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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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하루였다.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을 그렇게 회상했다.
아마 중원이란 세계에 온 이후 제일 힘든 날. 난 그날을 오늘로 꼽을 것이다.
진효풍과의 내기가 항주로 퍼진 바로 다음 날. 석호루는 역대급이라 불러도 좋을 인파를 마주하며 모두의 몸이 갈려 나갔다.
“지, 집까지 누가 좀···!”
“이 공자님···! 살려주십시오···!”
“자고, 자고 가겠습니다···.”
평소라면 퇴근 시간이라며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르던 점소이들 입에서 곡소리가 나올 정도.
거기에 강골 무인이라는 철환까지 의자에 몸을 앉히고 하얗게 불 태운 모습을 보이니.
과연 대륙의 기상은 감히 몸으로 받아낼 게 아니다.
‘나도···.’
죽을 지경이다.
평소라면 머리는 복잡해도 몸 하나야 멀쩡해야 하는 게 관리직의 장점이지 않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방문객 중에는 더러 날 꼭 만나야겠다며 우겨대는 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한 번씩은 그곳에 얼굴을 비추느라 몸이 말이 아니다.
‘마유주랑 매약주가 없어서 망정이지···.’
만약 석호루에 그 술들이 준비라도 되어있었다면.
정말이지 몸이란 게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마유주야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지만, 매실 와인인 매약주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화음에서야 구할 수 있긴 하다던데. 그걸 가지고 오는 동안 모두 식초로 변할 게 분명해 감히 시도할 수가 없다.
“다들 오늘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이번 달 월삭에 특별히 조금 더 보태겠습니다.”
“월삭을 더 주신다니 기쁩···니다···. 하···하하.”
돈을 더 준다니 기뻐 보이긴 하다. 다만, 반응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점소이들.
정리할 건 남았지만, 오늘은 이들을 더 붙잡아 둘 수 없어 서둘러 모두를 귀가시키기로 했다.
집무실에 잠시 들러 다음날 주문할 술만을 가볍게 살핀 후 나도 석호루를 나섰다.
“후우.”
떠들썩함이 사라진 서호 주변은 어느새 고즈넉함이 찾아와 운치를 더해가고 있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채 집으로 향하는 건.
바텐더란 직업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게 새벽 퇴근이다. 모두가 비운 조용한 길거리를 걷다 보면 평소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볼 수 있다.
서호에 깔린 새벽 안개가 그러했고, 달빛이 만들어낸 호수 위 빛의 길도 그러했다.
감상이 점점 깊어지려던 그때.
“멋있지 않나? 언제봐도 서호의 새벽녘은 최고라네.”
!
등 뒤로 낯선 목소리가 날아왔다.
서둘러 뒤를 도니, 달이 걸린 석호루 지붕 위에는 하나의 인형(人形)이 달빛을 머금고 있다.
오늘 석호루를 바쁘게 만들어준 그 주인공, 화산의 도사 진효풍이다.
“···진 대협. 몸은 괜찮으십니까?”
“음. 더할 나위 없네. 누구 덕에 말이지.”
“다행입니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네가 잘 대처 해줬다 들었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기는. 허허.”
“덕분에 석호루가 오늘 터져나갈 뻔했습니다. 그 점도 감사드립니다.”
“그래, 안 그래도 저녁 즈음에 자네를 만나러 왔네만. 감히 저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겠더군. 그래서 기다렸지.”
“배려에 감사합니다. 아마 들어오셨다면···. 큰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러니까.”
짧게 답한 진효풍은 몸을 일으킨 후 그대로 석호루 지붕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깜짝 놀라길 잠시.
– 팟. 팟. 팟.
하는 도포 휘날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그의 몸이 하늘을 걷는 것처럼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표표한 신법이 그의 발에서 유려하게 펼쳐졌다.
눈앞에서 무공이라 불리는 신기를 두 번째 보는 중이다.
진효풍은 내게서 딱 두 발치 정도 떨어진 곳에 정확히 몸을 내렸다.
5층 높이의 건물에서 내려옴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는 그의 몸.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한 번 맞추더니, 포권을 하고는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꼭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전하고 싶었네만. 이렇게 소박하게 전하는 말을 부디 용서하게. 화산파 32대 제자 진효풍. 석가장의 이 공자께 지난밤 있었던 모든 일에 감사를 표하네. 진상을 받아준 것, 깨달음을 얻게 해준 것, 새로운 맛을 알려준 것, 또한 심상에 든 본도를 보호해준 것. 모두. 이 진효풍. 화산의 이름을 걸고 은혜를 꼭 갚겠네.”
그리고 전해지는 깊은 감사의 표현.
무뚝뚝하다. 허나, 그래서 더욱 진실로 전해지는 어투. 그런 어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술은 절대 섞이지 않을 거라고. 맛이 없을 거라고. 내기를 해보자고.
그렇게 윽박질렀던 손님이다.
그런 손님이 이제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모든 게 시작된 건 내가 건넨 한 잔의 술.
바텐더에게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
“진 대협의 인사,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저 역시 감사합니다.”
조금 어색하지만, 무림인의 방식을 따라하며 포권으로 답례를 건넸다.
진효풍은 한참을 고개 숙인 후에야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이걸로 끝내시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저와 진 대협 사이에는 아직 계산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계산?”
고개를 들고 멋쩍게 웃어 보이는 그에게 가볍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잠시 갸웃하더니.
“아!”
하면서 자신의 옆구리에 찬 술병을 바라봤다.
“내기를 했었지!”
둘 사이엔 아직 결착을 보지 못한 수가 하나 남아 있다.
“어떠셨습니까? 제가 만들어드렸던 술은 맛있었습니까?”
숨은 그의 말 속에 이미 답은 들어 있었다. 다만, 바텐더란 족속들은 이렇다.
이미 알아도 손님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 것. 이건,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기대되는 말이 있어 잔잔히 입꼬리가 찢어지자, 진효풍도 이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는.
“최고였네. 다시 맛보고 싶을 만큼.”
이라며 바텐더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들려줬다.
“언제든지 오시지요. 더 맛난 술도 선보이겠습니다.”
“하하! 더 맛난 술? 다음엔 날 등선이라도 시키려는 건가? 이거 현생에 미련이 많아 등선은 싫은데!”
“우연인 걸 아시지 않습니까? 의도한 일도 아니고. 아마, 두 번은 없을 거 같습니다.”
“혹시 모르지!”
진효풍은 장난기 가득한 말에 그저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산의 시간.
“약속하신 판돈을 받아가도 되겠습니까?”
“이것 말인가?”
“예.”
“그렇지 않아도 이걸 보는 순간 머리가 번쩍했었네. 마치 빚을 갚으러 오라고 자네가 보채는 느낌이었달까?”
“전해져서 다행입니다.”
“사람 성실하기는. 그저 스윽 챙겨둬도 됐을걸.”
“그래서는 안 되지요. 또한, 정식으로 결착을 내야 했으니까요.”
“허허. 호탕하기는. 여기 있네. 이건 이제 자네 거네. 화산파의 신물로 내려오는 만화호(萬花壺)란 놈이네. 자네 물건을 두고 이런 말은 뭣하지만, 부디 소중히 써주길 바라네.”
“···받아도 되는 겁니까?”
화산파의 신물이란 말에 슬쩍 겁이 났다. 이걸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걸까.
진효풍은 그런 표정이 재밌는 듯 웃고는 걱정하지 말란 말을 전했다.
“잃은 건 이 진효풍이니 책임 역시 내게 있네. 말했지 않나? 내 손에서 내가 책임지지 못할 건 없으니. 누구도 이를 두고 자네를 탓하거나 회수하겠다며 나서지 못할 걸세.”
“···그럼, 소중히 사용해 보겠습니다. 좋은 술을 담을 수 있을 겁니다.”
“헌데, 정말이지 이거면 족하겠나? 정말로?”
“내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협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지만, 이는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석호루 역시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허니, 저도 받을 것만 받아야지요. 내기를 두고 두말하는 이와 누가 또 내기를 하려 하겠습니까?”
은근한 진효풍의 물음에 정석적으로 답을 전했다. 다른 뒷계산이 있는 말은 아니다.
정말이지 내가 받아갈 계산은 여기까지기 때문. 다만, 이제는 정산의 주체는 조금 바뀌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난.
“대신, 석가장에 한번 들러주십시오. 오래전부터 석장주께서 대협을 흠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일도 당사자께 들으면 기뻐하실 겁니다.”
이를 살포시 석두원에게 넘겨버리기로 했다. 세가의 가주고 무림인에 상인이다.
무언갈 받아야 한다면, 그가 더 잘 받아낼 것이다. 석호루에 날 보낸 게 석두원이니.
이런 핑계가 절대 허약하지 않았다. 물론, 흠모하고 어쩌고는 전부 내가 지어낸 말이다.
“하하하! 그래. 그래. 이제부터는 화산과 석가장의 이야기란 말이지. 내 자네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석가장에 들러 인사를 전하려 했었네. 화산에서 연락이 오면 곧장 들르지. 자네가 보냈다는 말도 보탬세.”
“감사합니다.”
“다만. 난 이렇게 넘어갈 생각은 없네.”
“예? 무슨···?”
“내게 더 받아내고 싶은 게 자넨 정말 없냐는 말일세. 이 진효풍이 당씨 성은 아니지만, 은혜는 두 배, 원수는 열 배로 갚는 사람이네.”
“아뇨. 아뇨. 충분합니다. 그쯤 하시지요.”
“허. 사람, 왜 이러나? 주겠다는 말이거늘.”
그것도 말하는 사람 나름이지. 왜인지 떡하니 감당도 못 할 물건을 주고는 하하하하! 하고 웃을 사람이 저 괴협이지 않나. 딱 적당히 받고 적당히 넘어가는 게 딱 몸에 이로울 것만 같았다.
“관상에 욕심은 많은데.”
“관상도 보십니까?”
“볼 줄은 모르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술에 대한 욕심은 조금 있습니다.”
“명주(名酒)를 구해다 줘야 하나?”
“그거라면 거절은 않겠습니다. 그걸로 하시죠.”
“아니지. 부족한걸. 그건 그냥 선물로 볼 수도 있으니. 암.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흐음. 무공을 가르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가르치려면 화산의 신단인 자청단(紫淸丹)이나 대환단 정도는 먹이고 시작해야 할 텐데···. 그럼, 입산을 시켜야 하나? 아니지. 자청단은 본산에도 없을 텐데.”
대화가 훈훈하게 흐르다 진효풍의 괴이함이 도진다.
이제는 자연스레 저와 날 ‘우리 사이’라며 묶기까지.
감히 그의 생각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제가 배우겠다는 말도, 제자가 되겠다는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뭐. 차차 생각해 보세. 내 방식대로 어떻게든 은혜는 갚을 테니.”
“부디 자중을 부탁드립니다.”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진효풍은 갑작스레 말을 물어온 것처럼 갑작스레 생각을 접고는 어깨를 튕겼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어차피 뭘 줘도 받지 않으면 그만일 터.
그래도 당분간은 요주의가 필요할 것만 같다.
“사람을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 들어가게. 곧, 석가장에서 만날 수 있을 걸세. 내 들르는 날 자네에게도 연통하겠네.”
진효풍은 몇 번 더 고민하던 표정을 짓더니 인사를 남기고는 다시금 지붕으로 뛰어들었다.
달빛에 한번 그의 그림자가 포개어진 후,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 다다다다다다.
서두르는 듯한 발소리가 회랑을 가득 메운다.
이립을 조금 넘어 보이는 사내가 엎어질 듯 엎어지지 않는 자세로 회랑을 가로지르며 얼른 발을 내저었다.
급박한 상황에 차오르는 숨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수, 숙부님! 아니, 가주님!”
회랑을 겨우 지나쳐 전각으로 들어선 사내는 문이 열리자 안을 살펴볼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쓰러지듯 무릎을 던진 그의 앞에는 잔뜩 표정을 구긴 중년인이 서 있다.
“왜 이리 방정맞은 게냐? 이럴 때 처신을 더욱 조심하라 일렀거늘. 쯧.”
“그, 그게···! 항주에서 전해온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항주? 무슨 소식을 말이더냐?”
가주라 불린 중년인은 날카로운 턱선에 눈썹이 진한 인상을 지녔다.
그의 진한 눈썹이 연신 움직이며 젊은 사내의 모습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화산괴, 아니. 화산검협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다급한 보고에도 가주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사내를 더욱 경멸하는 표정을 지을 준비를 하는 그.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눈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더냐? 네 사촌이 죽어가고 있느니라! 죽어가고! 등선을 해도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
– 쾅!
결국 가주는 참았던 노성을 뿜어대며 자신의 조카를 꾸짖었다.
탁상을 내려치며 울린 소리에 조카는 깜짝 놀라며 얼른 말을 잇는다.
“아, 아닙니다! 상관이 있습니다! 어쩌면 량아를 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전해지는 조금은 희망적인 말. 그제야 가주는 표정을 풀더니 몸을 조카 쪽으로 조금 기울인다.
이번에 들려온 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읊거라!”
“서역에서 술을 섞는 법을 배워온 자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석호루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자가 만든 술을 마시고 화산검협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술을 섞는 법을 배웠다? 진위는? 검증은 된 것이고?”
“석가장의 석두원이 손수 식객으로 모시며 석호루를 맡긴 자라 합니다.”
“흠. 석두원이면 사람을 함부로 모실 사람은 아니지.”
“거기에 듣기로는 석두원이 그를 모신 이유 역시 술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히.”
찬찬히 이야기를 듣던 중 중요한 지점이 나오니 가주는 눈빛을 빛낸다.
흘리듯 들으면서도 중요한 지점은 콕콕 찝어 내는 그였다.
“밀주에 중독된 자를 다른 술로 해독시켰다고 합니다.”
!
“뭐라? 확실한 것이냐?”
“두 번을 확인한 일입니다. 확실합니다.”
“한 번은 우연이나 두 번은 우연이기 어렵지. 그렇다면···. 그래. 그렇다면.”
가주는 이제 제법 표정을 심각하게 바꾸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풍문은 두 발을 모두 걸치지 않는다.
그래서 풍문이 법이고.
헌데, 두 발이 모두 걸쳐져 있다?
그렇다면 이건 풍문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그는 고개를 모두 끄덕거린 후에야 결심이 선 눈빛을 보였다.
“서둘러 채비를 해두거라. 항주로 가야겠다. 가장 빠른 말로. 최소한의 인원만 함께한다.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