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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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도 영업 시작합시다.”
이제는 자연스레 나오는 말에 점소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느덧 석호루에 출근하지도 보름이 지나던 날. 그간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걸 먼저 말해보자면 여전히 서호의 풍경이 아름답고 그를 위한 창문 개폐식이 활발하다는 거다.
해가 어슴푸레 질 무렵이면 석호루는 만석을 이루며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변한 걸 이야기하자면 이건 조금 긴 이야기가 된다.
지난 보름간 내가 가장 힘쓴 건 점소이들의 교육과 새로운 제도의 도입.
생각보다 많은 반발이 예상되었지만, 이제는 말빨이 제법 먹혀 사람을 다루는 게 어렵지가 않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점소이들의 복색이다.
석가장을 상징하는 갈색에 밝은 빛을 살짝 덧대고 수를 가늘게 놓은 원단 좋은 의복이 점소이들에게 걸려있다.
예비비를 뺄 때 과감하게 뺀 게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
점소이들의 어깨에는 저마다 큰 자수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는 점소이들에게도 기억해 두라 했던 번호로.
“3호! 3호 점소이!”
손님들이 쉽게 자신들의 식탁을 담당하는 점소이를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장치였다.
“8번 자리에 3호 호출입니다!”
자리 역시 저마다 번호를 붙여둬 어느 자리에서 누가 누구를 부르고 또 누가 무얼 시켰는지를 알 수 있게 해뒀다.
책임 소재도 밝히고, 또 추후 있을 새로운 장치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 손님.”
손님이 소리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전달받은 3호 점소이가 나타났다.
손님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는 듯 슬쩍 어색한 표정이다.
사실 지금 상황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나. 보통이라면 이럴 때 들려야 하는 건.
– 예잇! 나리!
– 헤헤. 부르셨습니까요, 어르신!
같은 높은 음에 높은 목청, 그리고 잔뜩 굽힌 허리여야 했으니까.
그런 모습과는 반대로, 3호 점소이는 적당히 절도 있는 태도로 손님에게 다가가 차분한 음성으로 그를 대할 뿐이다.
“그, 저, 음. 그래. 여기 양고기 볶음과 생선찜 한 판 부탁하네!”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양고기 볶음과 생선찜 한 판, 맞으십니까? 생선은 잉어와 메기가 있는데, 잉어가 어떠실지요?”
“음. 좋네!”
“따로 마실 건 필요치 않으십니까?”
“응? 아! 석황주. 석황주도 2병 있으면 좋겠군.”
“석황주 2병. 따로 찾으시는 게 없으시다면 아주(兒酒)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좋지!”
오히려 손님의 목소리가 점소이 보다 높다. 어쩌면 중원 주루로서는 실격인지 모를 장면이지만.
바꾸고 난 후, 석호루의 풍경은 더욱 좋아지고 있다.
오가는 사람의 수만 해도 어마어마한 곳이다. 거기에 높고 시끄러운 점소이들의 소리까지 섞이니 오죽 번잡했겠나.
이제는 손님들의 목소리만이 차니, 이건 만족도 높지 않을 수가 없다.
점소이들은 차분히 말하는 법. 또 말을 길게 끌지 않는 법. 또 적당히 숙이는 법을 지난 보름간 함께 연습해 왔다.
3번 점소이는 주문을 재차 확인하고는 돌아서 주방으로 향했다.
“8번 자리에 양고기 볶음과 잉어찜 한 판입니다. 석황주는 아주로 2병. 직접 가져갑니다.”
주방 앞에는 한 명의 또 다른 점소이가 이들이 불러주는 걸 작은 종이에 받아 적고 있다.
그는 받은 종이를 八이라 적힌 목판에 붙여두고는 그대로 3호 점소이를 돌려보냈다.
“음. 확인.”
글을 아는 사람이 적은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글을 아는 사람을 골라 이런 일을 맡기기로 한 것.
주문이 꼬이고, 또 때로는 잘못 전달된 음식이 나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장치를 둬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글을 아는 자가 적었던 시기였지만, 주루에서 쓰이는 글자는 정해져 있다.
그런 글자를 몇 자라도 아는 이를 골라 이 자리에 앉혔다. 당연히 그는 다른 점소이들보다 월삭을 몇 푼 더 가져간다.
“자. 1구역 주임. 저기 4호와 5호에게 손을 맞잡는 건 좋으나 비벼서는 안 된다고 꼭 전해주세요. 또, 과하게 웃지 말란 게 무뚝뚝하게 있으란 말은 아닙니다. 그것도 전해주십시오.”
“옙. 이공자님.”
월삭을 더 가져가는 건 글을 아는 자만이 아니다. 교육을 잘 따라오는 이들을 몇 골라 주임으로 임명했다.
교육하는 과정에서도 왜 반발이 없었겠나. 제아무리 말빨이 좀 선 상태라도 반발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저마다 해오던 방식이 있고 그걸 고치라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럴 때는 고민해 봐야 한다.
일을 진행할 때 쓴 돈이 너무 적은 건 아닌가 하고.
월삭을 올린 주임 자리를 만들자, 저마다 자신이 해보겠다며 나서는 풍경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누구는 물을 수 있다. 오히려 점소이들이 굽신거리고 또 높은 목소리며 들뜬 기분을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론 맞는 말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네 객잔이나 작은 주루일 때 맞는 이야기.
석호루는 고급스러움을 표방하는 곳이다. 실제 가격은 그렇지 않더라도 보이는 것과 또 이곳을 찾는 이들이 기대하는 건 그것일 터.
허면, 돈을 받고 무언가를 파는 곳으로서는 그런 기대를 채워줘야 하는 게 당연했다.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 과연 마냥 굽신거리는 게 그런 기대를 채워주는 행동일까.
이런 물음에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단호했다. 절대 아니라고.
유교식 예의라는 게 나온 땅이 이 중원이란 땅이다. 그런 땅에서 대접이란 대접을 다 받고 사는 천자란 이도.
– 아이고오오오! 황상 나으리!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요오!
고관들이며 내관, 궁녀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당장에 북경 최고의 주루에서 일하는 악공인 매초현의 화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진정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은 언제나 세련된 친절함을 마주했을 때,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허허허. 오늘도 자알 먹고 가네!”
기분 좋게 자리를 떠나는 손님을 보면 이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점소이들이 먼저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들을 대하는 손님의 태도도 변한 게 사실.
오히려 이전보다 진상도 줄었고, 점소이들을 점잖게 대하는 게 요즘 손님들이다.
“3호라고 했나? 이름은?”
“황반입니다.”
“음. 오늘 아주 고마웠네. 덕분에 편안히 잘 즐겼음이야.”
“감사합니다.”
“다음에 큰 모임이 있네. 그때도 자네가 대접해 줬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입구에서 황반, 또는 3호를 찾아 왔다고 해주시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좋네! 암! 또 보세! 계산하고 남은 돈은 자네가 가져도 좋네!”
“감사합니다. 손님. 손님 퇴장하십니다!”
이전에는 잔뜩 손을 비벼야 나오던 전낭이 이제는 알아서 술술 나온다.
효과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
3호의 배웅을 받은 손님이 석호루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입구 쪽에서 잠시 멈칫하는 그의 발걸음. 그는 문앞에 놓인 자그마한 목판에 시선을 던졌다.
“이게 뭐요?”
마침 목판 앞에 있어 그의 말을 받을 수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월별로 최고의 점소이를 뽑고 있습니다. 혹, 추천할 점소이가 있으시다면 번호를 쓴 다음 이 통에 넣으시면 됩니다.”
“호오? 혹, 여기 선정되면 좋은 게 있소?”
“물론입니다. 그달에 보너, 아니. 특별 상금을 받게 됩니다. 또한, 주임으로 승진할 수도 있지요. 잘못한 점소이나 뒷돈을 요구한 이가 있다면 측간 쪽에 둔 ‘마음의 소리’란 통에 이를 기고하실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까지! 대단하오! 이건 어찌 참여하는 것이오? 아. 물론 난 마음에 든 경우요.”
“여기 목패에 번호를 쓰신 후 넣으시면 그만입니다. 익명이니, 부담 없이 하시지요.”
손님은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목패에 三이란 숫자를 그려 넣고 그대로 이를 통으로 가져갔다.
제 손으로 뽑은 점소이가 최고가 된다면 추후 다시 들렀을 때 그 최고에게 대접을 받게 된다.
손님에게도 직접 그런 점소이를 뽑는 기회를 줌으로써 그들의 경험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황반이 요즘 독주하는군요.”
손님을 배웅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옆에는 덩치 좋은 무인인 철환이 다가와 있다.
안까지는 잘 들어오지 않는 철환이지만, 문 앞에서는 이렇게 가끔 그와 마주칠 수 있었다.
“철 대협.”
“밖에서만 봐도 요즘 석호루가 아주 달라졌습니다. 발 디딜 틈도 없군요, 이젠.”
“짧게 봐서는 안 되지요. 1년 내내. 이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나 말입니까?”
“석호루가 여간 큰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번 들른 손님이 다시 와주는 곳. 또 다른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올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되어야 할 겁니다.”
철환은 딱 내가 석호루에 손을 대기 시작한 무렵에 여기서 일하기 시작한 이였다.
석호루의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살펴본 이가 철환이니 그로서도 남다른 심정일 것이다.
“그나저나, 이공자께서 오신 후 저희 일이 크게 줄긴 했습니다. 제가 이리 시간이 남는 걸 보면 말입니다.”
“제가 민폐를 끼친 건가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덕분에 편하게. 아주 편하게 일하는 중입니다. 다만, 신기합니다. 어찌, 점소이들의 태도는 더 딱딱해진 것 같은데 이리들 진상이 줄다니요.”
“너무 과하게 낮추면 이를 괄시하는 이들이 생깁니다. 적당히 낮추며 또 낮추지 않으며. 상대를 높이면 서로가 존중하게 되는 거지요.”
“흠. 과연. 무공과도 통하는 원리가 있군요. 무림인의 자세와도 닮아있고.”
“무림인이라···. 가깝고도 먼 이야기네요. 하하.”
“그리 멀지는 않지요. 손님 중에도 더러 있고.”
“그런가요?”
“예약 장부···, 보시지 않은 겁니까?”
“네? 1, 2층은 예약을 안 받습니다만?”
“하.”
철환은 3층 이상의 상황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는 슬쩍 한숨을 뱉었다.
다른 건 다 잘하는데, 꼭 이쪽으로만 오면 허탕이란 표정이 그의 얼굴에 걸렸다.
“물론, 3층부터는 이공자의 소관이 아닙니다만, 이번 건 보셨어야 했습니다. 하층도 조심은 해야 할 테니까요. 정파 무림인들이 이틀 뒤 석호루 4층을 통으로 예약했습니다. 아주 거물들이지요.”
“거물이요?”
거물이란 말에 고개가 절로 기울여졌다.
철혈장도란 별호를 가진 철환이 거물이라 부를 정도면 예사로운 인물들은 아니지 않겠나.
“화산파 도인들입니다.”
!
“화, 화산이요? 제가 아는 그 화산파 말입니까? 매화 슈슝하고 파파팟 하는 그 화산?”
“그···, 예. 뭐. 매화로 유명한 그 화산이 맞습니다.”
화산이란 곳은 나도 익히 들은 곳이다. 그건 이곳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이름이기도 했다.
무협 조금이라도 읽었다는 남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지 않나.
매화를 슈슝하고 검기가 파팟하는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 정순한 도기의 소유자! 가 화산이니 말이다.
잠깐. 정순한 도기? 여기서 누구는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잠시만 이를 떠올리곤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도사가 주루에 오는 게 이상할 순 있습니다만, 그런 생각이 드셔도, 입으로 내셔선 안 됩니다. 다들 표면상으로는 경치가 좋아서 오는 거니까요. 실상은 직접 술을 빚기도 하는 게 도가 문파란 곳들입니다.”
“음, 실은 예전에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상하게 여겼을 거 같긴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라.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봤을 뿐.
난 철환의 말에 답 대신 시선을 돌림으로 이를 대신했다.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철환.
우리 두 사람의 눈에는 한 손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드시게나!”
“하하! 이 도장 좀 보시게! 아주 주당이네, 주당이여!”
“천존께서도 술을 즐기시거늘 내 어찌 술을 피하겠나!”
“하하하하! 가도(假道)가 따로 없구려! 좋소!”
술잔을 높이 들며 여러 사람과 잔을 섞고 있는 한 손님. 얼굴이 자세히 보이는 건 아니다. 뒷모습만 전해질 뿐.
다만, 그런 뒷모습만으로도 그의 정체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얀. 아니, 하얬을 거라고 추정되는 누런 도복에 삐뚤어진 도관(道冠). 그리고 허리에 찬 칼까지.
누가 보아도 그의 행색은 도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도사답지 않은 모습이 더 많기는 하다. 칼을 찬 허리 반대에는 술병으로 보이는 게 달려있고 손에는 술잔이 있지 않나.
거기에 어울리는 이들은 또 어떤가. 시정잡배라 불러도 좋을 이들과 아무렇지 않게 잔을 섞는 모습.
이를 본 철환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그···, 가끔은···. 예.”
“벌써 사흘째입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나 저렇게 사람들 사이를 종횡무진 중이지요.”
“그, 무림인이 아닐 수도?”
“아뇨. 아마, 무림인은 맞을 겁니다.”
“어찌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닐 거라. 제발 아니어라. 무림인으로서 강한 바람이 철환의 눈에 맺혔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내 생각이 맞을 거다.
“잠시 손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제 손을 말입니까?”
“예.”
철환에게 다짜고짜 손을 달라 했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살짝 내밀어주는 철환.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손에 칼 같은 걸 꽉 쥐시는 분들은 굳은살이 생기지 않습니까? 마디가 끝나는 부분과 칼끝을 말아쥐는 손가락 끝부분. 그런 굳은살이 저분께도 있었습니다.”
“언제 그런 걸···?”
소름 돋게 들릴 수는 있다. 다만, 이건 직업병. 바텐더는 어쩔 수 없이 손님을 관찰하게 된다.
거기서도 제일 많이 보는 건 손. 이건 손이 바로 술잔을 잡는 곳이기 때문이다.
술을 어떻게 마시나. 또 어떤 술을 마시나. 그걸 보려면 필연적으로 손을 볼 수밖에 없다.
“일종의 직업병이지요. 관리인은 손님을 관찰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헌데, 손에 굳은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건, 숙수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생기는 게 아닙니까?”
“그런 것과는 다른 모양입니다. 철 대협처럼, 굳은살이 조금 뒤로 밀려있었으니까요.”
“음. 확실히 그건 병장기를 강하게 맞대었을 때 생기는 흔적이 맞습니다. 실전을 겪었다는 증거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에 철환이 또 한 번 귀를 기울인다. 이제는 내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도사의 행색도 잊은 그였다.
“철 대협께서는 저 도인이 석호루에 들어오는 걸 본 적이 있으십니까?”
!
“예?”
석호루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철환을 비롯한 무사들이 지키는 대문.
이는 큰 문이며 완전히 열려 있어 그저 지나치듯 통과할 수 있는 문이다.
다만, 가끔 이상한 이들은 무사들에게 걸러지고 만다. 이게 철환의 주된 업무였다.
“본···적이 없는 거 같군요.”
“그렇지요? 저런 복색에 행색이라면 철 대협께서 놓쳤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늘 번을 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흘 내내 한 번도 말씀입니까?”
!
“그렇다면···.”
이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철환은 그런 생각에 눈매를 고쳤다. 사흘 동안 자신이 번을 선 건 총 세 번.
그 세 번 동안에 한 번도 눈에 들지 않았다는 건.
“암행술(暗行術)이겠군요.”
평범하게 들락거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암행술이 무엇입니까?”
“무공의 일종입니다.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지우는 게 암행술이지요. 기본공에 속하긴 합니다. 다만, 이런 곳에 올 때 쓸만한 기예는 아니지요. 제가 한번 살펴봐야겠군요.”
철환은 말과 함께 슬쩍 장도를 당기고는 도사에게 다가갈 준비를 마쳤다. 서늘한 기운이 그에게서 뿜어졌다.
난 서둘러 손을 저어 그를 말렸다.
“철 대협. 참으십시오. 만약 무언가 사고를 치려는 사람이라면 왜 석호루 내에서는 저리 존재감 있게 굴겠습니까?”
“그건···.”
“혹,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곧바로 부르겠습니다.”
철환은 겨우 수습하는 말을 듣고는 장도를 다시금 뒤로 돌렸다.
내 말처럼, 만약 사고를 칠 거라면 안에서는 저리 존재감 있게 행동할 리가 없지 않나.
“무림인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입니다. 부디 유심히 살피시길 바랍니다.”
이에 수긍한 철환은 그저 마지막 조언만을 남기고는 다시금 밖을 향했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그저 눈에 그의 모습을 넣는 것.
그게 지금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