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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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장에 머물러 보라. 이건 그저 며칠 지내다 가라는 그런 간단한 말은 아니다.
석가장쯤이나 되는 장원에서는 ‘머문다’란 말을 다른 의미로 쓰곤 했었는데.
저 말의 진의는, 바로 식객(食客)이 되란 뜻이다.
식객.
중원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이며 전통 역시 깊은 문화다. 이미 대륙이 하나의 왕조를 이루기 전부터 존재했던 유구한 문화가 바로, 식객.
이는, 능력 있는 이를 주인이 애써 모셔 먹여주고 또 재워주며 입혀주고, 또 편의를 봐주는 것을 말했다.
일반적인 충성을 서약하는 가신의 관계와는 달랐다. 뜻이 맞지 않다면, 도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식객은 언제든 주인을 떠날 수 있었고, 주인을 떠난 식객을 보며 불충하다며 욕하는 자는 없었다.
조금은 더 편한, 그래서 인재를 모시기에는 더 편리한 수단이 식객인 것이다.
물론, 식객 역시 주인에게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언제든 주인의 요청이 있다면 주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재주를 뽐내야 하는 것.
늘 일하며 가문에 충성하는 가신과는 여기서도 큰 차이를 발한다.
가신들이 매일 사용하는 친숙한 도구라면 식객들은 중요할 때 찾아 쓰는 특별한 도구란 점.
그렇기에 재산 제법 있다는 부호들은 언제나 여러 재주를 가진 식객들을 마치 수집품 모으듯 집에 들이곤 했다.
–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 이리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로 시작된 몇 번의 형식적인 사양과.
–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게. 내 은인을 모시고 귀하게 대접하기 위함이니.
– 석가장의 은인을 그냥 보내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나?
로 끝나는 몇 번의 설득이 오갔던 석두원과의 대담. 그 끝에 내린 우리의 결론은, 결국 석가장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당장에 먹고 살길이 막막한 지금이다. 물건을 팔아 연명하던 돈도 이제는 떨어져 가던 시점.
내게는 정말이지 천운 같은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짐은 이게 전부이신지요?”
“단출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천천히 하시지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석가장에서 딸려 보내준 하인 한 명과 소탈한 오두막의 짐을 챙겼다.
가진 것이라곤 작은 이부자리와 옷가지 몇 개가 전부인 내 짐.
하인은 짐이 적어 좋다며 기지개를 켜고는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난 침상 아래 두었던 가죽 가방을 꺼내 먼지를 털고는 가방을 열었다.
‘셰이커, 믹싱 글라스, 비중계, 지거, 바 스푼···’
가방 안에는 이 땅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이 가득하다. 다른 물건은 모두 팔아 치울 때도, 감히 팔 수 없었던. 내게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바텐더의 손발이라 할 수 있는 이 물건들을 그대로 고이 챙긴 난 그제야 오두막을 떠날 수 있었다.
석가장으로 돌아와 내가 머물 객당(客堂)을 안내받았다. 식객을 위해 준비해둔 객당 중 세 번째 방.
‘삼호객당’이라 적힌 전각이 이제부터 내 보금자리다.
이름이야 객당이지만, 마당까지 달린 제법 커다란 전각. 난 그 앞에 서서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걸 제가 혼자 쓴다는 겁니까?”
“물론입지요. 마당도, 후원도 편히 쓰시면 됩니다.”
조금 전까지 있던 오두막과는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커다란 객방이 날 맞았다.
지붕은 당연하다는 듯 고급진 기와요, 기둥은 내가 있던 오두막의 문보다 두껍다.
거기에 방안은 온갖 고급스러운 가구까지. 이 모든 게 식객을 위한 것이라니.
문득 여기서도 쓸 거라며 챙겨온 이부자리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이불이나 옷가지도 실은 장주님께서 공자님께 드리라며 준비시켜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고시원에 처음 간 어느 기업인의 표정이 얼굴에 익숙해질 무렵.
하인은 내게 다가와 비단으로 수 놓인 옷과 이부자리를 건넨다.
알면 미리 말이나 해주지. 괜스레 그가 원망스러웠다.
“장주님께 큰 신세를 지는군요.”
“아닙니다. 석가장에 계시는 식객분들께는 전부 이렇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혹,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지나가는 시비를 붙잡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식사는 때 되면 방으로 보내라 이를까요?”
“···밥도 주는 겁니까?”
“허허허. 공자님께서는 농도 참 잘하십니다. 밥을 주니, 식객이 아니겠습니까? 석가장 밥맛이야 항주에서도 유명합니다. 따로 드시고 싶은 것도 기별 주시면 준비가 될 겁니다.”
식객에 대한 대접이 예사롭지 않다. 혹, 나만 그런 건가 했더니 그런 건 아닌 모양.
현재 석가장에 머무는 식객은 총 세 명으로, 셋 모두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 인생 역전처럼 보일 순 있다. 다만, 식객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의 존재 가치를 주인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은 돈을 들여가며 식객을 먹여 살린다. 식객은 그에 맞춰 언제고 쓰일 곳이 있음을 보여줘야 할 터. 재주를 증명하지 못하는 식객은 곧 쫓겨나고 말 것이다.
‘적어도 한 달 내에는···’
무언가를 보여줘야겠지.
당장에는 한 달 정도는 빌붙어 살 명분이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지도.
그런 생각에 석가장에 자리를 잡은 후 열심히 주변을 살피며 내가 나설 일을 찾았다.
하지만.
‘없다···.’
딱히 나설 일이 없다. 지난 일주일간 석가장을 돌며 내가 느낀 건 그것.
양조장이 있으면 기웃거리며 한마디를 던져볼까, 하던 고민도 잠시.
양조장은 이 시대에 일급 기밀 시설로, 제아무리 식객이라도 함부로 출입이 허용되는 곳은 아니었다.
가진 재주가 하나라 술 주변에 가지 못하니 이를 뽐낼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막막함을 느끼며 겨우 넣어 준 점심이나 들며 사육 아닌 사육을 당하고 있을 무렵.
“이 공자님 계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객당 밖에서 울려왔다. 석두원의 하인으로 있는, 초복이란 하인이 객당을 찾아온 것이다.
“초복 집사님 아니십니까?”
“헤헤. 공자님, 말씀 낮추시래두요. 일개 하인일 뿐입니다.”
아직 야만도 낭만도 녹아들지 못한 난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놓기가 쉽지 않다.
서비스직에 있었던 후유증일 수도 있고.
“제가 편해지면 그러겠습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식사 중이셨습니까요?”
“예. 방금 막 시작하려던 참입니다. 아직 식전이시면 함께 하시지요.”
“아휴! 무슨 말씀을요! 아닙니다요! 전 그저 전할 말씀이 있어서 왔을 뿐입니다! 암요!”
“그렇습니까? 허면, 무슨 일이십니까? 혹, 제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까?”
다행히 이런 모습이 하인이나 시비들에게는 좋게 보이는 모양이다.
석가장에 지내며 얻은 거라곤 이들과 친해지며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는 정도.
특히나 석두원의 하인인 초복은 집사라는 저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어르신께서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으신지 여쭈라 하셨습니다요.”
“저야 별일은 없습니다.”
“잘 되셨습니다! 허면, 오늘 저녁 해질녘쯤에 제가 따로 찾아뵙겠습니다요.”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오늘은 석가장의 월례회가 있는 날입지요. 그런 날이면 꼭 뒤풀이로 장주께서 식객도 모셔 저녁을 대접하곤 합니다요.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그래요? 그럼 다른 식객분들도 다 참석하시는 겁니까?”
“그래봤자 지금은 세 분뿐이지만요. 참고로 일호객당에는 아리따운 악사님이, 이호객당에는 풍채 좋은 학사님이 계십니다요.”
초복은 내게 무어라도 하나 더 알려주기 위해 애를 썼다. 하인이라며 대저 자신을 무시하기 일쑤인 이곳에서, 존대를 해주는 내게 친근함을 보이는 그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예잇. 시간 되면 모시러 오겠습니다요! 참고로 오늘 저녁 자리는 석호루라지 뭡니까요! 헤헤.”
초복은 마지막 말을 자랑스레 던지고는 문 앞을 떠났다. 오늘 저녁 만찬이 열릴 곳이 석호루란 말.
석호루는 내가 이곳에 오던 시점에 맞춰 문을 연 항주에서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석가장이 직접 운영하는 주루의 이름이었다.
오가며 석호루를 몇 번이고 본 적은 있었다. 다만, 감히 안으로 발을 들일 생각을 못 했던 것이 내 처지.
아니, 애초에. 객잔에서 작은 황주 한 병도 마시지 못하던 내가 어찌 주루를 꿈꿀 수가 있었겠나.
그런 석호루에서 만찬이 있다고 하니 침샘이 고이지 않고는 못 배긴 것이다.
그런 석호루에서 설마 밥만 먹을까.
난 얼른 저녁때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
석호루의 초입에 닿자 주향(酒香)이 진하게 풍기며 코를 자극했다.
익숙한 향을 다시 맡으니, 잊었던 무언가 떠오르며 가슴이 다시금 뛰는 것만 같다.
싫지 않은 설렘에 걸음마저 가벼워진 기분이다.
“드시죠, 공자님.”
초복은 성심성의껏 앞장서며 석호루로 날 안내했다. 멀리서 볼 때도 고급스럽기 그지없던 석호루의 외관.
그런 외관은 앞으로 다가서니 더욱 극대화된다. 층은 항주의 다른 주루에도 밀리지 않게 5층 높이요, 기둥은 금박을 입혀 그림까지 그려놨다.
거기에 기와는 약을 먹여 번들번들 빛까지.
마침 나려 앉은 노을이 붉은빛 배경을 멋들어지게 장식해주니, 이게 별천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모습의 1층 풍경이 펼쳐졌다.
2층과 천정을 터놓아 위가 뻥 뚫린 구조는 웅장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역시 감탄을 숨길 수 없다.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는 커다란 창을 모두 열어 서호에 나려 앉은 노을빛이 전부 보이는 구조가 입을 쩍 벌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흐음.’
물론 그런 구조 외에도 보이는 건 있다. 이건 한 업장을 관리했던 바텐더라는 직업 때문일 터.
바텐더는 단순히 술만 파는 게 아닌 전체적인 업장을 관리하는 하나의 자영업자다.
그렇기에 보이는 것들도 있지 않겠나. 결국에는 장사고 또 상업이기에 주루와도 분명 통하는 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거슬리는 건 북적이는 내부에도 곳곳에 자리한 빈자리들이다.
워낙에 내부가 넓고 가격도 있기에 그렇겠지만, 이런 시간에 이런 풍경에 또 이런 돈을 들여 지은 곳에. 저 정도의 빈자리는 절대 좋게 볼 일은 아니다.
‘좋지만은 않은데?’
1층을 지나 2층에 닿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층은 난간을 두고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
중앙이 뻥 뚫려 공간은 1층만큼 넓지 않았으나, 1층을 내려다볼 수 있어 조금은 다른 재미를 주는 공간이다.
2층마저 모두 둘러 본 난.
‘역시.’
라는 앞선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눈으로 그렇게 한없이 석호루를 평가하고 있을 때, 초복은 총총거리며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에 닿자 초복의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공자님! 얼른 오십시오. 헤헤. 여기부터가 석호루의 진면목입니다요. 여기서부터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닙죠. 예.”
초복은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는 3층을 가로질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3층은 그저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한쪽은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통째로 주방으로 쓰는 모양이다.
“3층부터는 개별 방입니다요. 서호가 보이지 않는 곳은 모두 주방으로 돌렸읍죠.”
“석장주님께서 그리 정하신 겁니까? 과감한 선택이네요.”
“암요. 석호루의 구석구석 장주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요. 석호루는 장주님의 오랜 소망이셨습죠.”
“확실히 공들인 것같은 모습입니다.”
“에이. 아직 놀라시긴 이릅니다요. 오늘 가실 곳은 더 위층입니다요.”
“아직 더 올라야 한단 말씀입니까?”
“그럼요! 어르신께서는 늘 최상층만을 이용하십니다요! 오늘같이 귀한 분들을 모실 때는 더 그렇지요!”
구조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내게 초복은 짧은 설명을 남기고는 더 위층으로 한없이 오르기만을 한다.
주인에 대한 자랑이 자신에 대한 자랑인 것처럼 배를 내미는 모습. 그는 그 기세대로 두 개의 층을 더 오른 후에야 걸음을 멈췄다.
발길이 5층에 닿자, 나오는 건 굳게 닫힌 하나의 문이다. 이건, 5층이 통으로 사용되는 하나의 방이란 뜻이다.
‘무슨 이런 파격적인···’
구조가 다 있을까. 그런 생각에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전 여기까집니다요.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헤헤.”
초복은 내게 작별을 고한다. 하인들은 따로 1층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니, 그도 더는 기다리지 못하는 눈치다.
“안내, 감사합니다.”
“어휴, 무슨 말씀을요! 전 갑니다요! 그러지 좀 마십쇼!”
안내해줘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에 초복은 언제나처럼 손사래를 친다.
하인인 자신에게 누군가 고개를 숙여오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초복이 사라지고 잠시 옷맵시를 가다듬었다. 왜인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석호루의 분위기.
이 안에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난 그런 기대에 문을 밀어 안으로 들어섰다.
– 끼이이이익.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려갔다. 그리고 마주하는 건 한줄기 진홍색 빛의 향연.
안으로 들어서며 마주한 풍경에 난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무슨 이런 풍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