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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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비싼 옷을 꺼내 입었다. 이제는 받는 월삭에 받은 돈도 있어 사치를 부릴 수도 있는 요즘.
머리에는 이 시대의 포마드인 머릿기름을 조금 발라주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화창하다.
완연한 봄이 온 모양이다.
마당에 나서니, 여전히 보이는 건 옆 객당의 담벼락. 담벼락 너머의 이호객당은 오늘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진 대협은···.’
아직 소식이 없다.
항주를 떠나며 열흘이면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미 열흘하고 하루가 더 지났으니, 그의 귀환은 언제일지 이마저 괴이하다.
“내가 누구 걱정을.”
그래도 걱정은 없다. 그가 변고를 당할 것보다는 변고가 그에게 변고를 당할 걸 걱정해야 하는 게 강호의 도리니까.
오다가 또 누굴 만나 한잔하고 있겠지. 그렇게 넘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객당을 벗어나 대석당으로 가는 길.
오늘은 석가장에서 열리는 월례 회의가 있는 날.
내게는 중요한 날이다.
적을 석호루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건 관리하는 업체를 하나 늘리는 것.
그 늘어날 업체는 당연히 양조장이다.
양조장은 처음 석호루를 맡을 때부터 내가 그려왔던 그림 중 하나다.
주공에게 중원의 술을 배우고 있다지만, 이는 원래 내가 쓰던 술보다 불편한 게 사실이지 않나.
양조장을 맡는다면, 내 손으로 내가 다룰 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은 시기적으로 내가 양조장에 부임하기 딱 좋다. 날씨가 따뜻해지며 양조장의 비수기가 올 시기가 지금.
난 이 비수기를 없앨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고.
대석당에 도착하니 석가장의 각종 사업을 맡은 모든 행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공 총관을 시작으로 상단, 선단, 전장, 표국, 공방, 그리고 시전 행상, 논밭의 소작을 관리하는 이들까지.
몇 명은 아예 얼굴도 처음 보는 이들이라 어색함이 조금 감돌았다.
아는 이들은 내게 눈으로 인사를 건넸고, 처음 보는 이들은 어색하게 눈빛으로 날 훔쳐보고 있다.
쏟아지는 눈빛을 뚫고 안으로 들어서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았다.
‘주공은···아직이네.’
– 드르르륵.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명이 더 안으로 들어서 정확히 내 옆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두의 따가운 시선이 비수처럼 새롭게 들어온 인물을 향했다.
“다들, 눈에서 불이라도 뿜겠소.”
“크흡!”
들어온 이는 또 성정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보태 시선을 더 끌어모았다.
내 옆에 앉은 이는 양조장의 장인, 주공이었다.
“별일···입니다. 주공께서 월례 회의에 다 나오시고.”
“못 나올 곳은 아니지 않소?”
“원래라면, 못 나올 곳이지요.”
“어찌하여?”
“주공께서는 장인이지 않습니까? 여긴 관리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양조장에 관리자가 없으니, 노부가 그 일까지 함께하는 게 아니오?”
“그야···!”
당신이 죄다 쫓아내서 없는 거지.
말을 받아치려던 한 행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말에 지지를 보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공의 말을 인정해서 이러는 건 아니다. 무서워서보다는 다들 더러워서 피하는 것.
주공이란 인물은 건드리면 피를 보는 자. 그저 넘어가는 게 최선이다.
– 드르르륵.
적당한 눈빛들이 오갈 때.
문이 열리고는 석가장 최고 중진 셋이 들어왔다.
장주인 석두원과 공 총관, 상단주 구동해였다.
“응···?”
공 총관은 자리에 참석한 이들을 살피던 중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내 옆에 앉은 인물 때문이다.
“자네가 여길 왜···?”
그 역시 연신 눈을 깜빡이며 주공을 보다가 옆에 함께 앉은 내게 시선을 보냈다.
난 애써 시선을 피하며 눈썹만을 들어 올렸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크흡. 월례 회의를 시작하겠소.”
적당히 사태를 이해한 공 총관이 회의를 주관했다. 석두원도 조금 놀란 눈치지만, 이럴 때는 위엄을 잃지 않는 그다.
공 총관, 구 단주와 따로 봤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해서, 대석상단이 벌어들인 돈은···, ···표국은 15건의 표행을···”
회의가 시작하자, 날카롭던 눈빛들이 제법 사라졌다. 저마다 나오는 숫자에 집중하는 모습.
항주제일세가라는 명성에 맞게, 오가는 숫자가 작지 않았다.
“다음은, 석호루입니다.”
몇 번의 보고가 더 오가고 공 총관의 보고가 석호루에 닿는다. 자료는 이미 대석전장을 거쳐 공 총관에게 보내뒀다. 나오는 숫자에 딱히 과장도 축소도 없었다.
“···해서, 종합하면 지난달의 총 8배에 해당하는 이문이 남았습니다.”
“오오.”
“8배?”
“지난 석 달의 적자를 메꾸고도 남겠군!”
“저게 정말 단일 점포에서 거둔 매상이란 말인가?”
“주루를 늘리는 것도 생각해야 겠군요.”
가신들은 저마다 보고를 듣고 느낀 감상을 들려줬다. 나오는 감상들은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
공 총관은 그런 반응들이 재밌는지, 한마디를 덧붙여 본다.
“이는, 얼마 전부터 판매한 오기조원주의 판매액은 집계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오기조원주로 거둔 이익은 익월부터 계산될 예정입니다.”
!
다들 오기조원주의 명성이야 잘 알고 있다. 덕분에 석호루가 어떤 호황을 겪었는지도.
자신들이 속한 가문의 일인데, 어찌 풍문을 그냥 지나쳤겠나. 오기조원주 덕분에 돈 좀 만졌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그런 풍문의 효과 없이도 이런 수익을 거뒀다니, 더욱 놀라는 반응이 나오고 만다.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공 총관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보고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양조장입니다. 양조장도 전월 대비 수익이 3배는 늘었습니다. 물론, 매약주의 판매로 인한 반등은 뺀 수치입니다.”
“양조장마저도요?”
“석호루에서 만들어 낸 술을 모두 팔아주니, 양조장의 수익도 자연스레 오르는 것이지요.”
“일석이조란 말이 딱 맞군요. 허허.”
흐름이 좋다. 구동해 단주의 덧붙이는 추임새까지 완벽한 보고. 공 총관은 읽던 서류를 접으며 보고를 마침을 알렸다.
“보고는 이상입니다.”
“고생하셨소, 총관. 다들, 따로 보고할 사항은 없으시오?”
석두원은 고생한 공 총관에게 인사하고는 가신들을 둘러봤다. 중요한 사안이라면 곧장 보고하는 게 최선.
또한, 이번 주 안에 일어난 일은 정산에 반영이 안 되기에 이렇게 직접 보고를 올리는 게 정해진 방식이다.
“장주. 표국에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일 처음 손을 드는 건 표국의 대장궤로 일하는 행수 장초립이다.
총표두가 병으로 앓아 누은 후 대석표국은 그가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곧 표두 중 총표두를 뽑아야 한다던데. 아직은 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그 여표도···’
총표두 후보일까.
또, 그때 봤던 그 여표가 머리에 떠올랐다.
“장 행수. 말씀하시오.”
“하북 표행과 관련해 추가 전표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표행에 성공한 걸 축하하는 의미라고 하니, 곧장 대석표국으로 보냈습니다.”
“음. 하북 표행이라. 먼 거리였소만, 다들 고생하셨소. 내 그리 알고 있겠소.”
“저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다음으로 손을 들건 장비처럼 생긴 한 중년인이다.
선단을 관리하고 직접 선박을 이끌기도 하는 그는 손목건이라는 이로 배를 통한 운송은 그가 모두 총괄한다.
뱃사람 특유의 거칠고 까만 피부가 멋진 사내였다.
술과 배는 떨어트릴 수 없다. 배를 통해 발전한 게 주류의 역사. 본능적으로 그가 싫지 않았다.
“손 단주. 말씀하시오.”
“연안 지역에서 왜구가 기승입니다. 일전에는 주산(舟山)과 태주(台州)에서 기착하던 일도 이제는 무리입니다. 앞으로 선단을 보낼 때는 이를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면, 무기착으로 항해를 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비용도 조금 늘겠지만, 이마저 안전한 방법은 아닙니다. 왜구의 습격이야 선상에서도 가능한 일이니.”
“허어. 한동안 잠잠하던 왜구가 어찌 또?”
“풍화도에서 변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영향이 아닐지요?”
“관에서는 말이 없소?”
“풍화도 왜구라면, 관청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워낙에 신출귀몰한 자들이기에···. 본국에 줄도 없는 자들인지라 답이 없습니다.”
“한동안 바닷길은 최대한 피해들 봅시다. 혹, 꼭 꾸려야 한다면, 위 대주.”
“예. 장주님.”
“무사대에서 일부 무사를 차출해 보내줄 수 있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석두원은 고충을 듣고는 곧장 석가장의 무사대의 대주 위관엽을 불렀다.
얼굴에 긴 칼자국이 있는 그는 철환의 전 상관으로 추혼검(追魂劍)이란 이명으로도 유명한 자였다.
장주의 명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였다.
“더 할 말이 있는 분은 없으시오?”
이어지는 물음에 연달아 찾아오는 잠시간의 침묵.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하겠다. 석두원이 그런 말을 하려 할 때.
– 스윽.
누군가 짧은 손을 들어 올리니, 이내 대석당 안이 술렁였다. 손을 든 이는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던 주공이었다.
“주···공?”
“이 노신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석두원의 얼굴에도 당황이 찾아왔다. 허나, 장주는 장주. 석두원은 얼른 얼굴을 고치고는 하하 웃었다.
“물론이지요. 내, 오랜만에 주공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선친 때부터 석가장을 지켜주신 분이 아닙니까? 이 석모. 뭐든 겸허히 듣겠습니다.”
나오는 말은 감히 가신에게 향할 법하지 않은 말. 전대부터 세가를 지켜온 가신에 대한 예의가 가득 묻은 말이었다.
사고뭉치에 잔뜩 모난 돌이지만, 수십 년을 한 가문에 몸담았다는 건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주공은 가볍게 목을 까딱이고는 입을 열었다.
“이 주모가 이제는 몸이 쇠하여 양조장의 일을 보기가 힘이 듭니다.”
!
“주, 주공!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 잠깐! 자네. 설마?”
나오는 말에 반응은 크다. 석두원도, 공 총관도 깜짝 놀라는 반응.
양조장의 장인이 바뀌는 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후사까지 받은 적이 없던 주공이 갑작스레 말을 꺼내니, 두 사람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다.
두 사람은 주공이 은퇴를 시사하는 줄 안 모양이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휴. 놀랐습니다.”
양조장도, 증류소도. 책임자가 바뀌면 술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계도기라 부르는 시기는 양조장에 큰 변화가 오는 시기.
이때를 제대로 넘기지 못해 휘청이니 양조장과 증류소도 있으니, 이건 갑작스레 다룰 문제가 아니다.
두 사람이 안심한 건 이런 이유였다.
“허면?”
“사람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사람이라? 인력 충원을 말씀하시오? 내 얼마든지···”
“노신은 그저 술만 빚을 테니, 양조장 전체를 관리할 관리자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
오랜만에 말을 꺼낸 오래된 가신의 부탁. 허니, 흔쾌히 들어주려던 석두원.
허나, 주공은 고개를 대차게 흔들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말해본다.
옆에서 듣던 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주공과는 이미 합의된 이야기였다.
“관리···인을 말인가? 자네···”
이번에도 쫓아내려는 게 아닌가.
공 총관이 그런 말을 하려하자.
“옆에 앉은 이놈, 아니. 이 공자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석호루와 함께 맡는 쪽으로 말입니다.”
주공은 약속된 말을 그대로 읊어갔다.
그제야.
“음. 이 공자라면.”
“두 사람이라면···. 흐음.”
조금은 내게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공자라면 믿고 맡길 수 있긴 합니다. 다만, 그게 어떤 실리가 있을지요?”
반대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음. 주공. 자네가 이 공자와 일을 하고 싶은 거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네. 솔직한 말로는 이 공자가 석호루에 더 집중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심지어 믿었던 공 총관의 입에서도 조금은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잊고 있었다. 공 총관과 내 관계는 돈독하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같은 석가장의 가신으로의 이야기.
석가장의 이익과 실리 앞에서는 공 총관은 사적인 관계를 배제하고 합리적인 가신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게, 석가장의 총관이라는 이다.
“···이 썩을···”
“뭐라?”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자 주공이 슬쩍 입으로 속삭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그를 난 한 손을 들어 얼른 제지했다. 여기서 행패는, 답이 아니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살며시 손을 들고는 회의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난 모두에게 가볍게 포권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좋은 기회를 주신 주공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떤 실리가 있냐는 물음 역시 공감합니다. 먼저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맡겨 주신다면 저는 양조장까지 맡아서 관리해 보고 싶습니다.”
“흠. 자네의 마음은 이해하네. 듣기로는 양조장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지. 이번에 매약주도 자네가 건넨 조언으로 닷새 만에 만들었고.”
“작은 재주였지만, 서역에서 배워온 방식은 맞았습니다.”
“허나, 지금 그대는 석호루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지 않나. 석호루가 반석에 올라간 지금. 오히려 하나의 업장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공 총관은 냉담하기 그지없는 반응으로 실리를 읊어갔다. 냉담하게 실리를 말하지만, 묘하게 날 올려주는 듯한 말.
이건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 같지만 은근한 메시지를 보내는 거다.
실리는 말해보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실리를. 그게 중원의 세가가 하나의 일을 결정하는 방법이니까.
공 총관의 말이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총관의 말씀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딱 이 시기이기에 제가 양조장을 맡아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어째서?”
“곧 여름이 옵니다. 술의 출하량이 크게 떨어지겠지요. 그간 열어두었던 석황주의 다른 도시로의 판로(販路) 역시 줄어들 테고요.”
“그게 자네가 양조장을 맡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 씨익.
역시나.
공 총관은 날 돕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방금 물어온 말은, 내가 딱 기다리던 말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어시스트가 정확히 내 발아래에 떨어졌다.
난 그의 말을 받아 차분히 결정타를 날렸다.
“제가 석황주의 출하량을 여름에도 떨어트리지 않을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방법을 쓴다면, 북경. 아니, 그보다 더 먼 곳 어디까지라도. 석황주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겁니다.”
나온 말은 모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
특히나 덧붙인 뒷말은, 주공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