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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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서역과 왜에서 술을 배워온 자는 여기서 어떤 말을 들려줄까.
그런 생각에 잔뜩 기대하는 주변의 눈빛들.
난 그런 눈빛들을 배신하지 않고.
“한잔은 딱 맞고 두 잔은 너무 많지만 석 잔부터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원래 한 잔 이상을 잘 마시지 않으나, 오늘은 또 후래삼배(後來三杯)란 말이 제 발목을 잡는군요. 늦게 온 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세잔 이상을 마셔야 하니, 오늘은 부족함이 채워질 때까지 함께 잔을 기울이시지요.”
앞선 이들을 보며 준비한 말을 차분히 뱉어갔다. 생각보다 유려하게, 또 그럴듯하게 술과 관련된 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이건 중원에 와서, 또 이쪽 땅에 와서 새로 배운 말은 아니다. 어쭙잖게 배운 말이 갑작스레 튀어나올 리도 없고.
내가 전한 말은 칵테일의 왕이라 불리는 마티니를 표현한 유명 만화가 제임스 서버의 표현을 비튼 것인데.
바텐더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표현이기에 자연스럽게 변조를 줄 수 있었다.
다행히, 말을 들은 이들이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 게 제대로 먹힌 것 같다.
“옳다! 본디 술이란 과하면 과할수록 결핍되는 것이 그 본질이지! 아니 그렇소이까?”
“그렇습니다. 장주. 이공자께서 딱 알맞은 말로 본질을 뚫어 보시는군요. 허허.”
“그나저나, 내 그 말을 직접 듣긴 처음이오만, 이공자. 어느 고사에서 인용하신 겐가? 이 석모, 그대가 허락한다면, 그 인용을 다음에 써보고자 하오만.”
전한 말을 들은 석두원의 어깨가 잔뜩 올라간다. 원래 이런 자리에서 식객이 재주를 뽐내면 주인이 자랑스러워 하는 법이다.
“중원의 고사는 아닙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 들었던 말을 새롭게 해석해 봤습니다.”
“허면, 서역의 고사란 말이군. 하하하. 내 오늘 또 이렇게 하나 배워가오. 이러니, 객당을 비워둘 수가 있나!”
한껏 목소리가 높아진 석두원은 신이나 먼저 잔을 들이켜 버린다.
그가 잔을 내리고 나서야, 가신과 식객들의 잔이 입으로 향했다.
나 역시 그에 맞춰, 오랜만에 가장 친한 친구와 마주했다.
‘음-!’
좋은 향이다. 품어지던 주향이 맛에도 그대로 품어져 있고 잘 숙성된 술에서만 풍기는 미세한 진득함까지.
과연 석가장의 석황주가 절강성에서는 아주 유명하다더니, 그 명성이 허투루 쌓은 건 아닌 모양이다.
입안에서 진하게 퍼져 속으로 삼키기 싫은 정도였다. 10년을 묵혀 진득해진 질감 역시 일품이었다.
“갑작스럽긴 합니다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공자께 말씀을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잔이 모인 이들의 입을 오갈 때. 이번에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이는 구동해 단주였다.
앞서 서역의 상행에 관심이 많다던 그는 내게 듣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크게 도움이 될 리는 없지만 말이다.
“하문하시지요.”
“다른 건 아닙니다만, 혹 이 공자께서는 서역에서 무슨 일을 하셨었는지요? 이렇게 서역의 고사도 인용하실 정도면 예삿일을 하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상행을 다녀왔다기에는···”
구동해는 애써 말끝을 흐리며 말을 마쳤다. 말이야 흐렸다지만, 흐린 말속에 숨은 뜻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마, 상행을 다녀왔다기에는 너무 허여멀겋다는 것일 터.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풍채가 있는 게 미덕인 이곳에서 적당한 체격의 내 모습은 허약하다 불러도 좋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키야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크다지만 그게 전부다. 이곳에 있던 이들에 비해서는 백옥같다는 말도 어울릴 게 내 피부.
구동해 단주의 말처럼, 상행을 다녀온 이라면 이런 피부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흐음.”
석두원은 구동해의 말을 듣고는 또 재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날 한 번 보고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
“이공자가 원치 않는다면, 밝히지 않아도 좋네만.”
“괜찮습니다, 장주님.”
“그런가? 허면, 직접 답해주시게나. 허허. 이제 이 석모가 대신 자랑하는 것도 주책일 테니.”
직업이란 게 중원에서는 신분을 나누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기에 먼저 밝히진 않았던 석두원.
그런 배려에 슬쩍 감사를 표하고는 구동해에게 직접 답을 들려줬다.
“전 서역과 왜에서 조주사로 일했습니다.”
“조주사요?”
“조주사?”
“그게 무엇이오?”
“아시오?”
“아니. 내가 어찌 아나?”
그러자 나오는 건 저마다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들.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난 설명을 조금 덧붙였다.
“조주사란, 술을 더 맛있게 만들고 또 술을 마시는 이에게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돕는 자들을 말합니다.”
“술을 더 맛있게 만든다···? 허면, 양조나 증류를 말하는 겁니까?”
“그쪽과도 연관은 있습니다. 허나, 조금은 다릅니다. 아마 아직 중원에는 없는 직업이기에 다들 생소하실 겁니다.”
“허어. 서역과 왜에만 있는 직업이란 겁니까? 신기합니다, 그려.”
“허허. 나도 처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했네만, 생각해보게. 그러니 가짜 술도 한 번에 알아보고 또 가짜 술로 생긴 독도 해독한 게 아니겠나?”
“그렇군요. 어쩐지! 허허. 이제야 모두 이해가 됩니다!”
“석가장으로서는 기연이군요. 허허. 석가장하면 또 술이지 않습니까?”
“암요!”
조금은 자세히 물어오려는 누군가의 말에 석두원이 먼저 나서 이를 방어해 낸다.
다행히 앞서 보여준 행적이 있어 얼른 이를 납득하는 가신들이다.
조금 자리가 내 위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확실히 어떤 사람인지 또 뭘 하던 사람인지는 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한 것 같았다.
“허면, 장주님.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든 것도···?”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공총관이 석두원의 의중을 물어온다.
둘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몇 번 주고받더니, 이내 석두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 실은 오늘 여러분을 이리 모신 것은 교류를 위함도 있지만, 객관적인 평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하오. 마침 객당이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로 찼고 또 이 공자 같은 전문가도 있는 지금이 내 적기라 생각해 이리 말을 꺼내 보는 거요.”
“객관적인 평이라면···?”
“바로, 이 석호루 말이오.”
담담하게 말을 꺼낸 것처럼 최대한 애를 쓰고 있다. 허나, 보이는 건 조금 가슴 아파하는 이의 모습.
그를 아는 것처럼 공총관 역시 착잡한 표정으로 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조금 아쉬운 건, 듣는 이들이 말을 뱉어오는 이의 의중을 전부 아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는 점이다.
“허허. 장주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석호루라면 순항 중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붐비지 않은 적이 없는 곳이 석호루입니다. 걱정은 두시지요.”
이해는 한다. 다들 맡은 영역이 다른 곳이니 전문 분야가 따로 있으니.
다만, 말을 꺼내기까지 무거웠던 주군의 표정을 읽지 못한 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장주. 석호루는 단순한 주루로 보시면 안 됩니다. 최근 양조 면허가 남발되고 그에 따라 여러 술이 나돌고 있습니다. 석호루는 그런 시기에 맞춰 석가장의 술을 파는 일종의 돌파구로 보셔야 합니다.”
다행히 그의 의중을 모두가 놓친 건 아니다. 상단을 책임지는 구동해는 자신의 위치답게 제법 거시적인 의견을 들려줬다.
석두원이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라도 말이다.
“흐음. 구 단주의 말이 맞소. 허나, 이 석모. 석호루라는 걸 세울 때는 큰 포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오. 서호 주변 상권이야 이미 들어찬 게 30년 전이요. 석호루처럼 신진 업장이 생긴 건 근 15년 만일 거고. 서호에 주루를 세우는 건 오랜 내 꿈이었소이다. 그리 간단히 넘기기엔 마음이 쉽지 않소.”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인지는 알겠습니다. 다만, 주루의 운영은 길게 봐야 하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평하려 하지 마시고 길게 보시지요.”
그나마 전해지는 구동해의 무거운 진언에 석두원의 표정이 조금 펴진다.
입술을 조금 깨문 그는 애써 말을 삼키는 것만 같았다.
구동해의 말은 어떻게 보자면 시간을 길게 두고 보자는 말이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낼 수 있는 최선의 의견이지만, 내가 보기엔 석두원의 답답함이 가중되기만 할 뿐이다.
“그대의 말이 틀리지 않소. 내 그저 급한 마음에···.”
석두원은 다 안다는 듯 체념하는 표정을 슬프게 지어갔다. 잔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이 유독 힘이 없어 보였다.
“좋소. 우선은 길게 본다손 치더라도. 외지에서 온 객들의 고견도 한 번은 듣고 싶소만. 두 학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석두원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깊게 가지더니 몸을 틀어 반대편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닿은 이는 풍채 좋은 학사 두영해였다.
두영해는 음식을 흡입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는 얼른 입가를 닦아냈다.
“큽. 큽. 미천한 유생이 상도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다만, 개인적으로 석호루의 음식도 경치도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또한, 포부가 곧 뜻이란 말도 있으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겁니다.”
“흐음. 그렇소이까?”
“본생은 그리 믿습니다.”
“나 역시 곡 그리되길 바라오. 고맙소.”
석두원은 두영해의 답에 씁쓸히 답하고는 잔을 들어 표정을 가린다.
적어도 좋은 일이 있을 거란 고사 하나 정도는 붙여주지. 명망 있는 유생이라기에는 아쉽기 그지없는 답이다.
“매소저께서는 어떻게 보시오?”
“소녀 역시 상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혹여 장주의 식견을 흐릴까 걱정이 됩니다.”
“허허. 매소저께서는 북경에서 제일이라 불리는 주루의 악공이 아니시오? 그간 경험한 것이 주루의 신출내기인 이 석모보다 적진 않으실 테니 기탄없이 말해 주시오.”
석두원은 두영해를 지나 옆에 앉은 매초현에게 시선을 건넸다.
거듭되는 청에 고민하던 매초현은 겨우 입을 열었다.
“그저···. 소녀가 생각하기에 석호루는 분명 좋은 주루입니다. 다만,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들었습니다. 외관과 내부의 화려함이 수려하나 이는 더불어 중인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망측한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답이 들려오자 조금은 밝아지는 석두원의 표정.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초현의 말을 곱씹어 갔다.
내가 듣기에도 두영해란 학사의 말에 비해서는 훨씬 영양가 있는 말이었다.
“좋은 말씀이오. 매 소저의 말씀을 들어보니, 맞는 말씀 같소. 허면, 혹 그를 극복할 방도가 있겠소이까?”
“여기서 화려함을 더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소이까? 음. 고견을 들려주셔서 감사하오. 매소저. 매번 신세를 지는구려.”
“소녀가 부족해 장주께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오. 충분했소. 허허. 그저 답답한 마음에 표정을 갈무리 짓지 못했구려.”
문제야 나왔지만, 답은 나오지 못했다. 매초현의 말에 기대했던 난 그런 평을 내릴 수 있었다.
당장에 건물을 갈아엎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매초현이 말한 것들을 고치겠나.
당면한 문제를 밝힌 건 좋았으나, 답이 없는 문제 제기는 언제나 공허할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석두원이 잔을 또 들어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장주. 이 공자께서 서역과 왜에서 술을 배우셨다니 고견을 한 번 청해보시지요. 중원과는 다르나, 또 결국은 만류귀종이 아닙니까?”
그런 장주를 보듬는 건 이번에도 공총관이다. 공총관의 말에 석두원의 눈이 내게로 옮겨왔다.
“옳소. 내 전문가께 말을 묻기가 두려워 이리 돌아왔구려. 비록 술과 주루의 운영이 다르다고는 하나, 이 공자께서는 서역과 왜에서도 많은 주루를 보셨지 않겠소? 이 공자. 내 감히 고견을 청하겠소이다.”
앞서 두 번의 문답에서 별 성과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술과 주루는 다르다는 생각 때문일까.
석두원은 기대감이 꺼진 눈으로 날 바라봤다. 동정심이 조금 생기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걸려있다.
“저는 항주에 온 지 아직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석가장에 온 지는 고작 일주일이 되었지요. 해서, 제가 석가장의 사정을 제대로 알고 말을 뱉을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허허. 말이 기신 것을 보니 독설을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공자.”
전장을 담당하던 염항이 마치 이런 분위기가 싫다는 듯 대충 넘어가란 어투로 내게 압박을 가해왔다.
난 애써 모르는 척하며 이를 무시했다.
“충언이라 생각해주시지요.”
!
가신들의 표정이 일시에 어그러진다. 이런 눈치 없는 인간을 봤나 하는 표정을 지어대는 이들.
적당히 구동해가 해준 진언을 따르고 넘어가자는 그게 중론이었던 그들이기에 새로운 말을 뱉으려는 내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난 다른 곳으로 시선을 흘리지 않고 석두원만을 바라보며 당당히 입을 열었다.
“저는 석호루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