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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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괴협과의 일이 있고 이레가 지났다.
풍문이 한 차례 식기엔 충분한 시간.
떠들썩하며 마치 축제 분위기를 자랑하던 석호루의 풍경도 이전보다는 붐비지만, 한 차례 풀이 꺾기 한산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오늘 그때의 석호루처럼 바쁜 풍경을 자랑하는 건 석가장이다.
아침부터 귀한 손님이 온다며 분주했던 분위기 덕에 일찍 눈을 뜰 수 있었다.
뭐, 석가장 자체가 바쁘다지만 나랑은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내가 할 일은 없으니까.
이제는 온전히 내 소유가 된 3호 객당에서 조용히 차나 마시며 웬일로 이르게 맞이한 하루를 평화롭게 시작하려 할 때.
“이 공자! 이 공자! 이 공자 있는가!”
– 푸풉!
차를 내뿜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평화를 깨트리고 만다. 들려온 저 목소리는, 익숙한. 그리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화산괴협의 목소리다.
“진 대협···?”
서둘러 대문을 열고는 그를 맞았다. 평소와는 달리 깔끔한 도복에 매화를 수놓은 도인의 모습이 날 맞이했다.
까딱 잘못 봤다면 진효풍인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다른 모습.
생각보다 잘생긴 미중년의 도사가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왜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인가? 내 분명 오늘 들른다고 연통하지 않았나!”
“아니···.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석가장에서는 대대적인 준비를 하며 저를 기다렸을 텐데.
이치는 대석당에 들어가 석두원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곧바로 나온 것만 같다.
“장주님은 제대로 뵙고 오신 게 맞으시지요?”
“암. 인사도 드리고, 생산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왔네.”
“···대석당에 드셨다는 소식이 들리고 이각이 채 넘지도 않았습니다.”
“아아. 큰 틀만 내가 잡아두고 나머지는 전부 사손들에게 맡겼네. 어차피 실질적인 일이야 그 아이들이 담당하는 것이니.”
“그래도 되는 겁니까?”
“하. 자네도 참 세상 물정 모르는군. 생각해 보게. 자네는 앞에 경지에 들어선 고수가 떡하니 앉아 있는데 거기서 상담(商談)을 나눌 수 있겠나? 자네도 참 배려를 모르는군. 쯧쯧.”
“···진 대협께 그런 말씀을 듣다니요.”
“어쨌건. 계속 여기 세워 둘 건가?”
“아. 드시지요. 마침 차를 마시던 참입니다.”
“음. 그럼 감사히.”
뭐 들려오는 말이 딱히 석가장에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말처럼 큰 틀만 그가 잡아주고 세세한 건 실무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득이 될지도 모른다.
진효풍을 안으로 데려와 자리에 앉히고는 차를 한 잔 내줬다. 그와 이렇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니.
며칠 전만 하더라도 상상을 못 할 일이다.
“장주께서 무리한 부탁을 하신 건 아닐지요.”
“응? 뭐. 괜찮았네. 아니, 다 떠나서 무리한 부탁하라고 자네가 마련한 자리가 아닌가? 이제 와 내숭은. 내 아이들에게도 최대한 뜯기고 오라 일러뒀네.”
“···뜯는 건···.”
“아아. 우리끼리 뭘. 괜찮네. 내 돈도 아니고 장문 사형의 돈이 태반인 것을. 그 양반은 좀 뜯겨도 되는 치라네. 하하하!”
인제 보니 기사멸조는 이 문파의 특징인가 보다.
사숙조를 가리키며 저거라 하질 않나, 장문인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도 제법 불경스럽다.
“그럼, 한동안은 항주에 계속 머무시는 겁니까?”
“음. 그럴 거 같네. 본디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이라. 항주가 마침 마음에 들기도 하고.”
“···화산에는?”
“거기 별로 안 좋아하네. 답답허이. 말코 놈들 천지라.”
쓰읍. 그런 말코 중 당신은 대장격인 말코이지 않나.
물은 건 안 돌아가냐는 의미였는데.
이 양반 은근히 눈치가 없다.
아니, 고단수인 건가.
“대신, 항주 쪽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낼 생각이네. 마침, 석가장과 생산적인 사업 이야기도 나왔고. 참. 자네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일 걸세.”
“제게도요?”
“석장주께서 매약주의 거래를 제안하셨네. 석호루에서 팔면 잘 팔릴 거라나? 과연 상재가 있으신 분이더군. 풍문이 떠돌았을 때 매약주를 자리 잡게 하겠다는 말씀이셨네.”
“겨울이 아니면 운송이 힘들 텐데요. 섬서에서 절강이면 술이 상할 수도 있는 거리와 날씨라.”
“해서 다른 방식으로 거래를 하기로 했네. 매약주의 재료가 되는 매실과 만드는 방식만 우리가 건네기로 했네. 석가장은 그에 맞춰 일정 부분 수익을 넘겨주기로 했고. 물론, 넘기는 권리는 절강 내에서는 석가장이 독점적으로 가지는 것이네.”
아무래도 고단수 쪽이 맞는 거 같다.
말로야 뜯겨주기로 했다지만 이건 그런 개념이 아니다.
석가장이 확실히 더 큰 이익을 보는 거래는 맞다. 적당한 비율의 수익만 넘겨주고는 생산법과 원료까지 받지 않나.
술의 맛만을 내는 거야 다른 양조장에서도 할 수 있지만, 와인은 재료에 따라 맛이 크게 변하는 주종이다.
거기에 매약주에서 풍기던 향은 특별한 비법도 있었을 터. 그걸 대놓고 준다는 것이니, 석가장에게는 이득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건 화산에도 큰 손해인 거래는 아니다.
어차피 매약주를 팔 수 없는 거리에 있는 항주기에 생산법이 알려져도 피해는 없기 때문.
더 나아가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양조장을 더 돌리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적당히 재료만 건네고는 수익은 수익대로 가져갈 수 있는 거래가 이번 거래였다.
화산이란 이름이 그저 칼질에서만 나온 이름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잘 되었군요. 이번 일로 석가장과 화산의 관계가 두터워졌으면 합니다.”
석가장이 더 큰 이익을 본 거래고 거기에 화산과 관계를 튼 것에 의의가 있긴 하다.
아직 세세한 부분의 조정도 남았고 다른 사업 이야기도 오갈 테지만, 이건 석가장의 역량에 달린 일.
나로서는 여기까지가 딱 맞는 개입이다.
“걱정하지 말게나. 다른 거래에서도 열심히 뜯기고 있을 테니. 그나저나 석가장의 풍경이 참으로 일품일세. 객당만 해도 그렇군. 옆 객당은 비었나?”
“바로 옆 객당은 비었고 그 옆 객당은 객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옆 객당은 매초현의 방으로 그녀는 얼마 전 북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옆은 두영해 학사의 방. 그는 아직 그 방에 머물고 있었다.
“음. 방 하나는 비었다는 말이군?”
불안한 말이 들려온다. 설마 화산의 장로나 되는 사람이 여기 머물려는 걸까.
바로 옆방에 화산괴협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독립할 자금이 있었던가.
손으로 숫자를 세어갔다. 아직, 부족하다.
“매년 겨울이면 돌아오시는 분이라···.”
“아아. 걱정하지 말게. 머물겠다는 말은 아니니. 하하. 겁먹기는.”
“다행입니다.”
“쓰읍. 그렇게 반응하니 슬쩍 오기가 생기긴 하는데.”
“······.”
이건 놀리는 게 분명하다. 실실 웃으며 찻잔으로 입을 가리는 진효풍의 얼굴이 그걸 증명했다.
그렇게 농담과 진담 사이의 차담을 정겹게 나누고 있던 때.
– 텃.
“음. 누군가 자넬 찾는군.”
진효풍이 찻잔을 내리며 대문 쪽을 바라봤다. 아직은 아무런 소리도 인기척도 들리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멀긴 하네. 이제 대석당 후원을 지났으니, 조금 있어야 닿겠군.”
“···대석당 후원이면 제법 먼 거리인데, 그게 들린다는 말씀입니까?”
대석당 후원이면 걸어서 5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런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불가능했네만, 자네 덕에 이런 것도 가능하더군. 요즘 귀가 간지러워 죽겠음이야. 아. 그건 다른 이유려나?”
아마 다른 이유 쪽이 맞을 거다.
그래도 경지를 넘으며 얻었다는 청력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그의 말이 있고 정확히 5분 정도가 흐르자.
“이 공자님! 이 공자님!”
하며 달려오는 초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복은 숨까지 헐떡이며 겨우 대문을 부여잡고는 객당 안으로 들어섰다.
난 그걸 보곤 또 한 번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진효풍을 바라봤다.
어깨만 으쓱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새롭게만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대석당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간 거 같던데. 아닌가?”
“예? 정확하십니다요! 근데, 누구···! 어어어!”
멀리서 들은 내용을 쭉 읊어가는 말에 초복이 진효풍을 바라봤다.
그제야 그가 보이는 모양. 선명하게 새겨진 매화 문양을 보곤 초복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아아. 그냥 지나가는 도사라네. 오늘은 이 공자 친우로 온 거고. 편하게 말씀하시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집사님. 무슨 일입니까?”
“그···대석당에 급한 손님이 오셨다고 합니다요. 듣기로는 소주에서 오셨다네요. 헌데, 이 공자님을 찾으신다고···.”
“저를요? 왜?”
소주라니.
아니, 소주를 떠나 중원 전역에서 날 찾아올 인물이 어디 있기나 했던가. 마시는 소주면 몰라도.
낯선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어디서 또 풍문을 듣고 자네를 찾아온 거겠지. 앞으로 이런 일이 적진 않을 걸세. 석 장주께서 적당히 쳐내 주실 줄 알았는데···.”
진효풍은 강호의 풍문을 들며 이유를 추측해 본다.
“아뇨. 적당한 일이었다면 쳐내셨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가봐야겠습니다.”
“음. 그도 그렇군. 가보게나. 사손들은 모두 나왔는가?”
“화산파 도사님들 말씀이시지요? 예. 대석당에서는 나오셨습니다요. 실무를 보는 행수님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중이니 그리 가시면 뵐 수 있으실 겁니다요.”
“그럼, 같이 움직임세. 적당히 뜯겼으면, 아이들도 쉬어야지.”
적당히 자리를 파하고는 진효풍, 초복과 함께 움직였다.
대석당 앞에서 그와 인사를 나누고는 그대로 안으로 들었다.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장주님을 뵙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레, 마치 석가장의 일원인 듯 예를 표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심각한 얼굴을 한 석두원과 공 총관, 구동해,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중년인이 눈에 들어온다.
중년인은 날카로운 턱선에 진한 눈썹, 그리고 고급스러운 장포를 걸쳐 귀티가 흐르는 모습이다.
낯선 중년인은 집무실의 중앙, 그러니까 석두원의 의자가 내려다보는 곳의 정면에 굳은 채 서 있다.
“이 공자. 이른 시간부터 들르게 했네. 요즘 고생이 많음을 알고 있네만. 미안하네.”
“아닙니다. 가볍게 진 대협과 차담을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장주께서는 이야기 잘 나누셨는지요?”
“음. 덕분에. 석가장에는 아주 큰 이문이 남는 거래였네. 이마저 덕분이네. 자네 몫은 차차 이야기하세.”
석두원의 말투가 부드럽다. 심각했던 표정에 비하면 훨씬 부드러운 말.
다행히 무거운 분위기는 내 탓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알 수 있는 건 명확했다. 평소 화기애애한 대석당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평소와 다른 모습 하나 때문일 터.
평소와 지금 다른 모습이라곤. 처음 보는 저 중년인이 유일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자네를 찾는 손님이 있어 이렇게 불렀네. 적당한 객이야 내 선에서 자를 수 있지만, 이번에는 자네의 의중도 들어야 할 듯해 이렇게 부르게 되었네.”
어쩔 수 없다는 의도가 쫙 깔린 석두원의 말이 전해졌다. 그는 말을 전하면서도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상황이나 전하는 말의 무게에 그도 별수 없다는 표정이다. 석두원은 내가 아닌 낯선 중년인을 눈으로 한 번 보고는.
“하 가주. 석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요. 나머지는 그대와 이 공자에게 달렸소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차례를 넘긴다는 말을 전했다. 난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장주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낯선 중년인은 딱딱하게 포권하고는 곧장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다시 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손님으로 석호루에 온 적이 있나? 아마 저런 고급스러움을 풀풀 흘리는 이라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터.
더욱 저 사람이 날 찾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게도 딱딱히 포권하고는 인사를 전했다.
“본인은 소주에서 온 하지충이라 합니다. 그냥 하 가주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석가장의 이정환입니다. 저는 하 가주를 뵌 기억이 없는데, 혹 저를 아시는지요?”
“초면이 맞습니다. 다만, 부탁이 있어 이리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부탁이라면?”
초면인데 부탁이라.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전개다.
연신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보니 공 총관도, 구동해 단주도 표정이 무겁다.
무거운 분위기가 또 한 번 대석당을 감싼 후에야 하지충의 입이 열렸다.
“내 아들을 좀 살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