댈 술이야 어마어마할 테니까.
점점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다리를 놓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나. 참석도 잘만 부탁하면 가능할 것도 같고.
난 그런 생각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흠. 그렇다면, 우선 발주 이야기부터 해봐야겠군요. 서로 조건이 맞아야 일이 성사될 터이니. 연통은 그 후에 하는 게 옳겠지요.”
“예, 예산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조건은 얼마든지 맞춰드리겠습니다!”
그에 맞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 소철. 가능성을 본 탓일까. 그의 말이 과하게 적극적이다.
난 이런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생각은 없다.
난 진득하게, 조금은 사악하게.
–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물었다.
“해서, 예산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지요?”
만고불변의 흥정법이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