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0
***
“해서, 어떻게 해볼 생각인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은 진효풍이 물었다.
이미 주변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흡사 주루가 아닌 도박장 같은 풍경이다.
“말씀하셨던 두 술을 섞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말씀하셨던 내기도 계속했으면 합니다.”
!!
내 말이 끝나자 진효풍은 물론이고 둘을 지켜보던 마부, 철환 등 모든 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젊은이가 정말 상황을 아는 걸까. 다들 그런 표정이다.
“하하하! 재밌구만! 재밌어! 앞에 그 진상을 겪고도 내기를 하자?”
“신분을 밝히기 전에 내기를 논하셨습니다. 화산파의 높으신 분이란 것과 내기를 못 하는 건 아무런 관계가 없지요.”
아아. 이건 내 실수다. 딱, 그런 표정이 이 말을 할 때쯤 철환의 얼굴에 걸렸다.
기왕이면 당찬 태도에 감동하는 표정을 지어주지. 자책만이 가득한 철환이 눈을 질끔 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화산괴협이 딱히 화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옳다. 옳아! 그래, 내기를 하려면 판돈이 있어야지! 자네는 무엇을 걸 건가?”
“뭐든 원하시는 게 있으신지요?”
“흠. 지금은 딱히 없네만.”
“허면, 내기가 끝난 후, 도장께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내어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말입니다.”
“좋네. 시간을 준다니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군. 가능만 한 일이라면 행동 같은 것도 되는 거겠지? 다시는 술을 섞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던가.”
“물론입니다. 제가 진다면.”
“허허. 자신감이 넘치는군. 헌데, 내기가 성립하려면 나도 무언갈 걸어야 하지 않겠나?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내기니.”
“제가 탄 술이 도장의 마음에 든다면, 저도 바라는 건 있습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게.”
“술이 든 술병.”
!
“매약주가 담겼던 그 술병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게 뭔지는 알고 달라는 건가? 허허.”
“한기가 보존되는 신비한 병이라 하셨지 않습니까. 도장께서 주실 수 없는 물건이라면, 다른 걸 골라보겠습니다.”
“뭐. 내 손에 있는 것 중 내가 줄 수 없는 건 없네. 이걸로 하지. 이거면 되겠나?”
“충분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받으려는 게 너무 소박할 수도 있다.
술이나 담는 작은 병에 이런 내기를 걸다니.
하지만, 난 저 물건이 무척이나 탐났다.
한기를 그대로 보존한다면 어떤 술을 담아도 상할 걱정 없지 않겠나.
황주라 불리는 대부분의 중원 술은 상온에서 3개월이면 상하고 만다.
저 술병이 있다면 어떤 술이든 상하지 않고 항주까지 가져오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북의 추황주가 그렇게 맛나다던데, 저 병을 보내서 담아오면···.’
또 어떤 맛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술을 만들 수 있을까.
스윽.
슬쩍 흐르는 침을 닦고는 내기를 시작할 준비에 들어갔다.
“홍부장. 거기 있습니까?”
“예. 이공자님.”
“목이 길고 너비가 좁은 잔을 가져다주십시오. 얼마 전 새로 산 잔 중에 있을 겁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 홍악은 부리나케 달려가 찰떡같이 내가 말한 그 잔을 챙겨왔다.
부장이란 말을 대외적으로 불러주니, 홍악은 신이 나 일이 더 빠르다.
“도장께서만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일행분들도 모두?”
“음. 어떤가? 마정. 자네가 함께 맛을 보는 건?”
“제, 제가 말입니까?”
“내기지 않나. 공정한 이가 하나는 끼어 있어야지. 관리인이 느끼기에 내가 떼를 쓴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
“그게 저라도 괜찮을지···.”
“내가 보증하지. 마정이라면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 줄 걸세. 내 오래전부터 화음에서 어울려 봤기에 보장할 수 있네. 못 믿겠다면, 다른 이로 바꿔도 좋고.”
“믿겠습니다.”
“그럼 됐군. 마정은?”
“마유주라면···, 우리 마부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긴 합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저도 맛을 보고 싶긴 하군요.”
“형통이군!”
석호루 1층. 그중에서도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중앙에 새롭게 자리를 만들었다.
딱 모두가 볼 수 있는 자리. 때로는 이런 유흥거리가 생기는 게 주루란 곳이지 않나.
어차피 일을 치르는 김에 모두가 보라는 식으로 자리를 만들었다.
다행히 진효풍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마련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두 사람을 앉혀둔 후 뒤로 돌려놨던 가죽 가방을 앞으로 당겼다.
이건 원래 있던 곳에서 내가 가져온 물건들. 진효풍에게 보검과 술병이 있다면, 내게는 이 바텐딩 도구들이 있다.
오늘은 뭘 꺼내 볼까.
주공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셰이커를 꺼낼까. 아니. 오늘 꺼낼 건 조금 소박한 도구.
여러 도구 중에서 기다란 숟가락. 바스푼이라 불리는 도구만을 꺼낸 후 다시금 가방을 닫았다.
손에는 홍악이 가져다준 작은 잔과 바스푼이 들렸다.
‘잔이 투명하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중원의 시장을 돌며 여러 잔을 구하려 노력해 봤다. 칵테일 잔처럼 생긴 것들은 없나 하고.
이건 정말이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짓이었다. 유리 세공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 그런 잔은 엄두도 못 낼 시대였다.
대신 비슷하게 생긴 자기 잔은 몇 개 구할 수 있었다. 이를 미리 구매해 둔 게 이제야 쓰임이 된다.
지금 손에 잡힌 건 그렇게 구해둔 잔 중, 샷(shot)잔이라 불리는 것과 닮은 잔이다.
“그 작은 잔으로 할 셈인가?”
“아마 가장 잘 어울릴 겁니다.”
“자신만만하군.”
진효풍의 말에 그저 입으로만 웃고는 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제일 먼저 손에 들어온 술은 매약주.
신비한 병에 담긴 매약주가 달콤한 향을 뿜었다.
이를 그대로 잡고는 작은 잔에 곧바로 부어 버렸다. 아무런 기술도, 또 기예도 없이.
지켜보던 모두의 얼굴에 실망이 아릴 무렵.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다음 동작이 펼쳐졌다. 한 바퀴를 빙빙 돌리며 시선을 모은 숟가락을 그대로 잔의 벽면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붓는다?”
가죽 포대에 담긴 마유주를 그 숟가락의 머리 부분으로 붓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세심하게.
모두가 내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 똑. 똑. 똑.
숟가락 머리를 타고 벽으로 흘러간 마유주는 천천히 매약주 위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한 방울씩 조심히 층을 쌓듯 올라오는 마유주. 이를 보던 마부들 몇은 헛구역질을 하며 저 맛을 상상하는 모습이다.
매약주의 맛이 더해진 마유주라니. 비린 맛이 그대로 커져 비위가 남아나질 않을 맛일 거라.
그들은 그렇게 상상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를 거다. 난 확실한 수 있었다. 단지 술을 따로따로 연달아 마시면 그렇겠지만.
지금 이렇게 만든 술은 절대 앞서 내가 마셨던 것과는 같은 맛이 나진 않을 거다.
두 잔을 모두 완성하자 마정과 진효풍의 고개가 앞으로 쭈욱 나왔다.
두 사람은 잔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전부인가?”
“예. 단지 두 술만을 섞는 거라면 이게 가장 잘 어울릴 겁니다.”
“흠. 생각보다 평범하군.”
평범하다라.
조금 자존심은 상하는 말이다.
이건 간단해 보이지만 세 개의 기술이 섞인 바텐더의 콤비네이션.
평범하게 술 위에 술을 더한 거로 보일 수는 있다. 허나, 바텐더는 한 잔의 술을 부을 때도 그냥 붓는 법은 없다.
멋대로 부은 것처럼 보이지만 두 술의 양은 정확히 조화를 이룰 양으로 계산된 것.
아래에 매약주를 더하고 위에는 마유주를 넣은 건 플로팅이라는 하나의 칵테일 기법까지 들어간 거다.
술은 저마다 비중이 다르다. 보통은 단맛이 나는 술이 무겁고 그렇지 않은 술이 가벼운 편.
이를 이용해 술 사이에 층을 내며 술을 쌓듯이 올리는 기법이 플로팅이다.
원리에 맞춰 달콤한 맛이 강한 매약주를 아래에 신맛이 강한 마유주를 위에 배치했다.
둘은 막 섞여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따로따로 하나의 층을 이루며 정확히 갈라져 있다.
잔이 투명했다면 이게 한눈에 보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자기 잔으로 되어 있어 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고 있다.
“보기엔 그냥 마유주처럼 보이는데.”
“드셔보시면, 다를 겁니다.”
진효풍은 완성된 잔을 보고는 어깨를 들썩했다.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을 거라. 확신하는 모습이다.
“그냥 마시면 되는가?”
“한 번에 쭉 들이키시면 됩니다.”
쭉 들이켜라. 이건 플로팅으로 만든 칵테일을 음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바텐더는 플로팅 칵테일을 만들 때 그렇게 마실 걸 상정하고 맛을 계산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산은 완벽했다.
나도 모르게 씨익하고 미소를 지을 정도로.
내 웃음을 한번 보고는 진효풍과 마정이 떨떠름하게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
‘이거···’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만 같다. 마정은 앞에 놓인 잔을 보고는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무언가 적절히 맛을 내는 걸 보여주기라도 했다면 편을 들어줬을 텐데.
젊은 관리인이 내민 잔은 그저 마유주처럼만 보였다.
‘이러면, 편들기 애매한데.’
제법 괜찮은 젊은이였다.
고작 마부인 자신들에게 좋은 대접도 해줬고.
살포시 청년에게 좋은 말을 던지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던 마정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마부로 오랜 시간 일하며 마유주를 마셔온 그는 알 수 있었다. 마유주의 색이 이렇게 진하다면.
이건, 절대 맛이 있을 수가 없다.
‘진 도장이라면···’
적당히 중립을 지키면 이해하고 넘어갈 거라. 마정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괴협이다. 나이는 고작 일대 제자의 나이지만 장로의 항렬이고. 허나, 오래전부터 그를 보아온 마정은 알고 있다.
그가 괴협이라 불리지만, 그도 ‘협’은 협이라는 걸. 적당히 중재하면 이해해 줄 거라. 깊게 믿을 수 있는 마정이다.
‘그래. 적당히 표정을 관리하면서 중립을 지켜보자.’
얼굴에서 맛이 드러나면 안 된다. 진효풍에겐 미안하지만, 젊은이를 위해서.
둘 사이에는 승자 없이 그저 일은 지지부진하게 물 흘러가듯 해결되길 바라는 마정.
마정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앞에 놓인 잔을 들고 곧장 입에 이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 곧 치고 올 역하고 비린 맛을 참아내려 눈을 질끈 감길 잠시.
!
‘어?’
오지 않는다.
치고 올라야 할 비린 맛과 역한 맛이.
겉보기에는 그저 마유주처럼만 보였는데, 저 젊은이가 무슨 조화라도 부린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 다른 맛이 마정의 입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나. 하는 착각도 잠시.
‘아···!’
연달아 들어오는 건 매약주의 맛이다.
한 번에 들이켜 입안에서 섞여들던 매약주의 맛과 향이 뒤늦게 전해졌다.
아마 단맛 덕에 마유주 특유의 역함과 신맛이 강해지겠거니 하던 마음도 잠시.
어라? 이게 싫지가 않다. 분명 둘이 섞이면 마유주의 맛이 강해져야 할 텐데.
지금 느껴지는 맛은 그렇지가 않았다.
뒤늦게 들어온 매약주의 향이 찬찬히 입안을 녹이듯 다독여줘 역한 맛과 비린 향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마유주에서 안 좋은 맛과 향이 달아나니 남는 건 부드러움이다.
말젖 특유의 부드러움이 입안을 쓸고, 부드러워진 입안을 깔끔한 매실 맛과 매화향이 채운다.
적당히 신맛이 단맛과 어우러지니, 이내 달큰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맛이 잔잔히 혀끝을 간지럽혔다.
더할 나위 없는 조화가 입안에서 펼쳐졌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마정은 날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올라오는 건 잔잔한 잔향.
원래라면, 톡 쏘듯 올라오는 게 매약주의 잔향일 터. 헌데, 이번에 올라오는 잔향은 조금 다르다.
매화향도 매실향도 아닌. 그래, 이건.
매화나무 그 자체의 향.
따로 놀던 두 술이 결국에는 하나로 합쳐지며 마유주에서는 초원의 향을, 매약주에서는 과실과 꽃을 향을 뿜으며 한 그루의 나무를 연상케 했다.
반대로, 또 따로.
그렇게 마셨을 때는 서로의 단점만을 부각하던 두 개의 술이 저 젊은 관리인의 손을 타니 이내 서로의 장점만을 뽐내고 있다.
이것까지 노린 걸까.
그럴 거라.
마정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잔을 들기 전, 그가 진득하게 짙던 그 미소는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좋구나.’
마정은 이제 표정을 관리하는 것도 잊은 채 연신 숨을 내뿜는다. 전해지는 향이 싫지 않아 부러 숨을 내쉬어 보는 그.
그는 자신도 모르게 턱까지 들며 온몸으로 맛을 음미했다. 평생을 마유주 옆에서 살았지만, 이런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내기는 도장의 패배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맛!’
마정은 그제야 눈을 뜨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들 내 표정을 보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슬며시 눈을 뜬 마정의 시선에 주변인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다들 놀란 표정이다.
‘표정이···너무 표가 났나?’
저 술이 그 정도란 말인가. 술에 빠져 표정도 못 감추고 그게 보는 사람들에게 전해질 정도?
마정이 속으로 젊은 관리인을 한껏 추켜세우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온 말은 내기의 당사자인 둘이 아닌.
“어, 어, 어?”
“저, 저거!”
깜짝 놀라는 구경꾼들의 소리. 그들은 저마다 같은 손짓과 표정으로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정의 바로 옆, 진효풍이 앉았던 자리 조금 위를.
마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조금 더 귀에 집중했다. 그러자.
“뜨, 뜨···뜬다!!!”
선명히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
마정은 그가 손으로 연신 가리키는 곳을 향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
보이는 하나의 선명한 신형.
“어, 어···?”
말 그대로 공중에 뜬 채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명상에 빠진 진효풍의 모습이 마정의 눈에 들어왔다.
두둥실 떠오른 그의 몸에서 광채가 뿜어졌다.
플로팅 예시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