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34
***
“그럼···. 뒷일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힘이 쭉 빠진 채.
무인일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자세로 어깨를 푹! 내려트린 소철이 석가장을 벗어났다.
무림인으로서, 또 무림맹의 지부장으로서. 그렇게 살아오며 이렇게 힘든 싸움은 그도 처음이었을 터.
나름대로 상가에 보낸다며 고르고 골랐을 인선이지만, 무림인은 상계(商計)로서 상인을 당해낼 수가 없다.
축 처진 그의 모습이 협상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끝난 것인지를 은유하고 있다.
“조심히 들어가시지요. 중간중간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보중하시길.”
“그럼.”
그는 처량한 눈빛만을 남기고는 석가장을 완전히 벗어났다. 괜스레 노을이 지는 풍경이 직장인의 애환을 담아낸 것만 같다.
‘뭐···. 호랑이 굴로 들어왔을 때 각오는 했어야지.’
결과만을 말해보자면야 털 수 있는 만큼 무림맹의 예산을 탈탈 털어 버렸다.
소철이란 이의 표정을 봐가며 조율에 들어간 게 적절히 잘 먹힌 모양.
나중에는 석두원이.
– 그, 이 공자. 적당히···. 응? 적당히.
라는 말을 전할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은 것만 같다.
‘그 상재가 뛰어나신 분이 말렸을 정도면···.’
과하긴 했나.
조금은 악덕처럼 보였을지도.
뭐, 상관은 없다.
무림맹이야 중원에서도 부유하기로 유명하다는 여러 문파가 힘을 합쳐 세운 곳이 아닌가.
구파일방이며 오대세가란 곳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상상한다면야 석가장의 돈도 우스울 터.
그런 이들에게 이런 일에 쓰이는 돈 정도는 아깝지 않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벽력주를 만들며 연구비, 즉 R&D에 적잖게 돈이 들어간 참이다.
이걸 어떻게 회수하나, 단가를 올리기에는 고민도 있었던 찰나.
무림맹이라는 보기 좋은 먹잇감이 우리의 손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림맹의 기치가 무엇인가.
중원인의 안정이며 안전이 아닌가.
그들에게 받은 돈으로 적당히 연구비를 퉁쳐 단가를 낮추고 싼값에 술을 공급할 수 있다면야 이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조금은 양손에 낫과 망치를 든 것 같은 사상이긴 하지만, 낭만과 야만에는 조금 어울리기도 하고.
말하자면,
‘중원판 부의 재분배···?’
무언가 머릿속이 빨갛게 변하는 것만 같아 얼른 고개를 흔들고는 정신을 차렸다.
난 철저한 자본주의가니까.
어쨌든 돈만 받고 적당히 술을 넘겨주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받은 돈값을 못 했다는 말은 듣기 싫고.
또, 내가 어디 사기꾼은 아니지 않나. 난 받은 돈에 맞는 잔은 꼭 제공하는 바텐더다.
그렇기에 빙궁이나 풍화도에 다리를 놔주는 것 외에도 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정도 대회가 열리는 개봉으로는 직접 날아갈 거고.
정도 대회란 말이 거창해 보여도 무림인들의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축제 같은 그런 느낌이지 않나.
이런 축제는 응당 참여해 돈을 벌고 기회를 살려 제품을 홍보해야 한다.
현대의 수많은 주류 브랜드가 시행하는 마케팅이 이런 것. 아마 이번은 석호루의 출장 서비스. 그 정도의 느낌이 될 것만 같다.
난 만찬에 쓰일 술부터 주연과 작은 소연회에 쓰일 모든 술을 직접 관리할 생각이다.
이런 풀 서비스라니. 다시 생각하니 돈을 적당하게 받은 거 같기도 하다.
‘석호루의 몇 달치 매상을···’
한 번에 받기는 했지만.
이 시대에 이런 서비스에 싯가라는 건 없으니까.
이 시대에 없던 출장 케이터링 서비스를 보여주리라.
한동안은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거 같다.
***
무림맹과의 계약을 따내고 며칠 후.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객당의 마당에 앉아 내 앞으로 날아온 서신을 살폈다.
이제는 중원에 잘 정착해 내 이름을 실은 서신도 제법 날아드는 요즘.
객당 정원에 준비한 작은 책상 위에는 수북한 서신이 쌓여있다.
난 이 중에서 몇 개만을 골라 오늘 읽기로 한다.
오늘 읽을 서신은 다른 게 아니다. 일전에 마주했던 무림맹의 지부장 소철.
그런 소철의 부탁을 받아 내가 보냈던 전서에 답이 온 것.
다른 전서에 비해 3배는 빠르다는 해동응(海東鷹)이라 불리는 급보를 보낸 게 제법 적절했던 것만 같다.
아직 많은 시일이 흐리지 않았음에도 보냈던 곳 두 곳에서 모두 답이 날아왔다.
‘풍화도는···.’
참석하겠다는 서신을 곱게 포장해서 보내왔다.
전대 도주가 죽고 내전에 휩싸였던 풍화도. 그런 풍화도의 후계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깊게 개입했던 게 석가장이다.
이런저런 일을 겪던 중 진효풍과 합작으로 벌였던 폭죽놀이가 말 그대로 결정타가 되었던 것.
부 도주라 불리던 초절정의 고수가 그 폭발에서 중상을 입고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강호에서는 진효풍이 직접 죽였다는 말까지 떠돈다고 하던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니 딱히 나서서 고치진 않았다.
결정타야 그가 날린 게 사실이니까.
부 도주가 앓다 죽은 후에도 내전은 계속되었다. 물론 무길 쪽 진영의 일방적인 토벌전이지만.
덕분에 얼마 전까지 7할 정도를 차지했던 무길은 어느새 풍화도 전역을 장악한 참이다.
이번에 받은 서신에 찍힌 인장 역시 ‘풍화도주(風華島主)’라 용사비등하게 적힌 인장.
그는 이제 도주의 후계자가 아닌, 진정한 풍화도의 도주가 된 것이다.
‘다음에는 호칭을···’
조금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무길로서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연히 하고 싶었을 거다.
중원에 자신이 새로운 도주임을 알리고 내부적으로도 결속을 다지기에 이런 큰 행사만 한 것이 없을 터.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해온 게 무길 측의 답이었으니, 그들에게 말을 전한 건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참석은 확실해 보였다.
‘다음은 빙궁.’
다음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서신은 빙궁에서 온 것. 글이 적힌 서신에서조차 차가운 한기가 풀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빙궁 역시 제법 빠른 시일에 답을 전해왔다. 짤막하지만 간단히 의사만을 전한 빙궁의 서신.
빙궁은 짧게, 곧 출발하겠다는 답만을 적어 내게 서신을 보내왔다.
태상 궁주라서 그런 걸까. 제법 빠릿하게 답을 전해오는 그들.
글에는 이유를 묻는 말도 구구절절한 다른 말도 없다. 내가 불렀으니, 간다는 것.
제법 어른 취급을 제대로 해주는 그들이다.
또한, 이게 벌써 출발을? 하고 깜짝 놀랄 수도 있는 말이지만 빙궁의 위치를 생각한다면야 답은 달라진다.
부랴부랴 짐을 싸 들고 서신이 내게 닿을 때쯤 출발해도 딱 맞게 도착할 위치에 있는 게 빙궁이란 곳.
일전에 한목경 궁주를 불렀을 때도 두 달이란 시간이 걸려 이곳에 닿은 그들이 아닌가.
이제쯤 출발하면 다다음 달에야 개봉에 닿을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태상 궁주란 호칭은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개봉에서 마주할 빙궁은 또 어떤 모습일지, 그게 궁금했다.
결국 내가 다리를 놓아준 빙화풍림(氷火風林) 세력 두 곳이 모두 참석하는 이번 정도 대회.
소철에게도 얼른 이를 알려야겠다. 협상에서 패배해 맹주에게 깨지고 있을지도 모를 그.
이 소식이 전해진다면야 그가 얼마나 기뻐할까. 어쩌면 추가 예산을 더 타올지도.
‘설마.’
그런 생각에 홀로 정원에 앉아 입꼬리를 올리고 있으니.
“쯧쯧. 또 심마(心魔)가 찾아온 모양이군.”
!
익숙하고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옆 객당에 기거하는 화산파의 괴협, 진효풍이다.
잔뜩 불량하게 담벼락에 기댄 채 혀를 쯧쯧 차며 날 바라보던 그는 훌쩍! 하고 담벼락을 뛰어넘어 이쪽으로 넘어왔다.
펄럭이는 도포가 쓸데없이 멋들어지게만 보였다.
“예···?”
“어디서 또 큰돈을 만질 생각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고 있군. 아닌가?”
내게 다가온 그는 단박에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생각을 차분히 읽어갔다.
전해지는 말은 마치 도사 같은 심안(心眼).
아. 도사는 맞나?
이건 조금 더 철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난제다.
“···진 대협께서는 무얼 하시는 건지요?”
“나야 뭐 시간이나 죽이고 있는 게 아니겠나. 듣기로는 정도 대회에 참여한다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화안장(火顔掌) 소철을 탈탈 털어 먹었다지? 그이가 어디 가서 당할 이는 아니거늘. 허허. 빙궁의 태상 궁주라고 예를 차린 모양이군.”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때는 없다.
그런 사람이면서도 모든 걸 아는 진효풍.
도사보다야 호사가에 어울렸을 그였지만, 가끔은 이렇게 예리한 말을 전해온다.
분명 술 몇 잔에 홍구가 들려줬을 거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는 있었다.
그의 말처럼, 무림맹이 완전 호구도 아니고 일개 주루 장사꾼의 말에 온전히 털릴 일은 없다.
이번 일은 빙궁의 태상 궁주라는 것도 당연히 고려가 들어갔을 것.
어쩌면, 진효풍과의 관계도 조금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취운 스승님께서 또 절 도와주신 모양이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 어쨌든. 잘된 일이지. 개봉으로는 함께 떠나면 되겠군. 개봉이라. 허. 오랜만에 본산의 영감쟁이를 만나겠구만.”
“진 대협도 정도 대회에 참석하시는 건지요?”
“······?”
그저 평범한 질문이었다.
당신도 가냐는 말.
평소 그런 곳에 잘 가는 걸 싫어하는 이였기에 물은 말인데, 반응이 제법 역동적이다.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건 아닐까. 역시나 그의 반응은 언제나 재밌다.
“그, 저기 있지 않나? 내 나름 화산의 장로네만.”
“그런 곳은 잘 안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가끔은 얼굴을 비춰야 파문을 안 당하는 법이라네. 그게 여태까지 도관에 이름을 올려둘 수 있었던 비결이지.”
자랑은 아닌 것 같음에도 그는 유려하게 자신이 개봉에 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미 항주에 머문 게 1년은 넘은 그. 아직 적을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이번 정도 대회는 재밌을 거 같으이. 자네도 있고 빙궁이며 풍화도도 온다는 게 아닌가? 무길이나 한 궁주가 직접 오는 건가? 무길은 아직이라고 해도, 한 궁주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기도던데. 이참에 한 수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직접은 힘들 거라 하십니다. 아무래도 빙궁도 과도기라.”
“허. 그런가? 뭐, 빙궁이 깃발만 빌려줘도 무림맹이야 감사할 걸세. 무길은 오랜만이겠군.”
“도주님이라 부르셔야지요.”
“자네는 태상 궁주님이고?”
“무길로 하시죠.”
“어쨌든. 그리운 얼굴들을 자네도 많이 마주하겠군. 남궁이며 당문도 있을 거니.”
정도 대회를 떠올리는 진효풍의 입에서는 그리운 이름들이 나열된다.
중원에 떨어진 후 알게 모르게 연을 맺은 무림인들. 그런 이들을 한 번에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게 정도 대회.
말 그대로 대축제가 벌어질 거라. 조금은 설레는 것도 같았다.
“아. 거지놈도 가겠군.”
“홍 대협도 말씀이십니까?”
“그놈도 뭐. 나름 한 자리를 차지하는 놈이 아닌가. 개방의 후계자니.”
“다들 밖에서는 헌헌들 하시군요.”
“말에 뼈가 있는 거 같네만?”
“존경스럽다는 뜻이지요.”
“뭐. 그렇다면야.”
곁에 있어서야 다들 평범한 사람들인 줄 알았지만, 떼어놓고 본다면야 다들 한 가락은 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모이는 곳이 정도 대회.
구파일방이며 오대세가라 불리는 곳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지 않겠나.
이건, 무림 인플루언서들의 대축제라 불러도 무방할 것.
준비를 단단히 할 수만 있다면야, 큰 기회가 될 건 빤한 일이다.
모아뒀던 서신들을 접고는 일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석 달이란 시간이 빠르게만 흘러갈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