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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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표사님! 여기서 뵙는군요. 어쩐 일이십니까?”
소주에서 항주로 오는 길에 수레를 옮겨주며 연을 맺게된 대석표국의 표사, 최립.
최립은 당시 나와 진효풍을 석가장까지 데려다주며 밝은 인사를 건넸었다.
같은 석가장 산하이니 곧 만날 거란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마주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원체 아는 사람이 적은 시대지 않나. 내적 친밀감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재미난 말씀을 하십니다. 주루에 술을 마시러 왔지요, 어찌 왔겠습니까?”
“그렇군요. 하하.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휴표(休?) 기간이 아닙니까? 이럴 때 마셔야지요. 하북에 다녀온 동료 표사들과 한잔하러 왔습니다.”
표사는 한 번 표행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일정 기간을 일하지 않고 쉬게 된다.
제아무리 낭만과 야만의 시대라지만, 최소한의 복지는 있는 셈.
그런 기간을 휴표 기간이라 불렀는데, 바쁜 표사들은 이때가 유일하게 쉴 기간이다.
대석표국은 이때도 봉급을 준다거 하니, 역시나 항주에서는 제일가는 직장은 석가장이다.
“그렇습니까? 미리 알려주셨다면, 제가 모셨을 텐데요.”
“하하하. 그럴 걸 그랬습니다···만. 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뵈었던 분이 석호루의 그 이 공자셨다니. 허허. 오늘에야 알았지 뭡니까.”
최립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쭈뼛거렸다.
저 멀리 하북에서 돌아오며 풍문을 들었던 그는 나와 진효풍의 이야기를 거짓일 거라 치부했었다.
헌데, 막상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이가 당사자라니, 최립은 뻘쭘할 수밖에 없다.
‘그때 마부가 진 대협이었던 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
최립의 심적 안정을 위해서.
“저 때문에 돈을 잃으셨겠군요. 제가 마음이 쓰입니다. 이럴 게 아니라, 제가 오늘 특별히 모시겠습니다. 어디에 자리하고 계십니까?”
“아아. 아닙니다. 이미 자리를 파하고 다른 곳으로 가던 중에 이 공자를 보고 아는 척이나 하려 와 본 겁니다.”
“벌써 가시려구요?”
석호루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지만, 딱히 최립을 본 기억이 없다. 앉아 있었다면, 그를 내가 놓치진 않았을 텐데.
조금 이상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3층에서 마시고 가는 길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신임 표두님이 있지 않습니까?”
“그, 호걸이라시던?”
“암요. 예. 호걸이지요. 허허. 실은 멋도 모르고 석호루에 왔다가 빈자리가 없어 3층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한 턱을 내주셔서 겨우 마셨지요. 허허.”
“다음부터는 미리 기별을 주십시오. 제가 최대한 재량을 발휘해 보겠습니다.”
“어이쿠. 영광입니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최립은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전하고는 뒤돌아섰다.
밖을 향해 걸어가는 그.
그런 그를 같은 복색의 표사들이 맞아줬다.
휴표 기간임에도 자랑스럽게 대석표국의 무복을 입고 다니는 표사들.
다섯 정도 되는 이가 최립과 기탄없이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장 밖을 향했다.
난 그들 중 누가 호걸이라는 그 표두일까. 궁금증을 안고는 빤히 바라봤다.
배가 조금 튀어나온 키가 큰 표사, 수염이 장비처럼 삐죽한 표사, 그리고 비쩍 마른 표사까지.
표사들은 저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개성 있다면 개성 있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런 표사들 중에서도 내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건.
‘여자···?’
가느다란 허리선을 가진 키가 큰한 여성 표사였다.
표사답지 않게 하얀 피부에 같은 무복을 입었어도 선이 다르다. 키는 크지만, 질끈 묶어 올린 머리가 딱 어울려 누가 봐도 여성인 표사가 하나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난.
‘저 사람이구나.’
그 여성 표사가 최립이 말한 표두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바텐더는 자연스레 손님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늘 바 테이블 너머에서 마주하는 게 손님들이니까.
덕분에 여러 사람이 모여도 그 자리를 주도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묘하게 외곽을 돌며 적당히 맞장구만 치는 모양새지만, 분명 저들은 저 여표(女?)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표사라. 신기하네.’
여자 표사 자체가 흔하지 않은 시대로 알고 있었다. 뭐, 무공이라는 사기급 치트키가 있기에 그것만 익혔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표두라면 표사를 여럿 거느리는 자리일 텐데, 그 자리까지 오른 여표라니.
이건 신기하긴 한 거다. 최립이 호걸이란 말 앞에서 어정쩡하게 반응했던 게 이제야 이해가 갔다.
슬쩍 석호루에서 멀어지는 표사 무리를 한 번 더 뒤돌아 바라봤다.
왜인지, 다른 이들보다는 그 표두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
“주공.”
석호루가 영업을 시작하기 전인 이른 오전.
석호루 뒤로 서호를 향해 작게 펼쳐진 마당에서 주공과 짧은 차담을 나누고 있었다.
초봄을 지나 어느새 찾아온 완연한 봄 날씨가 제법 따스해 비질 땀이 날 정도였다.
“흠. 할 말이 있더냐?”
술 수업을 마치고 나온 주공은 가볍게 차를 털어 마시고는 귀찮다는 듯 답했다.
술이면 몰라도, 차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주공이다.
“얼마나 남은 거 같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돌아오는 되물음에 난 곧장 고개를 들어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공.
그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내 말을 이해한 듯 답을 들려줬다.
“보름 정도 남은 거 같구나.”
“빠르군요.”
“항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위가 빨리 찾아오는 곳이다. 겨울에도 서늘함이 빨리 사라지지. 보름 후면···다른 술은 몰라도 아주(兒酒)로 나오는 석황주의 출하량을 반 정도로 줄여야 할 것이다.”
주공과 내가 나눈 대화는 별다른 게 아니다. 여전히 술 이야기. 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그런 이야기다.
앞서 매약주를 빠르게 발효하려 상온발효란 기법을 썼었다. 그때는 높은 온도가 우릴 도와줬던 시기.
허나,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그 높은 온도가. 우리를 방해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항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남쪽에 있는 곳이다. 더위도 더욱 빨리 찾아오고, 한여름이면 무더위 역시 자랑하는 곳.
술에는 그리 좋은 영향이 아니다.
상온발효처럼 빠르게 익히기 위해 쓰는 게 아닌 이상, 높은 온도는 술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에 타격을 곧장 받는 건 당연히 석황주다.
매약주야 상온발효가 가능하다지만, 쌀로 빚는 술인 석황주는 이게 불가능한 술.
석황주는 술이 빚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저온을 유지해줘야 하는 술이다.
“역시, 비수기군요.”
“흠. 천기를 거스를 수야 없지.”
날이 무더워지면, 양조장이 받는 타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래라면, 멀지 않은 도시까지는 석황주도 판매가 가능했다.
예컨대 소하상가가 있는 소주. 소주 정도라면 제아무리 발효주라도 운반 중에 상할 거리는 아니지 않나.
이처럼 소주나 황산 등 주변 도시까지는 팔 수 있던 이 석황주가 여름에는 팔 수 있는 거리마저 줄어들고 만다.
이 역시 날씨 때문이다. 더우니 술이 빨리 상하고 그러니 더 짧은 거리밖에 운송을 못 하는 것.
해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남쪽 지역 양조장에는 비수기가 찾아오고 만다.
남쪽에 있는 양조장들은 이때를 마치 겨울을 맞이한 유목민족처럼 힘들게 넘겨야만 한다.
“석호루가 걱정이구나.”
당연한 이야기로 양조장에서 술을 받아오는 석호루도 타격이 크다.
석호루에서 제일 잘 나가는 술은 아직 오기조원주가 아니다. 오기조원주야 풍문을 타고 유명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는 따로 있는 법.
어떤 술이 제일 잘 나가겠나. 가격도 저렴하고, 술술 넘어가며 익숙한 맛이지 않겠나.
딱, 아주로 나온 석황주가 이런 포지션이었다.
내가 석호루에 오기 전까지였다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수율(收率)이 날씨에 따라 조금 떨어진다지만, 석호루가 그리 많은 술을 파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다르다.
석호루는 매일매일 만석을 이루는 주루가 되었다.
나가는 아주만 해도 이전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
양조장에서 뽑아줄 술이, 석호루에 부족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다른 술을 대신 파는 걸 반대하느냐?”
주공은 앞서 자신과 내가 부딪혔던 가장 큰 문제를 떠올렸다. 그때 내가 강하게 주장했던 건 손님이 원하는 술이 주루에 있어야 한다는 것.
손님은 가게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수율도, 날씨 탓도.
이를 타파해야 하는 건 언제나 업장의 몫이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나 역시, 어느 정도 생각은 해두었었으니.”
“들을 수 있겠습니까?”
“2년 정도 묵힌 술 중 고숙성에 어울리지 않는 술들이 있다. 아주보다야 나을 테지. 숙성비용을 생각하면 조금 피를 보는 경향이 있다만, 어차피 애매한 술이니 석호루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아주의 가격으로 파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더냐.”
주공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천지가 개벽할 말이다.
앞서 손님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놈들이라며 욕하던 이가 주공이 아닌가.
새삼, 그의 발전이 눈부시다.
“왜 그렇게 보느냐?”
“많이 바뀌신 것같아 그럽니다.”
“크흡. 뭐.”
주공도 옆에서 석호루가 커가는 걸 지켜본 이다. 자신이 공급한 술을 이렇게 잘 팔아 주니, 주공 역시 잊었던 감정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석호루의 이름값을 지킨다면야,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합니다.”
술이 없어서 못 파는 것보다야 손님을 계속해서 받으며 이름값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긴 했다.
봄부터 이어지는 늦여름까지. 두 철 정도만 손해를 감수하면 되지 않나.
주공으로서는 여기까지 봐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손해를 보지 않고 여름을 나는 게 최선이지 않겠습니까?”
!
난 이번에도.
조금 생각이 달랐다.
“또···방법이 있는 것이더냐?”
이제는 미친짓이라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느니.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주공의 얼굴에 맺히는 건 자신을 더 굴리려 하냐는 듯한 표정.
여름이 오면 손해야 아쉬워도 허리는 조금 펼 수 있을까. 하던 주공의 얼굴이 살짝 굳어갔다.
일이 줄어들면 손해가 생기지만, 반대로 장인은 조금 쉴 수 있지 않나.
주공의 여름 휴가를 내가 뺏어간 기분까지 들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주공께 무리한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허면?”
“저번에 하셨던 말씀, 기억하시는지요?”
“어떤?”
“언제 가져갈 거냐고 물으셨었지요.”
“설마?”
어떤 물건이든 제값을 받는 시기가 따로 있다. 한 물건을 사도 제철에 사야 가장 큰 효율을 보는 법.
철로만 본다면야, 봄과 여름은 양조장을 가져가기에는 좋지 않은 철이다.
그런 시기에 양조장을 가져가겠다고 말하니, 주공은 이번에도 혀를 끌끌 찬다.
“네놈은 뭐든 정상적으로 하는 게 없구나.”
“그래서 싫지 않으신 게 아닙니까.”
“정말, 괜찮겠느냐? 지금 가져가면, 네가 맡은 첫 철이 적자로 기록될 것이다. 석호루를 잘 키우고는 있다지만 평판이···”
“반대로 이럴 때 가져가 이문을 남기면. 평판은 더욱 올라가겠지요.”
“허허. 미친놈.”
– 호르르륵.
주공은 이번에도 제일 좋아하는 애칭을 불러주고는 차를 들이켰다.
생각에 잠기는 모습. 일전에 내기하며 받았던 다짐으로라면 주공은 여기서 반대하면 안 된다.
그래도 가까워진 사이도 있고, 그도 남아야 하니. 그의 허락은 꼭 받고 싶었다.
주공은 잔을 모두 삼키더니.
“해서, 어찌 가져갈 생각이더냐?”
이내, 가져가란 말을 전한다.
그도 내가 양조장을 가져가 어떻게 바꿀지를 보고 싶은 눈치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도 가볍게 차를 한 잔 들이켜고는.
“이틀 후, 석가장에서 월례 회의가 열리지 않습니까? 그때, 주공께서 참석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양조장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