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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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한 기운을 내려받은 종남산.
그런 종남산에서 중양자(重陽子)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도맥(道脈).
그 도맥의 일곱 가지 중 하나가 섬서에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니, 사람들은 그 도맥이 꽃 피운 도관을 가리켜 화산(華山)이라 불렀다.
민가에 화가 닥치면 제일 먼저 나서는 행동하는 자주지성(自主知性)이요, 행동하는 협의지심(俠義之心)의 결정체.
사악함을 배척하고 삿됨을 지양(止揚)하는 순수한 수도인(修道人)의 집단.
그런 화산파 도인 중 당금제일기재(當今第一奇才)라 불리던 이는 지금.
“허어어어어엇!”
한 잔의 술을 위해 열심히 얼음을 얼리고 있다.
무릎을 잔뜩 접고 손을 내뻗은 모습이 보기 좋진 않았지만, 그가 힘을 주자 펼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퍼런 기운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감싸며 빛을 뿜어갔다.
방안마저 채우던 서늘한 기운이 그의 단전에서 뿜어지더니, 이내 몸을 타고는 곧장 손으로 향했다.
그는 기운이 손으로 향하자 물을 담은 통에 서둘러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 쩌저저저적!
하고는 물이 얼어가는 게 눈에 곧장 들어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다.
무공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듣기로는 한기뿐만이 아니라 열기도 뿜을 수 있다던데.
이건, 바텐더에게 신세계나 다름없다. 손에서 불을 뿜고 얼음을 만들어 낸다?
바텐더가 펼칠 수 있는 기예는 한없이 늘어날 것이다.
“이, 이게 정말 가능하다니요!”
“제가 된다고 했잖아요!”
“아아! 태을무극!”
당소정은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좋다고 방방 뛰었고 하지충은 이제 기도까지 곁들인다.
얼어가는 얼음이 적당히 단단해진 후에야.
“진 대협! 됐습니다!”
진효풍에게 멈춰도 좋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얼음에 단단히 붙어 쉽게 빠지지 않는 그의 손이다.
– 끙. 끙. 끄응!
– 푹!
몇 번을 끙끙거리고 난 후에야 진효풍이 겨우 손을 빼냈다. 그는 당당한 표정으로 코를 한 번 쓸고는.
“성공이네.”
라며 근엄하게 말해왔다.
말하는 모습과는 달리.
– 풀썩.
하고 그는 곧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다, 다리가 살짝 풀렸네···.”
애써 부축을 거부하며 일어나는 그의 주변에는 여전히 한기가 스산하다.
몸을 살짝 떠는 모습이, 완전한 한서불침은 아닌 모양이다.
“엄살이에요. 맥은 안정적이구만.”
당소정은 그의 맥을 간단히 짚고는 괜찮다는 말을 전한다. 침까지 거부하는 모습이, 정말 괜찮아 보였다.
내 앞에는 이제야 완전한 재료가 모두 모였다. 직접 만든 오르쟈 시럽에 당문이 준비한 술과 쓰고 남은 영몽.
거기에 주방에서 가져온 계피와 진효풍이 만든 얼음까지. 마지막으로 더할 건, 내 손이 유일하다.
항주에서 곱게 모셔온 가죽 가방을 열고는 작은 도구를 하나 꺼냈다.
허리에 매달린 가죽 가방을 이번에도 신기하게 보는 여러 인물들.
이제는 이런 시선이 익숙하다. 아무렇지 않게 내가 가방에서 꺼낸 건 얇고 단단한 하나의 칼이다.
“칼을?”
“얼음이 너무 커 조금 잘라 쓰려고 합니다.”
“그 작은 칼로 되겠습니까? 손도끼를 가져오라 이르겠습니다.”
“아뇨.”
통을 통째로 얼린 상태라 얼음이 제법 컸다. 이는 셰이커에도 전부 들어가지 않을 터.
해서, 얼음을 칼로 조금 쳐낼 필요가 있었다.
“도와드려요?”
당소정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도움을 묻는다. 그렇게 약골로 보인 걸까.
무인들 눈에야, 뭐.
“괜찮습니다. 제가 또 이쪽은 전문 분야라.”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지만, 바텐더는 술만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바텐더가 다뤄야 하는 건 수많은 재료들.
얼음 역시, 그 재료에 포함되어 있다.
난 커다란 얼음을 도마 위에 두고는 거침없이 칼로 이를 내리찍어갔다.
– 탓! 탓! 탓! 탓! 탓!
얼핏 보기에는 막 찍어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건, 착각.
난 정확히 필요한 부분만을 노려가며 얼음을 찔러 작은 자국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런 자국이 선명해질 즈음.
– 스윽.
– 텅!
칼을 그 자국 위에 두고는 작은 바 스푼의 뒷머리로 이를 내리쳤다.
얼음은 작은 균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원하는 크기로 잘게 쪼개질 수 있었다.
“오오!”
“솜씨가 제법인데!”
“암기를 다루는 거 같았어요!”
바텐딩을 구경하는 이들의 반응이 좋다.
저마다 한마디를 보태는 게 어깨가 넓게 펴질 정도다. 마치, 바에서. 손님 앞에서.
바텐딩을 펼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바에서는 이렇게 술을 만들어 가는 모습 역시 하나의 상품이다.
– 텅. 텅. 텅.
본디 얼음을 넣어 마시는 술이라면 얼음의 모양에도 각을 잡아줘야 한다.
오늘은 그렇게까진 필요하지 않은 날. 셰이커에 넣어 쓸 정도의 크기로 얼음을 더 깨고 난 뒤 손을 계피로 향했다.
주변을 잠시 둘러보니, 쓸만한 화롯불이 방에도 있어 마침 다행이었다.
난 눈빛으로 진효풍에게 화로를 가져다 달라 말했다. 그는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열심히 화로에서 불을 쬐고 있다.
“이거 말인가?”
그는 내 눈빛을 단박에 알아듣고는 무거운 화를 얼른 이쪽으로 가져왔다.
한 손으로 번쩍 화로를 드는 모습이 무인은 무인이다.
고개를 한번 꾸벅하고는 화로에 계피를 익혀갔다. 무공으로 열기를 뿜을 수 있다면 이것도 손만으로 가능하겠지.
그런 재미난 상상이 들었지만, 진효풍에게 이마저 부탁하기에는 그의 모습이 너무 처량했다.
‘얼음에 만족해야지.’
– 솨아아아아.
계피에서 진한 향이 올라오며 연기까지 생겼다.
둘둘 말린 계피 안으로 가득 차는 연기들.
이게 딱 내가 노린 것.
계피가 안쪽까지 적당히 태워지자, 이내 사발을 엎어버리고는 그 끝에 기다란 계피를 끼워 넣었다.
스모킹이라 불리는, 잔에 향을 입히는 작업을 위해서다. 연기는 잔에 배어들며 깊은 계피 향을 품게 해줄 것이다.
계피를 사발에 끼워둔 후 다시금 손을 셰이커로 향했다. 술을 달라는 의미로 손을 내미니.
“여기, 당문의 술이요!”
당소정은 늦지 않게 당문의 술을 건네며 내게 맞췄다. 아몬드 밀크를 만들 때부터 느낀 거지만, 당소정은 제법 이쪽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
현대에서 만났다면, 좋은 바텐더가 될 재목이다.
“감사합니다.”
술을 다른 그릇에 붓고는 거기에 대환단을 넣었다. 이를 꾹꾹 눌러가며 으깨주길 잠시.
당호단보다 더한 악취가 풍기며 모두가 코를 막았다. 술은 진한, 검정에 가까운 갈색으로 점점 변해갔다.
모든 건더기가 다 풀어진 걸 확인하고서야 손을 멈췄다.
이게 이번 메이킹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기주(基酒)다.
대환단을 맛보며 하나 떠올린 술이 있었다. 정확히는 대환단이 술에 풀린다면 이런 느낌일 거라 여겼던 술.
바로, 비터스였다.
비터스는 각종 허브와 약초를 증류주에 침출시켜 만든 술로 본디 용도는 약이었다.
소화제, 강장제 등의 효과로 쓰였던 비터스.
약초를 침출시킨 것하며 증류주를 쓴 것까지 대환단을 당문의 백주에 풀어낸 게 딱 그에 맞지 않나.
맛 역시 텁텁하고 쓰며 비린 게 둘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였다.
배합을 떠올리기 힘들었던 건 여기서 왔다. 비터스야 칵테일에도 많이 쓰이긴 해도, 이렇게 많은 양이 쓰이진 않는다.
보통은 한 방울에서 두 방울. 많아야 열 방울 정도가 쓰이는 게 비터스의 쓰임.
이는 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어디든 비터스를 때려 박는다면, 이는 곧 진한 허브향만이 가득한 잔으로 변하고 만다.
다만, 방법이 아예 건 아니다. 매번 말하지만, 방법이 없을 때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게 바텐더란 직업의 재미다.
‘이게 있었지.’
스쳐 가는 수많은 레시피들 중 딱 하나 알맞은 게 머리를 스쳤다. 아니, 유일한 레시피였을 지도.
내가 아는 칵테일 중, 비터스로 쓰는 술은 이게 유일했다.
내가 택한 건 ‘트리니다드 이스페셜’이란 칵테일의 레시피. 현대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비터스를 기주로 삼은 칵테일이었다.
2008년이었나. 그때쯤 파리에서 열린 칵테일 대회의 우승작이 이 술이었다.
그때의 평가는 200년의 칵테일 역사상 유일한 비터스 기주의 칵테일이란 평.
그 술이 오늘 칵테일이란 게 없는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재료는 간단했다.
내가 준비한 것들.
그리고 바텐더.
셰이커를 분리하고는 속에 대환단 비터스를 넣었다. 그리고 더해지는 건 직접 만든 오르쟈 시럽. 거기에 레몬즙까지 더해진 후에야 난 얼음을 더해 계량을 마쳤다.
원래는 여기에 라이 위스키라는 또 다른 술이 하나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대체가 가능한 맛이다.
– 턱. 턱. 턱.
삼단으로 나뉘었던 셰이커가 한곳에 모였다.
이를 올려 들자, 일시에 내 손에 모이는 시선들.
저마다 저걸로 뭘 보여줄까.
그런 의문이 가득하다.
바텐더가 가장 좋아하는 시선이다.
난 그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셰이커를 올려 들었다.
– 살각!
그랩은 적당히, 스트로크는 강하게, 스냅은 유려하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동작들을 떠올리며 셰이커를 흔들어 갔다.
셰이커는 정확히 눈과 입 사이만을 오가며 아래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안에 든 재료들을 섞어 갔다.
섞이는 재료는 음료와 얼음만이 아니다. 셰이커는 삼단으로 나뉘어 있다.
셰이커의 윗부분인 캡에 들어가 있는 건 제일 중요한 공기. 공기는 기포가 되어 술에 섞이며 부드러움을 더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공기를 어떻게, 얼마나 술 속에 풀어주느냐가, 이번에 만들 술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살각! 살각! 살가가각!
셰이커가 계속해서 춤을 추자, 이를 바라보던 이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아. 가락을 타는 것 같아요!”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
“음. 좋은 소리일세. 저번과는 다른 재미가 있군.”
저마다 턱을 살포시 들어 올리는 모습이 딱 바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손님들의 모습이다.
시선을 가득 앉은 셰이커가 끝을 향해갔다. 손에 전해지는 한기로 셰이킹 시간을 조절하는 게 바텐더들.
이 정도 한기라면, 딱 알맞게 섞였을 것이다.
– 살각! 촤아아아아아악!
셰이커의 캡을 열고는 널따란 사발에 잔을 부어갔다. 사발은 계피로 향을 입히고 있던 그 사발.
여전히 연기가 사발 아래에 남아있었지만, 오히려 좋다. 이를 통해 술에도 계피 향이 배어들게 될 것이다.
라이 위스키를 대체하는 게 바로 이 계피 향이다. 위스키의 지배적인 맛들은 나무 향과 관련이 있다. 계피는 그런 늬앙스를 주기 충분한 재료다.
셰이커에서는 잘 섞여 든 붉은빛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진한 갈색이 많이 희석되어 이제는 붉다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
“다 된 겁니까!?”
“색 좀 봐요!”
“오오!”
잔이 사발에 모두 담기자, 곧장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
난 이에 옅은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하신 술,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외쳐보는 바텐더스러운 한마디.
상황에 퍽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오늘 있었던 메이킹 오랜만에 바텐더스러워, 일부러 이런 말을 붙여봤다.
그립고 정겨운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끝인 거죠?”
“예. 당 소저. 이걸 소가주께!”
“알겠어요!”
그 어느 약재를 다룰 때보다 더 소중히.
당소정은 내게서 건네받은 사발을 들고는 하주량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숨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이를 지켜만 보고 있다.
당소정은 당호단 때처럼 하주량의 얼굴을 뒤로 젖히고는 조심히 술을 입에 부어갔다.
– 꿀럭, 꿀럭, 꿀럭.
무거운 침묵 속에서 음료는 속절없이 하주량의 목을 타고 넘었다.
이번에도 사발을 잡은 당소정의 손이 점점 높아지자, 다들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이건 사발이 비어감을 뜻한다.
– 꿀꺽.
“후우우우.”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다. 덕분에 술을 마신 것만으로도 숨이 차 보이는 하주량.
그가 거칠게 숨을 내쉴 때 모두가 불안감을 안고는 이를 지켜봤다.
반면 난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는 안심했다.
들어간 재료들은 오히려 잔향에서 더 좋은 시너지를 내는 재료들이다.
잔향이 더욱 포근하게 올라와 조금은 역했을 그의 입안을 부드럽게 풀어줄 것이다.
하주량은 자신도 모르게 잔향을 불러오는 마법의 호흡을 내쉰 것이다.
“······.”
“······.”
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세어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하주량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당소정은 이전과 같이 그의 맥을 한번 잡고는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다시, 하나, 둘, 셋. 하는 숫자가 세어지자.
“가, 가주님!”
하는 떨리는 목소리의 당소정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전해지는 말은.
“성공이에요!!!”
라는 벅찬 말.
마치, 맛있어요! 라는 가장 좋아하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손님처럼 고개가 위로 향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사람을···’
술로 살렸다.
평생 이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들었던 고개가 기분 좋게 아래로 내려왔다.
***
1. 비터스.
– 정확히는 칵테일 비터스란 이름이 맞습니다.
– 비터스란 약재를 주정에 추출해 맛을 뽑아낸 술을 말합니다. 본디, 약용을 목적으로 만들어 온갖 병에 사용되었지만, 실제 효과는 소화제 정도가 전부입니다.
– 맨하탄에 사용되는 앙고스투라 비터스가 가장 유명하죠. 실제 맨하탄에는 비터스가 1dash. 즉, 1번 터는 정도만 사용됩니다! 그만큼 소량만 쓰이는 재료입니다.
– 맛은 걸쭉하고 진하며 쓰고 비립니다. 이걸 생으로 먹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대환단을 녹인 맛은…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건 소림사에 문의를…
–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하다보면 보이는 비터스가 바로 이 녀석입니다!
2. 트리니다드 이스페셜.
– 대환단을 풀어낸 술로 만든 칵테일이 이 트리니다드 이스페셜 입니다.
– 트리니다드 사워란 이름으로도 제일 처음 유명해졌지만, 이후 표절이었음이 밝혀지며 트리니다드 이스페셜로 불리고 있습니다!
– 최초의 비터스 베이스 칵테일! 입니다. 비터스를 dash가 아닌 ml로 표기하는 괴랄한 레시피를 보여줍니다.
– 비터스? 신선한데? 약초? 대환단? 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 만약 바에 가서 이 음료를 주문한다면,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 비터스는 들어오는 물량이 적어 병당 가격이 비쌉니다. 그런 비터스를 45ml나 때려박고 만든다죠…대략, 한잔에 5만원 정도가 예상됩니다.
3. 셰이킹.
주인공이 보여주는 셰이킹이 이런 자세로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