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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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 궁주님을 뵙습니다.”
“···이 공자로 하시지요.”
준비를 마치고 장원을 나서니 제법 웅장한 행렬이 날 반긴다. 저마다 하얀 옷을 걸친 이들은 빙궁의 무인들.
그들의 앞으로 암빙대의 조장인 백충이 나서며 내게 인사를 전했다.
난 애써 태상 궁주란 말이 부담스러워 이를 반려해 봐도, 백충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송구합니다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허면, 작게만···.”
“명심하겠습니다.”
“가시지요.”
“존명!”
부담스러운 대답까지 들은 후에야 이들과 함께 장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개봉 내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빙궁과 풍화도의 인물들.
다른 무인들이야 같은 복색에 특징만이 다르다지만 이 두 곳은 복색조차 다르지 않나.
빙궁은 털옷이 가미된 복색을, 풍화도는 왜풍이 가득한 복색을 갖춘 이들로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다.
“호오. 이번 정도 대회에 빙궁의 무인들이 참석했다더니 정말이군!”
“저기, 은색 머리 좀 보게나!”
“평생 녹지 않는 땅에서 살아간다는 이들이로군. 내 생전 처음 보네.”
“헌데, 제일 상석에는 또 중원인의 복색을 한 젊은이가 있군?”
“제일 높아 보이는데?”
그런 모습 중에도 모두의 시선을 다시금 끌어가는 건 다름 아닌 내 모습.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거다. 특히나 무림인이 아닌 개봉부의 평범한 인물들이라면 더욱.
빙궁이란 이방인 사이에 마치 중원인 같은 이가, 그것도 유별나게 젊은 놈이 앞장을 서고 있지 않나.
물론, 이런 시선은.
무림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빙궁의 귀빈들께서 오셨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앞에 젊은 공자께서는···?”
“말씀 조심하십시오. 빙궁의 태상 궁주님이십니다.”
“···예?”
개방을 단속해 아는 이들만이 아는 게 나와 빙궁 사이의 일. 무림맹의 수뇌부 정도라면 다들 아는 내용이지만, 실무를 보는 이들은 당황을 금치 못한다.
“···예, 실례했습니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조심을.”
애써 만류하는 내 손짓에 적당히 넘어가는 분위기. 안내를 맡은 이는 자리를 향하는 중에도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들은 말을 전부 믿지 못하는 눈치다.
“흠. 그래도 무림맹에서 빙궁을 박대하진 않는군요.”
“예. 비무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입니다.”
다행히 무림맹은 빙궁을 박대하진 않는다. 비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귀빈석을 떡하니 제공한 무림맹.
널따란 공간에는 석호루에서 제공한 술들이 놓여있어 이를 마시며 비무를 지켜보기 딱인 공간이다.
“어떻게, 맹주님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셨는지요?”
“내일 독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태상 궁주님께서 참석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일선에서 물러났기에 태상이지요. 백 조장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세요. 한 궁주의 뜻을 최대한 따라서.”
“명을 받들겠습니다.”
일이 생기려 하자 이를 유려하게 백충에게 떠넘기고는 자연스레 아래를 내려봤다.
아직은 시작되지 않은 용봉전. 그래도 용봉전에 참여하는 젊은 무인들이 슬슬 몸을 풀며 비무대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난 한눈에 빙궁의 아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다. 백발.’
흑발이 자리한 가운데 홀로 은발보다 진한 백발을 자랑하는 20대 초반의 무인 하나.
이런 행색은 딱 봐도 빙궁의 무인이지 않겠나. 저 아이가 누구인지 어떤 아이인지는 몰라도.
괜스레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이다.
“저 아이가, 빙궁의 대표로군요.”
“예. 천빙대(天氷隊) 소속으로 석천이란 유망한 아이입니다. 몇 달 전부터는 현천심공 역시 가볍게나마 익히고 있습니다.”
“그래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요. 새로운 빙룡이 나왔으면 합니다.”
스승이 가졌던 별호인 빙룡이 다시금 나왔으면 하는 순간. 그 이름이 머리를 스치자, 문득 또 다른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곧장 두리번거리며 바라본 쪽은 화산파의 무인들이 있는 귀빈석.
‘없···다?’
이걸 다행이라 불러야 할까, 아닐까.
아직 진효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어-!”
이내 뒤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소리.
난 조심히 고개를 돌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언제나 이런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 뒤에는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진효풍이 자리하고 있다.
“진 대협···? 어떻게? 검문회는 조금 전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까?”
“끝났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생산적이게. 급속으로 가르침을 전하고 오는 길이라네.”
“그게 무슨···?”
검문회가 시작한 게 고작 반 시진 전.
그런 검문회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무언가를 가르치고 대담을 주고받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왔어도 이건 너무 짧은 시간이지 않나.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계속 짓고 있으니 그는.
“그냥, 뭐랄까. 한 번에 가르침을 내렸다. 한 스무 명 정도를 상대로. 그렇게만 알고 있게나. 칼은 스무 번을 안 휘두른 것 같군. 허허.”
보지 않았어도 선명하게 검문회의 풍경을 눈앞에 그려준다. 저 말은 그냥 다 두드려 패고 왔다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아아. 때로는 말로 풀어주는 것보다 몸으로 익히는 게 빠를 때가 있네. 내 건성으로 한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나.”
진효풍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손을 털고는 자연스레 내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자연스레 자리를 비켜주는 백충까지. 이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진효풍이 익숙한 듯, 한 손으로 열어대는 벽력주 소리가 아련하게만 들려왔다.
생각보다 능숙한 손놀림이다.
– 벌컥벌컥.
“크으! 맛 좋구만! 암! 비무를 보면서 마시는 벽력주라! 무릉도원이지! 흐음. 그나저나 고민이군.”
“고민이요?”
“아, 만약에 말이네. 화산의 아이와 빙궁의 아이가 붙으면 누굴 응원해야 하나 싶어서 말이지.”
“그야···”
당연히 화산파이지 않을까.
시그니처처럼 나오는 그의 기사멸조에 또 넋이 나가고 만다.
“시작하는군.”
귀빈석의 대화가 들리지 않아 다행인 걸까. 용봉전의 결선은 아무런 무리 없이 그 시작을 알린다.
첫 무대부터 빙궁의 비무. 빙궁의 대표로 나선 석천은 점창의 무인을 상대한다.
“시작부터 점창이라. 쉽지 않겠군.”
벽력주를 가득 따라 입으로 가져간 진효풍은 마치 주말 낮 야구를 관람하는 자세로 등을 뒤로 눕혔다.
그리고 나오는 말은 쉽지 않을 거란 말.
당연한 예상이다. 빙궁도 만만치 않지만, 점창이란 곳 역시 구파일방의 한 축이지 않나.
시작부터 박빙의 승부로 용봉전의 열기가 가득 끌어 오를 것만 같던 순간.
– 파파파팟!
– 타타타탓!
– 챙! 챙! 파아아앙!
칼을 빼어 든 두 젊은 무인의 신형이 일시에 비무대의 중앙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굉음. 한 명은 찌르기를 한 명은 그걸 쳐내는 횡 베기를 휘둘렀다.
그러던 중 검이 마주하며 내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 것. 어쩌면 승부가 벌써 난 걸 수도 있을까 싶던 때.
“호오?”
일어나는 연기 속에서 뒤로 눕혔던 몸을 진효풍이 앞으로 당겼다.
그의 눈에는 결과가 보이는 모양이다.
“저거! 걸물이군!”
– 씨익.
“그렇지요?”
“···벌써?”
나오는 말에 맞장구치는 백충을 보니 그도 이걸 알아본 모양. 아직 연기를 뚫을 정도의 경지가 아니기에 난 그저 벌써란 말만 뱉으며 연기가 가시길 기다렸다.
잠시 후 불어오는 바람이 연기를 몰아내자.
비무대에는 한 명의 무인만이 검을 아래로 향한 채 모습을 나타낸다.
빙궁의 무인인 석천이다.
– 승자는 빙궁의 석천!
– 와아아아아아아!
“오! 빙궁의 아이가 이겼군요!”
“하하하! 암. 과연, 백충 자네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구만! 직접 키운 건가?”
“오가며 봐준 적은 있지만 제가 직접 키운 건 아닙니다. 아직 스승은 없는 아이입니다.”
감정의 변화가 잦지 않은 빙궁의 무인들도 석천이 승리한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한 문파 내에서 오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란 건 이런 순간도 포함하는 모양.
그와 반대로 패배한 점창파 귀빈석은 울상이 가득하다.
하하 웃으며 그 모습을 보던 난 문득, 멈춘 채 그런 풍경을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 제2전! 화산파 승리!
“암! 암! 낙화검은 그렇게 휘둘러야지!”
“사형! 보셨습니까! 저 낙화검 초식은 제가 가르친 겁니다!”
– 제3회전! 청성파 승!
“이리 오거라! 암! 장하다, 내 제자!”
펼쳐지는 제자와 스승들의 모습들.
자기가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님에도 저마다 방방 뛰며 제자의 승리를 기뻐한다.
반대로.
“괜찮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니. 이번 패배로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그만이니라.”
“잘했다. 초식이 지난번보다야 나아졌구나. 비무에서 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 거라. 먹고 싶은 건 없더냐?”
제자의 패배를 함께 극복하는 모습들까지.
무림이란 곳의 정서와 딱 맞게 떨어지는 모습들이 내게 다가왔다.
제자와 스승의 모습들이.
“좋아 보이나? 자네도 하나 들이지 그러나?”
“진 대협도 없는 제자를 제가 어찌요.”
“쓰읍. 나 때문이라. 나야 하나 보고 있는 제자 감이 있긴 하네만.”
“진 대협께서요?”
“이상한 표정이군.”
“언제는 제자는 안 받으신다고···.”
“그 생각마저 박살 내는 귀여운 아이를 하나 찾았다는 말이네. 소괴협의 재능이 출중하지. 화산에 나만큼 큰 엿을 던져줄. 자네는 너무 반듯했네. 암. 그래서야, 재미가 없지.”
“······.”
이를 보며 슬며시 다가와 내 속을 들여다보는 진효풍의 말. 제자라. 딱,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기에 이럴 때는 진효풍을 속일 수가 없다.
“눈빛이 심상치 않더군. 자네도 제자를 찾는 건가?”
“글쎄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다만, 아직은 결심이 서질 않아서요. 마침, 저런 모습들이 보이니 잠시 고민해 봤습니다.”
“흠. 자네 정도면 뭐. 거기에 무려 태상 궁주지 않나. 항렬만 본다면야 자네도 제자 한둘을 거느리는 건 문제가 없음이야. 아니 그런가, 백충?”
“진 도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혹, 괜찮은 아이가 있으신지요?”
“아뇨···. 아직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생각만···.”
“태상 궁주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빙궁에 연통을 넣어 무재가 가득한 아이들로 모아보겠습니다. 물론, 방금 보셨던 석천이란 아이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예. 예. 그건 차차···.”
아니, 그냥 보이는 걸 보며 조금 깊어진 눈을 표했을 뿐인데, 두 사람은 먼저 나서며 제자를 들일 생각이 없냐는 말을 물어온다.
제자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불안한 건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제자가 무공 쪽인 것만 같은 느낌.
당연한 말이지만, 난 무공으로 제자를 둘 생각이 없다. 아니, 애초에 무공이 누구를 가르칠 정도도 아니고.
당연한 말이지만 내 제자라면 응당 술을 다루는 제자가 될 거다.
이번 일처럼 석호루를 비우는 때면 맘 편히 가게를 맡길 수도 있고 술도 만들 줄 아는 현대의 기술을 물려줄 제자.
‘한공을···’
쓸 수만 있다면야 최고일 텐데. 저기 비무대에 선 석천이란 아이도 그렇게 본다면 나쁘지는 않고.
다만, 빙궁에서 촉망받는 무인을 데려다가 한공을 가르쳐 술 만드는 데 써먹겠다는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들이 내가 한공을 이렇게 쓰는 것에도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지 않나.
이럴 때면 새삼 아무렇지 않게 문파에 엿을 던지는 진효풍이 부러울 따름이다.
– 잠시, 휴전 후 결선이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차례 몰아쳤던 용봉전이 가지게 되는 짧은 휴식의 시간. 누군가 내기를 실어 알린 말에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이들이 자리한 용봉전의 비무장. 그런 곳의 주변은 안에도 들어오지 못한 많은 이들이 까치발로 안을 들여다보려 애를 쓰고 있다.
난 귀빈석이라 불리는 높은 자리에 서서 이들을 차근히 둘러봤다.
오가는 사람이 많다는 항주. 그런 항주보다 더 많은 사람이 머무는 개봉.
혹,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리한 개봉에는 내가 품을 만한 사람도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에 다들 자리를 비울 때도 제자리만을 지킬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